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의 하버드 연수보고(4) - 한자문화와 기마군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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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리고 싶다
  
  1240∼41년 겨울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이끄는 15만의 기마군단은 러시아를 겨울에 쳐들어갔다. 허허벌판에서 휘몰아치는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하는 수수께끼는 지금도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경이이다. 난방장치가 있었을 리가 없고 방한복이 발달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동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서양을 대표하는 두 군사적 천재인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실패했던 러시아 동계(冬季)작전을 말과 인간의 육체력에만 의존한 몽골 기마군단은 어떻게 해냈던가. 기자는 몽골 사람들이 가졌던 샤머니즘的 자연관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아니 대대손손(代代孫孫) 자연과 대화하며 벗하여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는 슬기를 축적한 몽골족은 자연에 대한 공포심이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숨결을 읽을 수 있는 눈과 자연의 맥박을 재고 자연의 노여움을 피할 수 있는 요령을 체득(體得)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몽골 사람들의 시력은 4.0 수준이라고 한다.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 한데에서 잠도 자고 말의 입김이 고드름이 되어버리는 추위 속에서 어린아이들은, 몸통에서 배어난 땀이 서리처럼 얼어붙어 백마로 변한 말을 달리며 논다. 몽골족은 자연을 친구처럼, 가축을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수 천년을 살아오다가 보니까 혹독한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몽골족으로서의 특성이 나타난 것을 약 2만년으로 잡는다면 몽골 고원을 떠나 반도로 들어왔던 한민족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1천5백년 전까지는 몽골 인종으로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산악국가에 갇혀 살면서 유교의 규제 속에서 순종하는 것 같았지만 1천5백년이란 기간은 우리의 핏줄과 본능과 심장 속에 녹아있는 이 몽골적인 야성을 씻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음을 요사이 우리의 모습들을 보면서 절감하고 있다. 야성이란 말의 다른 표현은 거칠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거친 몸가짐은 엄청난 돌파력을 내기도, 질서를 파괴하기도 한다. 야성이 가진 높은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가에 의해서 창조의 동력원이 되기도 파괴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천의무봉하고 활달하면서 지구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본능적 충동을 간직한 한민족은 산악국가와 유교의 행동윤리에 갇혀 살면서 몽골적 야성을 눌려 있는 용수철처럼 가슴 깊은 곳에 숨겨놓고 있었다.
  
  해방 뒤에 서구 자본주의가 이 땅에 들어와서 유교의 억눌림을 약화시키고 李承晩과 朴正熙에 의해서 주도된 근대화 작업이 결정적으로 용수철을 누르고 있던 돌덩어리를 치워버렸다. 용수철은 다시 튀어오르고 민족의 야성이 잠에서 깨어났다. 인류사에서 찾기 힘든 한 민족 단위의 대폭발과 대각성 시대에 우리는 활동공간을 세계로 잡게 되었다. 달리고 싶은 한국인들은 드넓은 무대를 필요로 한다.
  
  이런 공간만 주어지면 우리의 단점은 강점으로 전환된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픈 질투심은 사촌이 논을 샀으니까 나는 배가 아프다, 그러니 나는 아파트를 사서 사촌이 배가 아프도록 해야겠다는 오기와 경쟁심으로 바뀐다. 좁은 산악국가에서 아옹다옹하면서 지지고 볶고 했던 삶 속에서 터득한 투지와 생존력과 요령을 넓고 넓은 세계무대에서 한껏 활용하다가 보니 놀라버린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천지 북한
  
  야성의 한국인에게는 끊임없이 넓은 공간을, 영어로 말하자면 뉴 프론티어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가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도전할 변경이 막혀버리고 야성을 터뜨릴 배출구가 사라지면 한국인의 극성은 내부로 지향하게 되고 그 결과는 우리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보게 되는 궁중암투극인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우리 지도자들은 대체로 한국인들에게 이 활동무대를 만들어주는 데 성공했다. 李承晩의 親美정책은 똑똑한 한국인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朴正熙의 무역입국 정책은 우리 기업인들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여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도록 몰아붙였다. 월남파병과 중동 건설시장 진출은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기를 펴고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무대는 나라 안에서도 만들어졌다.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 건설, 자주국방 건설, 서울올림픽, 이 서울올림픽을 이용하여 추진한 북방정책은 우리 민족의 야성을 소화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무대였다.
  
