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의 폭탄증언 15시간(상) - 은하수 실체를 밝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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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코드 네임 「은하수」의 귀순·제보
  
   임수경·문규현 密入北의 배후라는 윤한봉씨를 왜 조사하지 않았나?
  
  ―요즘은 극단적으로 「정치로부터 國益을 보호해야겠다. 또는 정치지도자로부터 국가를 보호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큰일 나겠다」는 아이러니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뜻은 아마 여야 정치 지도자 공히 권력게임에 집착하다 보니까 국가 이익은 망각하고 경쟁적으로 국가란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무차별적 폭로전을 일삼는 작태를 보고 한 말이라고 봅니다. 광주사태 때 수배됐다가 미국으로 밀항한 윤한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기부의 수사선상에도 여러 번 올랐습니다. 안기부 수사기록엔 임수경, 문규현 신부 밀입북 사건의 배후 인물로서 북한 工作조직의 협조자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93년 金泳三 정부 출범 후에 귀국을 했습니다. 귀국을 杉摸?당연히 안기부에 연행되어 법적인 처리를 받았어야 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황석영씨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러한 조사과정이 없고 보니 언론에서도 영웅적인 민주투사가 귀국을 했다는 식으로 보도되어 환영 일변도의 기사가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그동안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직접 불러서 조사한 적도 없고 간접적인 수사만을 하다 보니까 아무런 혐의도 없는 사람을 在美 공작거점으로 과대포장해 놓은 것은 아니냐는 그런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윤한봉씨가 관계된 수사는 당시 수사국장이시던 鄭선생께서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특정인에 대한 거론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저희들이 발표한 사건은 사실 그대로이고 조금도 과대포장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문제는 문민정부에 들어와서 광주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면서 여러가지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윤한봉씨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관계 있는 각급 기관에서는 한결같이 윤한봉에 대해 입국시 조사를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한봉을 조사면제하고 안전하게 귀국시키는 것이 광주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하나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넘어간 사건인데 이 문제는 언젠가는 조사를 통해 반드시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물론 광주사태라는 민족적인 비극 때문에 우리 사회의 한 지역에 사시는 분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취재를 했던 저의 소감으로서는 문제의 발단은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의해 일어나게 되었고, 당시 광주시민들이 전부 봉기한 것은 민주투사 이전에 한 人間으로서의 정의감과 분노가 폭발된 것이라고 현장에서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反정부적인 억하심정 때문에 친북세력이 되어 북한의 對南공작에 놀아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것은 마치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까 부인도 덩달아 바람을 피운다는 식입니다. 물론 인간은 어느 정도 복수심리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이렇게 지탱해온 중산층들은 「남편이 바람 피우니까 나도…」 하는 마음을 자제하고 「정부는 밉지만 체제는 지켜야겠다」는 선을 분명하게 그었던 것입니다.
  
  그로써 이 나라가 겨우 지탱해 왔다고 보는데, 윤한봉씨가 정말 지금 말씀하신 대로 친북인사라고 한다면 광주사태의 민주투쟁과는 별도의 처리를 해야 하고, 국기를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엄정하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이것을 광주사태 해결이라는 차원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로써 金泳三 정부가 얻은 것은 전무하다고 저는 봅니다. 광주사태가 그걸로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反국가사범 혐의자를 엄정하게 조사한다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행위인데, 국가의 이익을 팔아서 인기를 얻겠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또 국가기관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공안기관에서 수사했던 과거의 사건들은 모두 과장되고 조작된, 말하자면 용공음해된 것이라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金大中씨의 북한 공작금 1만 달러 수수에 대한 공소취소도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국가 최고기관인 검찰에서 간첩 徐敬元이가 가져온 1만 달러를 金大中씨가 받은 사실로 기소를 했는데 그것이 6共 말기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공소취소를 한 겁니다. 공소취소란 어떤 범죄의 기소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매치기를 구속했는데 사실은 피의자가 그 시간에 소매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입증될 경우 공소취소를 합니다. 명확하게 사법처리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조사를 유보한다든지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수사를 하지 않도록 압력이 가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對共을 정치의 시녀로 만들고 정치로 인해 對共수사가 얼룩지게 되고 그로 인해 정치와 對共이 모두 불신을 받는 그런 결과를 초래합니다. 저는 문민정부에 들어와서 對共 측면에서 두 가지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공산주의를 모르고 감상주의에 빠져 李仁模를 북에 보낸 것, 또 하나는 윤한봉씨의 처리문젭니다. 그는 도처의 사건들에 얽혀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일체의 조사를 면제하고 면죄부를 주었다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對共수사가 정치적 문제로 뒤틀려서는 안됩니다』
  
