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의 하버드 연수보고(5) - 대한민국 죽이기(1)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趙甲濟기자의 하버드 연수 보고(5)-시대적 文民들의 대한민국 죽이기
  
  민족정기 회복을 외친 金泳三대통령은 어찌하여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건설한 자립경제를 예속경제로 전락시킴으로써 사대적 정치인이 되고 말았는가. 對北입지까지 약화시킴으로써 흡수통일의 기회마저 놓치게 하고 있는 金泳三의 비극은 주체성을 세워본 적이 없는 우리나라 문민정치의 악습을 계승하고 있다. 명상, 기도를 통해 절대자와 대면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儀式을 갖지 못한 유교문화. 이는 自我의 발견을 통한 주체성의 확립을 어렵게 한다. 미국 일본 지식인들이 가진 주체성과 한국 지식인들의 사대성이 일류와 이류를 가르고 있으며 자율적 개혁과 타율적 개혁, 자주와 예속의 원인이 되고 있다. 「폭력 없는 德治」라는 환상을 만든 주자학 선비들의 政治觀은 우리 역사 속에서 자주적인 武人과 애국적인 商人들을 죽여왔다. 金泳三 실패의 교훈을 살려 우리 문민정치의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있는가
  
  <1998년 1월 월간조선>
  
   혼자 있다는 것
  
  기자는 하버드 생활 중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좋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더 좋았다. 도서관 서고에 놓인 빈 의자, 케네디 스쿨(하버드의 정치대학원) 앞에 있는 공원의 잔디, 찰스강가의 벤치, 흘러간 명화(名畵)만 상영하는 브레틀 시어터, 이 극장 아래층에 있는 카사블랑카 식당, 보스턴 시내의 역사적 건물群 사이로 난 「자유의 길」(Freedom Trail),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마녀재판의 무대 세일럼 항구의 바닷가 길,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무대인 19세기의 포경 기지 뉴 베드포드의 스산한 부둣길과 고래박물관, 통통하게 살이 찐 다람쥐들이 설치는 하버드 야드(校庭), 눈덮인 캠브리지 콤몬(공원), 하버드 스퀘어(광장) 바로 옆, 도시 한복판에 조성된 공동묘지.
  
  사람이 혼자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방향이 내면(內面)으로 향한다는 의미이다.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서울에서 항상 타인을 의식하는 환경 속에서도 기자는 택시를 타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공상과 상상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하버드에서 기자는 그런 공상의 공간이 있는 택시를 한 열 달 동안 탄 셈이었다.
  
  기자는 넥타이 매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한때는 넥타이를 풀지 않고 매듭을 유지한 채로 그냥 벗겨서 걸어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목에 걸고 나오곤 했었다. 기자는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1995년 11월에 암살되기 하루 전에 마지막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라빈이 청년 장교시절에 넥타이 매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기자처럼 넥타이를 풀지 않고 벗겨서 걸어놓곤 했었다고 한다. 한번은 외교회담에 가야 하는데 누군가가 걸어둔 넥타이를 풀어버려 당황했던 이야기를 했다. 기자는 하버드에서 이 넥타이로부터도 해방되었다. 한 달에 넥타이를 매야 하는 행사는 한 두번이었기 때문이다. 하버드에서 넥타이를 맨 사람은 교수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지금 세계적 추세는 될 수 있으면 넥타이를 안 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선 넥타이를 꼭 매어야 하는 행사의 경우엔 미리 고지(告知)를 하도록 한다. 아마도 세계에서 넥타이를 가장 충직하게 매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일 것이다. 공식 모임에서 넥타이를 안 매는 사람이 있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나라도 한국인뿐일 것이다. 넥타이란 것이 우리나라의 복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외래 풍조」인 넥타이를 숭배하는가. 모택동(毛澤東), 호지명(胡志明), 주은래(周恩來)가 자국민들로부터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비판받은 적이 있는가. 혹시 이 넥타이에 대한 숭배는 주자학과 자유민주주의를 수입하여 본국보다도 더 교조화 해버린 우리나라의 문화적 체질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넥타이, 민주주의, 한글전용, 1인1표제, 크리스마스의 공휴일 지정, 신문의 영어 표기(스포츠面을 Sports로 표기), 대학총장 직선, 세계화, 시장원리, 정보화 같은 것들도 『꼭 무조건 따라가야만 하는가. 우리 실정에 맞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는 것, 이것이 바로 주체성일 것이다.
  
