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 민주화와 서울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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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란치 IOC위원장은 '동구권의 민주화에 서울올림픽이 큰 기여를 했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나는 올림픽 책임자로서의 자화자찬이겠지 하고 넘겨버렸었다. 며칠 전에 소련과 동구권을 여행하고 온 교수가 기업체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 갔더니 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해 말에 내한공연을 한 보컬그룹 코리아나 단장 김영일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부른 88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동구권 민주화 운동 현장의 데모송이 돼있더라는 것이다. 코리아나는 1989년 12월에 동독 국영텔레비전 방송국의 초청으로 동베를린에 가서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손에 손잡고'를 불렀다. '손에 손잡고'의 가사는 동구권 민주화의 현장 분위기에 걸맞는 것이었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동구권 민주화의 에너지원인 민중의 힘을, '벽을 넘어서(Breaking down the Wall)'는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무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왜 동구권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을까?
  
  첫째, 소련.중국.동구권 공산국가들의 서울올림픽 참가 결정은 남한과 북한 중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행위였다. 그들은 서울을 선택함으로써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남한의 판정승을 인정하였다. 참가 결정을 통해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평가해준 셈이었다.
  
  둘째, 12년만의 온전한 올림픽인 서울올림픽은 동서 화합과 세계 평화 무드를 극적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이념 대립과 냉전체제의 종언을 분위기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셋째, 공산국가 국민들은 자신들이 참여한 서울올림픽에 대해서 전례 없는 관심을 쏟았다. 위성중계를 통한 서울올림픽의 텔레비전 중계시간은 총 9천 시간으로서, 이는 로스앤젤레스대회 때의 세배였다. 세계의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넷째, 그러면 동구권 사람들은 서울올림픽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한국은 분단과 전란, 화염병과 최루탄, 그리고 독재와 식민지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악선전에 의해 남한은 AIDS 환자들이 득실거리고 미군들이 멋대로 남한 여자들을 겁탈하는 나라쯤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비친 한국은 생기발랄한 현대 사회였다. 민주화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고 있는 자유분방한 나라였다.
  
  특히 현대 한국의 이미지 메이킹을 이룩한 서울올림픽의 개. 폐회식은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와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동구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가장 악질적인 독재국가라던 한국이 저 정도인데 우리는 무엇인가. 분단과 전란과 독재를 믿고 저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무엇인가. 50년 전만 해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우리'는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서울올림픽은 그들에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1980년대에 한국은 두가지 면에서 세계사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첫째는 평화적 민주화이다. 분단과 전란의 나라, 그리고 민주주의 실천의 경험이 짧은 나라에서 군사정권과 민중들이 한판 승부를 벌였다가 6.29선언이란 타협점을 찾아 점진적 개혁과 평화적 민주화의 모델을 확립한 것은 개발도상국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을 '미국인의 상업정신과 일본인의 친절과 독일인의 정밀성으로 치러진 사상 최고의 평화축제'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이 실패하였다면 개발 도상국에서는 올림픽이 영원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올림픽이 성공하기 가장 어렵다는 서울에서 사상 최대.최고의 올림픽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인의 끈기와 집념이 가져온 세기적인 역전 드라마였다.
  
  이 올림픽이 동구권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면 한국인은 정말 위대한 인류의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는 세 번의 전쟁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반도와 그 주변을 무대로 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전쟁 때 세계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에 의하여 한국은 주로 부정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세계 언론사상 최대의 보도진(1만5천여 명)이 붐볐던 서울올림픽은 한번의 평화축제로써 세 번의 전쟁 이미지를 덮어 버렸다.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 세일즈맨들은 이제한국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헝가리 사람들은 한국인이란 걸 확인하면 '올림픽 코리언, 굿 코리언!'이라고 추켜준다는 것이다.
  
  서울 올림픽의 동구권 민주화에 대한 기여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과 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제적인 여론조사나 현지 취재를 통해서 인과관계를 설득력있게 규명하여 한국인들에게 가슴 뿌듯한 자랑거리를 만들어주는 작업 말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경멸을 들어야 했던 우리가 철의 장막을 걷어내는 데 한 몫을 했다면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가 영웅이며 우리 시대는 영웅 시대인 것이다. 요즈음 한국 현대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사조가 유행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얼마나 감격적인 역사인가.
  
  북한이 소련의 대리전을 청부맡아 일으킨 6.25전쟁은 남한과 미국이 손에 손잡고 버팀으로써 공산세력의 남하를 2차대전 후 최초로 저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무승부 상태에서 남북한은 경제 개발과 정치 발전이란 두 종목을 두고 공개 경쟁에 들어갔다. 그것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리전 시합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 그 승부는 세계인들 앞에서 확실하게 되었고 그것을 재확인시켜준 것이 서울올림픽이었다. '손에 손잡고'가 동양인이 부른 노래로는 세계 음반 사상 최고의 판매량(카세트, 레코드로 9백만 장)을 기록한 것은 서울올림픽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를 반영하고 있다. '손에 손잡고'가 세계에서 가장 적게 팔린 나라가 한국이라서 탈이지만.
  
  <1990년 3월 아시아나>
출처 : 아시
[ 2003-07-01, 15: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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