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육성증언 下(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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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우리 차지가 된다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 창당 대회를 마친 金泳三 총재는 1980년 봄 이후 처음으로 야당 총재 자격(당시는 의원직을 갖고 있지 않았다)으로 국회에 나갔다. 이 무렵에 金총재를 만났더니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한 치의 땅을 안내주려고 하지만 곧 대한민국 전체를 우리가 차지할 것이다』
  
  -국회에는 가시면 오래 안 계시고 바로 오시대요.
  『이것들이 내 모양을 좀 우습게 만들기 위해서 국회에 내 사무실을 안만들어 놓고 있어요. 오늘도 사실은 국회 질문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서 녹음을 좀 듣고 방송을 듣고 그때그때 필요한 의원들도 불러서 얘기도 좀 듣고 해야 되는데 내 방이 없으니까 원내총무실에 가 앉아 있기도 뭐하고. 여하튼 이것들이 나를 우습게 만들려고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안 갔어요』
  
  -노신영(盧信永) 총리는 金총재님이 거기 계시면 인사를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고 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것 읽어보면서 정치인들끼리 인사하는 것도 적군과 대화하는 것처럼 어렵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국회 건물에 들어가 보신 것도 80년 이후에 처음이죠.
  『그래 요전에 김녹영씨 장례식 때 국회 앞에 가 본 것 이외에는 제명 당한 이후에는 국회 건물 안에 제대로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죠』
  
  -예전의 5.30(1979년) 전당대회 때하고 이번의 창당대회는 느낌이 많이 다르죠.
  『창당대회는 언제나 그렇지만 강당에 몇천명이 모여서 하는 것 아닙니까. 비좁은 곳에 많은 사람이 모이니 당기(黨旗) 하나 제대로 못흔드는 형편이라 참 마음이 아픕디다. 합법적인 정당을 만드는 데 지구당 개편대회 대회장에 깡패가 들어와서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고 그것도 부족해서 창당대회 장소를 못얻고 아마 세계 역사에 두 개의 강당, 식당, 화실 네 개의 방을 빌려서 창당대회 한 경우는 없을 거에요』
  
  -즉석으로 하신 말씀 중에서 「한치의 땅도 저 사람들이 안 내주려 하는데 우리가 곧 대한민국 전체를 차지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미리 준비해 가셔서 한 말씀입니까.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죠. 자주 한 말은 아니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지금까지 듣던 얘기 중에 제일 감동적이었다고 그러대요』
  
  -민정당이 처음에는 통일민주당을 제2당으로 대우하지 않겠다고 발끈하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 누그러지고 지금은 조용한 것 같은데 일종의 추파를 던지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저 사람들이 인정하고 안하고 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거지요』
  
  -사실 대화를 끊임없이 강조하시는데요. 실제 대화를 하면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 보십니까.
  『그 문제는 반반이라고 봐요. 그러나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가장 노력해야 할 부분 중에 하나겠죠. 그게 저 사람들이 제일 괴로워 하는 것일 겁니다. 나는 金大中씨하고 의논이라도 하고 싶은데요. 그런데 제가 이제 총재까지 돼가지고 만나자고 나오니 저 사람들이 죽을 지경이지요. 지가 감히 내가 총재가 될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어요?』
  
  -현 정부를 약하게 보십니까.
  『약하게 본다기보다는 국민의 지지가 전혀 없다고 봐요. 국민의 지지뿐 아니라 공무원들의 지지도 없다고 봐요』
  
  『가까운 사람이 되어도 정치보복 막기 어렵다』
  
  -창당 강령에 대통령 직선제를 못박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민정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못받아들이겠다고 선언을 해버렸고 민주당도 직선제를 강령에까지 못박아버렸으니까 대화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좁아져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 점이 있죠. 언론이들 가운데도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부분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돼요』
  
  -그렇다면 실제 대화도 상당히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 정권이 절대 보복만 없다는 확신만 가진다면, 물론 그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나를 믿도록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저 사람들이 대통령 직선제에 응할 거라고 봐요. 지금 현재 민주당이 대통령 직선제를 포기하면 더 나아가서 모든 걸 포기하는 게 될 것이에요. 우리가 신민당을 내버리게 된 동기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저쪽이 (정권교체) 이후에 보복이 없을 것이다, 절대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만 갖는다면 무엇이든지 받는다고 봐요.
  그런데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자기 가까운 사람이 대통령 된다고 해서 자기를 감싸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에요. 모든 국민이 역적이라고 때려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막아 줄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보복은 정권의 종말이 오늘 내일 하는 말기적인 입장에서는 두려운 것이겠지만 정권을 지금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지 않겠습니까.
  『全斗煥이가 그만둔다, 그만둔다하는 것을 너무 강조해버려서 그만두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어요. 지금 그 시한이라는 게 불과 10개월 짧아지고 짧아지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보복이 제일 두려운 거죠』
  