  『金大中씨를 지지하라는 북한방송은 없었지만 암호지령 방송은 있었다』
  
  ―이번에는 金大中씨와 관련된 문제를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와 관련해서는 정말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은데, 최근 金大中씨가 자신이 용공음해를 당했다는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1993년 10월호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주사파가 중심이 된 전국연합과 정책연합을 했던 지난 大選 때의 입장을 질문했습니다. 거기서 金大中씨는 『전국연합의 주류는 주사파가 아닙니다. 그들과 우리가 손잡은 것은 필요한 부분에 관한 정책협정이지 정권공유의 협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당의 선거전술상의 실패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민자당은 이것을 용공음해에 악용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月刊朝鮮 기자가 질문하기를 『북한이 남조선노동당 관계자들에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라는 암호지령을 내린 것은 암호문 해독으로 확인됐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金大中씨는 『그것은 안기부에서 주장하는 것이지요. 金洛中씨도 그러한 암호문을 받거나 해독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령이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선거 때 민자당은 북한이 대남방송으로 金大中을 지지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大選이 끝난 뒤에 민주당의 남궁진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서 국무총리와 안기부장에게 사실을 규명하라고 질의를 했습니다. 북한이 그런 對南방송을 한 적이 없다는 정부측 서면 답변을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겁니까?』라고 답변했습니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李善實사건 때 북한이 남한의 간첩 조직에 대해서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후보를 지지하라」는 지령을 과연 내렸느냐 하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먼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金大中씨의 이야기대로 「북한이 그런 방송을 한 적이 없다」는 정부측 서면 답변이 과연 있었습니까.
  
  『제가 서면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북한이 공개적인 「대남 방송」을 통해서 金大中씨를 지지하라는 방송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암호문 방송도 對南방송이 아닙니까.
  『암호 방송은 A-3 방송이기 때문에 난수로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13579, 24680 처럼 다섯자리 숫자로 불러주는 방송을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평양방송과 같은 일반적인 對南방송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金大中씨를 지지하라는 암호지령은 당시 大選에서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인해 야당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지금은 정치권에서 완전히 은퇴해 통일문제에만 전념하고 있는 그 분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분은 우리 정치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인물로서 길이 기억되어야 할 분입니다. 게다가 현재는 정치계에서 완전히 은퇴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물어보셨으니까 그 분을 위하고 야당의 저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실을 말씀 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이 점에 대해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北韓의 A-3지령방송‥『민주당 후보 지지를 약속하고…』
  
  『당시 북한은 국내, 국외에 있는 많은 간첩망에게 난수지령, 소위공작 지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난수지령을 우리측은 해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북한은 대남공작사업에 온 체제의 힘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대남공작에 활용하는 난수와 제반 공작 장비 등은 고도로 발달된 최첨단급입니다. 특히 난수 암호문은 해독문이 없으면 그 수많은 변환을 모두 해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李善實 간첩 사건 때는 그 해독책자를 입수할 수 있어서 비로서 그 지령문들을 다 풀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李善實에게 내려온 10여년에 걸친 지령문들을 전부 해독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때 북한 92년 6월 A-3 방송을 통해서 간첩 金洛中에게 「大選시 모든 민주세력이 민주당 후보를 밀어줄 것. 각종 악법 철폐, 양심수 석방, 비핵(非核) 군축(軍縮), 연방제 등을 지지할 것」이란 내용을 지령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두 달 후인 8월에 북한은 A-3 방송을 통해서 黃仁五 간첩에게 「大選에서 反민자당 연합전선을 형성해서 민주당 후보를 밀어줄 것, 大選투쟁을 통해 통일 민중역량 확대 강화」를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91년 9월 같은 A-3 방송으로 간첩 손병선에게 「민중당과 운동권은 보수야당의 대탄압을 견제하면서 大選 때 金大中 지지를 약속해주고 범민주 연합전선 형식의 야권통합과 총선시에는 야권 연합공천을 협상하고 실현되도록 바람. 92년 大選시 민주당 후보를 밀어주며 이 기회에 침체된 대중운동을 활성화시킬 것. 그리고 민주세력의 독자후보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각종 악법 철폐, 양심수 석방, 非核 軍縮 등은 민주당 후보의 지지카드로 이용해야 한다」는 지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실증적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그 후 국정감사를 통해 야당 의원들에 의해 철저히 검증됐고, 거기서 수많은 질의가 있었지만 모두가 이해를 하고 넘어간 겁니다. 李善實 간첩사건이 大選에서 金大中씨에게 결과적으로 피해를 주었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럽습니다만, 그러나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왜곡할 의사는 추호도 없음을 밝힙니다. 다만 공교롭게도 大選 시기에 이 문제가 터져 나와 그 분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된 것일 뿐입니다』
  
