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노래 음악 같은 정치는 불가능한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이번 月刊朝鮮(월간조선)에는 盧泰愚(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성증언이 실린 60분짜리 녹음 테이프가 부록으로 붙어 있습니다. 이 테이프 맨 앞에는 盧 전 대통령이 퇴임직전 불러 취입한 자신의 애창곡인 멕시코 유행가 「베사메 무초」가 실려 있습니다. 盧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이 녹음을 듣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그의 노래 실력에 대한 채점은 아마 비슷하게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부른 노래가 이런 식으로 공개되는 것도 처음입니다. 고(故) 朴正熙 대통령도 「나의 조국」 같은 장중한 노래를 작곡하고 「짝사랑」 같은 유행가를 잘 불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증거물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의 노래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노래를 취입하여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라 하여 당시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실천 시대를 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노래가 이런 식으로 공개된 것은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도 노래 실력이 세다고 합니다. 1987년 6월17일 청와대에서는 차기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盧泰愚(노태우)당시 대표를 격려하는 會食(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全대통령은 盧泰愚 후보와 함께 「김삿갓」을 불렀습니다. 이 모임을 기록한 金聲翊(김성익) 통치사료담당관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고 합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떠나가는 전삿갓/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전삿갓/
  전삿갓은 떠나고 노삿갓이 들어오는 거다

  
  全斗煥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애창곡인 「사나이 맹세」도 불렀습니다. 가사가 아주 옛스럽고 비장합니다.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소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는/
  폭풍이 어이 없으랴/
  푸르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 안고/
  떠나온 정든 고향을/
  내 다시 돌아갈 때/
  열 굽이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보리라

  
  全대통령의 공사석에 배석해왔던 金聲翊씨에 따르면 「대통령의 노래는 굵은 목소리와 정확한 박자와 음정, 그리고 기교를 부리지 않는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全斗煥 대통령은 「흘러간 대중가요를 부를 때도 국가원수의 노래로서의 품격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나이의 맹세」는 조용필씨가 취입한 음반에서는 노래 제목이 「사나이 결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친오빠 이봉룡(작고)씨가 작곡, 유호씨가 작사한 노래입니다. 1946년인가 47년인가에 이난영씨의 남편인 남인수씨가 불러 자신이 경영하던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全斗煥 전 대통령의 인간성과 어울리는 멜로디와 가사라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전, 현직 대통령 여덟 분 가운데 두 분(朴正熙, 盧泰愚)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적이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노래를 좋아하고 또 잘 부르는 민족은 西歐(서구)에선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라틴계통이고 동양에서는 한국 일본 등 몽골계통인 것 같습니다. 미주대륙에서는 단연 멕시코 사람들이 노래에 소질이 있습니다. 멕시코 국민은 동서양의 노래 대표선수들격인 몽골계통 인디언과 라틴계통 스페인 사람들의 피가 섞인 경우이니 더 말할 것이 없겠습니다.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 같은 여자 가수들은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한국인의 노래 실력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수미씨가 부른 우리 가곡은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우리의 歌曲(가곡)을 부러워 합니다. 음악과 詩(시)의 만남인 이 가곡과 같은 장르를 갖지 못한 일본인들에게는 「그리운 금강산」이나 「수선화」 「가고파」와 같은 격조 높은 노래가 하나의 驚異(경이)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탄생하여 애창곡이 된 「목련화」(金東振 작곡) 이후 많은 신작 가곡이 만들어졌지만 지난 20여년간 국민들의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새로운 가곡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감수성, 그 가장 아름다운 면을 담고 있는 歌曲의 생명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후천적인 音痴(음치)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同病相憐(동병상련)의 심정에서 음치의 원인에 대해서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음치들이 『국민학교 시절 내가 난생 처음 노래를 불렀을 때 우리 선생님이 친구들이 있는 데서 창피를 주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노래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의 사소한 질책이 노래에 대한 마음 문을 닫게 했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 자존심을 상하게 한 어른의 말 한 마디가 평생 가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 미국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2년 전 미국에서 만난 한 50代(대) 여인은 『내 아버님이 음치셨다. 어릴 적에 우리 형제들이 집안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다. 그러다가 나도 음치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로 음치를 톤 데프(Tone-deaf)라고 합니다. 음정 귀머거리란 뜻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음치를 「귀명창」이라 해주었습니다. 비록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노래를 감상하는 실력만은 명창급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이 정도의 여유가 있는 나라이니 가수급 국민들이 많이 배출되고 그 가운데 한 분이 盧泰愚 전 대통령이란 것을 月刊朝鮮 독자들은 이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2년 전 하버드 대학에서 연수를 하던 도중 미국인 기자들과 함께 보스턴의 노래방(물론 이 도시의 노래방은 전부가 한국인 교포들이 주인입니다)에 간 적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동료 기자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노래방에서 이들이 부르는 것을 들으니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잘 부르는데 평소엔 왜 노래를 두려워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한 미국 기자가 대답하기를 『우리는 노래를 듣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노래 부르기는 전문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습니다. 한 친구가 「마이 웨이」(폴 앵커가 편곡하고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름)를 먼저 불렀습니다. 저는 『내 노래가 하나 빼앗겼다』고 속으로 아쉬워했습니다. 저의 옆자리에 앉았던 다른 친구는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 曹構?자주 다니는데 일주일에 세 번은 저 지겨운 마이 웨이를 들어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제가 피나는 노력으로 음치를 면할 무렵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택시 안에서 제가 그때 한창 연습중이던 「마이 웨이」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택시 운전사가 반갑게 뒤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손님, 교회 다니십니까』
  『요사이는 잘 안 나가는데요. 그런데 왜 묻지요?』
  『찬송가를 부르시길래 그랬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거든요』
  
