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쓰기를 접으면서 - 다중영합,상업,우민주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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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쓰기를 접으면서 : 多衆迎合(다중영합), 상업, 愚民(우민)주의를 경계합니다)
  
  月刊朝鮮은 「역사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創刊(창간) 19주년 기념호인 다음달호(4월호)부터 가로쓰기를 합니다. 제가 「역사적 결단」이라 하는 것은 이로써 우리나라 서점에서 세로쓰기 잡지와 책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月刊朝鮮이 출판계에서 최후까지 命脈(명맥)을 이어오던 세로쓰기를 스스로 접고 가로쓰기로 가게 된 것은 세로 쓰기의 단점 때문이 아닙니다. 가로쓰기용으로만 개발되고 있는 電算(전산)편집-인쇄工程(공정) 때문에 세로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기술적 基盤(기반)이 날로 축소, 고립되어 갔습니다. 세로쓰기용 電算 사식기의 생산도 중단되었고 세로쓰기 편집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月刊朝鮮은 그동안 부분 전산화의 공정으로 제작되었고 따라서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려면 몇 단계의 작업이 추가되는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가로쓰기에 눈이 길들여진 젊은 층은 月刊朝鮮이 눈에 설다는 불만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月刊朝鮮이 그동안 세로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세로쓰기의 장점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거의 모두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세로로 읽는 데 편합니다. 두 눈이 가로로 놓여 있어 가로쓰기가 읽기에 더 편하다는 俗說(속설)도 있지만 月刊朝鮮처럼 3段 조판일 경우 세로쓰기이기 때문에 눈이 피로하다는 불평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로쓰기가 읽기 편하다는 사람들은 가로쓰기로 된 인쇄물만 주로 읽어 그쪽으로 눈이 길들여졌기 때문이지 가로쓰기가 세로쓰기보다 더 읽기 편한 절대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로쓰기 편집은 읽는 이들에게 글의 권위와 신뢰성을 높여줍니다. 세로쓰기는 글자가 서 있는 것이고 가로쓰기는 누워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서 있다는 것은 힘이 들어가 있고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신문의 제목이 같은 길이라도 세로 제목이 가로 제목보다 더 충격적으로 보이는 이유 역시 수직으로 곧추 서 있다는 것이 인간심리에 찍어주는 강력한 인상 때문입니다. 세로쓰기는 또 가로쓰기에 비교해서 밀도가 있고 단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月刊朝鮮은 이런 세로쓰기 편집의 장점들을 어떻게 가로쓰기의 장점들과 결합시켜 한 차원 높은 편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로쓰기 편집의 장점은 전산편집의 다양한 技法(기법)을 이용할 수 있어 誌面(지면)을 다채롭게 꾸밀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로쓰기의 믿음직하고 단정한 모습과 가로쓰기의 활달하고 개방적 모습이 아름답게 통합되는 지면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月刊朝鮮을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月刊朝鮮과 지금 세로쓰기를 유지하고 있는 일부 신문들이 全面(전면) 가로쓰기로 갈 경우 한글은 자랑거리 하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알파벳은 가로쓰기밖에 못하지만 한글은 세로, 가로쓰기를 겸할 수 있다는 장점 말입니다. 가로쓰기의 확산은 한글전용의 확산과 같은 軌道(궤도)를 달려왔습니다.
  
  漢字(한자)가 한반도에 소개된 지 2천여년, 한글이 만들어진 지 5백53년, 한글이 공용어가 된 지 54년 만에 한글은 드디어 專用(전용)의 위업을 달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이런 무서운 확산, 그 가장 큰 이유는 〈배우기 쉽다〉는 대중성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어려운 것은 그만큼 값어치가 있고 쉬운 것은 값이 싼 법입니다. 쉽다는 한글만 배우고 어렵다는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國語(국어)를 반신불수로 만들게 됩니다. 한자에 語源(어원)을 둔 70% 이상 의 우리 낱말을, 읽을 수는 있어도 그 정확한 뜻을 모르게 됩니다. 우리말의 약 70%가 암호로 변해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학술어, 고급어, 개념어, 과학 기술어의 거의 전부(90% 이상)가 漢字語입니다. 한글전용을 고집하다가는 이런 고급 지식의 습득에 결정적인 장애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국력과 국가경쟁력의 추락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국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쉽고 대중적인 지식이 아니라 한자로써가 아니면 표현, 전달될 수 없는 어렵고 고급한 지식(과학, 기술, 경제, 군사)이기 때문입니다.
  
