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나라 이스라엘의 근대화와 국민 下(2)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배짱
  
  페레스는 회고록에서 이 核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번도 「核무기 개발」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 대신 「核무장 선택권」이란 의미이지만 사실상 핵개발을 뜻하는 「뉴클리어 옵션」(Nuclear Option)이란 용어를 썼다. 페레스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비밀核개발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돌파해야 했던 여러 난관들을 설명했다. 그 중의 하나. 페레스 당시 국방차관이 1959년 아프리카의 세네갈을 방문하고 있는데 벤 구리온 수상으로부터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줄 알고 돌아오니 벤 구리온 수상, 골다 메이어 장관,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 책임자 하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상이 설명인즉, 소련의 첩보위성이 네게브사막의 核시설 건설공사 현장을 촬영했고 이 사진을 갖고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이 지금 워싱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포스터 덜레스 美국무장관에게 그 사진을 들이대고서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에 대해 核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으려 하는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특사를 미국으로 보내 간청을 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페레스가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리 이실직고하면 약점을 잡히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자. 도대체 소련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에 뭐가 나오나. 땅을 판 구멍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다』
  이런 취지의 설득이 통해서 이스라엘 정부는 김일성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 核개발을 계속 추진해 지금은 核강대국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60년代에 核폭탄 제조에 성공했고 지금은 약 4백개의 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 제리코 1, 제리코 2호도 실전용으로 배치된 지 오래이다. 小國이 강대국의 감시망 속에서 비밀리에 核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核무기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경제난에 봉착, 결국 核무기 제조는 보류하고 있는 인도를 비롯, 박정희의 좌절과 북한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독 核무장에 성공한 것은 벤 구리온과 페레스 같은 배짱 있는 정치인의 리더십과 자주국방에 대한 정치권의 전면적(全面的)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미군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었다면 核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보(安保)를 정치의 제1주제로 삼아야 정치수준 향상
  
  1970년대 韓美국방장관 회담때 럼스펠드 美국방장관은 서종철(徐鐘喆) 한국 국방장관에게, 『만약 한국이 핵개발을 시도한다면 미국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폐기를 포함한 외교·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양국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 박정희의 核개발 등 자주국방 의지에 대하여 미국 편에 서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이가 바로 김재규(金載圭) 당시 정보부장이었음은, 그의 항소이유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카터 행정부가, 자주국방 노선을 추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박정희에 대해서 한국內의 일부 재야 및 정치 세력을 조종하고 인권외교라는 위선적 명분론을 들고나와 코너로 몰았던 것도 이스라엘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시프記者가 지적했듯이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 한국처럼 식민지 근성이 남아 있는 나라에선 외세에 조종되는 세력이 나타나게 된다. 조국에의 배신과 국론분열이 빈발하여 먼저 내부적으로 국가의지가 꺾여버리게 되는 것이다. 페레스가 보인 배짱은 국내적으로 단합된 주권국가만이 부릴 수 있는 오기이다.
  
  페레스와 라빈의 회고록에는 서로를 비판하는 대목이 수십 군데나 된다. 엔테베 작전을 설명할 때 페레스는 라빈 수상이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려 했다고 꼬집었다. 라빈 수상은 국방장관이던 페레스는 자신이 지시를 하기 전에는 군사적 해결방안에 대해서 검토도 하고 있지 않더라고 폭로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원균(元均)을 여러 번 비난하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페레스와 라빈이 이런 글을 써놓고 어떻게 서로 얼굴을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그런데도 두 라이벌은 지금 환상의 콤비가 되어 평화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의회에서의 격렬한 토론은 우리 국회를 무색케 할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安保라는 큰 테두리에 대해서는 이견과 감정을 접어두고 대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이스라엘 정치 풍토이기도 하다. 安保라는 큰 주제에 대한 합의만 있으면 아무리 정쟁이 치열해도 국기(國基)를 흔들지는 않는다.
  
   국군엔 장군이 없다?
  
