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기자의 몽골벨트 취재보고(5) - 우리는 누구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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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민주라는 말의 위선
  
  이번 여행 중에 기자를 슬프게 만든 두 나라는 루마니아와 파키스탄이었다.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의 위선적 민족주의가, 파키스탄은 前근대적인 지배층의 위선적인 민주주의가 망가뜨린 나라였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단어는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위선적으로, 즉 속임수로 쓰여지면 국가를 파괴하게 된다. 문제는 이 지고지선(至高至善)한 민족과 민주라는 말에 마취되지 않고 견디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기자는 1975년 4월에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도쿄의 우에노 박물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직원들이 오더니 일반관람객들은 나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들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이 기회에 특종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차우셰스쿠는 그때 소련과 대항하는 민족노선을 취하고 있어 인기가 높았다. 그에게 『한국과 수교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어 긍정적인 대답을 끌어내어야겠다는 것이 기자의 욕심이었다. 이 욕심은 박물관 직원들이 기자를 현장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차우셰스쿠의 독자노선은 한국의 한 올챙이 기자까지도 감동시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기자가 그때 몰랐던 것은 차우셰스쿠가 당시에 이미 金日成의 영향을 받아 개인 우상화 정책으로 기울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루마니아 취재에서 기자는 당시 공산당 간부들로부터 1970년대 초 차우셰스쿠가 북한을 방문한 뒤부터 사람이 달라졌다는 증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외채 없는 국가를 만든다고 무리하게 외채 갚기 운동을 해서 경제를 망치는가 하면 엄청난 기념물을 짓는다고 부카레스트 시의 한복판을 거대한 세트로 만들어 놓았다. 헝가리에서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 공항에 내리자마자 서쪽으로 한 세 시간을 달려 크라이오바에 도착했다. 도중에서 본 루마니아의 인상은 거대한 고철덩어리였다. 엄청난 공장들이 녹슬고 있었고 도시의 상점가에는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냥 하염없이 거리에 나와 서성대고 앉아 있기만 했다. 남아메리카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 것은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었겠지만 루마니아 사람들이 라틴系인 관계가 있을 것이다. 크라이오바는 인구 약 25만의 공업도시인데 대우가 인수한 대우 로대 자동차 공장이 가동중이었다.
  
  대우는 이 공장을 1998년까지는 승용차 20만대 생산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다. 1996년 초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씨에로」는 사회적인 신분을 상징하는 상품이 되어 차를 세워놓으면 구경꾼이 몰려들 정도이다. 이 공장을 둘러보았더니 여자 직원들이 많았다. 남자처럼 험한 일도 다 하고 있었다. 체력이 좋아 생산성도 남자에 못지않다고 했다. 거의 반이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한 한국인 간부는 『이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물을 아직 완전히 벗지 못해 일에 대한 적극성과 창조성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노사분규로 마음 고생하면서 경영하는 때보다는 낫다』고 했다. 동구와 중앙아시아의 舊공산국가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들의 임무는 사회주의식 사고방식을 벗겨내는 일이다. 루마니아의 경우는 金日成에 매료되어 나라를 망친 차우셰스쿠가 남긴 상처를 한국의 기업이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金日成식의 폐해를 朴正熙식의 처방으로 치료하고 있다고 할까.
  
   현대의 유목민-미국인
  
  기자는 두 달간의 몽골 벨트 취재를 마친 직후 미국 매사추세츠州 켐브리지市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 와서 학생처럼 공부하고 있다. 여러 문화권을 돈 여행의 뒤여서 그런지 미국인을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는가 하면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책을 통해서만 이해가 되었던 문화와 문명의 중요성, 즉 한 인간의 성격과 습관과 가치관이 그와 그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삶의 축적에서 형성된 것이고 모든 인간은 그 역사와 문화의 무게를 느끼면서 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지내고 있다. 기자의 관찰로는 미국인이야말로 유목민의 기질을 현대문명 속에서 살리면서 패기와 야성을 아직 잃지 않고 있는 가장 젊은 사람들이다.
  
  과거, 고향, 가정, 직장, 아내나 남편을 떠나거나 바꾸는 기동성과 그런 행동에 대한 고민과 공포가 덜하다는 점은 미국적 진취성의 본질이다. 미국의 건국정신에 그런 점이 강조되었다. 미국 독립은 고향인 영국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했다. 떠난 고향을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는 독한 결심을 한 사람들이 건국의 주역들이었다. 조지 퍼킨스 마쉬는 『과거보다 오늘과 미래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바로 젊고 활력에 찬 나라가 할 일이다』고 했다. 19세기의 한 소설가는 소설 주인공의 입을 빌어 『유럽처럼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가질 바에야 백지로 남겨 놓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범죄로 찌든 늙은 대륙을 생각하면 우리 신대륙은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와 같구나』라고 외치고 있다. 독일의 시인 괴테도 미국의 젊음을 이렇게 칭송했다.
  
