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육성증언 下(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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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金泳三 총재는 야당 지도자 시절에도 돈을 잘 만드는 사람으로 꼽혔다. 그러나 그 돈을 私用하는 편이라기보다는 나눠주는 편에 속해 오히려 「깨끗한 정치인」으로 불린 점도 특이하다. 한국적 현실에선 정치자금을 모을 때의 도덕성보다는 나눠주는 방식의 도덕성에 의하여 평가되는 예가 많았기 때문이다. 金泳三 총재는 돈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돈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 있는데 사람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그 누구야, 박건석 회장. 그런 사람이 뭐 그런 케이스 중 하나지만 그런 많은 돈을 가지고 우찌 한다는 거야. 가지고 갈 거요. 뭣 때문에 그런 돈이 필요하냐 말이오. 불쌍한 사람들이오』
  
  -그러니까 인간의 불행이라는 게 적게 가져서 불행이 아니라 많이 가져서 불행이군요.
  『그렇지요. 인간이 이거 참 우리가 이거 태어날 때 모든 애기들이 손을 탁 쥐고 빈손으로 오면서도 말이요, 울면서 태어나는데, 그것도 죽을 때 손을 쥐고 죽는 사람은 없지요. 손을 다 벌리고, 나 아무 것도 없이 간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것을… 오늘 신문은 좀 봤습니까』
  
  =金泳三의 자신만만
  
  金泳三 육성녹음 테이프의 마지막은 온통 고문 이야기로 가득하다. 1987년 5월 말, 朴鍾哲 고문치사 사건수사가 축소.조작되었다는 폭로가 터진 이후에 나눈 대화이기 때문이다. 1987년 들어서 계속 수세로 몰리기만 하던 金총재와 야권은 국민들의 분노를 등에 업고 全斗煥 정권에 대한 일대 반격으로 나온다. 정국(政局)의 주도권은 야당과 재야세력으로 넘어갔다. 이 마지막 녹음 대화에서는 그런 자신감이 물씬 풍긴다.
  
   朴鍾哲 고문사건 축소 은폐 정보는 나한테 먼저 들어왔다
  
  -朴鍾哲 고문사건수사의 축소.은폐는 거제에 가셔서 아셨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이것이 말입니다. 우리가 그 민주당이 5월1일 창당이 되고 나서 그게 얼마 후엔지 모르겠는데, 며칠 후에요. 상당히 정확한 정보라고 누가 나한테 와서 말했어요. 이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그 사람 이야기로는 이(고문경찰관) 두 사람이 지금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 또 한 사람이 더 있어서 모두 세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우리한테는 언제나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데 그 정보를 전부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은밀히 조사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가 뭐 정당이라는 게 일반 신부나 목사와 달라야 한다, 분노나 하고 말이야, 이렇게 하는 거는 아니다. 우리 민주당이 창당되어 아주 중요한 시점에 와 있고, 우리가 국민들 앞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가 분명하게 되어져야 한다.
  
  그런데요. 전에 정부가 실수한 것처럼 김일성이가 안죽었는데 죽었다고 발표하는 것. 그 정보기관이 엄청나게 많으면서 그 그리 큰 실수를 하고 세계의 망신거리가 되고. 이 우리 민주당이 창당되자마자 이 중대한 문제를 무슨 증거 없이 발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래서 조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런데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얼마후에 발표가 됐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발표된 것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 나는 비서를 거기 보내놓고 있었는데, 정무위원회에서 내 비서가 그 성명서를 낭독케 했습니다. 내 느낌이 있어서 말이오. 이거 내 감이 잡히는 일이 있다, 그냥 놔 두면 안된다, 우리가 이 정의구현사제단의 뒷받침을 해줘야겠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이거 우리가 조사단을 구성하자 이런 겁니다. 우리 대변인이 이렇게 발표를 하니까, 그때 처음으로 민주당이 이런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까지 이름까지 나오니까 일단으로 그게 신문에 나오고 이게 왜 만들어졌다는 말을 해야되니까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도 또 일단으로 조그맣게 나왔습니다. 처음으로 신문에 났습니다. 결국 이 정권이 발표를 안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갔다, 이렇게 봐집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앞으로 국정 조사단 구성이 안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런데 지금 현재 몇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거제에서 이 정권이 스스로 퇴진해야 될 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우선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해라, 그리고 내각이 다 사퇴하고 그러고 치안본부장, 최소한 검찰총장은 구속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시간을 며칠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사과는 커녕 그냥 하는 소리가 말이야, 자기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말이야, 무슨 엄중 조사하라 이런 소리가 나오니까 우리가 오늘 그런 결의문을 낸 겝니다』
  
  -언젠가는 (盧泰愚 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6.10 전당 대회도 당장 취소하라는 그런 성명도 한 번 낼 필요가 있겠네요.
  『그렇지요. 정치일정을 취소하라는 것이죠. 10일 즈그가 한다는 그것도 취소하라 그 말이죠』
  