  한국 정치의 저질화는 정치의 본질인 국가의 생존에 관련된 사안을 멀리한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인의 크기는 그가 다루는 사안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볼 때 安保를 정치의 주제로 끌어안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선 「정치가」(Stateman)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한국의 安保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 보듯이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安保를 미국이 책임져 주겠지 하는 요행심과 의타심 때문이다. 한국군 지휘부도 마찬가지이다. 전시(戰時) 지휘권과 對北전략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주한(駐韓)미군사령관에게 전쟁수행의 임무를 맡겨놓고 그들은 자신의 직위를 즐기고 있다. 한국군 출신의 한 예비역 장성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한국군 중에서 장군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요. 장군이 뭡니까. 전쟁에 관한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서 깊은 군사 지식과 리더십을 배양해야 하고 눈만 뜨면 전쟁에 관해서 공부·훈련·대비하는 사람이 장군인데 그런 사람 없어요. 반면에 주한 미군의 지휘관들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스스로를 연마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특히 駐韓미군 사령관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한국을 방어하라는 것이므로 과연 그 임무를 수행할 만한 무기체제가 돼있는지, 군의 사기는 충분한지 그야말로 노심초사합니다. 그러니 한국과 미군 장성들끼리 만나 이야기하면 10분 이상 대화가 안되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좌 같다니까요』
  
  
  기자도 직업상 한미 양국군의 간부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한국군 장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호기 또는 으스댐이다. 북한 인민군에 대한 과잉자신감까지도 감지된다. 그런 자신감에 걸맞는 전문지식과 군인의 자세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출범 이후엔 그런 호기도 「주눅」으로 바뀌는 것 같다. 언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군인만큼 추한 모습은 달리 없다. 우리 군의 주적(主敵)은 분명 북한 인민군이다. 한국군은 불행히도 1대 1이 단독 결전으로써 인민군을 굴복시킨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국방목표를 「적의 침략」에서 「외부의 군사적 위협」이라고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김영삼 정부일각의 탈냉전 주장에 영합하려는 몸짓으로 보였다. 인민군에 대한 필승전략을 짜기도 힘이 부치는 판인데 통일 이후의 군사전략을 구상한다면서 日本을 가상적으로 설정한 문서가 공개되고, 전방위방어 작전에 필요하다면서 사치스러운 무기체계를 도입하려는가 하면, 급기야는 좌파 수정주의적 사관(史觀)을 그대로 반영한 6.25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 나타난 한국군 지휘부의 이런 타락상은 대한민국이 또 다시 이씨조선(李氏朝鮮)의 문관(文官)우위문화(文化)속의 문약한 국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조국을 저주하는 사람들
  
  김영삼 정부는 출범 이후 文民이란 왜색용어를 내세우면서 지난 50년간 한국인들이 피·땀·눈물로써 쌓아올렸던 역사·국가·군사전통을 약화시키는 행태를 보여 왔다. 김영삼 정부는 그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내부의 적」이니 수구세력으로까지 표현하여 국가의 단합을 약화시키는가 하면(文民이란 말이 벌써 서민과 군인을 배제함으로써 분열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文民정부」는 마땅히 「국민정부」로 바뀌어야 한다) 「내부의 적」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비굴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한국인의 경의감을 건드렸다.
  
  이번 6.27선거에서 보수·중산층이 결정적으로 돌아선 것은 金대통령의 정책 실패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역사관과 국가관이 우리 현대사회의 성취와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金대통령은 지난해 부친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5천년 썩은 나라를 바로잡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가와 역사의 대통(大統)을 이어가는 대통령이 자기 조상의 과거를 전면적으로 부정·비방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金대통령의 정치적 대부(代父)인 고(故) 장택상(張澤相) 회고록에 따르면 이승만은 한번도 『조선사람이니까 안돼』식의 자학적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승만에게 있어서 한국은 비판의 대상이 아닌, 무조건적인 헌신·충성·애정의 대상이었다는 의미이다. 金대통령의 말대로 5천년 동안 썩은 나라였다면 오늘날 GNP 세계 12위의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이 된다.
  5천년 동안 썩었던 것은 위선적인 명분론으로 백성을 착취하고 국가의 야성을 거세함으로써 자주·자위·자립의지를 말살했던 지배층-양반, 즉 文民들이었다. 金대통령의 이른바 文民정부가 역사의 정체와 망국(亡國)을 가져왔던 그런 文民의 전통으로 이 나라를 회귀시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라는 게 6.27선거의 한 메시지일 것이다.
  
