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에 영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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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보니까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보통사람보다는 별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개에게 물리는 사람보다는 개를 무는 사람, 소문 없이 남을 돕는 사람보다는 떠들썩하게 남을 도와주는 사람, 상식적인 사람보다는 파격적인 사람들이 더 자주 신문지상에 오른다.
  
  그래서 어느 기자는 '매스컴 타는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면 성자다'고 과장법을 쓰기도 한다. 아침에는 살인강도를 만나 취재를 하고 저녁에는 성직자를 만나는 것이 기자인데, 그러다보니까 '인간은 결국 비슷한 점이 더 많구나'하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었다.
  
  신문에 난 사기꾼이나 흉악범을 만나 범행 동기를 듣다가보면 '내가 저런 환경에서 자라고 저런 분위기 아래 있었다면 과연 저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요사이는 좋은 일을 했다고 신문.방송에 이름이 크게 나는 사람을 대하면 '정말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런 선행(善行)의 심층심리에는 어떤 콤플렉스나 보상심리가 깔려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언론에 의해 때려 죽일 사람처럼 그려지는 이들에 대해서는 과장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저 사람도 평상시에는 우리보다 더 양순한 보통사람이었을 것이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공상 중 3분의 1은 성(sex)에 관한 것이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있으면 그들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국가와 민족, 진실과 정의만 들어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사람들의 행태를 비교적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기자라서 그런지 나는 요사이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인간은 능력면에서는 개인차가 크지만, 도덕성에 있어서는 냅侊耽?별로 없는 것 같다.'
  
  한 시즌에 홈런을 두 개 치는 선수도 있고, 그 25배인 50개를 치는 선수도 있지만 가라는 사람이나 나 씨보다도 정의감이 25배나 되는 그런 경우는 없다는 얘기다. 도덕성에 있어서는 기껏해야 100대 60 정도인 것이다. 옛 서울구치소에서 사형 집행에 10여 년간 참석하여 범죄자들의 최후를 여러 번 지켜보았다는 전직 교도관 ㅎ씨는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형수는 종교에 귀의하여 천당 가는 기분으로 황홀하게 밧줄을 받습니다. 눈, 신장 등 신체부위를 기증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성자처럼 순순히 죽음을 맞습니다. 소수의 사형수들은 발악하고 애걸하다가 개 끌려가듯 하여 밧줄에 달립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쪽이 훌륭하다느니 추하다느니 하는 비교를 할 수가 없어요. 의젓하게 죽는 사람이 오히려 위선적으로 보이고 몸부림치다가 죽는 이가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눈으로 보면 다같이 불쌍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정의감, 용기, 의리, 자제력 등 도덕성 항목에서는 당신이나 나나 비슷하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철학이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은 다 부족한 점이 많다는 전제 아래 그 약점을 제도적 상호견제로써 보완하려는 정치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국가와 민족, 진실과 정의를 들먹이면서 보통사람들보다 열 배, 스무 배나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선전하고 다니는 직업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정치인이다. 그들의 연설문을 읽어 보라! 그들의 최후진술을 읽어 보라! 그들이 쓴 자서전을 읽어보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삶'이 거기에 있다. 잠자고 밥 먹을 때를 빼고는 소외된 사람, 이웃, 나라, 겨레, 경제 발전, 균형 분배, 민주화, 통일만 생각하는 현인(賢人)들이 그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어떤가. 최근에 있었던 보궐선거판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의 정치인들에 대해 무척 못미더워하는 편이다. 그들이 도덕성의 면에서는 보통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나는 자신 있게 보증할 수가 있다―숱한 물증으로써 말이다. 도덕성에선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말을 할 때는 고매한 단어만 골라야 한다는 데 그 비극이 있다. 말과 실제의 차이가 정치인만큼 큰―또는 클 수밖에 없는―집단은 아마도 일부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이런 실제와 명분상의 차이를 메우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과대 포장'을 하는 것이다. 실제와 명분의 격차가 클수록 그 과장의 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서 정치인의 말이 위대하고 고매할수록 그 정치인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법칙이 성립될 법도 하다. 약점이 클수록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장식'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직자와 비슷한 말을 하는 정치인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을 다스리는 기술자인 정치인이, 마치 정치 야망은 전혀 없는 듯이, 개인적 욕망을 달관한 듯한 이야기?하면, 그때부터 그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된다.
  
  한국 정치사상 최대의 거짓말을 한 몇 사람은 불굴의 투지로써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섰던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거짓말을 보면 과거의 민주화 투쟁 경력조차도 과연 맑은 마음에서 한 것인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 욕심이 컸기 때문에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버티었으며, 결과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정치인의 욕심도 역사의 흐름을 잘 타면 좋은 일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그 역사의 흐름도 변했는데 같은 욕심을 고집하다가는 욕심의 바닥까지 드러나 과거의 좋은 결과까지 의심을 받게 된다. 이런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에도 문제가 많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서 자꾸만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과 세종대왕 자체가 미화된 면이 많은데, 현실 속에서 그런 '미화된 성인'을 찾으려고 하다가 실망만 거듭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또 국민들의 그런 영웅 찾기 심리에 부화뇌동하여 스스로를 영웅으로 둔갑시키려다가 약간의 실수로도 천길 아래로 전락해버리곤 한다.
  
  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충무공도 단점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고 느꼈다. 그러나 그 단점 때문에 인간 충무공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가 교과서나 전기에서 배우는 충무공은 결점이 없는 신(神)이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인간형을 만들어 역사 교육을 시켜왔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 지도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도 영웅을 기대하지도, 아무도 영웅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바로 건강한 시민사회일 것이다.
  
  <1990년 4월 사보 럭키금성>
출처 : 럭키
[ 2003-07-01, 15: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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