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나라 이스라엘의 근대화와 국민 上(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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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의 나라 이스라엘 軍隊와 국민(상) - 한국-이스라엘 급속 접근의 內幕
  
  「북한-이란의 核무기·미사일 공동개발」에 대응, 「한국-이스라엘 공조체제」형성… 安企部-모사드 협력 강화중
  
  이스라엘 장교들은 전장에서 「돌격」대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한다.
  ● 허례와 형식을 배격하고 철저한 정신 무장과 전투능력 중심으로 군대 운영
  ● 18세에 징집, 40대에 참모총장, 소년병처럼 젊은 군대
  ● 전쟁은 적국 영토에서... 선제 공격 위해 공군. 정보부대. 기갑부대 중점 육성
  ● 17만 현역에 43만 동원예비역... 40대까지 1년에 한달 이상 현역소집근무
  ● 군대 가게 해달라고 소송도... 장애자도 지원하는 사회 분위기
  
  <1995년 7월 월간조선>
  
   20세기 세계史의 2大 MVP
  
  나중에 역사학자들은 20세기의 세계사를 놓고 국가별 성적표를 매길 때 MVP(최우수 선수상)를 어느 나라에 줄 것이냐로 상당히 고민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인가, 이스라엘인가. 20세기 1백년 사이에 국가건설-경제발전-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唯二한 국가. 그 3관왕을 이 두 나라는 전쟁과 테러의 나날들 속에서 성취했으니 국민들은 모두가 영웅이다. 유태인과 한국인은 원래 군사적인 전통에서 매우 취약한 민족이었다. 유태인은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별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순한 양떼처럼 숱한 학살을 당했다. 한국도 文官중심의 문약한 정치문화에 안주하다가 통일신라 이후 1천3백여 년간 군대가 단 한 번도 외침에 당면하여 국민들을 지켜내지 못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 국민들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强軍을 가지고 국가를 지켜내고 있다. 그들은 머리 좋은 민족이 국가생존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세계를 향해 증언하고 있다. 다만 한가지, 한국은 이스라엘에게 20세기의 MVP를 넘겨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경제력에선 북한을 수십대 1로 압도하면서도 국방을 외국군대의 주둔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지도부가 그것의 문제점 조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기자가 자주국방의 나라 이스라엘을 찾기로 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12시간 직항로로 텔아비브에 도착
  
  이슬람 테러조직의 고정표적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길은 김포공항에서부터 살벌했다. 1995년 5월23일 오전 대한항공은 처음으로 텔아비브행 직항 전세기 편을 띄우려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체크 인 카운터로 접근하기 전에 벌써 짐 검사가 한 번 있었다. 짐과 기자의 양복엔 빨간 딱지가 붙여졌다. 수용소행 유태인임을 알리는 다윗별의 표시가 연상되었다. 출국장으로 들어갈 때도 빨간 딱지 승객은 별도의 검색과정을 거치도록 하여 엄격한 짐·몸수색을 했다. 탑승구에서도 한 번 더. 『지금 들고 있는 짐은 보인 것입니까. 누가 맡긴 겁니까』 보안요원의 이런 질문은 앞으로도 여러 번 되풀이 들어야 할 말이었다. 승객도 모르는 사이에 폭발물이 짐 속에 들어가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이런 검색 끝에 점보기에 올라 창가자리에 앉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오전 10시에 이륙한 점보기는 「몽고의 길」을 떠나 서쪽으로 날아갔다. 점보기는 서울-상해-북경-고비사막-천산산맥-카자흐스탄-카스피海 횡단-터키 북부 횡단-지중해-텔아비브코스로 날았다. 창가에 앉아 내려다 본 지상의 경치는 황토색과 적갈색, 그리고 白雪이 주류였다. 사막과 황무지, 그리고 엄청난 산맥으로 연결된 이 길은 한 때 몽고기마 군단이 西進하면서 문명과 도시의 국가를 쓸어버린 진격로였다. 옛 소련의 붕괴 이후 힘의 공백지대가 되어 통행의 자유가 확대되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과 인도대륙을 북쪽에서 활처럼 싸고 있는 형태의 유목민의 길 주변엔 지금도 몽고 문화의 자취가 깔려 있다. 이 활대의 손잡이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한반도이다. 일본을 빼면 최가의 몽고인종 국가인 한국이 이 몽고의 길, 그 시발점에 서서 이 동서양의 교통로를 민족에너지의 분출구, 또는 활동무대로 잘 이용한다면, 중국까지도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인 정치·경제·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에 젖어 보았다. 지금도 계속되는 아시아 역사의 주요한 흐름은 이 몽고 길 주변의 북방 유목민족과 중국·인도 등 내륙 농경민족 사이에 썰물과 밀물처럼 되풀이되었던 투쟁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피 속을 흐르는 유목민족의 아성을 이 황무지의 대륙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12시간 만에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 도착, 바닷가의 단 파노라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서울을 오전 10시에 출발했으나 텔아비브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이 오후 5시. 시차(時差)에 의한 피로를 별로 느끼지 않게 하는 대낮 비행이었다.
  