   확실해야만 자금지원했던 李善實
  
  ―그런데 金大中씨는 「설사 북한이 그런 지령을 내려 보냈더라도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 있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안기부에서 북한이 金大中씨를 좋아하는 것처럼 유권자들에게 과장된 선전을 했다는 일종의 항의입니다만.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개방송을 통해 지지하라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북한이 그렇게 공개적인 방송을 통해 金大中씨를 지지하라고 했다면 金大中씨의 항의가 성립됩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령문입니다. 난수입니다. 해독한 당사자들만 아는 겁니다. 간첩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기부가 일부러 그 분을 괴롭히려 했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은 金大中씨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북한의 「金大中 지지 지령문」을 안기부가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닌지…. 이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도록 함으로써 민자당의 선거자료에 이용되도록 활용한 것은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 오해의 소지도 있었겠습니다만 당시 안기부로서는 간첩사건을 발표하는 데 있어서 지령 내용을 간첩사건의 사실 그 자체로서 국민들 앞에 모두 진솔하게 밝히는 차원에서 공개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사실을 사실로서 공개했을 뿐이지 정치적인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간첩 장비를 전시할 때는 그 부분을 일부러 빼기도 했습니다』
  
  ―그때 서울역에서 전시를 하다가 나중에는 무역회관에서 전시를 했었지요. 처음에는 金大中씨 지지 관련 지령문도 전시됐다가 나중에는 빠졌더군요.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부당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당측에서 李善實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당시 야당 정치인들 상당수가 李善實과 접촉했고, 5∼6명이 수사 대상이란 말이 주로 신문기사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大選이 끝나자 이 사건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가 일체 없었습니다. 이것은 안기부가 선거기간 중에 일부러 야당 후보들에게 빨간 색을 칠해버린 것이라고 야당측에서 주장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 후에도 많은 논란과 반론이 있었지요. 저로서도 이 문제로 많은 오해를 샀습니다만 추호도 그러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李善實이 민중당에 깊이 침투하고 일부 야당 의원 등과의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문제는 李善實이 일부 야당 의원을 접촉했지만 접촉할 때 자신의 신분을 처음부터 밝히지는 않았던 겁니다. 상대를 계속 탐색하다가 확신이 서는 경우에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곤 했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李善實의 정체를 모르는 일부 야당의워들이 순수한 동기로 접촉했을 가능성이 많았던 겁니다.
  李善實은 예컨대 손병선의 경우처럼 회유공작이 확실히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자금을 뿌렸습니다. 당시 李善實과 접촉했던 야당의원들 대다수는 우리가 신중히 조사해 본 결과 李善實이 확신을 갖고 자금을 뿌릴 만한 단계는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수사기밀이 뜻하지 않게 유출됨으로써 그 분들의 명예를 손상시킨 데 대해서는 이 자리를 빌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분들 중에는 장래 훌륭한 지도자가 될 분들도 계십니다만, 수사기밀의 유출로 인해 정치적 입지를 어렵게 했다면 거듭 사과를 드립니다』
  
   李善實 사건은 지금도 내사 中
  
  『그러나 간섭 사건에 대한 내사는 20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그보다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규명을 하려는 안기부의 노력은 계속될 겁니다. 李善實이란 사람이 워낙 광범위한 망을 구축했고 십년 이상이나 잠복해 왔기 때문에 국내에서 포섭한 대상의 범위나 정치권에 침투한 폭과 깊이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규명이 될 줄 믿습니다. 지금도 수사는 계속중입니다』
  
  ―李善實과 접촉한 5∼6명의 야당현역 국회의원이 누구라는 것은 안기부가 수사를 통해 밝혔다는 얘기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러 올 정치적인 파장이라든지 국회의원에 대한 부당한 명예훼손을 고려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李善實이 야당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모모 인사와 여당의 모모 인사들과도 접촉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기부가 관련된 야당 국회의원들도 함께 소환조사를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포기한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개연성을 가지고 조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인으로 조사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야당 의원들의 경우 확실한 혐의가 규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수사로 인해 나타날 결과를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우려할 만한 결과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초래하게 되고 동시에 순수한 간첩사건조차 얼룩져 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건은 오랜 시간을 두고 규명하는 대공수사의 원칙에 따르기로 한 것이지 균형을 맞추거나 여당과 관련된 사건이어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李善實이 여당 인사와 접촉한 사실은 없습니까.
  『저로서는 기억에 없습니다』
  
