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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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
  
  -12·12사태를 하나회의 작품으로 보는데….
  
  {하나님께 맹세코 이야기하지만 12·12사태는 군이 정치담당세력이 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은 아니었다. 그 뒤의 상황이 군을 그런 쪽으로 몰아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고 버티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 군인보다도 일부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더욱 간절하게 전두환 장군에게 대권을 맡아달라고 빌었다는 것을 나는 증언할 수 있다}
  
  -유신사무관 제도가 폐지된 데 대하여 장교들의 반발이 있는가?
  
  {2년 전에 나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에게 유신사무관 제도를 없애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지망자도 점점 줄어들고 무수한 장교들을 사회로 유출시키고 싶지 않아 이제는 이 제도를 없애고 군이 떳떳하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의를 했었다. 군은 피라밋 조직이기 때문이 중간에서 승진에 탈락한 장교들이 끊임없이 사회로 나가야 하고 사회는 이를 품어주어야 磯?
  
  그러나 지금 국민의 분위기가 이를 거부하는 몸짓을 하고 있으니 우리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정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장교들의 사회진출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군은 늘 신진대사가 잘 되어야 신선한 체질을 유지할 수가 있는데, 정년의 연장으로 노령화되는 경향이 생기고 진급속도도 늦어질 것이지만 이것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우리 국군이 괴롭지만 나라를 사랑해야 할 시점이다}
  
  -군인들만큼 애국을 즐겨 말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애국이란 말은 너무 추상적이다. 나는 국가이익의 추구가 애국이라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 국가이익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복지의 확대가 국가이익이다}
  
  -군인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자주 지적되고 있는 것은 군인은 체질상 명령과 법 절차를 혼동하기 쉽고 법치국가의 원리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어느 신부가 쓴 글에서, 장군들은 부하들을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대목이 있어 매우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세대에서 정규 육사출신들만큼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이에 대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은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보다 더 민주적이었던 지도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군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카리스마적인 독선이지 권위 그 자체가 아니다. 지휘는 합법적 권위로써 할 수 있지만 통솔은 인격으로, 또 민주적 리더쉽으로 해야 한다. 지휘는 아버지처럼 통솔은 어머니처럼 하는 것이다. 우리 군대는 밑으로 갈수록 훨씬 더 민주화되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어주었으면 한다}
  
  -지난해 6월에 군대가 나서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였다고 보는가?
  
  {솔직히 말해서 군은 그때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군이 개입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고, 아직도 정치력으로 사태를 해결할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이 바로 그 해답이었다. 우리는 옛날부터 노태우 대통령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분이 위기를 충분히 타개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군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사태를 주도했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 군이 모르는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잘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인은 최악의 상태에 빠져서도 좌절하지 않고 최선의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도출해내도록 훈련받은 사람이다}
  
  전두환 수사는 파국 불러
  
  -바람직한 민군 관계에 대해서….
  
  {지금처럼 군을 멸시하면 통치를 할 수가 없다. 멸시 당하면 반발하는 법이다. 민은 군을, 군은 민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문무협동국익 추구체제를 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사적으로 봐서 문무관계가 제대로 정립될 때 비로소 국운이 트였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문관우위의 국정운영방식을 채택하였다. 우리 역사가 해외로 뻗지 못하고 한반도에서 정체된 원인이 문관위주의 통치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군사정권이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무관계의 균형을 잡기 위한 계기로 파악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5·16이후 한국인이 해외로 진출하고, 민족의 에너지가 폭발하게 된 데도 군인정신이 기여한 바가 있다. 유럽에 가 보니까 동상은 주로 장군이더라, 군인은 명예를 가장 중시하는 직업인이다. 유럽의 머리 좋은 문관들은 군인들의 명예심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는 등 아주 고 단수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문관들도 군인들을 증오, 멸시하지만 말고 다루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
  
  -5공화국 비리와 관련하여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나 수사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군부의 생각은?
  
  {그 분은 퇴진 뒤에 이런 사태가 오리라고 예견하셨지만 단임 정신을 지켰다. 이것은 위대한 용기다. 야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궁을 고집하면, 그것은 그들이 공약한 정치보복금지와도 위배된다. 그 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어차피 노태우 대통령으로까지 연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역사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미 두 사람의 전 대통령이 암살되거나 해외망명하지 않았던가. 이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경우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해외로 보내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세계가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을 비웃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캐게 되면 김영삼, 김대중씨인들 온전하겠는가. 적당한 선에서 자제되어야 한다. 특히 야당의 태도에는 제동이 걸려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설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제동이 안 걸리면 모처럼 마련한 이런 좋은 상황이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테러 같은 것이 일어난다면?
  {공권력이 그 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물론 군도 공권력의 일부다.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군부의 대표적 인물인 이 장성은 헤어지기 직전에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12·12사태의 배경에는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 대한 정규 육사출신 장교단의 의리가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朴대통령이 시해된 현장 가까이에 육군참모총장이 와 있었고, 후배장교들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용퇴를 하지 않는 정승화(鄭昇和)총장에게 강한 불신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인들의 독특한 심리구조인 상관에 대한 복종과 의리가 전두환씨에 대해 어떻게 나타날지는 주목할 만한 묘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슬 추는 장교들
  