  金泳三 대통령 시절에 우리는 민족의 새로운 무대 공간을 발견하는 데 실패하였다. 다행히 金宇中 대우 회장이 선도한 세계경영으로 해서 기업인들이 앞장서서 징기즈칸의 기마군단이 달려갔던 길, 기자가 몽골벨트라고 이름 붙인 유라시아의 심장부로 뻗어나가고 있다. 남북통일도 한국인의 활동공간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달리 보이게 된다. 요사이 유행하는 통일비용은 계산법이 근본에서 틀리고 있다. 지출부문만 계산하여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2천5백만의 인력과 약 13만㎢의 땅은 왜 계산에 넣지 않는가. 이것을 계산에 넣는다면 富의 차원에서는 엄청난 이득이 되는 것이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과 월남한 사람들을 잘 설득하여 토지 사유(私有)를 포기하게 한 다음 북한의 전지역을 국유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북한에다가 대한민국의 이상향을 건설할 수가 있다. 소극작인 차원에서 말하는, 남한 수준에 따라오는 북한의 재건이 아닌 아예 無에서 출발하여 21세기의 선진한국이 지향하는 제도와 시설을 가진 신천지를 북한 땅에다가 건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국의 청교도가 영국보다 더 좋은 나라를 신대륙에서 건설했듯이 서울 사람들이 강북보다 더 놓은 강남을 건설했듯이 포화상태의 남한보다도 더 멋진 나라를 북한의 황무지에서 건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는 북한이 철저하게 망할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북한체제의 붕괴는 북한이 가진 거의 모든 생산시설을 고철로 만들 것이다. 북한이 가진 교육제도와 사회간접자본도 싹 허물고 다시 짓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철저한 붕괴는 그 만큼 엄청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런 新북한건설은 대한민국의 개조이면서 동시에 선진 조국의 창건인 것이다. 이런 창조를 위해서는 철저한 파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다행히 북한은 스스로 붕괴함으로써 우리가 애써 파괴하고 청소할 필요를 덜어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과감한 건설사업은 북한을 흡수통일한 바탕 위에서 가능하지 어중간한 타협식 통일로는 달성할 수가 없다.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한다는 것은 몽골족으로서의 활동공간을 되찾는다는 민족사적 의미가 있다. [북한을 넘어서 북방으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좁은 국토에 몰려 사는 7천만의 맹렬한 민족은 불가피하게 만주 원동(遠東)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이른바 몽골벨트 지대로 넘쳐나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북방 초원지역이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무대가 되는 것이다. 징기즈칸의 힘은 기마군단에서 나왔지만 한민족의 힘은 경제력과 야성에서 나올 것이다. 몽골은 남한의 약 16배나 되는 면적을 갖고 있는데 인구는 대구市 정도인 2백50만 명이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희박한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과 여러 가지로 상호 보완할 점이 많을 것이다. 우리 기업인들 중에는 한국 몽골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몽골에 우리가 집중적인 지원을 할 경우에 몽골 인구가 워낙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도 대단할 것이다.
  
   일당 백
  
  특수한 양국 관계를 만들어놓고 이 나라를 교두보로 삼아 유라시아의 심장부로 뻗어가자는 구상이 요사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미 약 6천명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취업하여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모습이나 행동거지가 우리와 워낙 같아서 입만 열지 않으면 한국 사람과 구별이 안된다. 3시간 남짓한 비행거리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가 있다. 몽골과의 특수관계는 한국인들의 공간개념에 새 지평을 열고 민족에너지의 배출에 새 활로를 틔워줄 것이다. 그것은 또 우리가 일류국가를 만들어갈 때 근사한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은 한자문화의 논리성과 몽골인종의 야성적 氣를 다같이 받아들여 갖고 있다. 한자와 몽골 기마군단은 둘 다 세계사에서 일류를 창조했던 위대한 능력의 원천이다. 理로 상징되는 한자문화와 氣로 상징되는 몽골문화에서 일류의 원리를 추상(抽象)해낼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이 원리를 오늘날의 상황에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류국가 일류국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기자는 이러한 화두(話頭)를 가지고 하버드의 도서관을 뒤지고 다녔다. 13세기에 징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고려(高麗)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문명세계의 거의 전부를 정복했을 때 몽골본토의 인구는 1백만에 불과했으나 점령지의 인구는 약 1억이었다. [일당 백]의 정복과 통치가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는 데 대해서 서양 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1927년에 영국의 전략사상가 리델 하트가 쓴 [위대한 지휘관들을 벗긴다](Captains Unveiled)라는 책을 하버드의 와이드너 도서관 한 구석에서 찾아냈다. 그 첫 장이 징기즈칸과 그의 휘하 장군 스부데이를 다루고 있었다. 스부데이는 징기즈칸의 손자인 바투를 모시고 러시아와 유럽을 원정했던 용장이다.
  