  -盧泰愚씨가 나중에 회고록 쓸 때 밝히겠다고 하면서 야권의 어떤 사람이 내각제를 받아들이기로 약속해놓고 안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는데 혹시 그 사람이 金총재님이 아니냐 하는 얘기도 있는데요.
  『김대중씨는 죽자고 직선제를 주장하니까 나는 성격상 여유도 있고 의회주의자니까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런 희망사항이 섞인 것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이 나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요. 직접 만난 적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느끼는 것은 나한테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잘못된 거지요. 나는 원칙에 벗어난 짓 안합니다. 또 불의하고 타협 안합니다』
  
  -해방 후 시제 세력을 가지고 독재정권에 도전한 야당 지도자는 신익희(申翼熙), 조병옥(趙炳玉), 장면(張勉), 윤보선(尹潽善), 유진산(柳珍山) 그리고 그 다음에 총재님과 金大中씨 정도겠죠.
  『柳珍山씨는 그 대열에 어울린다고 볼 수 없죠』
  
  -네, 그 분은 당권에는 도전했지만 정권에는 도전했다고 볼 수 없겠죠. 그런데 나머지 분들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영향력을 미친 시기는 한 5년에서 7, 8년 정도인데요, 金총재님과 金大中씨 같은 경우는 한 20년 동안을 야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야권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오래 야권 지도자를 했다고 의식하지는 못했는데…. 오랜 시간을 갇혀 있었잖아요. 제일 중요한 것은 불굴의 의지, 용기, 그리고 민주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확신, 신념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페어 플레이로 승부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 탄압만 해와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솔직한 얘기로 다른 사람들은 굴복해버린 것 아닙니까. 기회는 주지 않는데 굴복도 하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죠』
  
  金泳三 대통령은 대화에서 「巨山」「大道無文」「확실히」「강력하게」같은 巨. 大, .强으로 대표되는 힘의 상징어를 매우 즐겨 사용한다. 그의 당당한 몸가짐과 아울러 고려해보면 金대통령은 늘 남자답게 보이려 하고 약하게 보이는 것을 매우 꺼리며 특히 「굴복」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87년 4월28일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 그런 면을 보여준다. 『나는 대원칙에 의해서 가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렵게 막힌 것처럼 보일 때 위기를 피하려고 해서 오솔길로 따라가는 수가 있어요. 오솔길로 가면 그 길이 막힙니다. 오솔길이 계속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려울 때는 大道로 당당히 갈 때 문이 열린다고 봅니다』
  
  -그것은 山行에서도 경험하십니까?
  『예. 물론 돌아서도 가고 그러지요. 그런데 큰 일을 치르고 이러는데, 속담에 그런 게 있지요. 곰이 미련해 가지고 바위 때문에 앞이 탁 막혔는데 들이 받았다. 「왜 이래? 나한테 이기는 놈도 있나?」 또 탁 받았다. 결국은 몇 차례 받는 동안에 곰이 죽었다고 하는 일화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게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미련한 게 아니고…』
  
  =서울 올림픽 문제
  
  金泳三 총재는 1987년 5월10일 통일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취임사를 통해 서울올림픽이 군사 정권하에서 치러진다면 나치에 이용당했던 베를린 올림픽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여 일부 인사들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연설 3일 전에 金총재와 만나 나눈 대화에서도 그는 先민주 後올림픽을 강조했다. 재미있는 것은 全斗煥 대통령이 6월 사태 때 군을 동원 안한 이유 중의 하나가 서울올림픽이란 절호의 기회를 깨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최고의 안보』
  
  『나는 민주화 안하고 올림픽 한다는 게… 우리 올림픽이 잘 되어야지요. 얼마나 좋고 중요한 일인데요. 그런데 민주화 안하고 올림픽 하겠다는 것은 판단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한 다음에 올림픽을 하면 얼마나 멋있는 올림픽이 되겠어요. 세계가 찬양하는 올림픽이 될 거 아닙니까? 그때는 21세기 선진국에 진입하는 계기가 된다고 봐요』
  
  -분단국가에서의 올림픽은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지요.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지요. 왜 그것을 못하고, 잘못하면 지금 올림픽 깨져야 될 그런 입장까지 몰고 가느냐 말이에요. 솔직한 얘기로 우리 시대에 올림픽이 온다는 게 어려운 거 아니오』
  
