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기자의 몽골벨트 취재보고(1)-징기즈칸이 닦은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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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기자의 몽골벨트 취재보고(1) - 징기스칸이 닦은 길을 야성의 한국인들이 달린다
  
  세계를 제패한 몽골-투르크系의 독특한 조직과 제도 : 전투는 무자비하게, 통치는 너그럽게 / 타이밍과 기동성을 최우선시 / 孝와 의리에 바탕을 둔 끈끈한 인간관계
  징기스칸의 우수한 시스팀과 몽골人의 기질을 한국식으로 구현하고 있는 大宇의 기업文化
  몽골 벨트內의 몽골―투르크系 민족과 한국 교포(고려인 등)는 한국 기업진출의 교두보
  [草原+말+지도력]이 세계사에 창조적 파괴의 충격을 가한 몽골人의 파워 베이스
  4천년∼2천년 前에 바이칼 호수근방→한반도 민족 이동설
  지도를 거꾸로 놓고 北方 유목민족의 시각에서 남방 농경 민족의 역사를 보자, 누가 역사의 主人公인가
  
  中國 신강―西安―몽골―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터키―東유럽의 유라시아 大草原 몽골 문화권을 가다
  
  <1996년 7월 월간조선>
  
   1. 제3의 공간
  
   북방 초원(草原)의 시각으로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시아-유럽의 지도를 거꾸로 돌려놓고 북쪽에서 남쪽을 내려다본다. 한반도나 중국쪽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는 농경민족의 시각은 잠시 접어두고, 북방 유목민족의 시각에서 보자는 것이다. 왼쪽 끝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만주-몽골-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카스피海-터키(또는 카스피해-헝가리)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평원. 넘을 수 없는 산맥도 바다도 없는 이 북방 草原은 활처럼 원호를 이루고 있다. 중국·인도·이란 같은 농경국가는 이 원호의 품속에 들어온다. 왼손을 초원의 극동(極東)인 한반도, 오른손을 극서(極西)인 터키에 놓으면 남쪽의 농경 문명권은 유목민족의 사정권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초원의 주인이었던 유목·기마 민족의 시각에?농경사회는 먹음직하기?하지만 경멸할 만한 후진사회였다.
  
  양떼를 거느리며 말을 타고 광활한 초원을 내닫는 주체적 삶과 땅의 붙박이가 되어 하늘의 조화에 운명을 맡긴 채 매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농경사회의 종속적 삶. 유목민족 문화권에선 중국의 전제 왕조 같은 압제가 불가능했다. 그런 전제 군주가 나타나면 말 타고 떠나버리면 되는 것이다. 유목민족 국가는 농경 전제국가보다는 항상 내부적으로는 보다 자유로웠고 대외적(對外的)으로는 개방적·관용적이었다. 다만 전투에 있어서는 철저하고 무자비했다. 항복하면 살려줄 뿐만 아니라 포용했고 저항하면 몰살. 그것은 초원의 법이요 윤리였다. 전쟁·군사 문제는 엄정하게, 통치는 너그럽게―이것이 [야만적]인 유목민족이 세계적인 대제국을 잇따라 건설하여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림 P597, 서기 750년경의 유라시아대륙(분열된 동·서 돌궐 중 西突厥은 투르크族의 원류가 되어 西進하기 시작한다)스캔 삽입>
  
   기마군단은 帝國 제조창
  
  농경민족에 대한 그들의 우월성은 말에서 나왔다. 草原과 말의 결합이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몽골에서 헝가리까지 말을 달리면 수 개월만이면 도착한다. 민족과 군대의 이동이 지구상에서 가장 신속할 수 있는 ?嚥【?몽골-중국 북부-중앙아시아-中東에선 수많은 왕조·제국·민족·종교가 명멸한 역동적(力動的)인 역사가 펼쳐지게 되었다. 말을 맨 처음 전쟁에 사용한 것도 유라시아 草原의 전사(戰士)들이었다. 인간의 체력에 동물의 체력이 보태지면서 기마군단의 파괴력은 비약적으로 증대하였다.
  
  그 기마군단의 전술 발전 곡선이 피크에 도달한 곳에 징기스칸이 있었다. 몽골-투르크系 유목민족은 [군사=경제] 조직이었다. 평화시에는 유목으로 생활하고 전시에는 기마군단으로 변했다. 평시에는 목동의 말, 전시엔 전사의 말이 된다. 전투병력과 보급부대의 구별이 따로 없었고, 부족 전체가 기마군대의 뒤를 따랐기 때문에, 전·후방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 평시·전시, 군·민간, 전투부대와 보급부대, 전투원과 가족이 뒤섞이면서 한 덩어리가 된 데서 엄청난 기동력·동원력, 그리고 효율성이 생겨났다.
  
  이런 조직과 시스팀을 바탕으로 한 유목민족은 [움직이는 국가]였다. 그 국가는 군대 속의 국가였다. 기마군단이 대제국의 모태였지 국가가 서고 군대가 조직된 게 아니었다. 몽골系에 속했던 투르크族은, 몽골고원을 떠나 서진(西進)하면서 서돌궐(西突厥), 호레즘, 셀주크터키, 티무르제국(중앙아시아), 무갈제국(인도), 맘루크王朝(이집트), 오스만 터키 등 세계적 제국을 잇따라 역사 속에 세웠고, 동쪽에 남은 몽골系는 북위(北魏), 위구르, 징기스칸 세계제국, 元, 淸제국을 건설하였다.
  