  지난 5월7일 기자는 서울 근교의 모 군단지역을 찾아갔다. 오늘의 장교들은 어떤 모습인가를 알고 싶었다. 기자의 안내역을 맡은 군단 정훈과장 장(張)중령(43)은 한양대학을 졸업, 1968년에 간부후보생으로 입대, 20년간 장교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서울개포동에 18평짜리 아파트를 1천3백만 원에 전세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내와 두 자녀는 그 아파트에 두고 자신은 군단내의 장교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50여만 원의 월급, 가운데 15만원은 혼자서 쓴다. 관리비와 연료비가 월 3만원쯤 지출된다.
  
  서울의 집에는 한 달에 한번씩 2박3일의 외박허가를 받아 다녀오고 2주에 한번쯤 가족이 부대 아파트로 찾아온다고 했다.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된지는 7년째. [요즈음은 대령급까지도 당번병을 없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밥을 지어먹는 것이 귀찮아진다}고 했다. 20년 군 장교 생활 중 이사를 열 여섯 번했는데, 모두 아내가 짐을 꾸렸다고 한다.
  
  국립 공원처럼 조경이 잘 된 군단사령부 건물의 2층 집무실에서 군단장(중장)은 기자를 맞았다. 악수할 때 손아귀 힘이 세고 몸집은 우람하나 늘 웃음을 띠어 여유가 있어 보이는 50대 초반의 서울출신 장성이었다.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군단 보안부대장(대령)과 정훈과장이 배석했다. 군단장은 {나는 후방이 안 보이고 전방만 보인다}면서 정치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피하려고 했다.
  
  그와의 3시간 대화는 언론과 군의 입장을 서로 천명하는 데 머물렀다. 군단장은 자신의 논리를 굽히거나 설득 당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군대는 쌍팔년도 군대가 아니다}면서 [군이 내부로부터 민주화돼 가고 있는 점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군내 민주화의 사례로서 구타의 금지, 사병들에 대한 발표력 교육, 골육지정으로 부하를 통솔해야 한다는 소신 등등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상관으로서의 통솔방침이 ①솔선수범 하여 저절로 따라 오게 한다. ②따라오지 않으면 설득한다. ③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명령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한다는 3단계 방침이라고 했다. 군에서는 구타 등 기합을 없앤 대신에 훈련을 강화했고, 문제사병들은 군기교육대로 보내 1∼2일간씩 완전무장하의 구보 등을 하게 하고 있다. 그는 군인문화의 장점도 강조했다.
  
  {군은 정의감·애국심 등 정신적 가치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집단이며, 사회는 물질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집단이다}면서 군의 도덕적 우월성을 말하기도 했다. 군단장은 또 {우리는 이제 국민적 모럴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일본은 충성심, 중국인은 신의, 영국인은 페어플레이 정신, 미국은 청교도 정신을 국민적 가치체계의 중심으로 잡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군이 국민들에게 정신 교육의 도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드라큘러와 상대하고 있는 우리는 시행착오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것인가를 놓고 민군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이것이 전방에 있는 한 군인의 울부짖음이요}라고 하면서 일어났다.
  
  
  
  이념교육 시키는 여자장교
  
  군단장 및 참모들과 함께 장교식당에서 기자는 점심식사를 했다. 장교들은 월급에서 돈을 떼내 이 식당을 운영하면서 하루에 점심 한끼만을 여기서 먹는다. 사병들은 자유 배식제라 하여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게 돼 있다. 군단에서는 사병용 매 월별의 메뉴표를 만들어 식단과 열량뿐 아니라 식품의 계약단가·납품회사까지 공개하고 있었다. 1인1일 급식비는 1천4백75원, 1일 열량은 4천55칼로리, 식단은 주식과 국외에 반찬 세 가지가 기본, 매일 한 개씩의 달걀을 나눠주고 쇠고기는 월 3회, 돼지고기는 월 12회, 닭고기 월 8회, 어패류는 월 31회씩 공급한다고 메뉴표에 적혀 있었다. 식사도중에 한 예쁜 여 중위가 나서더니 매일 그러는 듯 10분 강연을 시작했다.
  
