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3백만의 죽음에 대한 「세계적 인권지도자」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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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朝鮮(월간조선)은 아마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잡지일 것입니다. 외국인들에게 저는 가끔 「月刊朝鮮을 가지고 다니면 베개로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란 농담도 합니다. 한 달에 편집장으로서 제가 校閱(교열) 監修(감수)해야 하는 원고량은 대강 4천 장(2백자 원고지)이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고치고 하다가 보면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잘 쓴 글을 접했을 때의 쾌감이 그런 기억을 간단히 날려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역시 글이란 위대한 힘을 갖고 있구나」 하면서 재주도 없는 사람이 記者(기자)란 직업 하나는 참으로 잘 선택했다고 만족합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글 가운데 가슴이 뭉클해진 대목은 지난 6월호에 실렸던 「주체사상 이론가-북한 혁명가 金永煥(김강철)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 金永煥씨의 이런 말이었습니다.
  
  『2천만 북한 인민의 끔찍한 현실을 보고도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피와 눈물이 메마른 사람이요, 무엇이 先이고 무엇이 後인지 분간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달치 月刊朝鮮을 만들면서도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句節(구절)을 발견했습니다. 「학생운동의 대변혁 예고-全南·全北 지역 대학총학생회의 북한인권운동 선언!」에 나오는 몇 문장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기사의 공통점은 한때 親北(친북)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路線(노선)을 철저히 비판·반성한 바탕에서 金正日 정권 타도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제가 느낀 감동은 이들이 한 말 자체보다도 그런 정직한 반성과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을까 하는 想像(상상)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생애를 걸 만하다고 확신한 이념을 위하여 젊음을 바쳤고, 그 소신으로 감옥에 가고 숨어다닌 사람들이 그런 희생과 열정의 의미를 상당 부분 무효화시키는 자기부정은 지식인으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결단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과오를 알면서도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詭辯(궤변)과 명분론을 개발하게 됩니다. 이런 변명은 너무 빨리 변하는 사회 현상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들통이 나게 되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지어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세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역사의 落伍者(낙오자)들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란 유령이 배회했던 나라에서는 유령이 사라진 뒤에도 「뿌리가 잘린」 사람들은 살아 남아서 메아리가 없는 허무한 言辭(언사)를 弄(농)하다가 아까운 生(생)을 마쳤습니다. 시대와 세상이 우둔하여 이런 인물들이 當代(당대)에는 수모를 당하지 않은 경우엔 死後에 격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의 親北 지식인들은 후세에는 親日 지식인들보다 더 심한 비판을 받을 것이 확실합니다
  
  소수의 前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誤判(오판)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다음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이 새로운 삶은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삶이 아닙니다. 과거의 過誤(과오)를 인정하고 수용한 삶이기 때문에 과거와 일체가 된 「뿌리 있는 삶」인 것입니다. 과거를 반성함으로써 그 과거의 경험-비록 그것이 과오였지만-을 逸失(일실)시키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 품고 가기 때문에 이런 인물들은 오히려 「그런 과거 때문에」 더 위대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런 인물을 꼽으라면 朴正熙(박정희)가 떠오릅니다.
  
  朴正熙는 해방 후 사상혼란기에 한때 軍內(군내)의 南勞黨(남로당) 조직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朴正熙의 생애에 있어서 이 공산주의 체험은 큰 시련이었지만 큰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金日成(김일성)과 대결하는 국면에서 공산주의 전략 전술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 바탕에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북한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얼마나 깊은 省察(성찰)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1976년 1월24일 국방부를 순시한 자리에서 朴대통령은 원고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對北觀(대북관)을 피력합니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논리를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공산당은 우리의 긴 역사와 문화 전통을 부정하고 달려드는 집단이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만이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이다, 하는 점에서 우리가 반공교육을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무력으로 접어들 때는 결판을 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누가 내 볼을 때리면 이쪽 따귀를 내주고는 때리라고 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선량한 양떼를 잡아먹으러 들어가는 이리떼는 이것을 뚜드려 잡아죽이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라고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통일은 미,소,중,일 4대 강국이 어떻고 하지만 언젠가는 남북한이 실력을 가지고 결판이 날 겁니다. 어떤 객관적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 남북한이 실력으로 결판을 낼 겁니다』
  
  朴正熙로 하여금 한때 공산주의의 유혹에 빠지게 만든 것은 그의 기질, 즉 强者(강자)에 대한 반골정신과 弱者(약자)에 대한 동정심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主思派(주사파)가 된 많은 젊은이들도 나름대로의 정의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金永煥씨나 호남지역 대학의 총학생회 간부들이 과거 노선을 부정한다고 해서 이런 정의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시적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들의 정의감은 더욱 성숙되고 넓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轉向(전향)과 결단을 가능하게 한 것은 폭넓은 정의감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인간됨일 것입니다.
  
