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인명 손실과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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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志明과 金日成
  
  저는 金日成(김일성)이 아니라 胡志明(호지명)이, 金正日(김정일)이 아니라 지압 장군 같은 사람이 북한의 당과 군을 이끌었다면 남한은 공산화되어 월남식으로 통일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루시초프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胡志明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胡志明은 혁명의 성스러운 사도였다. 나는 그의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눈빛은 성실함과 순결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부패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의 성실함이었고 이념을 위한 원칙에 헌신하는 사람의 순결함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정직함과 신념으로써 설득할 수 있었다. 胡志明은 공산주의의 진정한 聖者(성자)였다>
  
  저는 胡志明의 지도하에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민족해방전쟁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던 전설적인 장군 지압을 지난 96년 여름에 하노이 근교 山中(산중)에서 만나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80노인은 꼭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같은 조용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에게 건강비결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가지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지요. 하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맨손 체조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安樂(안락)만 생각하면 늘 불만스러워지고 갈등이 생길 터인데 항상 남을 생각하니 마음이 순수하고 편해질 것이고 따라서 건강은 저절로 유지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 胡志明과 지압 장군의 특징을 표현하는 단어들-성실, 순결, 정직, 희생정신과 가장 멀리 있는 두 인간이 바로 金日成과 金正日일 것입니다. 위선, 선동, 잔학, 이기심이 바로 이 父子(부자)를 설명하는 단어들입니다. 胡志明-지압은 성실 순결 정직 희생정신으로써 남북 월남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것이 통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金日成 父子는 그들의 나쁜 인간성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심을 잡지 못했고 통일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붕괴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습니다.
  
  전쟁에서 3백만, 굶어서 3백만이 죽은 책임
  
  「1995년 이후 북한 주민 3백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기사는 기자의 문법으로는 낙제입니다. 죽음의 원인제공자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金正日은 영구집권과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구제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백만의 주민을 굶겨 죽였다」고 쓰는 것이 바른 기사문장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면 각 개인이 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회주의 경제는 당과 국가가 인민들을 먹여살릴 의무를 진 체제입니다.
  
  이런 체제하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지도자가 져야 합니다. 金正日은 군사비를 줄이든지, 金日成과 본인의 우상화 작업 경비를 줄이든지, 생산성 낮은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개인에게 농토를 분배하면 기아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개혁을 하기 싫으면 쿠바의 카스트로처럼 살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막지 않아야 합니다.
  
  金正日은 그런 구제조치를 취하면 체제가 붕괴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즉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수백만을 굶겨죽이고 있으니 그는 히틀러級의 학살자임이 분명합니다. 항상 남을 생각하니 저절로 건강해지더라는 지압 장군과 항상 자신들의 안락과 편의만 생각하다가 북한을 지옥으로 만들고 만 金日成 부자의 차이, 그것은 勝者(승자)와 敗者(패자)의 차이일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캄보디아에서 킬링 필드를 연출했던 크메르 루즈 게릴라 지도자 폴 포트에 대해 보도할 때는 항상 그의 이름 앞에다가 「수백만 명을 학살한」이란 수식어를 정관사처럼 붙이곤 했습니다.
  
  이제 우리 언론도 金正日의 이름 앞에다가 「북한주민 3백만의 학살자」란 수식어를 달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언어의 반복적 사용은 엄청난 정치적, 심리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金正日을 주눅들게 하여 북한체제의 변화를 재촉할 것입니다. 우리 군에서 워 게임이란 전쟁연습을 컴퓨터로 할 때 입력하는 6·25전쟁의 인명피해자료는 이러합니다.
  
  戰死(전사)는 한국군과 유엔군을 합쳐서 18만2천7백75명(실종자 13만3천4백61명 별도), 북한군과 중공군을 합쳐서 1백42만 명(중공군이 약90만 명)으로서 총1백62만여 명입니다. 부상군인은 한국군과 유엔군을 합쳐서 95만8천5백4명, 북한군과 중공군을 합쳐서 40만6천명입니다. 부상자 총수는 1백36만4천5백여 명입니다. 군인의 전사상자수는 양측을 합쳐서 약 3백만 명입니다. 민간인 피해는 남한 통계만 남아 있습니다. 사망자는 37만3천5백99명, 부상자는 22만9천6백25명, 기타 납북자·행방불명자·인민군에 강제동원된 의용군이 78만7천7백44명입니다.
  
