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나라 이스라엘의 근대화와 국민 下(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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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의 나라 이스라엘 군대(軍隊)와 국민(下) - 이스라엘이 던지는 질문:『대한민국은 국가인가, 협회인가』
  
  부상자를 절대로 전장에 버려 두지 않는 나라,
  포로·실종자에 대해서는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하는 나라,
  강대국의 감시망 속에서도 核폭탄을 수 백개나 만들어낸 나라,
  대령봉급이 수상보다 많은 나라,
  해외에서 核비밀을 폭로한 사람을 납치해 오라고 주장하는 언론을 가진 나라,
  테러리스트와는 협상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엔테베 특공작전을 감행한 나라,
  그리하여 피로써 평화를 산 이스라엘.
  그들은 국가와 국호까지 포기한 한국의 굴욕적 쌀 북송(北送)을 어떻게 볼까
  
  <1995년 8월 월간조선>
  
   애조 띤 유행가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류 大學으로 가는 차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스라엘 유행가를 듣고 기자는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의 흘러간 옛 노래와 흡사한 멜로디와 창법(唱法)이었기 때문이다. 가사만 한국말로 바꾸면 누가 들어도 한이 서리고 애조 띤 뽕짝이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우러나와 체질화된 「깊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두 나라 대중가요임을 기자는 그 뒤에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우리 유행가에 6·25의 비극을 담은 것이 많았듯이 이스라엘 유행가엔 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을 소재로 한 가사가 많다. 「재와 먼지」(Ashes and Dust)란 제목의 앨범엔 「트레브린카 작은 역」이란 노래가 있는데 트레브린카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태인들을 상징화한 이런 가사가 있었다. 「때로는 인생여정이 5시간 45분만에 끝나고, 때로는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계속된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연상시키는 곡이었다.
  
  천성적으로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유태인과 한국인은 닮았다. 유태인 출신의 음악천재(天才)들?꼽으라면 지면(紙面)이 모자라지 이름이 모자라지는 않는다. 지난 4∼5년 사이 러시아에서 살던 유태인 약 50만 명이 이스라엘에 정착하기 위해서 이민 왔다. 텔 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에 내리는 러시아계 유태인들 중엔 바이얼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바이얼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피아니스트로 봐야 한다』는 농담까지 생겼다. 히브류대학 트루만 연구소에서 만난 벤 아미 실로니(Ben Ami Shillony)교수는 日本역사 전문가이다. 60代의 나이에 체구는 일본 사람같이 작고 웃는 표정이 소년처럼 천진난만한 학자였다.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실로니 교수는 日本에서 교환교수로 일하는 사이 한국을 처음 찾았던 1982년의 감동을 이야기했다. 한국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한국인은 日本人보다도 훨씬 마음 편한 상대였으며 유태인과 한국인 사이의 공통점이 너무나 많은 데 놀랐다고 한다(기자가 이스라엘에 와서 그런 공통점을 발견하고 놀란 것과 똑같은 체험을 한 셈이다).
  
   허약한 상무(尙武)전통, 그러나 건국 과정에서 군사력 배양
  
  1989년 11월 실로니 교수는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국민국가와 세계평화」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 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자랑스럽게 건네준 논문 복사본의 제목은 「유태인과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에서 나타난 국가와 평화의 중심적 역할」이었다. 그는 「두 민족은 늘 전사(戰士)보다도 학자를 더 존중하였고 물리적 허약성을 도덕성으로써 극복하는 능력을 가진 점에서도 닮았다」고 지적했다. 유태인과 한국인은 유럽이나 日本 등 대부분의 근대 국가와는 달리 「무사(武士)계급의 지배집단화」라는 전통을 갖지 않은 아주 특이한 민족이란 것이다.
  
  군사적 전통이 취약한 두 민족은 그 때문에 나라를 잃었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꼭같은 시기에 국가를 건설하고 지켜가는 과정에서 세계가 놀랄 만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이 완강한 병사로 바뀐 것」은 물론 독립국가로서 생존하기 위한 결의의 결과였다. 실로니 교수는 「유태인과 한국인은 국가의 목표를 평화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일단 평화를 달성한 다음엔 군사조직은 약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실로니 교수는 「한국인의 위대한 성취가 전선(戰線)이 아니라 공장에서 기록되었던 것처럼 이스라엘人의 위대한 성취도 하이테크산업, 대학, 그리고 음악당에서 이루어졌다」고 썼다.
  『유태인의 첫 인사말은 히브류어(語)로서 「샬롬!」인데 「평화」를 의미합니다. 한국인의 「안녕하십니까」도 마찬가지로 평화에 대한 희망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 두 민족이 그 염원을 꼭 이루기를 바랍니다』
  
