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의 폭탄증언 15시간(상) - 은하수 실체를 밝힌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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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國益 파는 정치인들
  
  『DJ 측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며 살았다』
  
  ―저는 이번 사건이 안기부의 직무범위에 대해서 토론을 통해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있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안기부의 최초 성명대로 이것은 통상적인 정보수집 업무라는 주장에 대해 야당과 이론적으로 맞붙어 논쟁을 하고 그럼으로써 안기부의 직무범위가 공개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다음날 金泳三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덕(金悳) 통일원장관과 鄭차장을 해임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야당의 정치공작이란 주장을 수용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통치권자의 결단과 특히 저의 문제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보위원회가 열렸을 때 저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 답변을 하게 하고 야당과 논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했습니다. 제가 이 직책을 물러나더라도 정보기관의 임무에 대한 오해는 바로 잡고 싶었지요. 국회 정보위에 나가서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만 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아쉽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반드시 재정립해야 합니다』
  
  ―사표 내라는 통보를 누구로부터 받았습니까?
  『저는 이 사건이 터지자 부장을 만났습니다. 「통치권자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윗사람이나 저의 아랫사람이 책임을 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본인이 지겠다」는 뜻을 구두로 밝혔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權魯甲 의원은 金大中씨의 정치적 대변인으로 인식되고 있고, 동교동계의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폭로를 權魯甲 의원이 한 것으로 보아서는 金大中씨의 의지가 실려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金大中씨와 鄭차장과는 악연이라면 악연으로 볼 수 있는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에 표적이 金悳 당시 안기부장이 아니고 鄭차장이라고 추측을 했는데 결국 DJ의 반격에 패배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鄭차장께서도 DJ측의 그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까?
  
  『제가 차장이 되면서부터 동교동쪽에서 상당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였지요. 그리고 정보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저를 집중 거론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주어진 직무에만 전념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부분에 대하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金大中씨는 과거에 제가 고유직무에 충실한 나머지 불행하게도 金大中씨와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너그럽게 이해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주변 참모들이 저에 대해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금번 서류유출件은 權魯甲의원이 자료를 수집해서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동교동측에서 최초 입수하여 權의원에게 주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문서의 출처에 대한 문의를 權의원측에서 저에게 간접적으로 해왔을 때, 저는 1국에서 만든 것임을 솔직하게 시인하자, 「아 잘 걸렸다」는 생각을 갖고 저를 표적으로 삼아 공격을 계속한 것으로 압니다. 정보위원회가 열렸을 때 제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의가 싱겁게 끝났습니다.
  
  金大中씨의 추종자가 언론에 한 얘기로 알고 있습니다만 「절대로 金悳부장이 그럴 리가없다. 黃昌平도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鄭亨根이 했을 것이다. 그는 YS의 경남고 후배이기 때문에 교감을 갖고 했을 것이다」이런 식으로 계속 주장한 것으로 봐도 제가 표적이 된 것으로 압니다. 저의 사표가 수리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야당에서 주장하는 대로 저는 문민정부에서 하등의 혜택을 보거나 교감을 가질 입장도 아니고, 안기부의 조직이 제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님을 밝힙니다. 다만 그런 문서가 야당의 손에가서 된 것에 대한 지휘책임을 통감하는 것이지 특정인에 대한 반감이나 서운한 감정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정치공세는 어디까지나 정치공세일 뿐이죠』
  
  ―당시 金悳 통일원 장관과 黃昌平 보훈처장은 이 문서가 작성될 당시에는 한 분은 안기부장이었고 또 한 분은 국내담당 1차장이었는데 이 두분은 「지자체 연기검토 여론수집 문서」에 대해 그런 정보수집을 하라는 지시를 한 적도 없고, 결과를 보고 받은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저도 보고 받지 못햇습니다. 관심도 없었습니다. 주례회의 때 담당 과장으로부터 선거연기 문제에 관한 언론보도와 관련보고를 받고 챙겨보라고 했던 겁니다』
  