  「개판 5분 전」인 IDF
  
  기자가 취대대상으로 삼고 찾아온 막강 이스라엘 군대(IDF)는 그러나 「개판 5분 전」이었다. 텔아비브나 예루살렘 거리 등 이스라엘 어디를 가나 자주 눈에 띄는 사람들은 M-16소총을 거꾸로 메고 다니는 군인들이다. 인구 5백50만중에 17만이 현역이고 1년에 한달쯤 현역 복무를 하는 동원예비군까지 포함하면 60만이 군인인 나라이다. 가장 사회활동이 왕성한 연령층에 속하는 이들 60만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군사文化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거리를 돌아 다니는 군인들의 겉모양은 좀 과장하면 정규군이 아니라 산적떼 같다. 모자는 어깨에 꿰차고 다니고 바지는 줄이 안 서 있으며 여자 사병은 선글라스 끼고 초소 근무중에도 담배를 태운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 입구에서 순찰중이던 사병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더니 동료 병사들까지 다 불러모아 함께 찍는데 꼭 소풍 나온 유쾌한 청소년 같았다. 死海 입구의 도로 검문소를 지나는데 한 초병은 긴 벤치에다가 온갖 음식물을 늘어놓고 라면 비슷한 것을 끓여서 먹고 있다가 어서 가라고 손짓만 하고 있었다.
  
  텔아비브 근교의 탱크박물관에 찾아간 날 마침 그곳 연병장에선 기갑부대 소속 신병훈련 수료식의 예행연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녀 혼성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스크림 사들고 돌아다니는 친구가 없나, 아무데서나 쉬하는 친구가 없나…. 나를 안내해 간 오프라 여사(그녀도 기갑사단 교관 출신의 40세 여행가이드)는 『사진을 찍어라』고 부추겼다. 미안하게 셔터를 누르자 오프라 여사는 『앞에서 안 찍는 것만 해도 봐주는 거지 뭐』라고 중얼거렸다. 이스라엘 군대는 주말이면 외박을 많이 보내준다. 군인들은 소총과 실탄을 갖고 집으로 간다. 「개판 5분 전」으로 보이는 군대이니 총기사고가 당연히 많이 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발 사고나 총기에 의한 범죄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들은 더구나 휴가 중에라도 테리리스트들의 현장범행을 발견하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정당방위적인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고 있다. 이런 권한 위임은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격술과 판단력, 그리고 도덕성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땐 당치도 않은 일이다.
  
   형식주의 배격, 철저한 훈련
  
  駐이스라엘 한국대사관 박동순(朴東淳)대사(60)를 만났더니 첫 마디가 『이스라엘 군인들 복장 보고 놀랐지요』였다. 박대사는 『바로 그런 점이 이스라엘 군대의 강점이다』고 했다. 형식주의를 배격한 바탕 위에서 철저한 훈련을 시키니 전투력은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훈련의 강도는 한국군보다도 더 세다는 견해였다. 기자의 이스라엘 체제중에 취재 스케줄을 짜주고 안내를 맡아주었던 알론 기보니氏(이스라엘 방위산업체 RAFAEL 한국지사장)는 공군 소령 출신으로서 1973년 10월전쟁 때는 스카이호크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 주로 골란 고원에서 시리아 탱크를 공격했다는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 장교들은 전투개시 때 「돌격!」이라고 호령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지휘관들은 「알하라이!」라고 외칩니다』
  
