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육성증언 上(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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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실토한 자신의 感
  
  8년 전 녹음테이프를 듣고 있으면 金泳三 총재는 선거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온다. 아무리 독재 치하라도 선거판이 벌어지면 사람이 모이고 그러면 정권의 장악력은 약해진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대세를 민주화로 돌려놓는 데 있어서 분수령과 같은 역할을 했던 1985년의 2·12총선은 그런 생각을 가졌던 金泳三씨의 작품이었다.
  
  ―1985년 2·12총선 때 신민당이 50석 이상 될 거라고 예언하실 때 다른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서 말했다가 큰 코 다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예견했습니까.
  {난 된다고 봤어요. 그 이상이 되는데, 李敏雨씨에게 전국구 20번까지 돈을 받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20번 안될 줄 알고 15번까지 돈받고 나머지는 돈도 안받고 해줬어요. 아주 잘못했어요. 내가 이민우씨에게 어떻게 그렇게 일하냐고 언짢게 얘기했어요. 몇백 표 차이로 떨어진 사람들 더 도와주었으면 당선될 수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떨어졌어?
  
  ―그렇게 자신한 건 선거 시작이 되었을 때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알았나요.
  {공천하기 전부터 말했어요. 신문기자들도 안 믿었죠. 정보부에 훈련되어 사람들이 안 믿어}
  
  ―어째서 그렇게 확신했습니까.
  {감이지요}
  
  ―그동안 너무 눌려 있었다는….
  {그럼요}
  
  ―유권자 중에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했습니까.
  {그럼요}
  
   2·12총선에 DJ는 중립
  
  ―김대중씨는 2·12총선에 어떤 태도였습니까.
  {미국에 있었지요.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했어요}
  
  ―1985년 2월8일에 귀국할 때는 어땠나요.
  {중립적 입장을 취했어요.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니까}
  
  ―직접 통화했습니까.
  {전혀 안했습니다}
  
  ―사람 넣어서 적극 참여하라고 권유했습니까.
  {참여하라고 권유했어요}
  
  ―김대중씨가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의석이 더 늘었을까요.
  {미국에 있었으니까…}
  
  ―스스로 돌아보시면 단점과 장점이 있을 텐데 단점을 보완해서 장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지금 많이 나아졌는데 내가 정치관계에 대해 동료들과 얘기할 때 상당해 신중해졌습니다. 즉석에서 대답은 안합니다. 주로 가만히 듣습니다}
  
  ―앞으로 더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점은 없습니까.
  {더 많은 얘기 듣고 내 얘기를 지금보다 더 줄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인 최석채 선생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더군요. 60년대 朴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자기가 50분 얘기하고 朴대통령은 10분밖에 얘기 안했대요. 그런데 70년대 만났을 때는 자기가 30분 朴대통령 30분 얘기했답니다. 마지막으로 79년에 만났을 때는 朴대통령이 50분 얘기하고 자신은 10분 얘기했대요.
  {보통 잘못된 게 아니지요}
  
  ―朴대통령 軍시절 얘기를 들어보니 장점이 침묵이더군요. 朴대통령은 말이 없어서 아래 사람이 항상 긴장했습니다. 말을 아끼니까 무게가 있었죠. 부하들이 무슨 말을 해도 듣고 자기 의견을 얘기 안했지요. 침묵을 좋은 무기로 사용했는데 마지막에는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고 자기 중심으로 얘기하고 말을 많이 하고 사람이 달라진 거죠. 기자들 얘기도 金총재님이 남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많이 달라졌지요. 과거에는 안그랬어요. 내가 말을 많이 했어요. 상당히 고쳤어요. 앞으로 더 고쳐야지요. 더 듣고 내 말을 더 줄여야 합니다}
  
   타이밍의 선택은 感으로
  
  ―金총재님이 사태 판단을 이론적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비결이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감이라는 게 있다는 느낌입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까.
  {설명 안됩니다. 피부에 닿는 게 있습니다}
  
  ―그런 감이 지금까지 적중했나요.
  {대체로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전도서에 [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곡식을 심을 때와 거둘 때가 있다. 쉴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때를 잘 파악하는 것, 때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점쟁이가 아닌데 어려워요. 그걸 감으로 합니다}
  
  ―2·12총선에 참여해야겠다는 것도 감이었습니까.
  {감이지요. 아무리 언론이 자유가 없다고 하지만(선거에 불참하면) 1천5백∼2천만에게 오늘의 현상을 고발하는 시간을 4년 놓치는데 더 기다릴 수 없다, 이 길을 선택하자,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주자 생각했죠. 그걸 놓쳤으면 이런 얘기를 지금 못하지}
  