  한글전용은 또 일부 세력에 의해서 민족주의적인 운동으로 이념화되었습니다. 우리 역사 시대의 약 20분의 19를 기록한 한자를 외국어로 몰아 배척하는 일이 무슨 독립운동이나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기성세대는 한자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한글전용의 폐해를 실감할 수 없었던 면도 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머릿수가 많은 젊은 층에 대해서 지도력을 발휘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의 취향에 迎合(영합)해왔습니다.
  
  정치 행정하는 사람들은 젊은 층의 표가 많다고 해서, 기업하는 사람들은 젊은 층의 구매력이 높다고 해서 유권자이기도 하고 소비자이기도 한 젊은이들을 편하게 모시려고 교과서도, 신문도, 사람 이름도, 상호도, 社報(사보)도, 광고문안도 모두 한글전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자를 몰라도 불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게 만들어 놓았으니 누가 한자를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이런 多衆(다중)영합이 「배우기 쉽다는 것(공부를 덜해도 된다는 것)」과 상업주의, 그리고 위선적 민족주의와 맞물림으로써 한글전용은 다중영합(多衆迎合) 상업우민주의(商業愚民主義)로 우리 사회에 구조화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암호풀이 같은 문자생활과 문화의 저질화입니다. 대체로 고급하고 복잡한 의미를 많이 전달하는 한자어가 사라진 곳에 주로 형용사와 동사인 순한글어가 들어와 卑俗(비속)한 표현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소리만 있고 생각이 없는 저속한 언어 생활의 확산은 한글전용의 확산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가고파」 「봄이 오면」 「조국 찬가」 「내 마음」 「목련화」 「수선화」 등 주옥 같은 가곡의 작곡가인 金東振(김동진) 선생은 이번 호 月刊朝鮮에 실린 인터뷰에서 지나친 대중음악의 확산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사탕만 먹이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되겠어요?』 저한테는 이런 말로 들렸습니다.『젊은이들이 편하다고 한글만 가르친다면 커서 어디에 써먹겠어요?』
  
  저는 한국인의 감수성을 가장 고급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歌曲(가곡)이라고 생각합니다. 歌曲은 음악과 詩(시)의 만남입니다. 세계에서 우리 나라 가곡과 같은 고상한 형식의 노래를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가곡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도 격조 높은 노래가 대중적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흐드러지게, 간드러지게, 풍성하게 부르는 가요도 좋지만 정색을 하고 단정하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역시 가곡입니다.
  
  가요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지만 가곡은 인간의 영혼과 理性(이성)에도 떨림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가곡이 한자처럼 배우기도 듣기도 어렵다고 하여 국민들의 취향이 모두 가요쪽으로 가버렸는지 1980년대 이후 새로 등장한 애창 가곡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같은 시기에 벌어진 歌曲과 漢字의 쇠퇴란 현상에서 고급문화의 실종을 봅니다. 한글은 쉬운 만큼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은 어려운(그래서 고급한) 한자로써만 補完(보완)받을 수 있습니다.
  
  한글전용이 극단적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이제 와서는 한글의 약점과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취약점은 한글이 한자어를 떠날 경우엔 뜻을 전달하는 낱말의 기능을 상실하고 소리로서만 존재하게 된다는 점과, 개념어 新造語(신조어)를 만들 수 없다는 점입니다. 컴퓨터를 한자로는 電算機로 번역할 수 있지만 한글로는 그런 造語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되면 영어를 그대로 쓰게 됩니다. 한자어가 밀려난 그 자리를 지금 영어가 들어와 메우고 있습니다. 어느 책엔 「남북(North-South)」이라고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써온 한자어를 느닷없이 외국어라고 규탄하여 내쫓았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영어가 차지하자 침묵하고 있습니다. 도로 표지판에 한글과 함께 영어를 표기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한자도 倂記(병기)하도록 하겠다고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지시하자 반발하고 있습니다. 진짜 외국어엔 관대하면서 우리 민족의 피와 살이 된 한자어를 외국어라고 몰아 추방하려는 것은 糟糠之妻(조강지처)를 내쫓고 그 자리에 첩을 들여놓으면서 무슨 善行(선행)을 하는 것처럼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月刊朝鮮은 가로쓰기로 가지만 한글-한자 혼용은 지금처럼 계속할 것입니다. 「정직의 極 은 부정직이다」는 말도 있듯이 한글전용을 극단적으로 추진하자 한글의 취약성과 전용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專用은 專制(전제), 獨占(독점)이란 단어처럼 非(비)민주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混用, 倂記가 훨씬 더 민주적이고 국제적이며 개방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혼자, 멋대로, 독차지가 아니라 더불어, 섞여서, 함께 살자는 뜻이니까요. 韓民族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세로쓰기와 漢字語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세로쓰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999년 3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6: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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