  유목민족국가의 역사를 이해하기가 힘든 것은 이런 유동성 때문이다. 유동하고 이동하는 것은 민족뿐이 아니었다. 국가도 왕조도 종교도 이념도 그리고 인종 그 자체도 변했다. 투르크(영어로는 터키)라는 표기법의 원천이 된 돌궐(突厥)제국(서기 6∼7세기)의 투르크 민족은 우리 같은 몽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선주(先住)정착 이란系 백인종과 혼혈하여 지금은 몽골의 얼굴과 반점까지도 잃어버리고 회교화되었으며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취재로 몽골인의 심장까지 버린 것은 아님을 확인했지만….
  
   세계사의 理와 氣
  
  유라시아 草原의 영원한 패자(覇者)였던 몽골-투르크系 유목민족이 건설한 대제국은 세계사의 3大 파워 그룹을 형성했다. 그리스-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스-독일-영국-미국系 문화, 중국의 한족(漢族)문화, 그리고 흉노-북위(北魏)-東돌궐-위구르-요(遼)-金-몽골제국-元-淸으로 이어지는 東몽골系 제국 및 西돌궐-호레즘-티무르제국-셀주크 터키-오스만 터키로 연속되는 西몽골系(투르크族)의 草原제국. 20세기초까지 아시아 대륙의 동과 서에는 몽골계 유목민족이 세운 淸과 오스만 터키 제국이 생존해 있었다. 15∼16세기 러시아의 건국과정은 몽골 지배자로부터의 독립과정에 다름 아니다.
  
  지난 年初 워싱턴 포스트紙가 징기스칸을 세계사의 1등 인물로 꼽은 것은 동서양을 관통하면서 건설한 몽골제국이 동서양 문화를 섞고 교류시킴으로써 그 뒤의 세계사 흐름을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몽골族은 세계사의 창조적 파괴자로 존재했고, 농경사회를 항상 긴장시켜 발전하도록 도왔다(문명의 발전은 도전에서 나오므로). 그리스-로마와 중화(中華)문화가 세계사의 이(理)라면 몽골은 기(氣)였다.
  
   한반도의 中華化
  
  남쪽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는 지도 읽기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중화적 세계관인 주자학(朱子學)의 가치관과 서구 역사 학자들의 시각에 세뇌되어 북방 초원을 중국 역사의 부속물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중국이나 서구는 유목민족의 피해를 많이 본 쪽이고 그들의 역사관은 피해자의 역사관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몽골에서 이동해온 北方 기마민족의 후예이면서도 몽골 역사와 문화를 몽골인의 눈이 아닌 피해자의 시각에서 보아왔다는 얘기다. 많은 고분 발굴품은 통일신라 때까지 우리의 조상들은 기마민족의 야성을 유지하면서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었음을 가르쳐준다.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의 원동력도 유목-기마문화의 특징인 야성·개방·관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통일신라 이후 본격화된 유교사상과 중국 제도의 유입은 한국 민족의 의식과 제도를 중국화시켜갔다. 그 과정에서 몽골的 전통, 즉 한국인의 원초적 기질과 단절되었다. 그것은 북방초원 문화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특성―야성과 개방성의 상실을 의미했다. 1천년 이상 계속된 中華化 과정의 끝은, 自力에 의한 근대화의 실패와 식민지化였다. 해방 후 한국의 발전은 탈중화(脫中華)·탈주자학(脫朱子學)의 의미와 함께 해양 문화에의 편입이란 의미를 지닌다. 해양文化도 야성과 개방을 속성으로 하고 있어 바다의 유목文化라 할 만하다. 中華化에 의하여 야성과 개방성을 상실한 한민족이 해양화에 의하여 민족의 원형과 본능과 저력을 되찾았다는 것이 세계가 경악하는 한민족의 에너지 대폭발의 본질인 것이다.
  
   한민족 제3의 길
  
  한국-터키, 또는 한국-헝가리의 몽골문화권(文化圈). [몽골벨트]라고 부를 만한 이 지역은 역사·언어·문화·인종적으로 한국과 통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최근 세계경영을 앞세운 야성의 한국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징기스칸이 닦은 길을 한국기업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우리 민족에게 제3의 길, 제3의 공간이 될 것인가. 중국에의 길, 서구에의 길에 이은 북방 초원에의 길.
  
  이 세 가지 길을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관리·조종·활용할 수 있을 때 한국민의 활동 공간은 확대되고 중국과 미국에의 종속은 해방되며 우리의 자주성(自主性)은 강화될 것이다. 이 취재는 따라서 몽골 인종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국인의 눈으로 본 유목-기마 민족의 어제와 오늘이며, 환도처럼 생긴 몽고벨트의 칼손잡이 부분을 쥐고 있는 한국과 개발을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 지역 국가들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수 천년 前 동서로 헤어졌던 몽골系와 투르크系의 연결점을 찾는 여행이기도 한 것이다.
  
  7천만 한민족의 일원으로 보는 역사보다, 약 4억人에 이르는 몽골(투르크)系의 일원으로 보는 세계사는 훨씬 장대·풍성·광활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신강성을 향해 출발했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6: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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