   소로우의 숲 속 삶
  
  기자가 다닌 니만 재단에서 만난 미국 기자들의 옷차림이나 식사, 몰고 다니는 승용차 등 생활태도와 수준은 꼭 노동자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기자직에 따르기 쉬운 권위의식이나 오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편한 생활태도, 그래서 그들의 질문도 항상 단문(單文)이고 의문부호로 끝나는 것이었다. 간편한 생활에서 간결한 사고(思考)와 명쾌한 언동(言動)이 나온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끼여 살다가 보면 인정(人情)이 생기고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다. 그러나 남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다가 보면 판단의 근거를 자신의 잣대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찾게 되는 바람에 눈치를 보는 능력만 뛰어날 수도 있다.
  
  미국인은 우직하고 한국인은 영리하다. 영리가 순간적으로는 우직함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이 있는 캠브리지市에서 서북쪽으로 한 30분을 차로 달리면 왈덴 폰드(Walden Pond)라고 불리는 숲 속의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수가 유명한 것은 경치가 특별히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이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서 살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인 소로우는 그의 대학 선배이자 동료인 랄프 왈도 에머슨과 함께 미국식 개인주의의 본질을 포착하여 정리하고 옹호했으며 이를 실천해 보인 사람이다. 소로우의 아버지는 연필공장 사장, 어머니는 노예 폐지론자였다. 명문대학 출신이면서도 그는 지적(知的)인 면에서 뿐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이 많았다. 목수 일, 석공(石工) 일, 그림 그리기, 지질 조사, 항해술에 능하고 정원사 일도 곧잘 했다. 에머슨은 「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했는데 14세 후배인 소로우가 바로 그런 실용적 인간이었다. 소로우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이 동행자(同行者)들과 보조(步調)를 맞추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다른 드럼 소리에 맞추어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로우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드럼 소리에 맞추어 평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뒤에 교사가 되었다. 학생을 체벌하라는 지시를 거부하곤 사표를 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꾸려가는 연필공장에서 일하면서 시간만 나면 숲 속에 가서 혼자 술을 마시고 취했다. 그는 19세기의 미국을 휩쓸고 있던 상업주의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1845년 7월4일 그는 왈덴 폰드 옆에 있는 에머슨의 땅에 통나무집을 짓고 거기로 이사했다. 세속(世俗)과 벗어난 삶을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가 죽을 때 내가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두려워서」
  
  그는, 살기는 살았는데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싫어서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보겠다는 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소로우는 이 숲과 호수를 벗삼아서 주로 명상하고 관조(觀照)하고 글쓰는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이 세상과 담을 쌓는 은둔과 구별했다. 가까운 마을에 사는 친구들을 찾아가서 만나기도 하고 손님들의 방문을 환영하기도 했다. 미국-멕시코 전쟁이 터지자 소로우는 이는 노예제도를 확산시키려는, 정의가 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항의의 표시로 州정부에 내는 주민세 납부를 거부했다. 州정부에서는 소로우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소로우의 숙모가 세금을 대납(代納)했기 때문에 하루만에 풀려났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돌출행위였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은 경험에 기초하여 소로우가 쓴 것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는 제목의 수필이었다. 소로우는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어떤 법률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정의의 파괴자로서 당신을 이용하는 그런 성격이라면 당신은 그 법을 거부해도 된다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自我의 발견
  
  이 「시민 불복종」이란 개념은 그 뒤에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킹 목사에 의한 非폭력 저항운동의 이론적인 바탕이 되었다. 요사이는 환경운동가들이 소로우의 숲 속 삶을 따라 배우고 있다. 이는 세속을 멀리 한 인간의 깊은 성찰(省察)이 하나의 논리적인 힘으로 전환되어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세속의 발전과 개혁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기자는 96년 11월 말 눈이 살짝 덮인 이 왈덴 폰드의 숲 속 길, 호반 길을 친구와 함께 걸어보았다.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쯤 걸렸다. 눈 덮인 낙엽을 사각사각 밟으면서 걸으면 친구가 옆에 있어도 굳이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연과, 그리고 자신의 內面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 속을 혼자서 걷는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세탁하는 일이다. 「나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자신의 영혼과 양심의 울림과 떨림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미국인들은 인간이란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그것이다. 친구도, 부모도,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공간에서는 자신과 신(神)과 대화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인간은 자아(自我)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자아의 발견이란 인간이 자신을 아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실존적으로 깨닫는 것이고 살아있음의 엄숙함을 진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성 정립의 前단계이다. 미국인의 개인주의가 가진 강점(强点)의 입각점을, 기자는 홀로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 보았다. 홀로 있어 보는 연습을 많이 했으므로 홀로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으로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명상, 기도, 참선, 산책, 차도(茶道)와 같은 심리적 공간도 있다. 이런 고독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문화, 종교, 사회는 주체성이 강한 인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인간들이 많이 모인 나라는 자주적일 것이다.
  