   간편성의 철학
  
  이 장(章)의 결론에서 저자(著者)는 몽골 기마군단 조직의 간편성(Simplicity)을 승리의 근본으로 꼽았다. 몽골군단은 보급부대가 따로 없는 전원 기병이었다. 기병 한 사람이 말을 4∼5마리씩 몰고 다니면서 짐을 나르는 데뿐 아니라 비상식량이나 물통(말의 피를 빨아마셨다)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느린 보급부대가 따라다니지 않으면 전투부대의 이동 속도는 엄청 빨라진다. 나폴레옹의 유명한 공식에 따르면 <전투력=무장력×기동성>이다. 몽골군단은 전원(全員) 기병체제 덕분에 농경민족 군대보다 4∼5배나 빨랐다.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서 몽골군단은 갑옷도 가볍게 만들었다.
  
  당시 유럽의 기마전법은 중무장이었을 뿐 아니라 보병과 연계된 조직이었다. 성격이 다른 이런 두 조직을 지휘하는 것은 기병 단일(單一) 조직보다도 복잡하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복잡하면 기동성이 떨어지게 돼 있다. 기자가 헝가리에 가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중세 유럽 기사들의 갑옷 무게는 약 40㎏이었고 말에 덮어씌운 갑주까지 보태면 1백㎏을 넘었다. 넘어지면 혼자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영화에선 근사하게 보이지만 이런 로보캅 같은 중무장은 결국 죽기 싫다는 방어적인 심리를 반영한다. 복잡한 규정을 많이 만들어 철갑처럼 자신을 둘러싸는 것은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관료 조직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중무장한 유럽 기사들에 대하여 몽골 기마군단의 고전적 전법은 2백∼3백m 쯤의 거리를 두고 활로써 집중사격을 하여 혼란에 빠뜨린 다음 돌격하여 요절을 내는 것이었다. 몽골군단은 또 퇴각을 위장하여 유럽기병들을 유인, 분산시킨 다음 삽시간에 재집결하여 분산된 적을 각개 격파하는 전법(戰法)도 즐겼다. 이것은 기동성에서 앞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리델 하트는 몽골군단의 全員 기병제를 참고하여 영국도 보병에서 독립된 순수한 기갑군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책을 통해서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것은 히틀러의 장군들이었다. 독일 기갑군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데리안은 [나는 리델 하트의 제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령도 독립기갑군단의 창설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의 초장에서 독일이 전격전으로써 연전연승한 것은 탱크들을 보병사단에 분산시켜 놓지 않고서 한 군데에 집중시켜 간편하고 단순한 기갑군단 조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편 손가락이 아닌 불끈 쥔 주먹을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이 발상의 근본이 간편성(Simplicity)인 것이다. 리델 하트에 따르면 기동성은 간편성에서 나오고 기동성은 중무장보다도 더 안전한 방법이란 것이다. 즉, 빠르면 산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말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셉 L 보우 교수의 강의를 들었더니 이 간편성의 전략이 기업에 그대로 응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하고 있는 경영자를 꼽으라면 늘 만장일치로 지명되는 사람은 제너럴 일렉트릭(GE) 그룹의 잭 웰치 회장이다. GE의 한해 매출액은 8백억 달러로 세계 7∼8위권의 제조회사이지만 주식의 시장가치를 기준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이다. 1981년 이후 회장직을 맡고 있는 웰치 회장은 이런 경영철학을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신속하려면 (조직이나 경영지침이) 간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복(複)문장의 각주(脚注)가 붙은 경영지침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간편하지 않으면 빨라질 수 없고 빨라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엔지니어에게 간편성이란 간결하면서도 기능이 우수한 디자인을 뜻합니다. 영업인들에게는 이 간편성의 원칙이 투명한 거래를 의미합니다. 생산현장에서는 모든 작업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작업과정을,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쉽게 말하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또 [자신 없는 경영자들일수록 복잡한 것을 만들어낸다]면서 [겁이 많고 불안한 관리자들은 두꺼운 계획서와 슬라이드가 있어야 안심을 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마나한 것들뿐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속성(Speed)은 간편성(Simplicity)에서 우러나오지만 이 간편성은 자신감(Self-Confidence)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런 자신감은 관료주의의 충복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 직위가 아니라 진정한 성취에서 보람을 찾으려 하는 사람,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주변, 상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런 다음 대담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조직과 인간관계의) 간편성을 창조하는 자신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웰치는 이런 성공의 3S(Simplicity, Speed, Self-Confidence) 조건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직경영에 적용하는가.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맡은 경영진은 가장 능률적이다. 자질구레한 데 신경 쓰고 참견하여 부하들을 귀찮게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무실 근무자는 현장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현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보고는 사무실에서 현장으로 향해야지 거꾸로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옛날에는 몇 년 걸리던 투자결정을 이제는 며칠만에 해치우고 있다]
  