   군대가 이스라엘을 만들어냈다
  
  실로니 교수의 관찰은 형식면에선 맞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한국과 이스라엘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두 나라가 尙武정신이 부족했던 점에서는 같지만 건국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과 자세는 달랐다. 이스라엘人은 건국前 영국의 통치下에서 이미 비밀군사조직을 만들어 아랍人들과 대적하면서 키부츠(집단농장)를 지키고 건국을 준비하다가 2차세계대전 뒤 全아랍국가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서 당시 인구의 1%가 전사하는 대가를 치른 다음 나라를 세웠다. 국가가 생기고 군대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군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의 독립은 강대국의 선물이었고 군대조직도 미군(美軍)이 만들어주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국민 속에서 솟아났고 한국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한국군은 한국전쟁 때도 국토방위의 주도권을 미군에게 내주었고 휴전 뒤 지금까지도 주한 미군의 지도하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인구비에서 아랍에 대하여 1대 3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여섯 차례의 전쟁에서 한번도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한국군은 또 두 번의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는 경험에 의해 지휘부가 국토방위보다는 국내 정치에 더 신경을 쓰는 체질로 변모하였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나약성에 대한 처절한 반성 위에서 주체적 결단에 의하여 군대를 만들었다면 한국은 피동적이고 의존적인 심리가반을 가진 군대를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군대를 대하는 양 국민의 자세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군의 대령 이상은 수상보다도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군인의 퇴직 후 연금(年金)은 일반공무원의 2배이다. 군인이 전사했을 때 친척들을 인터뷰하여 그 사진을 보도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전사한 군인의 시체도 보도 금지. 군인이 전사한 그 작전의 타당성을 정치인이 비판하는 것도 금기 중의 하나다. 전사자의 가족에게 그 죽음이 헛된 것이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에서다. 모든 전사자가 전장에서 남긴 수필, 시, 편지는 유고집으로 편집돼 끊임없이 출판되고 있다. 1991년 4월의 공식 발표에 따8?이스라엘 건국 이후 1만7천1백50명이 전사하고 5만6천2백72명이 전상(戰傷)했다. 이들 가족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골(聖骨)대우를 받는다. 전장에서 부상자는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후송시켜야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열 명을 희생하는 것도 감수하려는 자세이다.
  
   조국은 포로를 잊지 못한다
  
  이스라엘에서 출판되는 연감은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포로가 된 공군항법사 론 아라드와 네 명의 실종자에 대한 구출 노력의 진행상황을 반드시 언급한다. 지난 해 5월21일 이스라엘 특공대는 시리아가 통제하고 있는 베카 계곡의 한 가옥을 급습하여 시어파(派) 테러조직의 간부인 무스타파 디라니를 납치, 헬리콥터로 싣고 와서 감옥에 집어넣었다. 디라니는 아라드를 데리고 있다가 30만 달러를 받고 이란 혁명수비대에 넘겨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포로나 조국에 의해 결코 잊혀지지 않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6.25 휴전 후 북한이 납치해간 어부 4백여명에 대한 한국 정부·언론·국민들의 무관심과 한번 비교해 보라.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력을 보일 때만이 협회나 기업과는 다른 특별한 공동체임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들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장군들의 이름을 외고 있었다. 1982년 레바논 베카 계곡 상공에서 벌어진 시리아 공군과의 공중전에서 87대(격추된 시리아공군기) 대 0(격추된 이스라엘 공군기 없음)의 스코어를 기록했던 공군사령관은 누구이며 1976년 엔테베 작전의 특공대장은 누구이고 나치독일의 비밀경찰 간부 아이히만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납치해온 모사드의 간부는 누구라는 식으로 줄줄 외는 것이다. 이스라엘 공군에선 한때 조종사들을 상대로 「홀로코스트 퀴즈」문답을 실시하여 상을 주곤 했다. 어느 조종사가 유태인 대학살에 관하여 가장 정확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행사였다. 질문은 이런 식이다. 「트레브린카 수용소에서 몇 명이 학살 되었지요」 「부켄발드 수용소에선?」 「리비아에 만들어진 수용소엔 몇 명이 수용돼 있었나요?」
  
   특공작전의 철학
  
  학살과 전쟁은 이스라엘人들에겐 악몽과 추억뿐만이 아니라 문화이고 생활 그 자체이며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게 하는 각성제이다. 엔테베 작전의 특공대장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은 현장(우간다 엔테베공항)에서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이 작전의 유일한 전사자가 지휘관이었다는 것은 장교들이 앞장을 서 장교사망률이 유달리 높은 이스라엘 군대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동생 빈야민 네탄야후는 야당인 리쿠드당(黨)의 당수로 있다. 그는 야당 당수로서가 아니라 「특공대장 요니의 동생」으로 더 유명하다. 엔테베작전을 감행한 것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는 중요한 원칙 때문이었다. 그 원칙이란 테러리스트와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의 특공작전은 그 발상의 기발함과 행동의 대담성에 있어서 「다이하드」와 같은 영화를 연상시킨다. 이들 특공작전은 이스라엘식(式) 생존방식을 보여준다. 학살과 핍박의 희생양으로 오랫동안 경멸받던 나약한 유태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결의에 찬 행동, 또 그러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건너온 다리에 불을 질러버리는 모진 자기 다짐인 것이다. 그들은 국제법을 어기고 국제여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특공작전도 사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국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6백만 유태인이 학살될 때 당신네들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쏘아붙이면서 『믿을 사람은 우리뿐』이라고 서로를 일깨우는 사람들이다.
  