  「알하라이!」는 「나를 따르라」(Follow me!)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장교들은 대대장까지도 전투에서 앞장을 서 사상률이 유달리 높다고 한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전사자의 24%가 장교였다. 이스라엘 군대에는 사관학교가 없다. 모든 장교들은 사병에서 선발된다. 실전 경험이 없으면 아무리 상급자라도 부하통솔이 어렵다는 게 이들의 확신이다. 장교와 사병 사이의 인간적 차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먹는 것과 자는 곳의 시설은 꼭 같도록 규정된다. 장교식당 같은 건 없다.
  
   18~20세의 소년병 같은 군대
  
  기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너무 어리고 앳돼 보이는 데 놀랐다. 꼭 천진난만한 소년병 같았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경계심은 전혀 보이지 않고 구김살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군대는 18세에 징집되기 때문이다. 고교졸업 즉시 군대에 들어간다. 남자는 의무복무기간이 3년, 여자는 2년이다. 여자는 결혼하면 군 면제다. 여자군인의 근무부서는 非전투부서로 제한된다. 기자는 소아마비에 걸렸던 것 같은 여자사병이 다리를 절며 가는 것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았더니 신체장애자라도 지원하면 행정부문에서 근무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런 지원자 중에는 가족 중에 전사자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이니 군대 기피는 사회적 자살행위다. 박동순 대사는 『사병으로 복무중인 아들이 장교시험에서 탈락한 것을, 우리의 대학시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낙담하는가 하면 징집 탈락자들이 왜 군대 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들이 가끔 있다』고 전했다.
  
  사람이 가장 순수한 용기에 불탈 때인 18~20세의 연령층을 군대에 집어넣어 2~3년간 조국이란 용광로에서 한 덩어리로 녹아들게 만드는 IDF(Israel Defense Forces)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Peoples' Army」라고 즐겨 부른다. 직역하면 인민군(人民軍)이다. 용병도 직업군인도 아닌 국민 속에서 나와서 국민으로 돌아가는 군대란 의미의 인민군이다. 지금 수상 라빈은 1967년 6일전쟁 때 참모총장이었다(이스라엘은 육.해.공군은 있지만 작전은 통합군제로 하므로 3군을 통괄하는 참모총장은 한 명, 각 군엔 사령관이 있다). 그는 6일전쟁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사들은 무기가 우세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 사명감, 임무에 대한 정당성의 확신, 조국을 향한 깊은 애정,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유태인들이 이 나라에서 자유롭게 독립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결의에 의해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군대는 인민으로부터 왔고 늘 인민으로 돌아간다>
  
  IDF의 정예부대로 유명한 골라니(Golani) 보병여단의 기록에는 6일전쟁 때 규정위반을 한 사병에게 「전투참여 금지」란 벌을 내렸다고 적혀 있다. 이 사병은 대대장 앞에서 눈물로 호소하여 겨우 그 치욕적인 벌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언론인 이도 조셉 디센트쉭氏(56)는 유력 일간지 마리브紙(MAARV)의 주필로 있다가 최근엔 언론상담회사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는 내년에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국제언론 단체 IPI연례총회의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렸던 IPI총회에도 참석했던 이도氏는 50代의 나이에도 예비군으로서 매년 현업 부서에 소집돼 간다고 한다. 동원예비군으로서의 의무복무기한은 40代에 다 채웠으나 예비군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자원했다는 것이다. 예비군에 지원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의 근무 부서는 국방부 홍보실이다. 이 고참 언론인은 아마도 새파란 젊은 장교의 지시를 받으며 일할 것이다.
  