  북한 지역의 민간인 피해자 규모는 집계가 되지 않지만 남한에 못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한(유엔군 포함) 통틀어 군인·민간인을 합칠 때 약 5백만 명이 6·25전쟁의 피해를 보았다는 얘기입니다. 남북한 당시 인구(약 3천만)의 약 17%가 죽거나 다치고 납북·실종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북한군, 중공군, 유엔군, 남북한 주민 등 군인 민간인을 합친 전사자수는 약 3백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인명손실의 全(전)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스탈린의 손에 놀아난 金日成(김일성)이란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남침에 의해서 3백만 명이 죽고 그 아들에 의해서 또 3백만 명이 굶어 죽었으니 父子간에 6백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희대의 반인류범죄자들인 셈입니다.
  
  참아라, 견디어내라
  
  저는 1996년에 미국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冷戰(냉전) 시대 크렘린의 내막 - 스탈린으로부터 흐루시초프까지」란 책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공동 著者(저자)인 두 러시아 학자(블라디스라브 주보크와 콘스탄틴 프레샤코프)는 최근 공개된 소련시대의 비밀문서들을 근거로 하여 소련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金日成(김일성)은 스탈린에 의하여 철저하게 조종된 꼭두각시입니다. 이 책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951년 6월 이후 戰線(전선)이 38도선상에서 교착되자 미군의 폭격으로 엄청난 인명손실을 당하고 있던 북한의 김일성은 수 차례 스탈린에게 휴전을 하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편지를 보냈다. 김일성은 「이런 교착전쟁은 적에게는 거의 피해를 주지 않고 우리에게만 무서운 피해를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스탈린은 그때마다 「참아라, 견디어내라」고 했다. 적이 먼저 항복할 것이라면서. 스탈린은 이런 소모전이 소련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이 전쟁은 미국을 극동에 붙들어맬 것이고 북한과 중공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소련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스탈린은 중공군과 북한군의 희생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합니다. 그는 중공의 周恩來(주은래)에게 『북한은 아무런 손실도 없다. 인명 손실밖에는』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탈린은 중공군과 북한군이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다 흘릴 때까지는 휴전을 허락해주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스탈린의 지원으로 전쟁을 시작한 代價(대가)로 휴전도 마음대로 못하게 된 가련한 처지에 빠졌던 것이 金日成입니다.
  
  스탈린이 1953년 3월에 죽자 2년을 끌던 판문점에서의 휴전회담은 급진전하여 넉달 뒤 휴전이 성립됩니다.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을 쓴 워싱턴 포스트 前 일본 한국특파원 돈 오버도퍼 기자는 최근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판문점에서 공산측이 얼마나 교묘하게 협상전술을 펼쳤는가에 대해서 많은 논의와 논문, 저술이 있었습니다. 최근 러시아에서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휴전협상이 진척되지 않은 것은 판문점의 공산측 대표단의 전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스탈린의 고집 때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휴전에 반대하던 스탈린이 죽자 휴전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탈린이 1950년 초 金日成의 남침계획을 승인한 뒤 毛澤東(모택동)을 남침의 연대보증자로 끌어들이고 소련 군사고문단을 보내 작전계획까지 짜주는 등 적극적으로 전쟁 지도에 나선 이유는 소련의 지배력을 세계적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적인 急所(급소)로서 한반도를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1950년 초 소련은 중공과 우호조약을 체결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2대 강국이 동맹함으로써 세계의 전략균형은 소련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습니다. 더구나 毛澤東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스탈린의 지도자적 역할을 인정하고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소련은 또 1949년 8월9일에 原爆(원폭)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핵무기 독점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스탈린은 金日成이 남침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리란 판단을 하기에 이릅니다. 딘 에치슨 미 국무장관은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지역 방위선에서 제외된다』고 발언했습니다.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은 처음부터 한국을 위해서는 싸우지 않을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했다는 정보도 입수되었습니다. 스탈린은 「트루먼은 중국을 포기한 것과 같이 대만도 포기할 것이다」는 정보판단서도 받고 있었습니다.
  