  「아메리카여, 너는 참 다행스럽구나/ 우리의 이 늙은 대륙에 비한다면/ 너는 무너져 내린 성곽도 선사시대의 돌덩이도 없구나/ 너의 혼과 너의 내면 세계는/ 쓸 데 없는 기억들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고향과 과거에 대한 이런 경멸과 단절은 그들의 시선을 늘 앞으로 향하게 하였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으로 나이값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적인 생활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역사=고향=과거=나이는 앞만 바라보고 뛰는 그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미국의 건국정신을 기초하는 데 있어서 중심 인물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각각의 세대는 자신의 시대에 대하여 주권을 갖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각각의 세대는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그 시대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死者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창조주께서는 이 세상을 산 자를 위해 만든 것이지 死者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어떤 세대도 다음 세대에게 짐이 되거나 간섭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보다는 미래, 노련미(老練美)보다는 젊은 야성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런 생각은 아직도 미국의 교육, 정치, 예의, 가치관, 그리고 사회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들은 공간적으로는 고향을 떠나고 심리적으로는 과거를 잊기로 작심하였으며 윤리적으로는 오늘의 젊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노인보다 어린이가 훨씬 더 보호를 많이 받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 본질에 있어서 유목민족의 기질인 것이다.
  
  학교와 가정의 교육도 이런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 어른들은 어린이를 「철없는 존재」로 깔보는 법이 없다. 어린이를 어른 대하듯이 존중하며 강요·명령하지 않는다. 그것은 출신, 계급, 선배나 부모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강자(强者)를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상당한 대가도 수반(隨伴)된다. 고독이 그것이다. 미국인의 고독은 그러나 자청한 고독으로서 소외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다른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자세는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다는 것도, 이기적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미국인들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자세는 한국인들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본질적이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입양을 싫어하며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다. 부끄러움은 커녕 고아 수출국이란 非인간적인 용어까지 만들어가면서 해외입양기관을 비난하기만 하고 고마운 외국의 입양부모들을 어린이 학대의 주인공으로 그리는 영화까지 만드는 판이다. 한국인은 흔히 정이 많다고 하는데 기아와 고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정(人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당당한 여자
  
  미국인들은 우리 식의 인정에는 약할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자선(慈善)과 적선(積善)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강한 실천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잔정에는 소홀하지만 큰정에서는 더 뜨겁다. 가슴으로써라기보다는 차가운 이성으로써 그런 휴머니즘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도움을 주면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기대한다. 미국인들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는 당연한 태도이다. 그러니 도움을 받은 사람이 보은(報恩)을 해주기를 기대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주 사무적인 감정 정리인 셈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프로비던스에 있는 브라운 대학에 다니는 한 한국인 여학생은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곳 학생들은 처음에는 사귀기가 어렵지만 한번 친해 놓으면 그 정이 참 오래 갑니다. 그런데 미국인 학생들과는 친해지기는 훨씬 쉬운 편이지만 처음 만날 때나 자주 만날 때나 정이 더 깊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우선 타인의 권리 특히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예절의 기본 정신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부딪치기는커녕 부딪칠 뻔했을 때도 서로 『미안합니다』를 앞다투어 말하는 실정이다. 재채기를 한 사람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 상대방은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란 뜻의 말을 한다. 파티에 온 손님이 실수로 찻잔을 깨었다면 그 손님이 사과를 하기 전에 먼저 그것도 재빨리 찬스를 잡아 『저도 방금 전에 하마터면 깰 뻔했답니다』라고 말하여 손님이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미국 여자의 걸음걸이에서는 어떤 소신을 느낄 수가 있다. 한국 여자들은 조용조용 걷지만 미국 여학생들은 뚜벅뚜벅 걷는다. 가슴을 쭉 펴고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지축을 흔들듯이 걷는 여자들은 또 다른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 여자의 당당함. 저런 여자들이니까 이혼의 충격도 견딜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식사시간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연구를 거듭했던 최초의 인간들일 것이다.
  
  그래서 샌드위치, 햄버거,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를 발견한 것이다. 미국의 화이트 칼라들은 점심을 먹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거나 점심시간을 별도로 정해 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 하버드 대학에서는 학술발표회나 세미나를 낮 12시부터 시작하여 간단한 점심을 들어가면서 오후 2시까지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강사도 발표를 하면서도 시간을 내서 샌드위치를 먹어가면서 한다.
  