   먹물 먹은 사람들에 대한 경멸
  
  웰치의 경영철학과 大宇그룹 金宇中 회장의 그것은 매우 비슷하다. 미국 언론이 金회장을 [20세기의 징기즈칸]이라 부르고 있는 것도 정확한 시각이다. 자신감(Self-Confidence)-간편성(Simplicity)-신속성(Speed)의 3S 공식에서 몽골인종과 자신감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버드 옌칭 도서관의 어두컴컴한 서고(書庫)에서 찾아낸 [위험한 변경(The Perilous Frontier)]이 그 해답을 안고 있었다. 북방 유목민족 전문학자 토마스 J 바필드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기마유목민족들은 가장 발달된 정착문명인 중국과 인접하여 살면서도 중화적 문화와 이념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속으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했다. 돔의 천장 같은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말젖과 말고기를 먹으면서 천막에서 나고 죽고 전쟁과 모험을 동경하는 자신들의 삶이 농경민족보다도 더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축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에 기초한 기마군단의 우세도 계속될 수 있었다]
  
  몽골 사람들보다도 더 유식한 한국인과 월남인들은 중화적(中華的) 사상과 제도를 받아들여 문화적으로 중국화되었지만 몽골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뒤떨어졌어도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갔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몽골 장군 흔도가 장군 김방경(金方慶)에게 한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내가 보건대 고려 사람들은 모두 글도 알고 불교를 믿는 것이 한족(漢族)과 유사한데 매양 우리를 멸시하면서 {몽골 사람들은 살육만 일삼으니 하늘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에게 살육하는 풍속을 준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에 불과하니 하늘은 그것을 죄로 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 대들이 몽골 사람들에게 굴복하게 된 까닭이다]
  
  먹물 먹은 사람들에 대한 무사(武士)들의 경멸과 [우리 식]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 있는 흔도의 이 오기서린 일갈은 몽골 기마군단의 파괴력이 자라난 정신적 토양을 보여주고 있다. 몽골 사람들은 싸움을 잘하는 戰士들이면서도 자부심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건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는 뜻이다. 전쟁 기술만 가지고는 세계를 정복할 수도 없고 그 세계를 다스릴 수도 없다.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진정한 힘은 이런 주체성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면 징기즈칸의 교훈을 잊게 된다.
  