  ―그때 감으로서는 국민들의 불만치 차 있다는 것, 4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그런 계산 외에 뭐가 있었나요.
  {국민이 진실을 모르고 있다, 진실을 알려주자는 생각이었죠. 거짓말 과장 필요없이 진실만 알리자 한 거죠}
  
  ―金총재님은 좋은 집안에서 좌절없이 자랐기 때문에 고통받는 자, 가난한 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금을 당하고 박해받으면서 박해하는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최대한 그들의 삶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 광고는 안하지만 말도 없이 그런 데 가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신의 자녀도 안낳고 반신불수 20명 돌보고 있습니다. 연금 해제되고 나서 거기에 일 년에 두 번씩 갑니다. 이번에도 전당대회 전에 한번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속자 가족들과 자주 만납니까.
  {만납니다}
  
  ―가족들이 주문을 많이 하죠.
  {그 양반들 얘기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내가 도와줄 길이 많지 않고}
  
   대통령과 군대
  
  1987년 4월25일 인터뷰에서 金泳三 총재는 직선 대통령이라야 군대를 장악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각제로는 민주화가 되어도 군사쿠데타를 막을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張勉정부의 실패 사례에서 배운 것으로 보인다. 金泳三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전격적으로 군부 내 하나회 인맥을 제거한 것도 평소 그가 가졌던 생각의 실천일 것이다.
  
  ―언론에 대해서 불만이 많으시겠지요.
  {텔레비전이 거짓말만 보도했어요. KBS, MBC가 그렇게 거짓말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안 믿지요. 진실은 잠시 국민을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李敏雨 총재 때 KBS 기자의 당사 출입을 금지시킨 적 있지요.
  {나는 창당되고 나서는 시청료 안내기 운동, KBS, MBC 뉴스 안보기 운동을 전개할 겁니다. 기자들 못 들어오게 해도 손해 없어요. 들어와도 백해무익합니다}
  
  ―방송은 연금될 때 많이 보셨나요.
  {처음에 한 2주일 정도 보고 안봤어요. 음악만 들었어요. 뉴스가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아니까 오히려 괴로움을 줍니다. 차라리 안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안봤죠. 지금까지 그 습관이 남아 있어요}
  
  
  ―AFKN은 보시나요.
  {네}
  
  ―KBS 단독 인터뷰 하셨나요.
  {7년 동안 없었어요}
  
  ―간담회할 때는 방송기자가 옵니까.
  {오지요}
  
  ―그럴 때는 차별 안하나요.
  {안합니다}
  
  ―KBS라는 큰 기구는 문제이지만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대일로 만나보면 그 사람들도 고민이 있고 양심 있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요. KBS 같은 방송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현실적인 정치관
  
  ―정부쪽에서 강경한 태도를 양보안하고 金총재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물리적인 충돌도 예상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나는 원칙으로 통일민주당이 나아가는 노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는 선명한 민주투쟁, 또 하나는 실질 대화. 이 두 가지로 귀결할 수 있습니다. 선명한 민주투쟁은 무슨 혁명적 투쟁이 아닙니다. 원칙에 입각해 당당히 간다는 말이죠. 지금까지는 위장대화 아닙니까. 국가 전반적인 것에 대해 책임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실질 대화하자는 뜻입니다}
  
  ―대통령과의 대화를 제안할 생각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구걸하듯이 하는 건 안합니다}
  
  ―지금은 여권에서 金총재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정식 창당 뒤 총재가 되면 안할 수 없겠죠.
  {정치문제는 현실입니다. 있는 걸 없다고 부정해봐야 안됩니다. 전두환씨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정권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지만 나나 김대중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어쨌든 야권의원 90명 중 70명이 신당으로 따라온 것 아닙니까. 야당의 주류를 이룬 핵심 세력인데 이 사람들이 없는 걸로 한다고 해서 그게 없는 게 됩니까. 텔레비전에서 7년간 얼굴 나온 일이 없다고 해서 김영삼이 없어집니까. 전투가 아니라 정치의 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명투쟁도 실질적인 대화를 이끌기 위한 방법이니까.
  {방법이지요}
  
  ―이것이 일종의 줄타기인데, 이 문제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줄타기를 잘못하면 쿠데타라든지 군이 전면에 나온다든지 하는 사태로 갈까 봐 걱정하는 분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저 사람들이 이대로 가는 것이 헌법개정보다 더 어렵고 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쿠데타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굉장히 어렵지요}
  