  스탈린의 장난감이었던 金日成
  
  소련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크렘린의 내막」에 따르면 스탈린은 미국이 일본을 재무장시킬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미-일 해양세력의 교두보가 되어 소련을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남한을 점령하여 後患(후환)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 스탈린의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독재자의 차가운 계산에 의하여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데 역사의 엄숙성이 있습니다. 스탈린의 계산과 金日成의 야망과 毛澤東의 무모함이 빚어낸 한국전쟁은 이 3者에 크나큰 타격을 주어 東西(동서)냉전이 서방의 승리로 귀결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서들은 거의가 이 한국전쟁의 기본성격을 「스탈린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스탈린이 철저하게 관장하고 金日成은 그의 장난감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아울러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었기 때문에 중공이 개입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開戰(개전) 때부터 이미 毛澤東은 한국전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즉, 스탈린은 金日成에게 남침을 허락하면서 毛澤東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했고 만약 毛澤東이 남침에 반대하면 일단 전쟁계획을 보류하도록 지시했습니다. 毛澤東은 金日成의 남침을 지지했고 미군이 개입하면 돕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로써 소련과 중공은 처음부터 6·25전쟁의 연대보증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스탈린은 또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破竹之勢(파죽지세)로 북진하던 1950년 10월12일 金日成에게 전문을 보내 「남은 부대와 함께 소련과 중공 영토로 피하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이때 毛澤東이 중공군을 보내기로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한반도는 통일되었을 것이라고 한 러시아 역사가는 말했다고 합니다. 金日成은 남침으로 이 땅에 외세를 본격적으로 불러들여 한반도의 운명이 스탈린, 毛澤東, 그리고 트루먼의 손에서 요리되도록 하는 기가 막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민족해방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민족속박전쟁을 한 것입니다.
  
  요사이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스탈린의 이 전쟁은 그의 실패작이며 이 전쟁으로써 소련과 국제공산주의의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트루먼이 즉각적인 미군 파병을 결심한 것은 북한의 남침을 소련이 조종한 것이라고 정확히 판단했고 그 목적이 미국의 세력판도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세계제패를 위한 전초전」이란 관점에서 한국전의 성격을 파악한 미국은 본격적인 냉전태세를 갖추고 당장 군비강화로 나가 군사예산을 3배로 증액하게 됩니다. 미국은 또 서독의 재무장을 허용합니다. 나치 독일군대의 고급장교들이 서독군 창건의 주역이 된다는 것은 6·25가 없었더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6·25전쟁, 공산권을 붕괴시킨 계기 제공
  
  미국은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을 때 戰勝國(전승국) 소련을 소외시켰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단독강화 조약 및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습니다. 對蘇(대소)공동전선에 세계의 3대 공업국 미국-독일-일본이 한 덩어리로 엮이어지도록 만든 것이 바로 6·25전쟁이었습니다. 이 공업력과 경제력이 소련권을 겨냥하는 무기들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소련은 군비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전쟁 중에 개시된 이 군비경쟁은 1980년대 말 동구권이 붕괴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스탈린과 金日成은 기습남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은 대만의 공산화를 막고 일본의 경제부흥을 촉진시켰습니다. 毛澤東은 대만 상륙준비를 하고 있던 병력을 한국에 투입했습니다. 미국은 대만을 중공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전이 터지자 즉각 7함대를 대만해협에 보내, 대만보호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반도에서 있었던 5백만의 인명피해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인명피해는 서방세계가 국제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니까요. 문제는 인명피해에 따른 보상을 못받고 있는 남북한입니다.
  
  남북한 7천만 주민들은 그 피해보상을 金日成-金正日 부자에게 청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金日成에겐 한국전의 책임을, 그 아들에겐 3백만 餓死(아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는 민족사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보다도 훨씬 더 不正義(부정의)한 역사가 될 것입니다. 창간 19주년 기념호에서 저희들이 「민족의 체험」 6·25전쟁 재조명 연재를 시작하고 金正日에 대한 사법처리 및 국제수배의 가능성을 법률적으로 검토해본 것도 역사와 正義의 관계에 대한 탐구일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公私間(공사간)의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는 데는 金日成 부자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출발점이 됩니다. 이 평가가 잘못되어버리면 역사관, 인생관, 국가관도 헝클어져버리고 한 시민으로서, 또 한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곤란을 겪게 됩니다.
  
  민족사의 이단
  
  1. 민족사적 관점: 金父子는 민족사의 이단세력입니다. 金日成 家系史(가계사)로써 민족사를 대체하는 교육을 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계급투쟁설로써 애국심과 효도심도 파괴했으므로 傳來(전래)의 미풍양속을 해친 이단입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범 金賢姬(김현희)는 『북한에선 히즈 스토리(His Story)를 가르치고 남한은 히스토리(History)를 가르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2. 세계사적 관점: 金父子는 북한을 노예사회로 후퇴시켰습니다. 인류 역사가 노예사회 - 봉건사회 - 자본주의 사회의 단계로 발전해 왔으므로 金日成-金正日은 역사발전의 흐름을 두 단계나 거슬러간 守舊(수구), 反動(반동)세력인 것입니다.
  
  3. 법률적 관점: 두 사람은 국내 보안법으로는 반국가단체의 수괴요 국제법 정신으로는 히틀러와 같은 反(반)인류범죄자이며 마약재배 및 밀매·납치·살인·항공테러에 정부기관을 개입시키는 범죄단체 조직의 주모자들입니다.
  
  4. 종교적 관점: 두 사람은 신흥광신종교의 敎主(교주)입니다.
  
