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로마] 신라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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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세계 최강의 제국 唐軍(당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하여 한민족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왕의 諡號(시호:왕이 죽은 뒤 짓는 이름)는 文武王(문무왕)입니다. 文武의 德(덕)을 함께 갖춘 왕이란 뜻입니다.
  
  흔히 文武兼全(겸전)이란 말을 씁니다. 文武를 두루 갖추어야 온전한 인격, 즉 균형감각과 교양을 갖춘 인물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文武王이란 작명에는 이보다 더 큰 암호가 들어 있습니다.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바로 文武겸전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3국 중 가장 미개했고 왜소했던 신라가 놀라운 주체성과 외교 군사 정신력으로써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들은 文武 두 部類(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眞興王(진흥왕), 眞平王(진평왕), 金春秋(김춘추), 金庾信(김유신), 官昌(관창)으로 상징되는 武의 인물들은 주로 軍事(군사)와 권력을 통해서 통일에 이바지했습니다. 圓光(원광), 元曉(원효), 强首(강수), 金仁問(김인문) 같은 文의 사람들은 종교, 문장력, 그리고 외교술로써 봉사한 경우입니다.
  
  신라 護國(호국)불교의 元祖(원조)는 세속5계를 지은 圓光법사입니다. 세속 5계 중의 마지막 항목 「殺生有擇(살생유택)」이란 말은 살생을 엄금하는 불교와 배치되는 이야기입니다. 圓光도 국가의 요구와 종교인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 고민 끝에 나온 말이 殺生有擇일 것입니다.
  
  3國이 생존권을 걸고 피를 피로 씻는 戰國(전국)시대를 연출하던 당시였습니다. 圓光은 국가에 의한 殺生은 必要惡(필요악)이라고 보았지만 「살생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뜻에서 「有擇」, 즉 「가려서 죽여라」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와 종교, 권력과 양심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의 産物(산물)인 동시에 대단한 先覺(선각)의 경지입니다. 護國 불교는 단순히 불교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런 불교라면 어용불교라 불려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殺生을 불교의 有擇으로 견제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殺生有擇의 가치관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신라 護國 불교는 국가와 종교의 이상적인 관계설정에 대한 모범입니다.
  
  元曉(원효)는 3국 통일전쟁에 從軍(종군)하여 전쟁의 비참함과 국가의 비정함을 체험하였습니다. 그의 和諍(화쟁)사상은 통일전쟁으로 갈라지고 찢겨진 민중을 쓰다듬고 한 민족으로 아우르는 큰 보자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종교가 국가의 한계를 보완한 것으로 殺生有擇 정신과 통합니다. 3국 시대엔 同族(동족) 의식이 없었습니다. 백제가 倭(왜)의 군대와 연합하여 신라를 치고, 신라가 唐의 힘을 빌어와 백제 고구려를 친 것을 가지고 「민족반역」이라 욕하는 것은 세종대왕을 「反(반)민주」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민족이란 동족의식이 생겨난 것은 신라에 의한 통일이 자주적이고 포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라는 백제 고구려 亡國民(망국민)을 노예로 삼지 않았습니다. 통일신라는 약간의 차별은 두었지만 두 망국민들을 관리로 등용하였습니다. 신라는 또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唐과 싸울 때는 고구려 遺民(유민)과 연합하였습니다. 신라가 백제 고구려 사람들을 被정복민으로 차별했더라면 동족의식은 우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일부 지식인들은 오늘날의 지역감정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려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反(반)역사적인 선동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백제, 고구려 후손이 아니라 통일신라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사람들은 삼국통일이란 용광로에서 녹아 한민족으로 재탄생했던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金大中(김대중) 대통령과 金鍾泌(김종필) 국무총리입니다. 한 사람은 백제의 수도였던 곳, 다른 한 사람은 후백제의 영토였던 데서 태어났지만 金海金氏입니다. 신라통일의 元勳(원훈) 金庾信이 바로 김해김씨가 아닙니까. 金庾信은 또 충북 진천 땅에서 태어났으니 충청도 사람이기도 합니다.
  
  신라통일에 의하여 비로소 우리 선조들은 같은 역사, 같은 언어, 같은 국토, 같은 문화, 같은 관습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동족의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동족의식은 불완전한 것이었기에 그 뒤에도 여러 번 도전을 받았습니다. 後三國의 분열이란 도전은 高麗(고려)에 의한 재통일로 수습되었고 朝鮮의 亡國(망국)은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으로 부분적으로 극복되었습니다만 分斷(분단)이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신라는 文武의 조화, 권력과 종교의 통합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自主와 개방의 조화도 이룬 나라입니다. 통일신라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은 「외세를 빌어와서 同族國을 멸망시켰다」는 억지논리일 것입니다. 신라는 「세계 최대의 제국과 손잡고 두 적대국을 멸망시킨 다음 그 제국이 자기까지 먹으려 하자 8년간에 걸친 抗戰(항전)을 통해서 독립을 쟁취한 위대한 나라」입니다.
  