  金永煥씨나 호남지역 운동권 대학생들은 친북 학생운동의 주류에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즉 모순과 위선과 선동의 극한을 체험했기 때문에 의문과 懷疑(회의) 와 각성의 깊이도 더했을 것이고 반성과 전환도 보다 단호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어둠이 깊었으므로 그 속에서 새나오는 빛은 더 밝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외치는 『金正日 정권 타도를 위한 左右(좌우) 대합작 전략』은 같은 말이라도 보수 세력에서 외치는 것과는 그 무게가 다를 것입니다. 특히 金正日정권이나 남한내의 親金正日세력에게는 그들의 말이 匕首(비수)처럼 가슴에 꽂힐 것입니다.
  
  이들 학생운동 세력이 북한민주화 운동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우리나라 민주투사들을 딜레마에서 구출해줄 非常口(비상구)를 만든 행동이기도 합니다. 학생, 在野, 야당세력, 지식인에 의해 主導(주도)되었던 민주화 운동은 朴正熙와 군부세력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근대화 혁명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찬란한 金字塔(금자탑)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민주화 세력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침묵하거나 북한 편을 들어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지도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行蹟(행적)까지도 「민주화를 가장한 권력투쟁」으로 의심받는 사태를 自招하게 되었습니다. 그 혼돈의 10년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湖南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우리의 학생운동이 21세기에는 「북한민주화」란 새로운 地平(지평)을 열게 될 것이란 설렘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이제 「정권유지의 편의를 위해서, 여러 가지 구제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백만 동포를 굶겨죽인」 金正日을 대하는 기준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 기준은 역사적 정통론에 입각하여 金正日정권을 「민족사의 이단」으로 단정한 바탕에서 正義의 원칙을 들이대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의란 惡者에 대한 응징과, 强者에 대한 견제와, 弱者에 대한 동정을 통합시킨 개념입니다. 이 원칙을 북한에 적용한다면 惡者이자 强者인 金正日 정권에 대한 응징과 견제, 弱者인 북한 주민들에 대한 동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북한 민주화운동, 즉 북한 인권운동이 바로 그런 정의의 운동일 것입니다. 그런 운동은 북한사람 돕기운동과 북한사람 구출운동, 그리고 金正日 타도 운동의 형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계의 인권 지도자」라는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하여 한 번도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도 아니고 남태평양도 아니고 바로 지척의 거리에서 살고 있는 동포 3백만을 굶겨죽인 金正日에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슨 논리로 설명이 가능할까요. 「인권을 좋아하는」 선진국 지도자들은 그런 金대통령을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난 6월 金대통령은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과 미얀마 외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의 인권문제, 특히 在野 지도자 아웅산 수키 여사에 대한 관심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동포 3백만을 굶겨죽이는 사람에겐 침묵하고 한 외국 여성지도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관심을 표시한다면 우리는 金대통령의 正義感이 과연 어떤 기준에 입각하고 있는가 하고 질문할 (유권자로서의) 권한을 갖게 됩니다. 국가의 전술과 정책은 신축성 있게 운영할 수가 있습니다. 국가 전략을 수정하기란 어렵고 그 전략이 딛고 있는 가치관(역사관, 인간관, 국가관)은 國體(국체)의 변경이 있기 전에는 바꿀 수 없습니다. 북한인권 문제는 우리가 지녀온 이 對北 가치관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 변경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천명해야 할 대통령의 이상한 침묵, 그리고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對北약속(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다)과 요사이 거론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통한 「북한정권=反국가단체」 공식의 폐기 움직임은 소위 햇볕정책이 指向하는 종착역에 대해 의구심마저 갖게 합니다. 전술과 정책의 편의를 위해서 가치관을 포기하는 것은 3류 브로커나 할 일입니다. 對北가치관의 뿌리는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이자 민족사의 정통국가라는 국민적 同意(동의)입니다.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보지 않겠다는 태도는 북한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랑인 「1민족 1국가」의 전통을 스스로 폐기하는 反민족적·反역사적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인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집단에게 「국가」란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은 反민주적·反도덕적 행위이기도 할 것입니다. 동포 3백만이 굶어죽고 맞아죽고 병들어 죽는 동안 침묵한 「인권 지도자」에게 미국의 인권상은 몰라도 노벨 평화상은 썩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8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7: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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