말래카 해협과 함께 18년 - 항공촬영 전문가 폭슬리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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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도 찍고 해적도 보고 - 말래카 해협과 함께 18년, 항공 촬영 전문가 폭슬리 영감
  
  말래카 해협의 이름이 유래된 말레이시아의 고도 말래카 항구를 우리 취재반이 찾아간 것은 지난 1월 초순. 싱가포르에서 낡은 벤츠를 빌어 해안길을 따라 말래카로 달리기 시작했다. 입국 수속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다리 입구에서 간단히 끝났다. 왕복 2차선 포장도로는 나지막한 언덕 위 숲 사이로 뻗어 있었다. 고무나무, 야자수, 파인애플, 바나나의 농장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무 사이 사이로 드러난 땅은 기름진 황토색. 주석, 야자 기름, 고무의 수출량에서 세계의 3관왕인 이 나라는 천연 가스 매장량에선 세계 제4위, 기름도 수출하고 있다. 고무나무의 껍질을 벗겨 받아내는 고무 원액인 라텍스는 찐득한 우유 같았다. 허연 액체를 줄줄 분비하고 있는 고무나무 숲의 장관은 이 나라의 질펀한 자원량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파인애플 농장 주인의 순박한 눈초리, 카메라를 들이대자 울음보를 터뜨린 그의 아들, 식당 주인의 웃음…
  
  사람들의 인상도 어딘가 여유가 있고 천진한 것이었다. 6시간의 질주 끝에 숲의 바다를 통과, 말래카 시로 들어간 우리는 선박 전문 항공 촬영 회사인 에어포토(AIRFOTO) 사장 폭슬리 씨를 만났다. 58세의 이 뉴질랜드 노인은 손수 20년이 된 낡은 파이퍼 비행기를 몰면서 말래카 해협을 지나다니는 배 사진만 찍고 있다. 18년째.
  
  한국 유조선 선원 치고 이 노인의 비행기로부터 '촬영 공습'을 안 받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의 해운 회사 치고 이 노인이 견본으로 보낸 사진을 안 받아 봤다면 그 회사는 별 볼일 없는 곳이라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그 동안 찍은 배 사진이 약3만 장. 그의 자료실엔 아마도 세계 상선의 반이 사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회사라 했자 그가 사장 겸 조종사, 딸 글로리아 폭슬리 양(20)과 두 명의 중국계 말레이시아 청년이 사진가로 4인 체제다.
  
  그의 자택 겸 사무실은 말래카 해협이 앞마당처럼 보이는 바닷가에 붙어 있다. 잔디밭이 깨끗하게 깔려 있고 그 너머가 바다. 여기서 그는 창문을 열어 놓고 매일 쌍안경으로 수평선을 뒤지는 게 일. 그림이 좋을 것 같은 배가 지나가면 그는 미니 버스를 몰고 비행장으로 달린다. 20킬로미터 떨어진 비행장엔 그의 파이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비행기를 몰고 점찍어 둔 배를 찾아 나서는 거다. 항공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셔터 찬스와 각도를 잡아 주는 것. 사실상 조종사가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상 10미터까지도 저공비행을 하지요. 두 해 전부터 컬러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상오 11시께가 사진 찍기엔 광선 조건이 가장 좋아요.'
  
  그의 비행범위는 원 패덤 뱅크에서 싱가포르 직전까지로 약 2백 해리. 이렇게 찍은 사진을 뽑아 그 배 회사로 보내어 사 줄 것을 부탁하는 일이 그의 영업에 속한다. 흑백일 경우 60×50센티짜리가 1장에 만 원 꼴이다. 해운 회사의 주문을 받고 특정한 배를 찍을 경우도 많은데 그의 주된 수입원은 이 부문. 컬러 한 장에 비행료 15만 원 필름료 9만 원을 합쳐 24만 원쯤 먹힌다.
  
  그의 자료실에는 한국 유조선 사진이 거의 빠짐 없이 비치되어 있었다. 유조선 이름만 대면 그것의 크기, 회사 등 신상 명세서를 술술 외버리는 노인이다. 이 영감은 사진을 제일 잘 사 주는 선원들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을 들었다. 우리와 만난 날에도 그는 두 척의 배를 찍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배들이 모두 당초 통과 예정 시간을 어기고 밤에 지나버려 허탕을 쳤다.
  
  '요즘은 항공유값이 비싸요. 한 시간을 나는 데 10갤런, 곧 미화 50달러나 먹히죠. 그저 재미삼아 하는 겁니다. 또 말레이시아 정부는 외국인이라고 해마다 파일로트 자격시험을 새로 치게 하는데 이제 나이도 있어…'
  
  그는 딸을 미국의 대학 사진과에 보내 유능한 사진 기자로 키울 계획이다. 폭슬리 노인은 우리에게 비장의 사진 몇 장을 보여 주었다.'81년 9월14일에 찍었다는 흑백 사진에는 작은 전마선이 나타나 있었다. 다섯 명의 남방 셔츠 청년들이 타고 있었다. 두 명은 비행기를 쳐다보는 듯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뱃전에는 SC2275Z란 번호가 씌어져 있었다. 이 번호를 가리키며 노인은 입을 뗐다.
  