  ―金大中씨와 鄭차장과는 여러 가지 대공수사 때문에 인연이 많습니다만, 金大中씨의 이념적인 문제, 즉 사상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금도 의구심을 갖고 계십니까?
  『은퇴한 老 정치인의 사상적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그 분에 대한 예의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金大中씨가 정계은퇴를 완전히 했다면 그분의 사상적인 부분은 개인의 차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분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의지를 보이려 한다면, 그분의 사상과 이념이 검증되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는 鄭차장의 생각도 마땅히 피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국가 지도자로서의 金大中씨의 자격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金大中 이사장은 절대 정치권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분이 정치권에서 은퇴를 공인으로서 온 국민 앞에서 선언했고, 설사 金大中씨의 추종자들이 집요하게 권유하더라도 그분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다시 정치권에 나설 때에는 정치권으로의 재등장에 대한 논리구성에 많은 무리를 가져올 것이고 그분은 이러한 점을 깊이 내다보고 있을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저는 金大中씨는 다시 정치계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락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대권후보로 나올 경우에는 그분의 사상과 이념, 노선에 대해서는 국민적 검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안기부의 모든 기밀을 손에 쥐고 있다는 사람들이 먼저 조작 근거를 밝혀야』
  
  ―그러나 金大中씨의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검증을 거쳤는지 거치지 않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수사차원에서는 鄭차장이 지휘한 여러 가지 수사에 의해서 많은 검증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金大中씨의 이념이나 성향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은퇴한 老 정객에 대해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金大中씨는 최근에도 용공음해론을 주장했습니다. 李善實사건도 정치적으로 조작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87년 大選 때 KAL 858機 사건이 터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大選을 불과 3개월 앞둔 92년 9월에 金洛中 사건과 李善實 사건이 연달아 터짐으로써 약 두 달간 모든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수사당국에서 상당 기간 준비하고 자료를 모았을 법한 대형사건인데 그렇다면 일부러 절묘하게 大選 때를 택해서 수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金大中씨 측이 갖고 있는 겁니다. 혹시 묵혀 둔 사건을 일부러 선거라는 타이밍을 맞춰 터뜨린 것은 아닙니까.
  
  『야당측의 논지는 우선, 李善實은 실체가 있지도 않은 인물인데 이를 실제인물로 조작했다는 것과 그 간첩 사건은 원래 안기부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大選 시기에 맞추어 터뜨림으로써 大選시기에 맞추어 터뜨림으로써 大選시 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가 있겠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는데, 간첩사건을 과대포장하고, 조작해서 용공음해로 몰았다는 겁니다. 그럼, 우선 제가 한번 반문해 보겠습니다 .지금 안기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다 알고 있다고 어떤 야당 의원은 공언하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야당의 모 의원의 말을 빌면 안기부 내에는 자신들의 라인이 구축되어 있고 앞으로도 제2, 제3의 문서도 입수할 수 있다고 언동하고 있습니다. 李善實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3년밖에 안 지났습니다. 따라서 안기부에서 이 사건을 조작했다면 3년이 지난 지금 정보력이 좋다고 자랑하는 야당은 그 조작의 내막을 모두 입수했을 것 아닙니까. 李善實 사건의 모든 실상이 야당의 손에서 자세하게 파악됐을 겁니다. 그런데 안기부의 모든 비밀을 입수하는 사람들이 李善實 사건이 조작된 사건임을 아직도 입증하지 못하는 이유는 뭡니까』
  