  -그러니까 초상집에 잔치판 벌리겠다는 것은 국민 감정이 용납 안하는 거지요.
  『그렇지』
  
  -고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金총재님은 수사기관에서 맞은 일은 없습니까.
  『수사기관에서는 그런 일은 없고요, 전에 날로 그 총재직에 나가지 말라고요. 중앙정보부에서 한 이틀 밤 정도? 한 사흘밤 정도 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그냥 이런 방에 갔다 놓는 거에요. 즈그 집무실에. 그때는 뭐냐면 나보고 총재에 나가지 말라는 거에요』
  
  -그러면 1974년 처음 나왔을 때입니까.
  『74년인가, 예, 맞아요』
  
  -잠은, 잠자는 건 막지 않았지요.
  『그럼 저녁에 이제 잔다고 의자에 있는 거지만 말이야, 자꾸 즈그는 바꿔가지고 이 사람이 들어와서 말하고 말이야. 느그 말하든지 난 말 안하겠다고 얼마든지 하라고 말이야. 그대 사흘 밤을 있은 일이 있어요』
  
  -그런데 고문하는 인간은 강한 인간이 아니라 저는 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이론으로 맞선다든지 하면 고문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고문이란 방법으로 항거 불능상태에 인간을 갖다 놓고 가혹행위를 하는 건데, 고문한 사람은 처벌할 때 어떤 방법으로 처벌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문한 사람에겐 고문이 제일 좋은 처벌인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으니까 고문하는 로봇을 만들어서 고문하도록 해야 한다는 농담도 합니다.
  『고문했다는 둥 당했다는 둥 하는 사람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정권의 피해자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한 사람 때문에 이런 거 아닙니까?』
  
   에필로그-이 위대한 변전(變轉)!
  
  이날 대화는 고문으로 시종했다. 金총재는 『(사과하라는) 시간을 며칠 주었는데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사과는 커녕 하는 소리가 말이야…』라고 하면서 『나는 박종철군 사건으로 해서 이 정권이 망한다고 봐요』라고 단정했다. 초라한 사무실에서 그는 이미 全斗煥 정권을 타고 누르는 듯한 기세로 호기를 부리고 있었다. 이 호기는 그러나 호기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 한 달 뒤 6.29 선언을 끌어내는 6월 사태의 가장 중요한 리더십이 되었다.
  
  이 인터뷰 20일 전에 金泳三 총재는 좁디좁은 흥사단 사무실을 빌어 통일민주당 창당 대회를 열면서 『지금 이 정권은 한 치의 땅도 우리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머지 않아 우리는 대한민국 전체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고 큰소리쳤다. 그 큰소리는 그 5년 뒤에 현실로 되었으므로 허언(虛言)이 아니라 대예언이 되었다. 「자신의 운명에 엄청난 확신을 가진 인간」金泳三은 朴正熙 정권의 붕괴와 全斗煥 정권의 (對국민)항복을 이끌어낸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이런 「파괴력」은 지난해에는 北韓으로 지향돼 金日成의 생명을 단축시켰다는 해석도 있다(金日成이 급사(急死)한 이유는 金泳三 대통령과의 頂上회담을 앞두고 너무 그 준비에 신경을 쓰다가 심장마비가 온 때문이란 說이 유력하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과 역사와 시대는 金泳三 대통령이 타고난 이 파괴력을 적기(適期)에, 또 적소(適所)에 절묘하게 이용함으로써 우리 국가가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장애물을 정리하도록 그를 잘 부린 셈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의 이 창조적 파괴력은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와 非능률적 관리체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지향되었다. 부정과 不義를 도전자 입장에서 파괴하려는 것과 관리자 입장에서 파괴하는 데서는 그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필요한 것은 급소를 찌르는 수비가 아니라 명의(名醫)의 칼처럼 환부(患部)만을 도려내는 고도의 파괴工法인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金대통령의 역사적 특기인 파괴술은 요사이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8년 前의 수십 시간분 녹음테이프를 다시 들으면서 기자는 야당 지도자 시절의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분이면서도 선량하게만 느껴지던 金泳三 총재와 오랜 대화를 갖는 기분에 젖어 들었다. 당시의 질문과 응답은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독재정권과 맞서는 동지들 사이의 의기투합한 대화에 더 가까웠다. 그 뒤 8년 金泳三 대통령은 지금 그가 그때 그토록 미워했던 全斗煥 당시 대통령을 5.18 관련 처벌요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면서, 때로는 시위 학생들을 향하여 최루탄을 쏘도록 하고 있다.
  
  불과 8년 사이의 이 엄청난 變轉! 이것이야말로 한국 現代史의 위대한 드라마가 아닌가. 8년 전의 적과 동지가 자리를 서로 바꿔가면서도,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다는 것, 그런 급변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올해에도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팽창하는 풍선처럼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것, 8년 前의 가장 절박한 주제였던 「고문」은 이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것…. 한국 현대사에 8년이란 눈금을 갖다 댔을 때, 거기서 보이는 것은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장대한 그림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4: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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