  父子가 같이 근무하는 군대
  
  이스라엘은 적은 人口로써 자주국방을 담당하는 방법으로 거의 현역수준에 육박하는 43만 명의 동원예비군을 유지하고 있다. 1년에 30~45일간 동원되는데 우리나라처럼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현역과 꼭 같이 복무를 한다. 父子 사이처럼 보일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은 사병들이 함께 초소를 지키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1973년 10월전쟁 때 골란고원을 기습한 시리아의 5개사단을 막아낸 주력은 1천1백명의 18세 초년병으로 구성된 골라니 보병여단과 2개 기갑여단, 그리고 하루 늦게 전선에 도착한 아버지 뻘 되는 동원예비군이었다. 그야말로 父子군대였던 것이다. 동원예비군은 평생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게 되므로 부대원들은 한 가족같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생활에서도 서로 협조, 교류함으로써 기자가 느낀 이스라엘 사회의 독특한 분위기-격식이 없어 모두가 형님 동생 사이 같은-를 연출하기도 하며 계층 간의 융합에도 일조를 한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인종적으로는 아랍인과 비슷하여 유태인 여자들도 아랍여인 못지 않게 미인들이다. 몸집은 크지 않고 날렵한데다가 거의가 군대 경험자들이라 걸음걸이와 자세는 활달하다. 그것이 거리풍경을 한결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취업률도 높다.
  
   남자답고 여자다운 이스라엘 여군
  
  이스라엘에서 갖게 된 두 가지 여성像은 女軍과 「주이시 마더」(Jewish mother)이다. 뭔가 줄 것이 없나 해서 안달인 유태인 어머니들. 그들 중의 한 여성 오프라 여사는 이번 취재여행중 기자가 만난 유태인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외국인 상대의 관광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기갑사단 교관 출신의 오프라 여사는 네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했다. 이틀간 그녀가 모는 벤(Van)을 타고 예루살렘, 나자렛, 갈릴리 호수와 골란고원을 돌아다녔다. 운전하면서도 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스라엘의 풍요로운 자연과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대해 웅변에 가까운 해설을 쉴새없이 쏟아내는데 그 고급영어의 교양과 재치뿐 아니라 그 해설에 담겨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국토와 역사에 대한 긍지와 사랑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어오는 것이었다.
  『저 병원은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제가 자란 키부츠가 있답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창립하셨지요』
  『저 언덕에선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닌 전투가 벌어졌지요.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 군대가 사자왕 리차드의 십자군을 격파함으로써 중동이 그 뒤 1천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기에 아직 불타버린 채로 버려져 있는 차량들은 독립전쟁 때 고립된 예루살렘을 구출하기 위해 活路를 개척하려고 했던 우리 부대가 아랍군의 매복에 걸려 전멸되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 자리에 둔 것이에요』
  『저 水路는 요르단江 물을 남쪽으로 나르는 것인데 시리아 軍은 골란고원에다가 대
  포를 갖다놓고 수시로 수도파이프를 때렸답니다』
  
  그의 운전솜씨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예수의 성장시 나자렛의 그 좁고 붐비던 뒷골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데 감탄을 연발하자 오프라 여사는 즐거운 기성을 질렀다. 『아이 필 마이 카!』(I feel my car!)「나는 내 차를 내 몸처럼 느낀답니다」란 뜻이겠는데 그녀의 악수하는 손은 억세고 성격은 급하며 행동은 빨랐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묘하게 조화시킨 이스라엘 여성, 오프라 자신이 바로 신생국가 이스라엘 역사의 한 구현자란 느낌이 들었다. 이스라엘 취재를 끝내고 김포공항에 돌아와 모범 택시를 탔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고속도로를 시나이 사막 탱크전장으로 착각한 듯 무섭게 달리고 빵빵거리며 추월하는 이스라엘의 군사문화적 교통문화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도 운전을 하는 기보니 氏는
  『이스라엘에서 운전하기가 더 겁난다. 한국 운전자들은 양보심이 있는데 우리는 그게 없다. 그러나 운전기술은 우리가 좀 낫다』고 비교했다. 이스라엘은 여섯 번의 전쟁을 치렀다. 독립전쟁, 1956년 수에즈 전쟁, 67년 6일전쟁, 67∼70년의 지구전(War of Attrition), 73년 10월전쟁, 82년 레바논 전쟁, 이 전쟁 사이사이의 국지전과 지금도 계속되는 테러로 사망한 사람까지 합쳐서 약 2만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이스라엘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약1백50만대, 94년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5백28명·부상자는 3만5천5백 여명). 유태인들은 천성적으로 한국인들처럼 조급한 편인데 전쟁과 더불어 살면서 병영화된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려다보니 더욱 조급해져 난폭운전으로 흐른 게 아닐지 모르겠다.
  
