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農工商, 계급의 원수論 그리고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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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기업인,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치인』
  
  ─이것은 우리 기업인들이 좋아하는 우스개 중 하나입니다. 위대한 정치인이라면 이렇게 답했을 것입니다.
  
  『그래 그 말 맞다.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도 한다. 그러나 그뿐일까. 그렇게 잡은 권력을 누구를 위해 쓰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업인들을 잘 부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정도만 하는 보통사람들을 조직,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誌에 의해서 20세기 아시아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힌 朴正熙(박정희)가 바로 그런 사람, 즉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군사혁명, 政敵의 투옥 등)을 통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국가 근대화)을 해낸 사람」일 것입니다.
  
  1945년 光復 이후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 많은 기업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정주영(鄭周永), 이병철(李秉喆), 김우중(金宇中), 구인회(具仁會), 최종현(崔鍾賢), 박태준(朴泰俊) 같은 분들입니다. 세계적인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李承晩(이승만), 朴正熙 정도이지만(金大中 대통령의 경우 선진국을 향한 개혁에 성공한다면 민주화 투쟁 경력과 더불어 앞의 두 사람과 같은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알아주는 한국 기업인들은 훨씬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기업인이 성공하기가 어려운 역사적, 이념적 조건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들의 성취는 더욱 위대하게 보입니다. 조선시대를 지배해왔던 통치이념인 朱子學(주자학)은 돈벌이를 경멸하는 가치관을 우리 민족의 골수에 사무치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士農工商(사농공상)의 신분질서가 그런 가치관의 계급적 具顯(구현)이었습니다.
  
  士, 즉 선비들과 관료들은 실천력은 없었지만 淸貧(청빈)이란 美名(미명) 아래서 창의력과 생산력이 있는 기술자와 상인들을 착취하고 차별하였습니다. 과학과 상거래를 경멸하는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이 꽃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중국 宋나라에서 만들어진 외래사상인 주자학을 수입하여 하느님으로 만든 조선조 지배층은 자주국방을 포기하는 사대주의 외교노선을 선택하였습니다. 국방을 중국에 의탁하게 되니 강력한 상비군을 가질 필요가 없고 상비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과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動機(동기)도 없어진 것입니다.
  
  사대주의는 국방비를 줄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군복무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편리함이 있었지만 이게 바로 민족의 진취성과 국가 발전을 좀먹는 마약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은 동반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인 출신 대통령 때 경제와 과학 발전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예외도 기적도 아닙니다.
  
  士農工商의 유산 - 기업에 대한 反感
  
  士農工商의 전통적 계급의식은 지금도 우리 핏줄 속에 살아 있는 것을 봅니다. 다만 그 모습을 달리할 뿐입니다. 현대의 士字 계급은 누구이겠습니까. 정치인, 관료, 기자, 검사, 교수, 시민단체들입니다. 언론, 여론, 권력, 권한을 장악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기업인들에 대한 경멸감과 反感(반감)이 강한 것을 보고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근거 있는 反感도 있지만 「우리는 도덕적이고 너희들은 더러운 존재이다」라는 근거없는 우월감에 기초한 反感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돈을 주고받을 때, 돈을 셀 때 남이 안보는 곳에서 그런 행위를 합니다. 돈과 돈벌이에는 죄의식이 따라다닙니다.
  
  이런 사회에서 글과 말을 장악한 士字계층 사람들이, 돈을 잘 버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하고 선동한다면 여론을 反기업, 反재벌로 몰아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사회이든 돈을 벌 줄 모르는 사람들이 벌 줄 아는 사람들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기업가 정신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사회에 기업인들을 저주하는 이념이 광복 후 확산되었습니다.
  
