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육성증언 下(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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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문제에 대한 이야기
  
  金총재가 6.25때 현역복무를 했느냐 여부는 여러 번 쟁점이 되었다. 지금부터 듣게 되는 그의 육성 증언은 아마도 그 문제에 대한 가장 자세한 증언일 것이다.
  
   對北 생방송
  
  -그러면서, 저 1.4후퇴 때 서울에서 부산에 오신 거지요.
  
  『그래, 부산에 왔는데. 부산에 오니까, 국방부가 어느 학교에 있었어요. 정훈국이 어디 있었는가 하니 지금 시청 앞에, 옛날에 전매청이 있었어요. 부산 전매청이, 거기에 국방부 정훈국이 따로 있었어요. 거기에서 찾는다는 거에요. 이선근씨가 그때에 정훈국장인데, 그때 준장이 되어 있더라구요. 아무튼 아이구, 영삼이 왔느냐고 그러면서 그 「순학회」친구들끼리 의용군을 조직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때 몇 사람이 지금 기억나는 게, 아까 그 사람들이라. 손도심, 오표, 이런 사람들이 조직했는데, 거기에서 손도심이 대장이 되고….
  
  그때는 간단해요. 엉망진창입니다. 그리고 내가 선전국장인가 되고요. 학도의용군 안에, 딴 부서는 모르겠고, 국방부 정훈국 간판이 이쪽에 붙고, 학도의용군 본부가 됐는데 그때는 국방부 정훈국에 질서가 없을 땝니다. 그래서 내가 한 임무라는 것은, KBS가 저 대청동 옆으로 올라가 산에 있었어요. 거기에서 저녁 때 5시에서 6시 하루 한 시간 국방부 정훈국 프로가 있습니다. 매일 對 이북 방송하는 겁니다』
  
  -생방송이지요.
  『생방송이지요. 그때는 녹음도 없고요. 기침을 해도 할 수 없도, 뭐 이런 거지요. 그런데, 연설 조금 하고, 음악 하나 듣고 뭐 군가 같은 거 듣고, 노래 하나 듣고 이러다가 딱 끝나고, 얘기 다시 시작하니 말이야. 이렇게 하는 프로가 있었어요. 한 시간 하는 프로인가, 삼십분 하는 프로인가 그걸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게 있었는데, 그것을 내가 마음대로 쓰는 甄求?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데요. 쓰는 게요. 그것이 내 하는 이이었어요』
  
   군복을 입되 정식군인은 아니고
  
  -지시는 누구한테서 받았습니까.
  『정훈국장한테 받는 거지요. 그런데 딴 사람들보다 우리는 학교 선생이라는 이것 때문에요. 뭐 좀 무책임할 정도로 드나들지요. 우리는 그 당시에 군복은 입되, 정식 군인은 아닙니다. 또 군번은 있고요. 권총도 휴대할 수 있고요』
  
  -권총 차고 다녔습니까.
  『아, 그 당시에 권총도 차고 다녔지요. 그래서 거제 가서 권총 쏘기도 하고 이런 일도 있지요』
  
  -한 일년 하셨습니까.
  『아니야. 한 8개월. 그때 내가 군번이 E-135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훈국에서 독단적으로 했을 거에요. 아까 이야기했지만 이선근씨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오. 시간이 있으면 창랑한테 내가 가지요. 한달에 몇 번은 가지요. 하루 저녁에는 나를 보더니 「아, 영삼이 잘 왔다」고 하더니 「자네 나한테 오면 어떻겠느냐」고 그래요』
  
   장택상(張澤相) 비서 시절
  
  -그렇게 해서 장택상(張澤相) 국회부의장 비서가 되셨는데 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러니까 창랑의 인사관계, 사람면회관계라든가 수행하는 거, 같이 댕기는 것. 그것을 제일 먼저 했지요』
  
  -그때 유명한 사람들 보셨겠네요. 노덕술, 윤우경, 이런 사람들….
  『아, 그렇지요. 노덕술, 윤우경. 그 사람들 자주 왔지요. 이익홍이가 그때 치안국장이 됐고, 나중에 윤우경이가 치안국장이 됐지요』
  