  소로우의 하버드 대학 선배인 에머슨은 1837년 모교(母校)에서 「미국 학자들」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하버드 대학의 역사뿐 아니라 미국 지성사(知性史)에 남을 만한 연설이었다. 이 연설은 「知的인 독립선언」이라고 평가되었다. 이 연설에서 에머슨은 「미국 지식인들은 유럽문화에 대한 외경심을 버리고 우리의 세계를 탐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先進) 유럽문화에 대한 사대적 동경심을 극복하고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는 1841년에 쓴 「자주(Self-Reliance)」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미국 개인주의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명언들을 많이 남겨 지금도 이 글은 미국 젊은이들의 필독 문헌이 되고 있다.
  
   자아의 발견이 없는 朱子學
  
  「남자가 되고 싶거든 非동조자가 되어야 한다. 최후가지 신성한 것으로 남을 것은 당신의 마음, 그 고귀성뿐이다. 이 世俗에서 시류(時流)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쉽다. 고독 속에서 나 자신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도 쉽다. 참으로 위대한 인간은 군중의 한가운데에서 고독하게 홀로 서는 것의 달콤한 맛을 아는 사람이다. 남에게 바보처럼 동조(同調)만 하는 행위는 철없는 정신적 허깨비짓이고 왜소한 정치인, 철학자, 성직자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라. 내일이 되면 그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라. 비록 내일 말할 것들이 오늘 말한 것과 완전히 모순된다고 해도 솔직하게 말하라. 위대함은 오해받는 데서 출발한다」
  
  에머슨은 청교도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자신도 한때 목사였다. 30세 이후에는 수필가, 시인, 대중 강연가로 활동했다. 그는 주로 미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 자주(自主), 인간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주제로 삼아 강연했다. 그는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도달할 수가 없다고 본, 인간본성의 깊은 곳에 있는 정신의 핵심을 꿰뚫고 들어가서 자아를 발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에머슨은 초월주의자(Transcendentalist)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불교나 힌두교의 신비주의와 범신론(汎神論)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에머슨과 소로우의 사상에서 우리는 명상에 의한 자아(自我)의 발견이 미국지성의 주체성 확립과 연결되는 논리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많은 종교는 명상을 중요한 의식(儀式)으로 하고 있다. 기독교와 샤머니즘에서는 그것이 기도이며 불교에서는 참선이고 힌두교에서는 고행(苦行)이고 명상이다. 이 명상과 기도는 神에게 단순히 도움을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자신과의 대화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 명상은 인간의 한계를 초극(超克)하는 힘을 갈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조건을 초극하는 前단계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대체로 그 자각은 사생관(死生觀)의 정립으로 나타난다.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세워진 1392년이래 약 6백년간 한국사회의 지배적 문화, 그 정치적 이데올로기이자 생활규범이었던 주자학(朱子學)에는 이 명상의 儀式이 없다. 주자학이 인간수양의 방법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고전의 독서이고 정교한 예절이다. 이 독서는 지나간 시대의 저술을 반복적으로 읽어 암기하는 수준이었다. 예절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지 자아를 발견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많다.
  
