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義를 잊은 지 너무 오래인 젊은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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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제목은 여기서 바꾼 것이다.
  
  
   이름:조약돌 (doleeko@hanmail.net) (55세 남 회사원)
   2003/2/6(목) 12:53 (MSIE6.0,Windows98) 210.105.5.253 800x600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고함!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어느 시인의 ' 청춘 예찬 ' 이 아니더라도 젊음이란, 그 말 자체만으로도 생기 발랄함과 신선감이 연상되었었다. 그렇지만 이 말도 한 때의 얘기다. 이 땅에서 오늘 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더 이상은 아니다.
  
  386 세대니 뭐니 하는 말도 다 젊은 이들의 열정과 순수성을 높이 평가하여 누군가가 만들어낸 청춘에 대한 또 다른 예찬이다.
  
  이 나라에서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열광하는 것은 젊은이들에 대하여 이 사회가 거는 기대이자 믿음의 발로인 것인다.
  
  젊음은 일제에 항거하여 이 나라의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그 후예들의 또 다른 젊음은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독재 정권을 타도하는 4.19 의거를 주도한 세력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늘 날을 살아가는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가 보여줄 찬사는 더 이상 없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의 젊은이들은 컴퓨터에 몰두하는 만치 컴퓨터화하여 그 선배들이 가졌던 순수성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불의에 타협하리 만치 젊은이들의 가치관과 양심이 마비되어 버렸다.
  
  아니 그들은 정의가 무엇이고 불의가 무엇인지를 헷갈리고 있다.
  
  그들은 햄버거를 입안에 오물거리면서도 미제 물건 불매운동을 주장하고 미국유학을 동경하면서도 촛불시위의 광란에 힙쓸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참으로 똑똑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오늘날의 한국의 젊은이들은 교통사고에서 과실치사와 살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헛 똑똑인 셈이다. 미군이 교통사고를 내면 과실치사도 살인으로 둔갑시킨다.
  
  지금까지 '젊은이'하면 불의에 대하여 타협하지 않는 불타는 정의감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러나 더 이상 지금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살인 행위를 증오한다. 그러나 그 살인 주모자가 북괴의 괴수 김정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정일이가 연평해전에서 무고한 우리 국군을 도륙하였음에도 그 살인자를 성토하지 않는다.
  
  김정일을 살인마라고 울부짖는 양심의 소리나 유족들의 절규를 애써 외면하고 오히려 그 살인마를 경배하기 까지 한다.
  
  그 젊은이들은 '연평해전은 이 땅에 미군이 주둔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말 같지 않고 얼토당토한 그 살인마 집단의 궤변을, 그들의 부모가 그렇지 않다는 주장보다 더 신봉한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부모의 조언이나 충고도 듣지 않는다. 소위 젊은이들의 쪽수로 밀어 부쳐 그 부모 세대가 원하지 않는 대통령을 만들어 낸 데 대하여 자부심으로 희열하고 있다.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한 부모 세대의 우려쯤은 꼰대들의 공연한 기우이거나 넋두리로 치부해 버린다.
  
  요즘 이 나라의 젊은이들의 기준에서 보면 정의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아무리 법으로 불법화해도 이를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다. 악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대통령 당선자의 칙명 하나로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허황된 한탕주의 심리나 무분별한 카드 사용으로 빚에 몰린 젊은이들에 의한 은행 강도가 근래에 부쩍이나 늘었다.
  
  그들은 은행 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능력껏 뺏어오는 사람이 임자이며 내가 카드 빚을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젊은이들에게 카드를 발급해 줘서 소비를 조장한 기성세대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기성세대가 사회의 부를 독점해 버렸기 때문에 젊은이 몫은 남아 있지가 않다. 이를 물리적인 힘으로라도 되 찾는데 물리적 힘으로 라면 기성세대를 능히 제압할 수 있다는 동물사회의 양육강식의 논리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각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란 것을 보면 이 사회에 정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헷갈린다.
  
  대법원은 사회단체가 주동하는 특정 후보 낙선운동은 불법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조약돌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대법원의 판결은 곧 법 이상의 사회 규범이자 정의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신문사의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려 72 % 의 달하는 응답자가 낙선운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하고 단지 28 %만이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여론조사의 경우를 보자.
  
  금번 현대상선을 통하여 북한에 제공된 대북 송금에 대하여 검찰 수사를 해야할 것인지,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거의 과반수에 가까운 49 %의 젊은이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을 하고 있다.
  
  엄연히 실정법에 어긋나며 이 거래에는 국민들에게 밝히기 곤란한 추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유추할 수 있음에도 젊은이들이 정치적 타협 운운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남미에서 철권 페론 정권을 무너뜨려 그 나라 국민들을 열광하게 하였던 그 젊은이들이 오늘도 여전히 반독재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지만, 그 시위에는 으례 폭력과 방화라는 과격한 수단이 동반되고 그 결말은 같은 시민이 경영하는 상점에 대한 약탈로 이어지는 정해진 코스를 치닫는 것을 보며 이제 청춘 예찬가는 더 이상 들려 오지 않고 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탄식과 저주가 대신함을 교훈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남미의 젊은이들이 밟았던 그 코스를 밟는 것은 아닌가?
  
  이 땅에서도 정의가 젊은이들의 광기어린 발 밑에 짓밟히는 날, 그 젊은이들은 더 이상 경배의 대상의 아니라 사회의 암적 존재로 국민들과 괴리된 정권의 홍위병이자 약탈자란 오명을 쓰자 말라는 법은 없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지금이라도 미몽에서 깨어나거라 !
  
  
  물이 맑아 더 파랜 趙 躍 乭 PEBBLE
  
  
  
  
  
  
  
  
  
  
  
  
  
  
  
  
  
출처 :
[ 2003-02-06, 17: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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