  -정부는 남북회담을 가지고 이 국면을 타개하려는 것 같은데요.
  『나는 저 남북회담이 어렵다고 봅니다. 나는 이북에 공산체제가 존재하는 한 남한에 위협이 없다고는 생각 안해요. 그런데 이 정권이 朴正熙도 그랬지만 이북이 존재하는 이유 때문에 그것을 구실로 독재를 강화하고 있단 말이에요. 나는 그것을 용납 못합니다. 이북 공산주의 이길 수 있는 길은 민주주의 하는 길밖에 없다고… 절대 없다고 봐요. 그것이 최고의 안보방법이라고 보아요. 이것을 했을 때 민주주의가 되면 이북하고 관계가 아주 좋아진다고 봐요. 대화도 아주 충분히 잘된다고 봐요. 나는 지금은 대화가 어렵다고 봐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섰을 때 대화도 책임 있게 할 수 있고』
  (최근 공개된 金日成과 호네커 東獨 공산당 서기장과의 대화록에 따르면 金日成은 남한에서는 비록 反共的이라도 민간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군사독재정권보다는 유리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민간정부 下에서는 對北 군사위협이 줄 것이고 노동자와 농민의 발언권이 강화될 것이란 점에 기대를 건 때문이었다)
  
  『국민들을 올림픽의 노예로 만들려 한다』
  
  1987년 5월8일 인터뷰에서 金泳三 총재는 서울올림픽 관련 발언에 대해서 이렇게 해명했다.
  『이번에 독일 나치 때 했던 거기에 비유를 했는데 실질적으로 지금 현재 올림픽을 해서 잘된 일본 같은 나라가 있지만 제일 크게 망하고 그것 때문에 더 망한 나라가 독일하고 멕시코입니다. 만일 독일에 그때 올림픽이 없었다면, 히틀러가 그것을 관장했거든요. 개회 선언을 하고 그랬거든요. 히틀러가 그것을 통해서 국민을 독재로 끌고 가는 데 하나의 큰 결정적인 계기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에 그가 용기를 얻어 가지고 2차대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버렸거든요.
  그러니까 만일에 올림픽이 없었다고 하면 과연 히틀러가 꼭 2차대전을 일으켰겠느냐 이 자체가 의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런 속에서 올림픽만이 있는 것처럼 해 가지고 국민을 올림픽의 노예로 만들어 가지고 했을 때 예를 들어서 성공했다고 합시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과연 어디로 갈 거냐. 북한하고 전쟁하려 할는지도 모른다. 실제 그런 사태가 온다고 하면 진짜 걱정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좌익은 민주화되면 약화
  
  -그런데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만이 과연 우월한 체제냐 하는 데 대해서 좀 회의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민주화를 한다고 했을 때는 1백% 급진적인 세력이 없어진다고는 생각 안하지만 나는 거의 수용된다고 봐요』
  
  -그러면 이것은 이렇게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반체제하고 정말 공산주의자하고 뒤엉겨 가지고 구분이 안되는데 민주주의를 딱 하면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구별될 거 아닙니까?
  『딱 구별되지. 그때는 특정적인 사람, 셀 수 있는 정도의 숫자일 거에요』
  
  -아주 소수고 고립되겠지요.
  『그런데 이게 언제나 그런 게 있게 마련인데 스페인의 예를 들면 선거를 해 보니까 공산당이 완전히 참패했습니다. 결국 사회당이 집권했습니다마는 정상적인 선거를 해 가지고는 그들이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국민의 지지세력이 없거든요. 요전에 얘기했지만 요새 계속적으로 잠이 안 와요. 잠이 안 오기는 처음인데…』
  
  -의사하고는 얘기 안해 보셨습니까?
  『의사들하고 얘기해 볼까?』
  
  -조금 피로하신 거 같습니다. 낮에 어디 잠시 시간 내서 한 시간쯤 주무시지요. 만사 제쳐놓고 어디 가서 눈이라도 붙이시면 안 낫겠습니까. 커피는 안 마셔야 되겠습니다.
  『안 먹어요 쌩카 먹어요』
  
   柳珍山에 대한 유감
  
  -오늘 柳珍山씨 묘소에 안 가셨습니까?
  『오늘인가요?』
  
  -예.
  『갈 생각은 물론 없지요. 그 사람들이 가면 됐지. 이민우…』
  
  -그런데 한 때 金총재님을 柳珍山씨하고 가까웠던 분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솔직한 얘기로 柳珍山씨가 나한테 가까이 하려고 애를 썼지요. 우리집에도 툭 하면 찾아오고 그렇게 했지요. 나는 처음에는 柳珍山씨를 그렇게 안봤는데 가만히 보니까 문제입디다』
  