  '이 배는 싱가포르 선적이오. 이런 번호의 배가 싱가포르 영해 바깥으로 나오면 위법이오. 그런데 이 배는 싱가포르 영해 훨씬 바깥에서 나에게 발견되었오. 이 선수에 세워 둔 보따리를 보시오. 이건 밀수품이나 아편일 거라고 나는 단정합니다. 이 배의 번호는 나에겐 익숙한 거지요. 이 배가 해상에서 수상한 배와 랑데부를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나요? 이 사진을 보여 주었나요?'
  
  '경찰에는 그저 수상한 배가 있으니 조사해 보라고만 했죠. 사진은 안 보여 주었오. 만약 이 사진이 단서가 되어 그들 일당이 붙들린다면 나는 칼을 맞을 겁니다. 몇 년 전 나는 내 비행기의 기름을 도둑질하는 불량 소년 몇 명을 붙들어 경찰에 넘겼지요. 이 녀석들이 감옥에서 나와 어떤 보복을 했는지 압니까? 비행기 기름통에 몰래 물을 넣었어요. 그것도 모르고 이륙했다가 엔진이 꺼지려는 걸 서둘러 착륙시킨 적이 있어요. 이 동네의 밀수배나 해적들은 무자비합니다. 사람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해요.'
  
  그는 다른 사진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부산 선적의 참치잡이 독항선 ○○호였다. 다른 하나는 SC2230P라고 번호가 붙은 싱가포르 전마선 및 번호가 확실하지 않은 동형의 배였다.
  
  '이 사진은 3년 전에 찍은 겁니다. 해상 30피트까지 저공비행을 하며 잡은 겁니다. 위치는 말래카 앞이었죠. 두 척의 전마선이 이 한국 어선을 겨냥하여 달려가더군요. 그 중 한 척이 한국 어선의 뱃전에 착 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찍으려고 기수를 돌리는데 두 배는 갈라집디다. 나는 갈라져 나오는 이 전마선을 찍었죠. 이어서 두 번째의 전마선이 또 한국 어선과 랑데부를 하더니 곧 떨어져 나옵디다. 나는 밀수품이나 마약이 전달되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단정하는 건 너무 성급하지 않습니까?'
  
  '우선 이 싱가포르 배는 이런 종류의 밀수를 일삼는 상습자입니다. 이 번호의 배가 이 위치까지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두 전마선이 한국배와 랑데부하기 전에는 보따리를 싣고 있었는데 한국 어선에서 떨어져 나올 때 보니까 그게 없었거든요. 이 사진도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말래카 해협이 해적이나 마약 밀수꾼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과 한국 어선이 한통속이 되고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설마 한국 어선이?'하면서 폭슬리 씨의 단정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속으로는 꺼림칙했다.
  
  폭슬리 씨는 지난 '70년대부터는 말래카 해협의 오염 고발 사진도 열심히 찍고 있다. 이 해협의 공해감시자가 된 것은 다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그에게 장기 체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섯 달에 한 번씩 체류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이런 수속 때 장기 체류 허가 추천서가 필요하다. 고발 사진을 그는 이 나라의 환경 관계 연구 기관에 보내는데 그런 기관에서 추천서를 써 준다고 한다.
  
  그가 찍은 사진은 대부분 탱커의 기름 배출 장면이다. 시간, 위치, 배 이름까지 정확히 기입한 사진 첨부 보고서가 70통이나 됐다. 선박 전문항공 촬영회사로는 자기 회사가 도버 해협을 시장으로 삼고 있는 영국의 스카이포토 사 다음 규모라고 자랑한 그는 '이제는 배를 한 척 구입, 그 배로 사진을 찍을 계획이다'고 했다.
  
  그는 이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는 30년 동안 세계의 5대양을 떠돌아다닌 선장이었다. 6·25 사변 때는 미군에 탄약을 운반하는 화물선을 몰고 부산에 자주 들어갔다면서 판자집과 '쓰리꾼'의 안부를 물었다.
  
  '배만 한 척 사면 그걸 해상 저택으로 개조할 생각이오. 그래서 체류 기간이 끝나면 그놈을 몰고 공해고 '출국'했다가 며칠 뒤 다시 입국하는 식으로 하면 지금처럼 신경을 안 써도 될 것 같아요.'
  
  아직도 젊은이의 기개와 호기심, 그리고 정열을 가진 것 같은 노인은 우리를 자기 버스에 태워 쿠알라 룸푸르 우행 택시 정류소로 데려가면서 '미스터 조, 가만있어요. 당신네들이 여행객인 걸 알면 운전사들이 바가지를 씌울 테니까 내가 먼저 내려 흥정을 해 놓겠오'라면서 한 눈을 찡긋했다.
  
  <1982년 5월 마당>
출처 : 마당
[ 2003-07-01, 15: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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