  미국인들은 여간한 행사가 아니면 넥타이를 매거나 정장을 하지 않는다. 정장을 요구하는 행사는 1년에 몇 번 되지 않기 때문에 일상복은 청바지가 된 셈이다. 이런 간편성은 행동과 사고의 속도와 심도를 높여준다. 미국인이 보여주는 기동성의 진수는 직장간의 이동성일 것이다. 직장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장을 선택한다는 생각, 야심 있는 사람일수록 직장을 자주 옮겨다니고(쫓겨다니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니는 것) 이것이 훈장이 되는 사회, 이런 곳에서는 인간이 좀더 떳떳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공간적, 사회계층적, 직장간 이동성이 높다는 것은 그 인간과 사회의 자유를 증진시킨다. 유목민 사회에서는 농경민족에서와 같은 전제정치가 성립될 수가 없었다. 광대한 초원에서 가축떼를 거느리고 유유히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본질적으로 유목민 사회는 농경민족보다 훨씬 민주적이었다.
  
   평화적 권력 승계의 전통이 없다
  
  몽골-투르크族이 대제국을 많이 만들었지만 한 가지 만들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평화적인 권력 승계의 전통이란 이들의 사전에 없었다. 대권의 수임자는 인간에 의해 결정될 수 없고 하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인위적으로 어떤 승계규칙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하늘에 대한 모독인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따라서 권력자는 권력투쟁에서 최후에 승리하는 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최고 권력자가 죽으면 초원에서는 자동적으로 토너먼트戰 같은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다만 그 권력투쟁에 참가할 수 있는 부족은 제한돼 있었다. 이런 권력투쟁은 피비린내 나는 인명살상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에게 대권의 기회를 제공하고 권력의 독점과 세습을 방지한 점에서 오히려 민주주의적인 면도 있다. 기동성의 귀재(鬼才)들인 몽골-투르크族은 대권에까지도 기동성의 개념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권력투쟁의 전통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무서운 응집력을 보이다가도 그런 지도력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흩어져버리는 초원의 한 원리를 만들었다.
  
  이런 시스템적 결여는 만성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여 고급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킬 수 없게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도와 사고(思考)의 고착에 따른 정체와 쇠퇴를 방지한 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종족이 기원 前後부터 시작하여 서기 17세기까지 거의 1천7백년 동안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차지했던 적은 몽골-투르크族을 빼고 나면 없다는 것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장기간의 제패(制覇)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초원의 기동성과 민주성이 이 문화권의 분위기를 항상 젊게 유지하면서 건강한 신진대사와 경쟁 마인드를 제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1천7백년간 초원에 일관되게 존재했던 것은 오늘 미국에 있는 것과 닮은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자유와 기동을 부추긴 드넓은 대자연이 있었다. 유라시아 초원을 여행해 보니 미국의 서부, 특히 와이오밍, 오레곤, 몬타나, 사우스 다코타, 노스 다코타, 아리조나, 유타 같은 대평원을 연상시켰다.
  
  신을 생각케 하는 이런 자연 속에서 말을 달린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농경민족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대지를 정복하고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만나고 새로운 약탈물을 얻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동경과 쾌감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인은 몽골족의 말 대신 자동차를 대중화하여 기동성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 속도를, 기동성을, 타이밍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가치관은 과정과 예절, 식사시간, 옷차림까지도 최소화하는 습관을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켰다.
  
  이미 뿌리박힌 것이나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존경을 거부하고 개척과 창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생각도 미국과 몽골적인 것의 공통점일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안전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서 무력(武力)을 설정해둔 점에서도 같다. 세계 제국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각각 다른 종교와 이념과 민족, 그리고 언어에 대한 관용과 포용과 개방인 것이다. 몽골제국과 미국은 이 점에 있어서도 같다.
  
   변심 애인 칼로 찔러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몽골 인종의 길, 중화(中華) 문화권(유교)의 길, 그리고 西歐 자본주의 문화권의 길로 분류할 때 이 세 가지의 경험이 우리 한국인 개개인의 인간성에는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민족 집단의 공통 경험은 그 집단 구성원의 성격과 습관, 그리고 가치관을 구성하는 뼈대이다. 한국인의 겉, 즉 거동과 예의 및 범절을 지배하는 것은 아무래도 유교적인 가치관이다. 이성(理性)에 바탕을 둔 이 질서가 부서질 때가 있다. 술에 취했을 때와 흥분했을 때, 그리고 신바람이 날 때, 말하자면 감성이 분출하여 일시적으로 이성을 마비시킬 때 한국인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 솟구치면서 한국인을 몽골적 인간형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말수가 적고 부끄럼 타며 어색해하고 공손하게 보이던 한국인은 어느새 적극적, 공격적, 예술적 인간형으로 돌변하여 떠들고 싸우며 노래하고 춤춘다. 한국인처럼 술로 인한 인격의 변화가 큰 경우를 다른 민족에서 발견하기는 어렵다. 알콜의 힘으로 이성의 족쇄를 부수고, 그리하여 두뇌의 기능을 다소 둔화시켰을 때 우리의 가슴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그 무엇-대담해지고 너그러워지며 상쾌해지는 이 고양된 감정은 결코 중화적 유교 문화의 특징은 아닌 것이다.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서 묘사하고 있는 근 2천년 전의 한국인(춤추고 노래하며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과 더 가까운 것은 동이(東夷)의 한국인들이 유교의 딱딱한 껍질에 아직 감싸이기 전의 원형(原型) 한국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술을 마셨을 때 한국인의 인격적 변화가 심한 것은 농경민족적 인간형에서 유목민족적 인간형으로 질적인 변화를 겪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의 양식이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인간형과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차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땅과 제도와 혈통에 미련과 집착을 가지고 은근과 끈기를 덕목으로 삼고 있는 정착 농경민족과 미련 없이 고향을 버리고 신세계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세를 늘 갖추고 있는 유목민의 차이만큼 한국인의 머리(유교적)와 가슴(몽골적)은 판이한 것이리라.
  