  주자학은 자아발견, 절대자와의 대화가 없는 이념이란 점에서 종교로 분류하기는 어렵고 규범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지성사(知性史)의 비극은 규범철학을 들여와서 종교처럼 절대화하여 우상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일 것이다. 주자학의 교조화(敎條化)는 우리나라 지도층 문화에서 깊은 명상과 자기성찰의 습관을 없애버렸다. 신, 자연, 우주와 같은 절대적 존재와의 관계보다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게 되면 그 무엇을 놓치게 된다. 朝鮮朝 지배층에서는 결여되고 신라와 일본의 지배층에서는 볼 수 있는 것이 명예심에 기초한 死生觀이다. 이것은 신라와 일본의 엘리트들이 샤머니즘과 불교 속에서 명상과 기도를 생활하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생관의 기초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아는 자각이며 인간생명에 대한 입장의 정리인 것이다. 확실한 사생관은 생명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더 소중하게 보면서 그것을 보다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바치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통일기(期)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국가, 전우(戰友), 통일 대업과 같은 공익(公益)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무사들의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마치 일본 武士들 이야기를 읽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관창(官昌) 소나(素那) 비녕자(丕寧子) 같은 젊은 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모습은 신라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실종된다. 그런 점에서 김유신(金庾信)으로 상징되는 사생관이 서 있는 신라 지배층은 「우리 후대 역사에서 실종되어버린 한국인」인 것이다. 기자는 신라의 샤머니즘과 불교, 일본의 선종(禪宗)과 차(茶)문화가 이런 사생관에 도달하는 길잡이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우주와 대면하도록 하고 참선(參禪)은 자아발견을 위한 깊은 명상이며 일본 지배층의 茶문화는 일상 속에서 정신을 정화시키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기도하는 金庾信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통일의 원훈(元勳) 金庾信은 기도를 통해서 초인적(超人的)인 힘을 빌어오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金庾信은 15세기에 화랑(花郞)이 되어 일군(一群)의 젊은 인재들을 거느리게 된다. 17세기에 그는 중옥(中獄)의 석굴(石窟) 속에 들어가 기도를 시작한다.
  
  『무도하게도 해마다 우리 강토를 침략하여 화란(禍亂)을 가져오는 적을 없앨 힘을 나의 손에 빌려주십시오』
  
  기도한 지 4일만에 한 노인이 나타난다. 김유신은 『저는 나라의 원수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쑤시는 까닭에… 저의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방술(方術)을 가르쳐 주소서』라고 말한다. 난승(難勝)이라는 이 노인은 비법(秘法)을 가르쳐 주면서 『이것을 삼가하여 쓰되 망녕되게 전하지 말라. 만약 이를 불의(不義)에 쓰면 앙화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다음해 김유신은 다시 골짜기로 들어가서 향불을 피우고 하늘에 맹세하고 기도하니 「하늘에서 갑자기 영광(靈光)이 내려 그 보검(寶劒)에 실리고 3일째 되는 밤에는 허성(虛星)과 각성(角星)의 두 별빛이 아득히 빛나며 칼에 내려드리우니 보검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김유신의 이런 기도는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매개이고 대화이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사회관계에서 얻을 수 없는 보다 본질적이고 초월적인 그 무엇을 인간은 절대자(우주, 하늘, 신)와의 대화를 통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의지의 강화, 사생관의 확립, 주체성의 정립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우주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와 좌표를 확인하는 기도와 명상이 지배층의 문화로 정착된 나라에서 주체성 있는 인간이 길러지고 이들이 모여서 자주적인 나라가 건설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발견한 「프라이버시」라는 것도 그런 주체성을 체험하고 실천하는 공간인 것이다. 보스턴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한 한국인 교포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우리아이 방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지 않았더니 「아빠, 노크를 하시고 들어오셔야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는 어린 아들이라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830년대에 미국을 여행하고 쓴「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인들로부터도 「우리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쓴 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는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던 이 신생국가의 생동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토크빌이 여행했을 때는 미국이 독립한 지 50여 년 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지 50여 년 되는 요사이와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기자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나가면서 읽었다. 토크빌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음모는 더욱 활발해지고 선동은 더욱 결렬해지며 확산된다. 온 나라 전체가 열병에 걸린 것처럼 되고 신문과 대화에서는 선거가 일상적 주제(主題)가 되며 사람들의 모든 언동과 생각은 이 주제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 결과가 공표되면 열정은 흩어지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 조용해지며 둑을 넘었던 강물은 다시 내려앉는다. 그러나 이런 폭풍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 아닌가?」
  
  「미국인들은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결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를 누군가가 비판하면 조국을 옹호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난당하고 있는 것은 미국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서는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택일(擇一)을 해야한다. 즉, 모든 사람들의 애국심이냐, 아니면 소수의 정부이냐. 왜냐하면 우리는 전자(前者)가 가져오는 사회적 활력과 저력을 후자(後者)가 가져오는 정적(靜寂)과 동시에 결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7: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