   코드네임 「은하수」의 충격제보
  
  『저는 이 기회에 李善實 사건의 용공조작 문제가 하도 집요하게 제기되니까 이번에 상당히 중요한 사실 하나만 밝혀야겠습니다. 李善實 사건은 안기부에서 자체 첩보수집이나 인지를 통해 밝혀진 사건이 아닙니다. 이 사건의 수사단서는 제보였습니다. 이 사건은 「은하수」라는 이름으로 안기부에서 지금도 관리하고 있는 북한 조선노동당 사회문화부의 거물 여자 공작원이 92년 8월 중순경 귀순해 오면서 첩보를 제공하여 밝혀진 겁니다. 그 공작원은 제3국을 통해 귀순해 오면서 많은 고급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 상세한 내용을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귀순해서 제보한 고급정보 가운데는 「남한조선노동당」에 대한 주요한 제보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제보내용은 90년 10월 경 북한의 사회문화부 소속의 장관급 간첩임모 공작원과 組員 하나가 서해안을 통해 남파돼서 金洛中과 접선, 조직사업을 하다가 91년 3월 경 복귀했고, 91년 4월 경 사회문화부 담당 부국장 임모 장관급 공작원이 金洛中이 물색해서 보낸 심금섭(66·청해실업 사장)을 제3국으로 유도한 뒤 주선해 심금섭을 포섭했답니다. 당시 沈의 형이 울면서 하소연을 해 동생을 포섭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2년 2월 경에는 임모 장관급 공작원 등 두 명이 서해안으로 남파돼 金洛中에게 선거자금 1백50만 달러와 무성권총 등을 지급하고 민중당의 14대 총선을 지도한 뒤 복귀했답니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간첩 金洛中의 장남 김성혁(29세)이 90년 9월 한국고등교육재단(선경)의 미국 유학 시험에 합격, 스탠포드 대학 정치학박사과정에 재학중이라는 사실을 제보한 겁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金洛中의 아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92년 8월 북한의 공작원이 「은하수」에게 「미국에 유학중인 김성혁이 金洛中을 대신하여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북한은 남한의 간첩망을 지하 하수도망처럼 거리줄 같이 깔아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하수도망 같은 공작선이 너무 복잡해져서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혀 노출될까 두려워하는 바람에 잠을 못잘 정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지도하고 조정하기 위해 대남6과를 사회문화부에 신설했다는 등 충격적인 제보를 했습니다.. 당시 이 제보가 해외파트로부터 저에게로 넘어왔습니다만, 모두들 너무나 황당해 했습니다. 당시 金洛中은 우리나라에서 통일문제 전문가로 활동하는 유명인사였습니다. 아마 이사건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金洛中은 언젠가는 통일원의 장차관 정도가 됐을 지도 모릅니다』
  
  『3년간 지켜본 뒤 잡으려다가』
  
  『원래 간첩사건의 제보는 황당한 내용의 제보가 많습니다. 특히 귀순 간첩의 경우에는 자신의 중요성을 과시하기 위해 부풀려 제보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사력을 낭비한 경우가 많아서 우리 측에서는 대부분 신중히 대처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첩보를 보는 순간 하늘의 점지와 같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예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공수사단장에게 청해실업을 하는 심금섭의 신원을 신중하게 파악하도록 은밀히 지시했습니다. 물론 제보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로부터 2―3일이 지나니까, 심금섭이란 인물이 실제로 청해실업이라는 잠수복 제조 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그의 형은 북한에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때부터 확신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李相淵 당시 부장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때 부장은 「지금 이 사건을 깨지 말고 3년 동안 그대로 내사하면서 들여다 보자. 그러면 이 사람들이 국내의 각계인물과 접촉, 연계하는 것을 예의 추적하였다가 3년 후 일망타진하자」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내심 불만이었습니다. 사람을 장기간 내사하고 미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서울처럼 지형이 복잡한 곳에선 장기 미행시에는 곧 상대방에게 역인지(逆認知)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지시를 그대로 받아서 수사단장에게 하달했습니다. 내사組를 2개로 편성해서 金洛中과 심금섭을 3년 동안 집중 감시하라고 한 겁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새벽 6시에 심금섭을 감시하는 조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북한으로부터 팩스가 왔다갔다 하더니 서해안을 통해 심금섭이가 짐을 꾸려 튈려고 합니다」 저는 그 즉시 부장, 차장에게 이사실을 보고드린 후 심금섭, 金洛中에 대한 검거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심금섭과 金洛中이 차례로 검거되고 이 사건이 표면화된 겁니다』
  
  ―「은하수」라는 사람은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50세가 넘은 여자입니다. 남편도 고급 공작원인데 제가 차장때 「은하수」의 공개를 위해 담당국에 지시를 했습니다. 현재 공개를 위한 제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분은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4년간 수용생활도 했습니다』
  
  ―뭔가 잘못이 있었습니까?
  『金正日의 이복 여동생인 김경진과 친교를 맺었다는 것이 이유가 됐지요. 「곁가지 추종자」로 낙인찍혀 수감되어 4년 동안 함남 요덕군 소재 정치범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겁니다. 그때 그 수용소 생활의 참담한 실태는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작원이 공개되어 그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 놓으면 더 이상 李善實 사건에 대한 오해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은하수」의 신원이 공개된다면 이 사람의 남편이 현재 북한에 있음으로 해서 위험해지지는 않겠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돼 있는 걸로 압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이미 숙청됐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3: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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