  「노란봉투 사건」은 안기부 內의 기회주의적 반란
  
  ―안기부 제1차장은, 지금 이원종(李源宗)씨가 맡고 있는 청와대 정무 제1수석과 긴밀하게 일하게 돼 있는데, 혹시 李수석이 안기부의 제1차장에게 여론수집에 관한 지시를 내리고 별도 채널로 보고를 받은 일은 없었습니까.
  『안기부의 보고 체계상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안기부가 청와대로부터 업무협조를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차장, 부장에게 즉시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지시 받은 내용을 청와대로 보고할 때에는 보고 직전에 반드시 차장 또는 부장에게 사전보고를 합니다. 그러니 별도 채널을 갖는 다는 것을 있을 수가 없지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엄정한 기강을 가진 안기부의 조직체제에서 상관을 무시하고 외부와의 보고 채널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상관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 있겠습니까』
  
  ―안기부의 문서유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제일 유명했던 것이 1990년 4월 당시 민자당 대표였던 金泳三씨가 안기부에서 자신을 사찰하는 문서를 어떤 루트를 통해 입수했지요. 이것을 노란 봉투에 넣어 청와대로 갖고 들어가 盧대통령과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지요. 정치적으로 유명해진 「노란봉투 사건」이 그것입니다만, 당시 徐東權 안기부장 시절입니다. 그때 이 유출사건이 뒤에 어떻게 해결되었나를 알아보았습니다. 당시 盧대통령은 이 문제가 어디서 누출되었느냐고 안기부장에게 따졌고, 부장은 절대 안기부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盧대통령이 그 정보문서를 안기부로부터 받아서 비서실장 盧在鳳씨에게 주었던 것이니까 盧在鳳씨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졌습니다. 그런데 盧在鳳씨는 마침 그 문서의 사본이 있어 자신의 사본과 金泳三씨가 가져온 문서와 대조를 해 본 겁니다.
  
  盧在鳳씨의 것은 핸드 라이팅이 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것을 카피해 갔다면 盧在鳳씨의 문서가 유출된 셈인데, 金泳三씨의 문서가 유출된 셈인데, 金泳三 대표가 가져온 것은 핸드 라이팅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盧泰愚 대통령과 徐東權, 盧在鳳 세 사람이 앉아서 서로 대조해 보니 안기부로부터 나간 것이 밝혀진 겁니다. 당시 盧泰愚 대통령은 상당히 분노하면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지요. 적어도 대통령의 차원에서 화를 낸 것이고, 그래서 안기부에서도 철저하게 이 유출 루트가 추적되었을 것이라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안기부에서는 누출시킨 사람을 잡아 내지도 못했고 사건 자체도 유야무야 되었던 겁니다. 처벌받은 사람도 아무도 없는 겁니다. 대통령 차원에서 보안문제가 지적되었어도 안기부에서는 누출시킨 사람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우선 안기부의 보안도 문제지만 보안사고가 난 뒤의 수습도 제대로 못해서 이런 사건이 이번에 재발된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결국 안기부가 정치 문제에 깊이 관여하면 할수록 정치세력이 침투하여 안기부가 얼룩지게 된 때문이라고 봅니다. 1980년대 초에 특명으로 보안에 민감한 어떤 사건을 내사했는데 6개월 동안 내사가 진행되었지만 한번도 그 내용이 외부로 누설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안기부의 보안의식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계속되면서 지역감정이 노골화되고 안기부 내에서도 지역감정을 인질로 한 정치세력이 잠입하여 보안의 위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노란봉투 사건」은 제가 말할 입장도 아닙니다만 저도 당시 피해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저는 경남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와 최기선 前 시장 등 몇몇 金泳三씨 계열의 인사들을 안다는 이유로 내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와 같은 보안사고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물었어야 엄정한 기강을 확립할 수 있었을 겁니다』
  