  5. 과학적 관점: 두 사람은 선동과 미신을 동원, 인간의 증오심을 극대화시키고 합리성과 양심을 마비키시는 反과학의 기수입니다.
  
  6. 정치행태학적 관점: 두 사람은 일찍이 申相玉(신상옥) 감독이 간파했던 대로 윤리와 법치가 안통하는 마적단 수준의 의식을 가진 지배집단의 수령일 뿐입니다.
  
  7. 인종적 관점: 反黨(반당) 인사들을 반동이라 하여 전혀 별개의 인종으로 구분, 멸종대상으로 삼는 反인류범죄자입니다.
  
  8. 의학적 관점: 북한 사람들은 체질인류학적으로 남한 사람들보다도 평균 체격이 다소 컸습니다. 일제시대 때의 조사에 따르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체격이 작아집니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의 평균 신장과 평균 체중은 장기간의 영양실조로 남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작고 가벼워졌습니다. 知的(지적) 능력의 저하는 물론입니다. 金日成 부자는, 바로잡는 데 몇 세기가 걸릴지 모르는 민족의 열등화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9. 언어학적 관점: 둘은 독재를 민주로, 수구를 진보로, 남침을 북침으로 표현하는 등 거짓과 진실을 거꾸로 놓는 언어 선동술로써 우리 민족의 사고방식과 의식에 심대한 혼란을 끼친 자들입니다.
  
  10. 전쟁학적 관점: 6·25남침 이외에도 선전포고의 조건이 되는 文世光(문세광)에 의한 陸英修(육영수) 암살 사건, 아웅산 폭파사건 등을 저지른 전범들입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 순간부터…
  
  이렇게 규정되는 金正日 정권이 이미 붕괴단계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달 月刊朝鮮에 실린 여러 기사들은 실증적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골수노동당원 출신 교수가 인육을 사먹어야 하는 사회가 再生(재생)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북한의 붕괴가 삼풍아파트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수 십년간의 진화과정 속에서 틀이 잡힌 체제는 무너지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북한은 지금 붕괴단계에 확실하게 접어들었고 남은 문제는 붕괴에 걸리는 시간일 뿐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의 경제가 좋아지고 개혁·개방이 성공해서 생활수준이 올라간 다음에 통일되어야 자신의 호주머니 돈이 덜 줄어들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식의 통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 회사의 인수합병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회사는 계산해서 손해본다고 판단되면 인수를 거부할 수 있지만 민족통일의 문제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신라가 계산에 밝았더라면 백제를 점령한 다음 통일전쟁을 중단했을 것입니다. 신라 지도부가 계산에 밝았다면 고구려까지 점령한 다음 당나라와 결전을 벌이는 바보 같은 짓은 더더구나 하지 않았을 것이고 편한 종속의 길을 선택, 당의 식민지 또는 중국의 한 省(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모한 것 같아 보이는 신라의 우직한 선택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민족통일국가와 국토를 만들어냈습니다. 공짜 통일을 기대하는 이기주의나 위선적 평화론은 영구분단의 논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6백만의 동포들을 살육한 金日成 부자의 북한을 국가가 아닌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우리 헌법의 정신은 고귀한 正義感(정의감)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헌법정신은 우리 公民(공민)윤리의 출발점입니다. 범죄단체, 마적단, 신흥종교집단의 수준밖에 안되는 북한을 국가로 대접하는 것은 국제법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국가는 나름대로의 윤리를 가져야 하며 국제사회에서 그 윤리가 공인되어야 합니다. 모든 조건에서 국가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요사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에 따라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손질을 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남북한 국가연합」이란 말도 나돕니다.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6백만 동포의 학살자 두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되며 평화공존의 미명하에서 영구분단의 길을 열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 동포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가 무슨 수로 외국인 북한에 개입할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국어사전을 고쳐 正義란 단어를 달리 定義(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이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의 조선 정책을 견지하면서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그런 발상을 한다면 이건 코미디가 됩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히틀러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는 것만큼이나 웃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金日成-金正日은 히틀러보다도 더 저질의 학살자라고 생각합니다. 히틀러는 최소한 동족을 살육하지는 않았고 부패하지도 않았으며 제3제국과 운명을 같이 할 정도의 양식을 가졌으니까요.
  
  요사이 농담처럼 떠도는 金大中-金正日 노벨평화상 공동수상론은 그누구보다도 우리의 金대통령에 대한 크나큰 모욕일 것입니다. 냉전체제 下(하)에서 헛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적과 동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인 6백만 학살 집단」과의 대화는 전쟁을 막는 차원에서, 그리고 그 집단을 해체·붕괴시키는 목적下에서만 正義로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4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6: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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