  ―국민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인가요.
  {그렇죠. 사회가 너무 다양해졌고 수준이 높아졌어요. 경제적으로도 커졌고}
  
   직선 대통령이라야 군 장악
  
  ―총재님은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보십니까.
  {지금 나는 이렇게 봅니다. 아르헨티나도 문제가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대통령 직선제, 전면적인 문민정치가 이루어지고 정말 국민들이 원하는 민주화가 됐어요. 브라질은 그게 안되어 군인과 민간인이 타협했어요. 그게 잘못되어 상당히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주화를 진짜 하려면 책임을 지고 해야 합니다. 적당히 비위를 맞추는 방법으로 내각책임제를 했을 때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6개월이 가기도 힘듭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 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합니다. 그때는 군인들에게 쿠데타 명분을 주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를 하면서 위험하게 그걸 선택해야 하나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군에 대항할 수 있는 문민정치 세력의 힘이 축적돼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지금 언론이 통제되고 있어서 그렇지 힘은 어느 정도 생긴 거라고 봐야 합니다. 민주세력의 힘이 생겼다고 봅니다}
  
  ―앞으로 계속 일하시다가 보면 김대중씨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데 이해가 상충될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김대중씨하고 나하고는 사실 민주화가 될 때까지, 그 이후까지도 생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둘만 한 게 아니고, 나도 지키고 김대중씨도 지킨다고 봅니다. 자란 곳도 다르고 교육과정도 다르고 사회생활이 다르니까 똑같은 생각일 수는 없지요. 인간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부분을 토론해서 우리나라를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 의견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문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두 분이 보조를 맞춘 것이 국가와 민주화를 위해서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보십니까.
  {그렇죠. 물론 우리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이 백 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걸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인간이니까}
  
  ―단식하실 때 발표하신 성명을 보면 80년 봄에 조금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때 반성이란 다른 의미가 아니고 국민에게 사과를 했는데, 80년대 좋은 기회에 민주화 못 가져온 것이 참 죄송하다는 내용이었죠. 그로 말미암아 우리 국민들이 고생하는 게 정말 미안합니다. 그 심정은 지금도 똑같습니다. 이유야 어디 있었건 간에 군정이 들어서고 계엄령이 다시 선포되고 全씨가 나오고 이런 데 대해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참 좋은 기회였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나쁘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
  
  ―취침시간은 정해져 있습니까.
  {일정치 않지만 12시 전에 잡니다}
  
  ―6∼7시간 잡니까.
  {그렇게 못잡니다. 4∼5시간 잡니다}
  
  ―숙면하십니까.
  {숙면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요. 요새 숙면 못합니다}
  
  ―꿈 꾸십니까.
  {꿈은 절대 안꿉니다. 꿈을 한 번 꾸고 싶어요}
  
  ―깊게 주무시나 봅니다.
  {꿈 꾸는 사람이 부러워요}
  
  ―꿈 꾼다면 어머니 얼굴이 보고 싶겠네요.
  {누가 칼을 두고 자면 꿈 꾼다고 해서 어머니 얼굴을 보려고 그렇게 했다가 한 번은 찔렸어요}
  
  ―칼이 서 있었다면서요.
  {큰 수건이 없어 작은 수건에 싸두었다가…} (기자注―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잠을 잔다고 해서 아무때나 꿈을 꾸는 것은 아니고 [램 수면기]라고 하는 시간대에 꿈을 꾼다. 램 수면기는 하룻밤에 5∼6회 정도, 한 번에 10분 내지 20분 정도씩 지속된다. 이 기간에는 거의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꿈을 꾼다. 램 수면기는 잠이 든지 오래될수록 즉 새벽으로 갈수록 자주 나타난다. 간혹 꿈을 한 번도 못 꿔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보면 사실은 이런 사람들도 꿈을 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잠자는 동안 뇌파를 측정하여 이들이 램 수면기에 들어가는 시기를 관찰하고 있다가 램 수면기가 끝나는 즉시 깨워보면 대부분 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꿈의 내용이 본인과 별 관련이 없어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사람의 성향과 관련된 것이다. 극도로 외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이나 심리적인 변화 등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늘 관심을 외부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인 중에 이런 외향적인 사람이 많고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는 金대통령은 이런 유형의 극단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격상의 공통점이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지능이나 기억력과도 관계가 없다고 한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5: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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