   벨벳 장갑을 낀 주먹
  
  13세기의 몽골 기마군단과 20세기의 GE(General Electric)가 똑같은 원리에 의해서 성공했다는 것은 이 3S의 요소 안에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어떤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대와 기업처럼 효율성을 중시하는 조직에 유효한 것으로 판명된 이 원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응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다만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3S 중에서도 간편성(Simplicity)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간편한 복장, 간편한 인간관계, 간편한 삶의 방식, 간편한 언동, 간편한 의식(儀式), 간편한 식사, 간편한 서류, 간편한 조직, 간편한 공정(工程), 간편한 디자인, 간편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직과 국가는 일류국가가 될 소질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다.
  
  일류국가 미국에 사는 일류국민 미국인의 삶은 간편하다. 신발을 벗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고 식사는 햄버거로 때우며 인간관계는 번잡하지 않고 감정 정리도 끊고 맺는 것이 칼과 같다. 동양인이 보기에는 너무 매정한 것 같아 보인다. 미국인들은 동양인들의 복잡하고 끈끈한 인간관계가 낭비적이고 非능률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인간관계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한국은 간편하게 사는 몽골식 방식과 복잡하게 사는 중국식 방식을 다 같이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어느 한 쪽에만 쏠리면 우리는 2류국가로 머물 수밖에 없다. 몽골적인 것은 주로 인간의 기적(氣的)인 면을 상징한다. 상무정신, 신바람, 상업, 건설, 행동력, 관용, 경쟁, 기동성, 야성, 미래지향, 제도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태에 대한 동경(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모자를 비뚜루 쓰기를 좋아하고 담배도 꼬나물기를 좋아하며 파격하는 행위를 존경하고 규격적인 것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을 보인다) 같은 정신상태가 그것이다.
  
  한자문화는 理的인 것들을 상징한다. 논리, 관념, 도덕, 과거지향, 문민, 지성, 폐쇄적, 정태적인 현상들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일류 요리사처럼 절묘하게 배합하여 일류국가를 빚어낸 것은 통일신라였고 지금은 두 번째 호기, 즉 다시 한 번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때는 한자문화가 들어왔지만 아직 그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을 때였고 몽골적인 전통, 즉 야성이 살아 꿈틀대고 있을 때였기에 理와 氣의 균형적 배합이 가능했었다.
  
  지금은 지난 1천5백년 동안 너무 강하게 우리 민족의 체질을 지배했던 한자-유교-중국문화의 영향이 퇴조하고 있는 때이기 때문에 그런 균형적 배합이 가능한 것이다. 국가나 인간이나 한 길밖에 모르면 외곬수가 되어 말라버리든지 부러지기 쉽다. 북한, 스파르타, 고구려 같은 나라가 그랬고 중국에선 武力은 모르고 문화만 알았던 송(宋)나라가 그랬다. 로마, 베니스, 영국, 미국, 중국의 한당(漢唐), 통일신라는 개방과 자주, 군사력과 문화력, 내륙적인 것과 해양적인 것, 지성과 야성, 엄격과 관용 등 상반되는 두 가지 요소들을 생동감 있게 조화시켜서 일류국가가 되었다. 우단(羽緞) 장갑을 긴 주먹 같은 나라가 일류국가인 것이다.
  
   政治의 위대성
  
  몽골적인 재료와 한자문화적인 재료를 벌려놓고 이들을 뒤섞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인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기업인,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치인, 이 말은 정치인들을 폄하하려고 만든 것이지만 실은 정치라는 일의 엄숙하고 위대한 본질을 설명해주고 있다. 정치란 것은 [보통사람들을 모아서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도 감수하면서 이 범인(凡人)들을 이끎으로써 결국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행위가 정치인 것이다. 그럴려면 몸은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혼은 순수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인의 혼이 순수한지 않은지를 검증하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돈을 얼마나 받았는가보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는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김유신(金庾信), 김방경(金方慶), 이순신(李舜臣),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의 사전에는 변명이 없다.
  
  朴正熙가 남긴 유명한 두 마디 말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난 괜찮아}에는 변명과 불평이 없다.
  
  李舜臣이 총을 맞고 남긴 마지막 말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에도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말들과 朴正熙와 닮았다는 이인제(李仁濟)씨의 말들을 비교하면 인간의 크기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지도층에서 변명이 많은 사회에서는 규칙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며 따라서 일류국가가 되기도 어렵다. 변명을 많이 하는 인간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7: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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