  -가까이서 본 창랑은 어떤 분입니까.
  『나중에 쭉 보니까. 성격이 굉장히 괴팍해요. 한마디로, 성격이 급하고 말이지, 그 양반이 굉장히 머리가 좋아요. 그 당시 내가 모실 때는 나이가 아주 어릴 때니까 이 양반이 하는 일이면 다 옳다, 이렇게 생각할 때입니다. 사실 비서는 그래서는 안되는데, 잘못 갈 때는 「왜 그리 갑니까」이래야 되는데』
  
  -이 분이 상식이라든지 이런 게 굉장히 풍부한 분인데, 화제가 말이지요.
  『화제가 무궁무진한 분이지요. 보학(譜學)에 대해서도 많이 알지요』
  
   조병옥과 장택상의 우정
  
  -이때 조병옥(趙炳玉)씨도 자주 만나러 오고 그랬습니까?
  『예, 그때 창랑이 제일 위하는 사람이 趙炳玉씨였습니다. 창랑이 총리가 되어 가지고, 나한테 지시하기를 조박사가 오거든 언제든지 들여보내라. 아, 이렇게 이야기합디다. 그래서 조박사하고는 그렇게 진짜 가깝데요. 보니까, 서로 말을 놓대요. 조박사가 한 살 위이던데…. 나중에 그 국제구락부 사건 나고 이랬을 때, 이승만 박사가 그 조박사에게 심하게 할 때, 이박사에 대해 굉장히 비판하대요. 李박사는 어느 경우에도 趙炳玉이한테 이럴 수는 없다, 큰 잘못을 했다, 어떻게 조병옥이한테 이럴 수 있느냐, 그러고… 창랑을 李박사가 미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중에 되었을 거에요』
  
  =사법(司法).군대.권력구조에 대하여
  
  1987년 4, 5월은 全斗煥 정권과 민주화세력이 6월 사태란 결전을 앞두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6월의 발화점을 향해서 우리 사회의 열기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그 상황의 한복판에 있었던 미래의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군(軍), 法, 권력구조 같은 국가의 뼈대에 관한 그의 생각은 대통령이 된 뒤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판사들에 대해
  
  -오늘 高大 앞 시위 사건을 재판 방청을 하셨으니까 우리나라의 사법부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오늘 법정에서 느끼신 게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시죠.
  『사법부를 가리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후의 보루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사법부가 정의와 양심에 입각해서 판정을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법관들에게는 그런 느낌이 없고 정반대로 권력의 하수인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솔직한 얘기로 오늘 같은 경우도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인데 어떻게 실형을 언도할 수 있습니까. 항차 학생들에게 해도 안되는데 심지어 국회의원들에게 해도 안되는데 심지어 국회의원에게 말이야. 그러니까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전혀 못받는 겁니다. 오늘 법정에서 그 욕 하고 하는 거 봐요. 존경 받는 사법부라면 감히 판사한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판사들은 검사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 정부하고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증오를 받는 사람들이 돼 있으니 참 부끄러운 일 같아요』
  
  -전번에 법조인들 앞으로 편지 쓰셨는데 그 편지를 쓰셔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오래 전부터 했습니다. 일부에서 이런 재판 하지 말고 전부 거부해버리자고 하는 분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언젠가는 고려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이 차제에 사법부 전체에다가 편지를 한 번은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읽어보니까 이 사람들에 대해서 감정은 안 건드리려고 상당히 노력하신 것 같았습니다. 용어 선택에서도 그렇고 비판을 하더라도 제도적인 비판을 하셨지 개인적 비판은 자제하셨던데요. 저번 공판 때도 오셨는데 재판부가 들어올 때 일어서시려고 하니까 누가 옆에서 못일어서게 옷자락을 당겼죠. 오늘도 안 일어서셨습니까.
  『네 안 일어섰어요. 나는 뭐 일어서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일어서지 맙시다」라고 그러대요. 모두 다 일어설 수 있도록 재판부가 존경받는 분위기로 가야 하는데』
  
  -그런데 판사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사회 전체가 민주화가 안돼 있는데 우리만 평지돌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얼마나 커졌는데 검사들 하는 것과 판사들 하는 것이 같아서 되겠느냐 말이에요』
  