  -정치인으로 어떤 점아 가장 큰 문제였습니까?
  『진실이 없어요』
  
  -1970년에 柳珍山씨가 金총재를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을 때는 고맙게 생각 안하셨습니까?
  『그것도 그래요. 이 사람이 사실상 처음부터 그런 결심을 했으면 되고도 남았지요. 그냥 자기가 하기 위해서 굉장한 노력을 했습니다. 노력을 했는데 돈도 많이 쓰고,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그리고 엄청난 활동을 하고 그리고 특히 나한테 심한 말을 했지만, 대외적으로 구상유취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모욕적인 말을 하고요, 멸시하는 그런 말이지요. 그런데 제일 먼저 내가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니까 그 다음에 알아서 이철승씨 하고 김대중씨가 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이 점점 확산이 되어 가지고 우리 세 사람이 나중에 반대하면 절대 유진산씨가 표를 못얻게 되었어요. 유진산씨가 사실상 거기에서 후퇴를 안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전당대회 전날 오후 다섯시에 나를 지명했으니까요. 그 이튿날 아침 아홉시인가 열시에 전당대회인데 말이야. 그러니 판세가 다 짜여진 다음에, 또 물론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안된 것은 이철승씨가 나하고 각서조항까지 해 놓고 배신을 해. 김대중씨를 지지한다고. 나하고 각서까지 교환한거에요』
  
  -그러면 柳珍山씨가 그때 지명을 해 놓고 밑의 대의원들이나 이런 사람들한테는 金총재를 돕도록 시키지는 않았나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지요. 그 당시에 이민우라든지 중요 참모들이 솔직히 기분 나쁘다 이래 가지고 겉으로 하는 척했지만 적극적으로 안했지요』
  
  -실질적인 도움은 별로 못 받으셨네요.
  『그렇지요』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 쪽에서도 김대중씨보다는 김총재가 후보로 지명되는 것을 더 경계했습니까.
  『그렇지요. 영남 쪽의 지지만 받으면 제가 이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영남이라도 경상남도가 큰데 남도 표가 나한테 가 버리면 상당히 곤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전당대회는 생각하기 싫으시지요.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 있지』
  
  -柳珍山씨하고 趙炳玉씨는 비교할 상대가 못 됩니까.
  『비교할 인물들이 못되지요. 조병옥씨는 참 순진합니다. 또 진실합니다. 그 그릇이 크고요. 비교할 인물이 전혀 아닙니다. 유진산이란 사람이 죽자살자 야당총재 하겠다고 한다든가 이런 것은 꼭 이민우씨하고 닮았어요. 그래서 이민우가 거기서 배운 거에요. 그래서 이민우가 이상한 짓 할 때 아이구 저거 유진산이보다 더 나쁘다든가 이런 말을 했거든요』
  
  -柳珍山씨는 그 당시에 집권의지가 없었던 것 같은데.
  『없지요. 바로 그게 문제지요. 야당총재는 총재로 만족할 사람이 하면 안돼요. 정권에 도전할 사람이라야 돼요. 내가 작년에 독일에 가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야당총재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적인 입장이에요』
  
  -그런 점에서 하나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민주화라 하는 것은 쉽게 말한다면 야당 쪽에서 정권을 잡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결과는 그렇게 되겠지요. 지금 민주화라고 하면 군사독재정권의 종식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지금 이 사람들이 무슨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정권교체다 평화적인 정권교체다 하는데…. 내년 2월에 전두환이가 물러나면 그것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다 하는데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지요. 계속해서 군사독재 정권의 연속인데 민주화라고 할 수 없지요』
  
   『나는 金大中씨처럼 불출마 선언 안한다』
  
  -그리고 통일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야 된다….
  『예. 민주화의 적극적인 표현이라면 민주화의 궁극의 목적은 민정당이 야당이 되고 통일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거지요』
  
  -그것을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金총재나 金大中씨 두 분 중 한 분이 집권해야 한다는 뜻과 똑같은 말이겠네요.
  『그런 것도 될 수가 있지요』
  
  -그것을 일부러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그 자체는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요.
  『나는 솔직한 얘기로 김대중씨가,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사면복권 되더라도 대통령 직선제가 되면 나는 출마 안하겠다」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 정권이 그 비슷한 얘기를 내가 해 주기를 제일 바라고 있을 거에요. 그러면 저들이 별로 싸울 필요가 없어요. 우리 둘이만 손놔 버리면. 그런데 나는 이 정권이 원하는 대로 절대 안해요. 어떤 박해가 와도 안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면 쉽게 이해가 될 거 같은데요. 통일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꼭 내가 되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그때 대통령이라는 도구로서 쓰여지면 개인적으로는 좋겠다,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좋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다하지 않겠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4: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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