  사회주의는 기업인들을 민중의 원수로 보는 증오의 과학입니다. 기업인을 경멸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멸종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주의에는 교조적인 주자학과 통하는 교리가 많습니다. 자기만이 正義이고 자기만이 도덕적이며 자기만이 정당하다는 僞善과 善의 이데올로기인 점에서 그렇습니다. 地上천국의 건설, 역사적 진보와 같은 유토피아적 명분론을 장악하여 이를 정치무기화함으로써 반대세력을 守舊(수구), 反動(반동), 異端(이단)으로 몰아 不義의 세력으로 낙인찍는 기술도 그러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시아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다. 하나는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에 비해서는 비교적 실용적이고 주자학의 영향도 우리처럼 크게 받지는 않아 명분론의 포로가 되기 어려운 민족인데 毛澤東(모택동)이란 巨人을 만나 공산화의 길을 갔고 鄧小平(등소평)이란 구세주를 만나 그 길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적 전통과 지정학적 조건으로 볼 때 공산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대한민국을 자본주의쪽으로 돌려놓은 데는 건국 대통령 李承晩, 근대화 대통령 朴正熙, 그리고 미국의 힘이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反轉(반전)시키기 위해서 두 대통령이 「인간으로서 해선 안되는 일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李承晩, 朴正熙의 영도하에서 우리 민족은 조선조 시대에 말라죽은 줄 알았던 진취적 기상의 原型質(원형질)을 되찾았습니다. 文弱(문약)에서 尙武(상무)정신, 내륙에서 海洋(해양)정신, 士農工商에서 기업가정신, 사대주의에서 自主정신으로 질적인 대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인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할 정도로 國力이 커진 것도, 그리하여 남북한 관계의 세력균형을 바꾸어놓은 데도 기업가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21세기에 통일의 관문을 통과하여 선진국으로 나아감에 있어서도 그 선봉에 서야 할 실천세력은 결국 기업인입니다.
  
  정치인, 언론인, 관료는 대한민국의 대표선수인 기업인들을 응원, 지원, 견제, 충고해야지 기업인들을 괴롭히고 절망하게 한다면 그것은 국가적인 自害(자해)행위에 이를 것입니다. 士農工商 의식과 「계급의 원수論」으로부터 기업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격려, 자극하여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든」 권력 系譜(계보)는 金泳三의 소위 文民정부가 들어선 1993년을 경계로 하여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 우리 기업인들은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話頭가 된 재벌해체는 권력의 보호망이 철거된 뒤 기업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재벌 내의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벌의 전문화, 재벌의 소유·경영 분리 같은 말들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알 정도로 재벌정책의 眞理(진리)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번호 月刊朝鮮에 실린 서울대 宋丙洛(송병락) 교수의 글은 이런 우리의 先入見(선입견)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문화한 기업은 망하는 수가 많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소유자에 의한 경영이다」 「상호지급보증은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고 국제경쟁력 강화의 한 방도이다」는 그의 주장은 재벌을 옹호하는 소수의견이기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實事求是
  
  이번 기회에 변화무쌍한 정보화 시대에 과연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향해 전문화하라, 소유 경영을 분리하라고 할 능력과 권한이 있는지 곰곰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단장이 대대장에게 지시를 내릴 때 『저 高地를 ○월○일 ○시까지 점령하라』고 명령하면 족한가, 아니면 『반드시 기관총만 사용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필요가 있는가. 원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정부가 기업에게 내릴 수 있는 지시는 「법을 지켜라」이고 권고할 수 있는 범위는 「흑자를 내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라」 정도가 되는 게 이상적일 것입니다. 울타리를 넓게 쳐서 마음대로 野性(야성)을 발휘하도록 하되 따질 항목은 最少(최소)로 제한하여 확실하게 점검하는, 즉 울타리를 넓게 치되 높게 올리는 것이 한국 기업인들을 멋지게 부리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재벌정책의 성공은 전문화 달성 몇 %, 부채비율 2백% 달성률 몇 %, 소유와 경영의 분리 달성 몇 %란 수치론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과 형식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기업의 존재 이유인 돈벌이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문어발식 다각화를 하고 소유 경영을 통합해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흑자를 내면 되는 것입니다. 전문화와 소유·경영 분리를 해도 기업이 적자를 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님이 손으로 달(이익)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그 손가락(전문화 등)만 쳐다본다면 무슨 깨우침이 있겠습니까.
  
  훌륭한 지도자는 목표를 분명히 해주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부하들에게 자율적인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수단에 대한 구체적이고 짜증스런 규정은 기업이나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옭아매어 목표달성을 어렵게 할 위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쥐만 잡을 수 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무슨 관계냐」라는 鄧小平(등소평)의 名言(명언)은 위대한 實事求是(실사구시)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實事求是란 조국의 현실(實)을 직시하고 사실(事)에 기초하되 국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는(求是) 생활철학입니다. 實事求是는 金大中 대통령의 좌우명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9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7: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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