  한국신문의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목이 있다. 「변심 애인 칼로 찔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데 있어서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할 줄 모르는 것도 집착성이 강한 농경민족적 성격이 아닐까. 全인구의 10% 이상이 매년 해외여행을 떠나는 현상은 유목민적 성격의 발로라고 할 만한데 그렇다면 해외여행자가 늘어날수록 「변심 애인 칼로 찔러」라는 기사도 줄어들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중화적 전통을 아직 지니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지식인들이다. 주자학은 학자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보장한 이데올로기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모름지기 학자, 즉 선비가 할 일이라고 규정했으니 한국에서 학자가 된다는 것은 이 특권의 수혜자가 되어 능력에 비해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면면(綿綿)히 흘러온 전통이 하나 있다. 민족의 이름으로 국가를 지조의 이름으로 권력을, 그리고 명분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는 전통이 그것이다. 한국 지식인들은 대체로 정통성의 기준을 민족, 지조, 명분 같은 관념적인 데 꽂았고 국가, 권력, 현실 같은 실체를 그 하위 개념으로 설정했다.
  
  오늘의 한민족이란 단위와 한반도란 생활 공간을 우리에게 잡아준 것은 신라(新羅)의 3국통일이었다. 이 통일을 주도한 김유신(金庾信)과 김춘추(金春秋)야말로 미국의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과 같은 민족, 국토, 국가 건설의 아버지들이다. 이 두 金씨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인기가 없다. 당(唐)의 힘을 빌어 통일했다고 해서, 또 고구려(高句麗)의 영토를 다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서 오히려 사대주의자 혹은 민족반역자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조그만한 新羅가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이던 唐의 힘을 빌어 3국을 통일한 뒤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주민들을 한민족이란 울타리 안에 묶고서, 그 통합을 기반으로 하여 唐을 한반도 안에서 몰아냄으로써 한반도를 한민족의 생활권으로 확보한 엄청난 위업은 감상적이고도 非과학적인 엉터리 민족주의 앞에서 시들어버린 것이다.
  
  이 지식인들은 1천수백년 전에 살았던 3국의 주민들도 지금 한국인처럼 동족의식을 느끼고 있었으리라는 가정하에서, 왜 우리끼리 오손도손 평화통일하지 않고 唐을 불러들였느냐고 불평할 뿐 아니라 高句麗의 판도를 왜 다 차지하지 못했느냐고 논평한다. 세종대왕에게 민주주의 안했다고 욕설하는 격이다. 한국의 주자학적 지식인들처럼 비난·비판·매도·부정의 논리 개발에 그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이들은 지구상에 달리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증오의 과학이라면 한국적 주자학은 「매도의 과학」이다. 1994년 가을 경주에서 만난 경주시청의 한 젊은 공무원이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다니면서 신라통일을 폄하하는 해설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 공무원이 독립전쟁의 유적지를 안내하면서 워싱턴과 제퍼슨을 비하하고 독립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그 경주 공무원의 해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 중 아무도 이의(異議)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은 하도 한심한 이야기라서 무시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럴 듯하게 들렸던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朝鮮王朝 중·후반기에 권력을 잡았던 조광조(趙光祖) 이후의 선비들은 정몽주(鄭夢周)와 길재(吉再)를 사표로 삼았다. 이 두 사람은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였다가 피살되었거나 은둔했던 이들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여당의 집권세력이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체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로서의 국가보다도 당위로서의 지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야(在野)인사가 아니고 권력을 잡고 있던 지배층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신에게 온갖 혜택을 가져다주고 있는 그 권력의 기반을 구축했던 사람도 바로 그 권력에 반대했던 사람을 더 존경하게 되면 위선의 함정, 혹은 정신분열증의 상황에 빠진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5: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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