  그 시절 제가 건방지게도 「마이 웨이」를 18번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모자라는 실력으로써 노래를 부른 뒤 박수를 받는 요령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가사가 긴 노래를 부른다. 3절 이상인 가사를 다 외운다는 誠意(성의)가 일단 청중을 감동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이 3절이란 것도 이 무렵 안 사실입니다. 둘째는 노래가 드라마틱하게 끝나는 곡을 골라야 한다. 바로 「마이 웨이」 같은 노래이지요. 술은 첫물에 취하고 사람은 끝물에 취한다고 합니다만 노래도 끝물이 좋아야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노래는 그런데 매우 정치적인(때로는 선동적인) 예술입니다. 「조국찬가」(김동진 작곡)를 부를 때 용솟음치는 감동은 애국심에 가장 가까운 것이고, 최루탄 가스 자욱한 거리에서 울려퍼지던 「아침이슬」과 「상록수」는 살벌한 時局(시국)에 서정성을 부여했으며, 「비목」의 애잔함과 「그리운 금강산」의 장엄함은 분단된 조국의 상황을 가슴에 담게 합니다. 연변지역을 통해 북한에 밀반입되어 북한인의 삭막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사랑의 미로」는 햇볕정책 이전에 이미 북녘의 뒷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노래는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들을 이어주고 엮어줍니다. 노래를 함께 부를 때 우리는 동류의식, 소속감, 자신감, 그리고 편안함을 느낍니다.
  
  저는 이런 空想(공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2000년 8월15일 한국인들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高聲(고성)을 한번 질러 본다. 광복 55주년 기념행사로서 4천5백만의 대합창을 벌인다. 서울시민은 한강 고수부지에 집결하고 부산시민은 해운대 백사장에, 대구시민은 달성공원에…. 전국의 교향악단들이 지방별로 총동원된다. 한강에 배를 띄우고 거기에서 국립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고수부지에 모인 수십만 명이 노래를 부른다. 텔레비전은 이를 전국에 중계하고 집집마다 모인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따라 부른다.
  
  이날 부를 노래 곡목은 언론을 통해서 미리 공개하여(예컨대 가곡 10곡, 가요 10곡) 국민들이 사전에 목청운동을 해두도록 한다. 이 순간만은 온 국민, 그리고 우리 해외 방송을 듣고 있을 세계 도처의 교포들과 몰래 방송을 듣고 있을 북한 주민들이 하나가 된다. 한반도를 들었다가 놓게 될 이 高聲放歌(고성방가)를 녹음하여 全(전)세계로 판매한다. 그 노래는 나의 목소리이며 동시에 우리의 목소리이다.
  
  전국을 거대한 노래방으로 변모시킬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엔 적어도 며칠간 우리 정치판도 조용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노래를 부른 사이」라는 동지애가 우리 사회를 약간은 밝게, 그리고 약간은 가깝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네 전직 대통령들의 합창 프로를 하나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곡목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어떨까요. 긴 편지를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1999년 6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6: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