   애국심이 살아 있는 나라
  
  기자는 10일간의 이스라엘 취재가 재미있고 마음 편한 체험이었다. 한국에선 아무런 감흥도 유발하지 못하는 단어가 돼버린 「애국심」이 이스라엘에선 살아 숨쉬고 있었다. 국가와 민족이란 말도 한국에선 일부 정치인과 위선자의 선동가들에 의해 그 의미가 크게 퇴색돼 버렸지만 이스라엘에선 입술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총구를 통해서, 자기 희생을 통해서 생동하는 가치로 구현되고 있었다. 국가 보위와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지도자·국민·군대가 똘똘 뭉쳐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열정을 불태우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가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았던 것은 많은 동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자는 대한민국이 독립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가 아니라 협회에 가까운 조직이라는 의혹을 늘 가지고 있었다. 경제력에 있어서는 수십분의 1에 불과한 북한과 상대하면서도 외국 주둔군에 자신의 국방을 의존하고 있고 그러면서?부끄러움이나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한국의 지도층. 그들과 만날 때마다 기자는 싸우다시피 해왔다.
  
  『자주국방을 못하는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식민지이며 국민은 노예 근성을 갖게 된다』
  이런 말에 동조자를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이스라엘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동조자를 발견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본 기자의 주장은 국수주의적인 주장도 탁견도 아닌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주한 미군이 철수할까봐 전전긍긍해 하면서도 주한 미군의 범죄에는 과장과 선동으로써 대하는 분위기. 남의 희생을 이용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면서도 미군에 대하여 고마워하기는커녕 컴플렉스를 폭발시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병적인 분위기. 우리가 건강한 정신으로, 책임있는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주한 미군의 철수를 우리가 먼저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기자는 이스라엘에 와서 비로소 그런 생각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국을 잊은 지 오래인 국회
  
  이스라엘의 제일 가는 국방전문 대기자(大記者) 지브 시프씨의 충고-『외국군이 장기주둔하면 나라의 단합이 깨지고 국민의 정신력이 해이된다』는 말은 오랫동안 귓전에 남았다. 외국군 주둔의 정신적 폐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계층은 서민대중이 아니라 사회의 지도층이다. 생활에 바쁜 서민들은 관념과 위선에 잘 유혹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회는 조국을 잊은 지 오래이다. 북한 核문제 같은 민족의 사활(死活)이 걸린 사건을 해외토픽 보듯이 한다. 북핵(北核)문제에 대한 청문회도, 그 어떤 대북(對北)결의도 없었다. 국민세금이 40억 달러나 들어가게 돼 있는 對北경수로 지원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도 없었다. 對北쌀지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 기원은 납세자의 권익보호에서 출발했다는 정치학의 원론도 모르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 그들에게 안보(安保)문제는 인기가 없는 곡목(曲目)이다. 한국, 이스라엘과 같은 전쟁下의 국가에서 정치의 제1주제는 안보문제여야 하며 정치행위는 그것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게 상식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안보(安保)란 본질적 국정(國政)문제를 미군에게 맡겨버린 뒤 정권, 당권, 당선 같은 원초적 권력게임에 집착하고 있다. 그 결과는 정치의 저차원화, 저질화이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놓고 벌이는 이스라엘의 정치게임과 지역감정, 당파, 인맥, 권력에 눈치보기, 모함, 약점잡기 같은 키 워드로 상징되는 한국의 정치는 그 수준과 성실성에서 이미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접하는 신문·방송·잡지·책들도 온통 안보를 제1주제로 삼고 있었다.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협상의 조건을 둘러싼 격론,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병사가 전사한 사건, 요르단 서안(西岸)(West Bank)의 점령지에서 발생한 소요, 예루살렘의 아랍인 땅을 이스라엘 정부가 수용한 사건…. 텔 아비브의 서점에 갔더니 이자크 라빈 수상과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의 자서전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노벨 평화상도 공동으로 받고 집권 여당(노동당)의 2大 지주이기도 한 두 사람은 30여년간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다. 지금은 콤비가 되어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요르단,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의 회고록은 이스라엘 정치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혔다. 우선 두 회고록의 내용이 전쟁, 건국, 외교, 테러, 核개발, 비밀공작(工作)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숨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라빈, 페레스 모두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쓰고 있다. 정치인이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특히 시몬 페레스는 자신이 그 책임자로 일했던 核무기 비밀 개발에 대해서 한 장(章)을 떼내어 자세하게 쓰고 있다. 이스라엘은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에 의한 수에즈운하 국유화 사건 때 프랑스·영국과 합세하여 對 이집트 작전에 가담한 것을 기회로 삼아 프랑스와 비밀核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프랑스 기술의 도움으로 네게브사막에 재처리시설, 원자로 등 핵무기 개발 단지를 만든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인 벤 구리온 수상은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나 골다 메이어(뒤에 수상 역임) 등 반대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4: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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