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가르치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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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원격조종장치가 팔리기 전에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채널을 직접 돌리는 것이 귀찮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원격조종장치를 편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몇 년 뒤에는 불편한 기계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른다. 가령 시청자가 '채널 십일!'이라고 말하면 바로 채널이 11로 바뀌는 장치가 개발된다면 원격조종장치는 불편한 기계로 치부되어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과학기술은 편리를 팔면서 숱한 불편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편리함을 아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 편리함의 그림자인 불편을 깨닫고 불만스럽게 되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편리를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불편과 불만도 늘어나게 되고 인간은 더 불행해지는 것이다.
  
  1981년에 부산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긴 나는 1년쯤 잠실 주공아파트 한 호의 한 방을 빌어 하숙을 한 적이 있었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가구라고는 쓰레기통과 빗자루, 칫솔, 치약, 전기면도기만 두었다. 세수비누도 쓰지 않았다. 그야말로 간단한 생활(Simple Life)이었다. 그런데 그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아내가 올라오더니 '이래서는 안된다'면서 커피포트를 하나 사놓고 갔다. 커피포트가 있으니 커피통과 설탕, 커피잔, 스푼이 있어야 했다. 저절로 사발면도 끓여먹기 시작했다. 심플 라이프는 사라지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하숙방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더 행복해진 것도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는 엄청난 물질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당장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산다고 해도 크게 불편한 것 같지는 않다. 그때도 내 한 몸을 눕힐 내 방이 있었고 전화가 있었으며, 자가용차는 없었지만 그 문제는 버스로 해결하면 그만이고, 그때도 수돗물 잘 나왔고 전깃불을 썼으니… 지금보다 크게 불편했을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 4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떨까?
  
  그때는 식량문제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겨울에는 많이들 얼어죽기도 했을 것이다. 그 대신 공기는 맑고 물은 깨끗했을 것이며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인구 밀집은 없었을 것이고, 최루탄과 화염병은 더더구나 구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도 사람이 있고 출세에 의한 성취의 기쁨이 있었을 것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컴퓨터의 도움으로 어느 사무실에선 옛날 같으면 8시간 걸렸을 일을 한 시간만에 해치우고 있다. 그렇다고 사무원이 여덟 배나 편해지고 행복해졌는가. 아니다. 8시간 몫의 일을 한시간만에 해치우고 일곱 시간의 여유를 가진다면 그럴 수 있을 지 모른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여덟 배나 빨리 일을 하면서 근무 시간은 여덟 시간 그대로이니 결국 인간은 더 바빠진 것이다. 기계는 인간을 편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부선의 새마을호가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약 4시간만에 달리고 있다. 12시간쯤 걸렸던 옛날의 완행열차보다도 세 배나 빨라졌지만 승객은 세 배나 편리해진 것이 아니라 세배나 바빠졌다. 옛날 완행열차의 승객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은 어차피 하루 일이라 생각했다. 역에 설 때마다 내려 구경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어떤가?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 부산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서둘러 일을 본 뒤 저녁에 서울행 새마을호를 타고 돌아와야 하니 빨라진 기차 때문에 인간은 오히려 고통스러워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기계에 인간이 속박되어서는 안되고 기계가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기계 덕분에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인간은 이 여유를 창조적 활동에 써야 기술 발달의 진짜 뜻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을 여유 있게 만드는 기술발달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유가 없다는 것, 즉 바쁘다는 것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내가 바쁘기 때문에 새치기하려다가 사고를 내고 내가 바쁘기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오판에 의해 억울하게 사형당한 것으로 믿어지는 사건을 몇 번 취재한 바 있다. 오판의 가장 큰 원인은 검사나 판사가 무능해서도 부도덕해서도 아니었다. 판.검사가 바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을 처리하자니 건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경찰에서 고문으로 허위자백한 살인용의자가 검사 앞에서 그 진술을 번복하면 검사는 재수사하는 것이 귀찮아 짜증부터 내는 것이다. 대법관을 지낸 양병호 변호사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한달에 60건 가까이의 사건을 마치려고 하니 법원에서만의 집무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여 법원에서 보던 기록을 매일 한 보따리씩 싸들고 집에 와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밤 12시 전에 자본 적이 없었다. 토.일요일은 기록을 보기 위해 더욱 필요한 시간이다.' 때로는 1건 당 몇 천페이지에 달하는 소송기록을 하루에 두건씩 소화하여 판결문까지 쓰려니까 오판이 생기고, 그것은 억울한 옥살이나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계가 판사의 바쁨을 완화시켜준다면 억울하게 옥살이하거나 사형당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이야말로 기술이 인간화에 기여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기술이 인간에게 여유를 만들어 주었을 때 인간이 이 여유를 과연 창조적인 데 쓸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시간이 남아돌면 향락과 퇴폐에 탐닉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유혹으로부터 인간이 자유롭게 되려면 대단한 자기 절제가 있어야 하고 창조적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가할 때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을 수양의 한 척도로 생각했던 것이 동양의 선현들이었다. 한가한 시간을 값지게 사용할만한 창조적 일거리를 어떻게 찾아내는냐가 기술문명시대의 행복 제1조건이겠다.
  
  <1990년 2월 아시아나>
출처 : 아시
[ 2003-07-01, 15: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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