  -최근에 신민당 의원들이 많이 기소되고 하니까 법정에 가실 기회도 더러 생기겠습니다.
  『그렇죠, 박찬종(朴燦鍾) 의원 말고도 유성환(兪成煥) 의원, 김동주(金東周) 의원도 그렇죠』
  
  -요즘 언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론자유가 최대로 큰 자유 아닙니까. 나는 언론의 자유가 가장 소중한 자유라고 생각해요. 자유의 근본이고 모든 자유를 자유케 하는 자윤데 이 언론의 자유만 있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바로 된다고 봐요. 거짓말 할 방법이 없거든요. 민주주의 한하는 게 부정 아닙니까. 부정 중에 제일 큰 부정 아닙니까.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을 속이는 거죠. 그런데 언론인들의 용기가 부족한 것 같아요. 박정희 말기에 언론인들이 항거하다가 정보부 같은 곳에 많이 붙들려 갔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지금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인과 판사들이라고 보고 계시는 겁니까.
  『그게 특별하게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계층으로는 군인들이 있겠죠』
  
  『朴正熙 같은 군인, 全斗煥 같은 군인은 이제 없다』
  
  -군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군인들 사회도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죠. 군인들이라는 게 전통적으로 민주화가 될 수 있는 집단은 아닙니다. 나는 지금 군대 내에 내일 모레로 쿠데타가 내재돼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공산주의자와 싸우겠다는 생각 이외에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젭니다. 이것이 모든 병의 시작이에요. 나는 지금 현재 군인들은 그런 생각을 안가지고 있다고 봐요. 솔직히 말해서 朴正熙 같은 군인, 全斗煥 같은 군인은 없다고 봐요』
  
  -국민과 군대의 괴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지금 민주주의가 되어서 대통령 직선제를 한 번 해버리고 나면 그런 문제가 전부 정립될 것이라고 봐요.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게 모든 계층이 복종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의 큰 선이 그어지는 거죠』
  
  -말하자면 모든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군을 통제할 만큼 강력하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내각제로는 안정과 자유 모두 잃는다』
  
  -그런데 장면(張勉) 총리의 2공화국 때 내각책임제 하에서 국회의원을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내각책임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나는 내각책임제를 하려면 지방차지체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방자치제가 상당히 뿌리를 내려서 정당이 지방에 기반을 두어야 해요. 그리고 그 당시 보니까 지방에 뿌리가 안 내려 있으니까 사람들이 전부 서울로 찾아 오는 거에요. 당시는 국회의원이 장관 아닙니까. 예를 들어 마산 출신 국회의원이 장관을 한다고 하면 마산 사람이 그 장관실 다 차지하고 있는 거에요. 무상 출입하고, 비서실 다 차지하고. 그 장관에게는 그 지방, 특히 자기 선거구 사람의 이력서가 수백통 쌓여 있고 그래요. 제대로 행정도 못하는 상태였죠. 이번에 다시 내각책임제를 한다고 해도 이것 비슷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우리나라가 이런 상태에서 내각책임제를 하게 되면 굉장히 무능한 정부가 될 것이라고 봐요.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생각이 돼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안정과 자유, 이 두 가지를 국민들이 누리도록 해주는 것 아닙니까. 내각책임제를 하게 되면 이 두가지를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특히 군을 통제하기도 어려워요』
  
   『보수, 진보란 말은 필요 없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느끼시는 소감은 어떻습니까. 이념적으로 우려되는 바는 없습니까.
  『내가 하는 걱정 중에 자꾸 이러한 탄압정치가 계속되면 좌절하고 절망해서 과격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정치를 오래 하게 되면 공산주의를 길러주는 결과가 됩니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적인 방법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정당 설립을 허용한다든지 해서 제도권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정당을 크도록 돕는다기보다는 그대로 놓아 두어야 해요. 완충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리고 지금까지 야당들이 「보수 야당의 정통을 이어 받아서」라는 말을 많이 써왔고 이번 신당 창당이념에도 그 말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나는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 이런 말은 필요 없는 말인 것 같아요. 이번 신당이 계급 정당은 절대 아니죠. 좀 막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국민정당, 즉 어떤 계층이라도 대변한다는 것이 돼야죠. 좀 어려운 일이지만 수권(授權)정당이 되려면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학생이라든가, 노동자들, 혹은 지식인들이라거나 기업인, 중소기업인 등 중산층의 대표가 되어야 하겠지요』
  