  한국 현대사와 군사 文化, 그리고 이른바 수구세력에 대해서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인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견지했더라면 한국인의 정의감정은 이 정도로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의감이란 균형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인모 (李仁模)노인을 보내주었다. 곧 북한으로부터 좋은 답장이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지만 납북어부가 아니라 核공갈이 날아왔다. 김영삼정부는 그 核공갈에 대해 40억 달러짜리 경수로 지원으로 대응했다. 40억 달러를 바치고도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보장도 확실하지 않는 가운데 이번엔 서둘러 쌀 15만t을 무조건 주기로 결정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북한에 사람·쌀·돈을 주기만 하고 있다. 金대통령이 자선단체의 長이라면 그것도 괜찮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으로 수백만의 국민을 잃은 적이 있고 지금도 재남침 위협에 노출돼 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공갈과 위협에 군사적으로 맞섬이 없이 금품을 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조공이 된다.
  
  쌀을 주면서 金대통령은 국가이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포기하였다. 국가(國歌)·국기·국호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이 상징의 사용을 둘러싸고 전쟁과 외교관계 단절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북으로 보내는 쌀에 국호표시를 하지 않고 싣고가는 배(배는 영토이다)에 국기를 안 달기로 합의해 준 것은 金대통령이 스스로 국가 지도자임을 포기한 것과 같다(1984년 수해 때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공개적으로 원산지표시가 된 물자를 당당하게 보냈지 않았던가). 이로써 북한은, 남한이 국가가 아니라 조선인민공화국의 미수복 남반부 지역이라는 그들의 일관된 주장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金泳三대통령이 대내적(對內的)으로는 한국 현대사(現代史)를 부정적으로 보고 대외적(對外的)으로 국가의 권위를 양보하고 있는 이 2중적 상황은 상호연관성 아래에 있다. 국가는 역사의 산물(産物)이다. 그릇된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국가관을 파생시킨다. 자기 역사를 저주하는 사람은 조국도 가볍게 보게 돼 있다.
  
   주석궁을 조준한 뒤 對北 협상에 임한다면…
  
  이스라엘은 核강국이면서도 국방정책은 철저하게 재래식 무기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비증강 태세를 보면 核무기는 전혀 계산에 넣지 않고, 어떤 전쟁에서도 재래식 무기로써 결판을 낸다는 자세를 굳게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核을 믿고 부리는 태만 같은 게 없다. 安保란 2중, 3중의 안전장치라야 한다는 신념의 표현이리라. 기자는 이스라엘 북부지역 산정(山頂)에 있는 라파엘社의 미사일개발 본부를 방문했다. 라파엘사가 개발한 공대공(空對空)미사일 파이턴(Python)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서 미국 공군에 수출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기자의 흥미를 돋운 것은 공대지(空對地)미사일 포파이(Popeye)였다. 1985년부터 실전용으로 미국 공군에만 수출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팬텀(F-4)이나 F-16에도 장착할 수 있다. 사정거리는 1백km나 된다. 이것을 발사한 전투기는 뒤로 물러나 안전한 상공에서 텔레비전 모니터로 포파이를 목표물로 정확히 유도한다. 초속 3백∼4백m로 날아가는 이 미사일은 입력된 좌표와 사진을 쫓아간다. 예컨대 평양 주석궁의 사진을 입력시키고 2층 오른쪽 두 번째 창문을 표적으로 선정해 놓으면 정확히 그 창문을 때릴 수 있다고 하여 「창문의 정확도」(Accuracy of window)로 불리고 있었다.
  『한국에도 팔 수 있는가』하고 물어 보았더니
  『미국內 합작회사를 통해서 살 수도, 우리로부터 직접 살 수도 있다』는 대답이었다. 가격은 1개당 50만∼1백만 달러라고 했다. 對北 쌀 지원 15만t의 시가가 약2천억 원이라니 그 돈이면 수 백 개의 포파이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생긴다. 포파이 미사일은 고급 표적(High valued strategic target)에 대해서 사용하는 전략 무기이다. 인민군사령부, 영변核시설, 주석궁, 金正日의 별장이나 숙소 같은 전략적 표적물에다가 이런 미사일을 조준시켜 놓는다면 對北협상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무기를 살 수 있을 만한 의지력을 한국의 국가지도부가 갖고 있느냐일 것이다.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용 패트리어트를 駐韓미군이 들여오는 것조차 북한을 자극한다는 궤변으로써(그것도 우리 외무장관까지 맞장구를 치고) 지지한 적이 있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책임을 남측에 전가시키는 「블레임 코리아 퍼스트」(Blame Korea first), 즉 조국을 먼저 비난하고 보는 위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對北관계에서 한국이 깡패에게 멱살 잡힌 사람처럼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 지도부가 의지력 싸움에서 북한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40억 달러 어치의 경수로 지원이나 2천억 원 어치의 對北쌀지원도 본질적으로는 그런 굴복에 따른 조공품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돈으로 차라리 군비증강을 한 뒤에 북한에 대해서 『답답한 쪽은 너희들이니…』하고 덤덤하게 기다리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도 북한을 위해서도 더 나은 정책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서, 그들이 고마운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받아들일 때 북한 내부에 변화가 오는 것이지 전리품처럼 가져갈 때 체제강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예의 화법(話法)
  