  강원대학을 졸업하고 정훈장교로 뽑힌 여 중위는 좌경·용공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도 대학생 때는 철없이 데모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면서 여 중위는 {공산주의는 그 이론은 괜찮은데 실천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환상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그런 환상에 빠진 젊은이들을 아량으로써만 대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몇 년 전부터 도입된 여자 정훈장교 제도는, 우선 예쁜 용모의 장교가 강의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장병들의 집중력을 북돋우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군은 이들 여자 장교가 결혼을 해도 계속 복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식사를 끝내고 군단사령부 건물 앞을 지나갔니 수십 명의 장교들이 햇빛 아래에서 허슬을 추고 있었다. 술집무대에서나 보아 온 허슬을 대낮에, 그것도 장교들이 출 줄이야, 군단장은 {군산문화의 단점인 메마른 정서를 순화시키기 위해 허슬과 가곡 부르기를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관측소에서
  
  군단사령부내의 군인아파트에 가보았다. 영관, 위관급, 장교들이 쓰는 아파트인데 평수는 연탄 보일러식 12평형이었다. 방이 두개인데, 현관이 좁아 벽에 선반을 붙여 신발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정광재(鄭光在)대위(34·제3사관학교출신)의 아파트였다. 앳돼 보이는 얼굴에 단정한 몸가짐을 한 아내 오정애(吳正愛)씨(30)는 6년 전에 결혼하여 다섯 번 이사를 했는데 2년 전에 이곳으로 온 다음에는 한 시간 거리인 서울로는 한번도 외출을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남편이 받아오는 약 30만원이 월급에서 적금으로 10만원, 공제회에 5만원씩을 넣고 네 식구가 15만원으로 생활해 간다는 것이다.
  
  정훈과장 장(張)중령은 {서울 사람들은 군인 아파트라고 하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30, 40평형을 연상해서 군인들이 잘 살고 있다고 오해하는 데 실상은 이렇습니다}면서 {위관급 장교의 거의 전부, 영관급 장교의 70∼80%는 전세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듯 장교가 사회직장인의 월급을 비교한 표를 내 놓았다.
  
  지프는 비포장도로를 2시간 가량 달렸다. 대한민국의 온 산하가 신록의 꽃밭으로 변한 것 같은 5월 초순이었지만 휴전선으로 가는 길의 주변은 삭막하였다. 민들레도, 복사꽃도 보이지 않았다. 들에는 늙은 농부들이 대부분이고 젊은이들이 드물었다. 꽃과 젊은 여자가 사라진 풍경은 계절에 상관없이 스산했다. 북괴군이 점령하고 있는 1천m급 고지에 의하여 감제 당하고 있는 우리측 고지의 관측소(GP)에서 정규육사출신의 대대장 신(申)중령은 절도 있는 브리핑을 해주었다.
  
  비무장지대 내의 적과 우리측 GP사이의 거리는 불과 수백m, 적은 휴전선 북방 50마일 이내에 전 병력의 75%를 배치, 재배치 없이도 남침이 가능하다고 申중령은 말했다. 지난해에는 북괴군 GP에서 우리 쪽 GP로 사격을 가했다. 한 사병이 부상당해 사단이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던 상황을 申중령은 긴장감 있게 설명해 주었다.
  
  완강하면서도 날렵한 몸집을 갖고 있어 전형적인 야전장교의 인상을 풍기는 申중령은 딱딱한 브리핑을 마친뒤 사담(私談)이 시작되자 기자가 월간조선 5월 호에 썼던 [전두환(全斗煥)의 인맥과 금맥의] 한 대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조기자께서는 우리 장교들을, 정치장교(Political Officer)와 순수 야전장교(Field Officer)로 구분하셨던데, 꼭 그렇게 나눌 수가 있을까요,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처음으로 하나회에 대해서 알게되었는데 군을 너무 정치적 시각에선 다룬 것 같았어요. 너무 상업적으로 군을 기사감으로 삼는 데는 반대입니다}
  
  申중령은 또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던 문제까지도 전부 군인들의 책임이라고 전가시키는 것 같다}면서 {어쨌든 지난 대통령선거로 군정시비가 일단락 되었으니 이렇게 고생하는 우리를 더 이상 섭섭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단호했으나 말투는 아주 겸손했다. 광주사태, 12·12사태 등에 대한 그의 논리는 언론의 시작과는 판이한 것이었다. 申중령은 기자 앞이라서 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듯했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3: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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