  요사이 식으로 비유한다면 남미의 페루가 미국의 힘을 빌어 이웃나라를 통합한 다음 다시 그 미국과 결전하여 독립을 쟁취한 것과 같은 偉業(위업)입니다. 더구나 당시의 唐은 중국 역사상 최강의 제국에다가 최전성기였습니다. 당이 신라에게 당한 것을 얼마나 분하게 여겼는지는 한반도에서 축출된 뒤 근 30년간 신라-당의 국교가 단절상태에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는 能屈能伸(능굴능신)하는 외교로써 唐의 힘을 비는 과감한 개방성을 보이면서도 국가의 자존과 自主를 위해서는 민족의 운명을 건 일대 결전을 사양하지 않는 주체성을 지켜냈습니다. 개방과 자주의 양면성을, 국익을 위해서 절묘하게 조화시킨 점에서 신라의 간단치 않은 위엄이 있었습니다. 唐의 명장 蘇定方(소정방)이 백제 원정을 마치고 돌아가 唐高宗에게 귀국신고를 하면서 신라마저 치지 못한 이유를 댔는데 그 말은 세계제국이 자존심 강한 신라에게 바치는 존경어린 칭송이기도 했습니다
  
  『신라는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모시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받들기를 父兄(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아도 함부로 도모할 수 없었습니다』
  
  개방과 자주의 공존은 문화적으로 풀면 관용과 엄격의 조화가 됩니다. 화랑도의 엄격한 武士道와 공예품이나 鄕歌(향가)에 나타나고 있는 너그러움과 활달함(徐廷柱의 시에 나타나는 신라정신이기도 하다)의 대조. 花郞世記 필사본에서 드러난 지배층의 놀라운 性的 개방성과 국가적 명예심의 대조. 이런 양면성이 신라 사회와 문화를 화려하면서도 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신라는 理(리)와 氣(기), 知性(지성)과 野性(야성)을 兼全한 나라였지요.
  
  文武, 국가와 종교, 개방과 자주, 엄격과 관용 이런 양면성을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나라는 대충 일류국가가 됩니다. 로마, 베니스, 영국, 미국, 그리고 신라가 그런 나라들이었습니다. 세계사에서 1천년 이상 계속된 국가는 세 나라뿐인데 로마, 베니스, 신라입니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이 바로 相剋(상극)하는 요소들을 통합, 조정, 승화시키는 「열린 주체성」이었습니다. 문무겸전, 국가와 종교의 조화, 자주와 개방의 균형은 바로 일류국가의 조건이자 원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21세기에 일류국가 건설을 지향한다면 우리 민족사 속의 유일한 일류국가 신라를 연구하여야 합니다. 민족사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인 신라통일의 의미를 가상 시나리오에 불과한 「고구려 통일론」이나 소아병적인 「외세의존통일론」으로 훼손시키는 것은 민족에 대한 자해행위일 것입니다. 신라의 일류성은 우리가 다시 일류국가를 건설하고자 할 때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오늘과 미래의 자원이자 에너지입니다. 역사에 대한 위선적이고 자학적인 자세는 바로 이런 자원을 고갈시키는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신라의 한반도 통일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놓인 한반도는 이곳의 주인공들이 약하고 분열되어 있을 때는 戰場(전장), 그것도 國際戰場으로 화했습니다. 삼국이 분열해 서로 싸우니 隨(수), 唐, 倭가 한반도에 개입했습니다. 삼국통일 전쟁 때 唐軍이 온 것만 가지고 신라의 외세의존 운운하는 사람들은 倭가 대함대를 보내 백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한 사실은 애써 외면합니다.
  
  이때 왜가 백제 구원병으로 보낸 함대는 4백여 척에 약 3만의 대병력이었습니다. 16세기에 영국 해군에게 격멸당한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그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왜의 원정함대는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당과 신라군의 합동작전에 의해서 전멸됩니다. 이 사례를 가지고 백제를 親日이라 욕하는 것은 신라를 親中이라 비난하는 것과 똑같은 역사에 대한 오해에 속할 것입니다.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니 몽골제국은 한반도를 발판으로 하여 사상 최대 규모의 일본 상륙작전을 펼쳤습니다. 두 차례의 이 원정에는 몽골, 고려, 그리고 漢族 병사들이 다국적군으로 참여했습니다. 임진왜란도 조선, 일본, 明(명)이 참전한 국제전이었고 그 후유증으로 明은 망해버렸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도 약화된 한반도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벌인 국제전쟁이었습니다. 6·25전쟁도 한반도의 분열이 빚어낸 국제전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있었던 이 여섯 번의 국제전쟁으로 우리 조상들은 魚肉(어육)이 되는 참화를 당했을 뿐 아니라 이웃나라와 우방국의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약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평화가 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통일은 한반도를 안정시킴으로써 그 뒤 수백년간 동아시아에 큰 전쟁이 없도록 만들었고 그 평화 속에서 韓·日·中이 공존공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요사이 표현대로라면 국제적인 인권향상과 평화증진에 기여한 셈이고 金庾信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인물이란 뜻입니다. 민족사를 제대로 보고 긍정할 때는 이처럼 감동과 재미, 그리고 상상력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5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6: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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