  남북대결에선 남한이 GNP 기준 세계 12위의 그 거대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변화시킬 때 북한의 굴복은 필지의 사실이 된다.「경제력→군사력」으로의 전환에는 국가 지도부의 의지와 국민의 희생정신이란 변환 스위치의 작동이 필요하다. 군비증강과 자주국방을 위한 부담을 국민된 당연한 도리로서 끌어안고 가려는 국민들은 많지만 북한의 억지와 국내의 좌익세력과 미국의 압력을 막아낼 수 있는 페레스-라빈과 같은 국가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제발 받아주세요』라는 자세로써 수십억 달러의 국민세금을 북한에게 갖다 바치는 신세가 된 것이 대한민국인 것이다.
  
  페레스와 라빈, 그리고 기자가 만난 이스라엘 정치인과 군인들의 話法과 文法은 한국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金泳三대통령이 자주 쓰는『우리는 북한을 흡수통일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말이나 金日成 사망때의 토론인『정상회담이 무산되어 아쉽다』는 식의 어법(語法)은 그들의 사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이 核개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대응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면 한국에선 철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데 이스라엘에선 상식이 되는 말이다. 한국국방장관은『북한의 핵시설에 대해서 엔테베 작전 같은 것도 연구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정치·언론계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이스라엘에선 행동으로써 보여주었다(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
  
  한국 식자층에선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주 고매한 도덕성과 신중함의 표시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레이건 美대통령이 현직일 때 공개석상에서 소련에 대해서 『악의 제국(Evil Empire)』이란 표현을 사용한 뒤 군비증강으로 나가 결국 소련체제의 자체붕괴를 유도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安保문제와 관련한 한국 지도층의 話法은 독립국가 아닌 식민지 근성의 주눅 든 눈치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북한에 대한 엄정한 자세도, 치열한 대결자적 자세도, 미국에 대한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적 태도도 발견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話法을 구사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하다가는 경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남북대결에 중립(中立)은 없다
  
  오히려 북한이 이스라엘 지도부와 비슷한 수준의 話法으로써 남한을 갖고 놀려고 하고 있다. 지난해의 불바다 발언과『경제봉쇄를 하면 전쟁하겠다』는 취지의 공갈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공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노예적 발상과 언어를 버리고 주인(主人)의 언어감각을 배워야 할 것이다.『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朴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도 이제 19년이나 된다. 민족중흥의 기수가 쓰러졌을 땐 침묵하던 이들이 민족의 원수가 죽자 애도하자고 나서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것은 지난 해이고 조문론을 주장한 정치인들이 야당의 지도층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1995년 한국의 오늘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조국을 저주하는 발언은 자유롭고 조국을 옹호하는 발언은 부자유(不自由)하다. 애국심과 국가주의는 냉소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런 분위기는 언어를 통해서 확산된다. 北核문제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된 바로 그 시기에 한국언론은 美-北회담을 北-美호담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朝鮮日報-月刊朝鮮, 서울신문, KBS 정도가 「美北」을 견지하고 있다. 北核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대표는 동정의 대상인 人民이 아니라 노동당 지배층이다. 우리 헌법 체계가 규정하고 있는 反국가단체의 간부들이다. 그들을 우리의 혈맹인 美國보다 앞자리에 놓는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 아니라 교육상으로도 좋지 않다. 金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어떤 이념이나 우방보다도 민족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엔 맞는 표기법이다. 최근 일부 기자들은「한국-조선」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기자가 중립적 입장에 서서 남북한 양쪽을 등거리로 보겠다는 뜻이라면 그는 휴전선상에 집을 짓고 무국적을 먼저 선언해야 한다. 남북한 문제에서, 더구나 악마적 집단이자 민족의 원수인 북한노동당 지배체제를 상대하고 있는 남한에서 中立이란 있을 수 없다. 악과 선 사이에서 중립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고향이 없는 혼(魂)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또 몰라도.
  
출처 : 월조
[ 2003-07-02, 14: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