  ―보안사고의 책임자 조사는 수사 국장이 합니까?
  『감찰실장이 합니다』
  
   私益 위해 國益 파는 사람들
  
  ―그런데 아까 야당이 안기부를 상대로 정보공작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표현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여야 공히 안기부를 상대로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가 노란봉투 사건입니다. 그것은 야당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여당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여당으로 넘어간  투가 권력투쟁에서 어느 한편에 의해 활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안기부의 문서는 야당에 노출시키는 것이나 여당에 노출시키는 것이나 간에 똑같은 기회주의적 범죄행위라고 보고, 어느 쪽이 더 나쁘냐에는 경중의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여당으로 누출시켰을 때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차기에 金泳三씨가 정권을 잡으면 누출시킨 장본인의 승진이나 영달이 약속된 일종의 보험적 성격의 누출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야당에 누출시킨 사람보다 더 나쁘다고 봅니다. 야당에 누출시킨 사람은 양심선업이나 정의에 의한 고발이란 측면도 있지만, 이런 문서를 여당에 누출시킨 사람은 私益을 위해 國益을 팔았다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문서는 안기부 내에서 소수 몇 사람만 볼수 있는데 그런 소수 집단 속에서 누출된 것을 안기부가 규명하지 못햇다는 것은 안기부의 엄정한 자세와 자체 정화능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런 측면이 있겠습니다만, 「노란봉투 사건」은 그 당시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장래 이익을 담보로 하고 누출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는 안기부가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여든 야든 안기부의 이러한 노력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협조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최근 金鍾泌씨가 自民聯 창당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전화가 도청 당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전화를 안 쓴다고 하고, 自民聯과 관계된 기업들이 세무사찰을 당하고 있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金鍾泌 대표와 金泳三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청와대에서 비밀회동을 했는데 그것이 동아일보에 특종보도가 됐습니다. 그러자 金鍾泌씨가 이 사실을 들어 李源宗 수석에게 항의를 했고, 李源宗 수석은 金鍾泌씨에게 「안기부에 조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金鍾泌씨가 말한 이것은 사실입니까?
  
  『과거에는 도청문제가 정치권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는 법 절차에 따라 법관의 영장을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의 준수 여부는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혀집니다. 만약 불법적으로 안기부 내부에서 감청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지시를 이행할 사람이 없습니다. 당사자는 법으로 엄중 처벌받게 되는데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지금 야당에서 안기부의 모든 비밀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호언하고 있습니다. 제2, 제3의 문건도 속속들이 입수되고 있다고 공언합니다. 이런 마당에 누가 야당의 당숙가 될 사람을 도청하겠습니까? 그리고 세무사찰 문제는 저희로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만, 과민반응이 아닌가 합니다. 또 비밀회동이 보도된 사실은 저도 신문을 통해 보았습니다만, 저는 보도경위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국회 정보위 설치에 반대한 이유
  
  ―국회 정보위원회가 작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해서 우리 정보기관을 국민의 대표가 감시 감독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일 년여 동안 가동을 해 보았는데 그 장단점을 어떻게 파악학 계십니까?
  