  이스라엘의 군사력
  
  
  이스라엘의 육군·공군은 고도로 무장돼 있다. 주력 무기의 수는
  현역군 규모에서 4배쯤 많은 한국군과 맞먹을 정도이다. 이는
  기동성의 확보가 승패의 결정적 요인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조직한
  군대이기 때문이다.
  
   강한 공군과 조기경보 능력이 핵심
  
  지난해 레바논 국경지대나 가자지역 등에서 작전 중 피살된 이스라엘 군인 숫자는 37명이었다. 일반시민 희생자까지 포함하면 66명이다. 이스라엘 군대(경찰군 포함)가 죽인 팔레스타인 사람은 1백14명, 이스라엘 민간인 손에 죽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38명이다. 한편 이스라엘 군대 내에서 사고로 죽은 군인은 작년 한해에 25명, 자살자는 43명이었다. 합계68명. 약 네``배 규모의 현역군을 가진 한국군에서 매년 사고로 죽는 군인들이 3백 여명, 세계 최고의 군대라는 이스라엘 군대의 사고율과 비슷한 수준이니 우리군대사고에 대해서 너무 과민할 필요가 없겠다. 지난 50년간 이러한 전쟁의 생활화 속에서 이스라엘을 지켜온 IDF는 앞에 잠깐 소개했듯이 그 구조나 전략개념, 무기체계가 독창적이다. 소련식도, 미국식도 아닌 이스라엘식이다. 압도적인 인력과 무기를 가진 사방의 적과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군대를 만들 것인가 하고 머리 좋은 민족이 IQ를 총집결한 결과물이 IDF이므로 여기엔 분명 배울 점과 참고점이 있을 것이다.
  
  ● 전쟁억지와 초전 박살
  좁은 국토를 전장으로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전장을 적국 영토 내에 펼쳐야 한다. 조기경보에 따른 선제공격이 필수적이다. 이스라엘의 국력으로 볼 때 장기전은 불리하다. 따라서 뛰어난 정보수집능력, 강력한 공군과 기갑부대 그리고 신속한 동원예비군이 등장하게 된다. 이란 물리학의 공식은 이스라엘 전략의 기본이다. 전투력(F)은 무장력(M)이 가진 속도(V)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속도가 전쟁승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다. 군사조직에서 속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단·편대·함대의 이동속도일분 아니라 국가의 대응속도가 더 핵심이다. 적이 전쟁기도를 빨리 파악한 뒤 국가를 총동원 체제로 신속히 전환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정보수집·판단능력이 속도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은 군대로 갔고, 그들 중에서도 최고의 人材가 공군과 정보조직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2大조직이 있다면 공군과 모사드(해외담당 정보기관)일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군을 「또 다른 군대」라고 했다. 공군에 대한 특별대우를 모두가 양해하고 있었다.
  
  공군과 정보능력의 강화는 人名손실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6일 전쟁(67년)과 걸프戰(91년)은 본질적으로 공군이 결정적 역할을 한 전쟁이었다. 승자 쪽의 사상률이 가장 낮은 전쟁이기도 했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거의 비슷한 전략 환경 하에 있다. 수도권이 군사분계선에서 가깝다는 점, 국토가 좁다는 점, 특히 소련 식 무기체제와 군대(시리아와 북한)를 상대하고 있다는 점, 人名 손실의 최소화를 목표로 한 전쟁개념의 필요성, 조기 경보체제의 死活的 중요성이 그것들이다. 최근 한국정부의 지도부에선 이스라엘과 한국이 처한 安保환경상의 이러한 유사성에 착안하여 이스라엘 자주국방의 노하우를 연구·참고·도입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4: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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