   朴正熙. 李承晩과의 첫 만남
  
  -군인 朴正熙를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어요』
  
  -그럼 처음 개별적으로 만나 악수한 것은 언제입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파티 같은 데였던 같네요』
  
  -첫 인상은 잘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조그마한 사람이, 나도 크지도 않지만, 차디 찬 사람으로 보였어요』
  
  -어느 책에서 보니까 李承晩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국회의원 당선되고 나서였다고 하셨던데요.
  『예, 그때 김일곤씨, 김삼도씨도 같이 갔는데 왜 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때 정식으로 개헌 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신문에 개헌에 대한 얘기가 좀 나올 땝니다. 내가 나이가 제일 어리니까 어리광 비슷하게 면전에서 「절대로 개헌은 안됩니다」하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랬더니 李박사가 굉장히 기분이 나빴던 것 같아요. 내 얘기가 끝나고 나니까 간다 온다 말이 없이 그냥 나가버렸어요. 이기붕씨가 왜 그런 말을 여기서 하느냐고 크게 원망을 하더군요. 그때 공식으로 그런 말이 안나올 땝니다』
  
  -그 뒤에 당을 바꾸셨으니까 李대통령과 직접 만나신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습니까.
  『그게 마지막일 겁니다. 아마』
  
  -이기붕씨를 처음 만나신 것은 공천문제 때문에 당의 총무부장이던 李씨를 만나신 것이었습니까.
  『이기붕씨는 창랑 집에 자주 왔거든요. 그래서 그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 양반이 국방장관, 서울시장할 때 줄곧 출입을 했지요. 이기붕씨가 사람이 정이 있습니다. 나는 그때 정당도 생긴 지 얼마 안됐던 시절이고 해서 무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한두 달이나 남았을까 하던 시간에 이기붕씨한테서 전보가 왔어요. 급하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그때 자유당이 어디 있었는가 하면 그 저 해장국 많이 파는데…』
  
  -청진동이요.
  『아, 청진동. 청진동 입구에 있었는데 그곳 총무부장실에 갔어요. 갔더니 이기붕씨가 자유당에 입당하지 않겠느냐고 해요. 자기들 나름대로 여론조사 같은 걸 다 해 가지고 내가 자유당으로 출마하면 당선된다고 판단한 거에요. 그때 벌써 무소속으로 상당히 운동을 하고 있을 때니까요. 꾸준히 운동을 해왔고 그때 벌써 면전체 조직을 다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의외라서 바로 대답은 못하고 좀 의논을 해보겠다고 해놓고 먼저 창랑 선생을 찾아갔어요. 그분은 무소속으로 나올 계획이었는데 말리지는 않으시고 자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면 책임자들을 다 불러 모아서 의논을 하니까 한 사람 빼고는 공천을 받자고 모두 지지해 주었어요. 그렇게 회의를 하고 전보로 좋다고 얘기하니까 공천이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내가 제일 늦게 공천을 받은 몇 사람 중에 끼었던 거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치는 무소속으로 하면 절대 안된다, 절대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어요』
  
  -무소속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데요.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하기가 힘들죠. 국회부의장 비서관을 하면서 더욱 절실히 느꼈어요』
  
  -무소속으로 계셔 본 적은 한 번도 없죠.
  『예, 그렇죠』
  
   당선과 낙선 경험
  
  -그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는데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그때 심정은 천하를 얻은 것 같았죠』
  
  -그때는 부모님께서 가업이 크시고 하니까 선거자금을 다 대 주셨습니까.
  『그렇죠, 그 상황 속에서는 누구 하나 한 푼 보태주는 사람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전부 다 줬죠』
  
  -자유당에서도 도와 주지 않았습니까.
  『줬죠. 그러나 금액은 아주 조금밖에 안됐죠』
  
  -그때 자유당 공천 받으면 경찰에서도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것도 잘못된 거에요. 그때 경찰이라고 하는 게 정보도 정확하지 않고 엉터리였어요』
  
출처 : 월조
[ 2003-07-02, 15: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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