  『정보위원회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검토할 당시부터 저는 정보위원회의 구성 자체에 극력 반대를 해온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정보위원회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서독뿐 입니다. 그런데 당시 美 CIA 고위간부였던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저에게 충고하기를 절대로 정보위원회를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미국은 정보위원회를 만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독특한 정치적 양식과 성숙된 정치적 문화, 그리고 윤리와 법정신에 의해 정보위원회가 여·야에 의해 엄정하게 관리 집행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견이 우세합니다. 서독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풍토에서 출발해 우리나라와는 다른 형태의 정보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권교체 경험이 없고, 특히 야당의 무책임하고 대안 없는 정치공세를 통해 정치풍토는 날이 갈수록 악화괴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보위원회를 만든다면 앞으로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그런데 당시 안기부에 대한 야당의 정치공세가 거세고 또한 안기부가 변신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자 부득이 정보위원회를 신설하는 대신에 안기부법은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정보위원회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정보위원회는 위원회대로 생기고, 안기부법은 법대로 정치적 협상에 의해 난도질당했습니다. 정보위원회의 운영 형태는 야당에 의해 안기부가 장악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정보위원회의 특정 야당 의원이 안기부 직원의 인사청탁을 공공연히 하고 이를 통해 인사에 得을 본 안기부 직원은 그 야당 의원과 유착되어 정보가 유출되고 매월 열리는 정보위원회는 안기부의 업무를 미비시킬 정도로 안기부를 괴롭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사청탁하는 야당 의원…기가 찰 노릇』
  
  『정보위원회는 의원과 안기부의 상호신뢰의 바탕 위에서 운영되어야 하는데도 현재 정보위원회는 안기부의 취약점을 수집 폭로하는 장이 돼버린 겁니다. 심지어는 특정 야당의원이 안기부 내 同鄕인 간부직원을 거명하면서 왜 그 사람을 국장으로 진급시켜주지 않느냐고 국정감사가 끝난 위 만찬석상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하는가 하면, 거론됐던 간부는 진급이 누락되자 민주당에 입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보위원회 운영이 지금 이러한 상황입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저는 한때 정보위원회가 신뢰의 바탕 위에서 잘만 운영된다면 이것이 발전하여 야당과 정보기관간에 상호 신뢰가 싹트고 나아가 야당이 집권하여도 정보기관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정치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한국적인 정치풍토는 그 수준을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보위원회를 구성할 때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구성위원 중에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적이 있으므로 위원회의 멤버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당에서 문제제기를 했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유야무야 되고 지금도 야당의 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국가 정보위원회에 보안법 위반 같은 것으로 확정선고를 받은 사람도 정보위원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보위원회 위원들의 기호에 안기부가 맞춰주도록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한숨) 소위 정보위원의 기호에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은…. 날이 갈수록 정보위원회는 야당이 안기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야당 정보위원들이 안기부에 군림하는 입장에 서고, 안기부는 그분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세한 것은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혹시 세간에 떠도는 말대로 안기부에서 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일년에 수천만원씩을 제공하고 외유할 때 거액의 거마비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른바 기호에 맞춰준다는 것의 내용입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지도 못하며 말할 입장도 아닙니다』
  
  ―보안문제와 관련해서 다시 여쭤 볼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1993년 가을에 李東馥 당시 안기부 북한 담당 특별보좌관이 사임을 했습니다. 사임한 이유가 당시 민주당 李富榮 의원의 폭로에 의해서 비롯됐는데, 그 근거로 쓰인 문서 유출 경위는 감사원이 조사를 했습니다. 여기서 안기부, 통일원, 청와대의 자료가 어떤 경로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李富榮 의원에게 넘어갔다는 겁니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 차원에서는 누가 넘겼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李東馥씨가 당시 평양에 회담 대표로 가서 했던 행동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李東馥씨가 물러나는 것으로 되고, 그러나 누가 3급 국가기밀을, 더구나 암호전문을 누출시켰는가에 대해서는 「노란봉투사건」 때와 같이 책임규명이 안됐습니다. 안기부 차원에서 조사를 안했습니까?
  『안기부 기능상 자체 조사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소관이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月刊朝鮮에서 계속 기사를 다루어왔고, 그 뒤에도 이 과정을 추적한 기사를 썼습니다. 당시 韓完相 통일원 장관이 林東源 전 차관과 의논을 해가지고 관련자료를 李富榮씨에게 넘겨주었다는 정도의 상황이 정부 내에서도 확인되고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는데 이 조사를 안기부에서 한 것은 아닙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의 소관사항이 아니고,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3: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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