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의 하버드 연수보고(4) - 한자문화와 기마군단(2)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명문은 사라지고
  
  한자를 포기하면 우리는 미국과 서구의 일류문명과 맞서 또 다른 일류를 미래의 세계사에서 건설할 수 있는 자원의 보고를 곁에 두고도 그 열쇠를 던져버리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한자 포기는 동아시아에서 미아(迷兒)가 되는 길이요 우리 민족사에서 이탈하여 고아가 되는 길이다. 주체성을 상실하는 길이며 친미(親美) 또는 親서구화의 길이기도 하다. 중국, 일본, 북한, 싱가포르, 대만이 한자를 공용어나 준(準)공용어로 쓰고 있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월남이 한자 사용을 강화하고 있다.
  
  약 15억이나 되는 한자 문화권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기도 하며 우리의 흥망도 이들 국가와의 친소(親疎)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한자 포기는 이미 이들 나라들과의 공감대를 약화시키고 있는 한편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의식을 미국과 서구쪽으로 밀어놓고 있다.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진 그 자리를 영어가 메우고 있는 것이 단적(端的)인 예이다. 한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갖게 된다면 한국인의 문화적 좌표(座標)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 2천년 민족사에서 1천9백년 동안은 한자가 공용문자였고 우리 말 단어의 약 70%가 한자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한자를 버리면 우리 역사를 버리는 것이고 진정한 문학을 버리는 길이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崔完秀)씨가 말했듯이 우리 지식인은 한자를 포기함으로써 우리 역사도 원전으로는 읽을 수 없는 역사적 문맹(文盲)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초등학교때부터 한자를 가르치는 곳으로는 포항종합제철 광양제철소 안에 있는 학교를 꼽을 수가 있다. 이 학교 어린이들은 글짓기 대회에서는 상들을 휩쓴다고 한다. 한자를 배우니 우리말의 어휘력에 대한 감각이 좋아지고 우리 글을 더 아름답게 쓸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주는 현상이다. 이는 한자를 포기하면 문학의 질도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명문(名文)이 사라진 지 오래인 곳이 최근의 한국 문학계가 아닐까. 名文이 중요한 것은 표현이 아름다워 인간의 혼을 정화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글과 말의 설득력은 격조에서 나오고 명문은 격조가 높기 때문이다.
  
  한자를 포기하는 것은 우리 언어 생활을 각박하고 천박하게 하는 첩경(捷徑)이기도 할 것이다.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은 영국 희곡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성경이다. 명언(名言)과 명문(名文)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철학 서적이 한글 전용으로 되어 있었다. [즉자] [대자]라는 단어를 한글로 써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 책은 정말로 암호책 같았다. 즉자(卽自)란 헤겔의 변증법에서 나오는 용어로서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정반합(正反合) 운동의 출발점인 正에 해당한다.
  
  卽自 상태에서 조금 발전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관계하고 있는 상태를 대자(對自)라고 하는데 이 단어도 한글로 되어 있었다. 즉자, 대자를 한글로 쓰는 것과 한자로 쓰는 것 사이에는 정확한 의미의 전달에서 큰 차이가 있다. 卽自를 꼭 한글 전용으로 표현하겠다면 이를 순 한글낱말로 바꾸어야 정직하다. 한자단어를 한글 낱말로 바꾸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쉬운 대로 즉자 대자라고 한글 표기를 해놓고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학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도 성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글 전용을 제대로 하려면 한자 한글 혼용(混用)보다도 더 힘이 든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한글 전용은 민족주의이고 한자 혼용론은 외세의존적이라는 식으로 이념적인 색깔을 칠하는 것은 게으른 자들의 위선(僞善)에 지나지 않는다. 한글 전용이냐 한자혼용이냐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발전과 국가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한국인의 교양 함양(涵養)에 득(得)이 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논의가 되어야지 명분론이 들어가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찰스江
  
  6월24일 하버드를 떠나기 6일 전 기자는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저명한 한국 재야(在野) 운동권 출신 인사와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이 1970년대에 수배를 받을 때 오대산 월정사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유명한 학승(學僧) 탄허(呑虛) 스님의 훈계를 듣게 되었다.
  
  {이 사람아, 자네는 미국을 싫어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와 미국은 천생연분이야. 주역을 풀면 한국은 少女이고 미국이 少男이라네. 그러니 친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이 재야인사는 {지금 미국에 와서 공부하게 되니 그 스님의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는 또 {이제는 朴正熙를 3선 개헌까지는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때는 우리나라에 그래도 안기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이가 먹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기자는 찰스 강가에 있는 하이야트 호텔의 음식점으로, 한 40분을 일부러 걸어서 갔다. 하버드를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찰스강변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강이 주는 편안함과 편리성, 그리고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강폭은 1백m도 못되지만 양쪽 강둑은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시민들의 앞마당이요 놀이터요 낮잠자리요 영원한 쉼터이다.
  
  기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이 찰스강의 기억을 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니만 재단의 직원으로서 우리를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준 버스와 골드스틴 두 여자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나니 저녁 8시30분. 강변 하늘가에는 환상적인 황혼이 펼쳐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강가를 따라서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건조한 파아란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는 저녁 노을과 정지된 수면, 그리고 양안(兩岸)의 잔디밭, 이발소 풍경화처럼 띄워져 있는 빈 배 한 척. 나는 걷다가 앉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분 초 단위로 느끼고 싶었다. 이른바 머물고 싶은 순간이었다. 이 하버드 대학과 케임브리지는 나의 삶과 이미 어떤 인연이 맺어진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출생하여 6개월 이상 머물렀던 곳을 꼽아보았다. 1945년 10월에 일본 사이타마현(縣)에서 출생하여 다음해 4월에 부모 품에 안겨서 고향인 경북 청송 산촌(山村)으로 돌아왔다. 아홉 살 때 부산으로 이사하여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공군신병훈련소가 있었던 대전에서는 한 일곱 달 교육을 받았다. 그 뒤에 경북 동해안의 한 산정(山頂) 레이더 부대에 배속되어서 근무한 기간이 약 2년10개월. 1981년 서울로 이사를 와서 산 지가 16년, 그리고 이 케임브리지에서의 10개월. 케임브리지市는 그러니 사이타마縣, 청송(靑松), 부산, 대전, 동해안 고지, 서울에 이어 기자에게는 일곱 번째의 기억할 만한 지명(地名)이 된 것이다. 이 인연이 앞으로 나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나는 찰스강가를 걸었다.
  
  불현듯 양수리에서 청평 댐에 이르는 강변의 풍경이 그리워졌다. 보스턴 근방의 뉴잉글랜드 풍경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경치에 비교하면 우리의 산천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은 단순한 호기심에서라기보다는 우리 땅을 좀더 가깝게 또 객관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 때문이었다. 외국에 나가서 조국과 오래 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그리움이란 것은 결국 보고 싶은 얼굴과 보고 싶은 산하(山河)에 대한 감정이다. 국내에 있을 때는 고향이 그리워지지만 외국에 나오면 한국 전체가 고향이 되는 것이다. 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애착심이 애국심의 핵심이고 동시에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리라.
  
   뉴잉글랜드 풍경
  
  뉴잉글랜드 지방은 봄 여름엔 녹색의 장원이요 가을은 거대한 꽃밭이다. 뉴잉글랜드의 가을 단풍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뉴잉글랜드에는 높은 산이 적다. 고속도로로 몇 시간을 달려도 주변 풍경은 한결 같다. 숲이 우거진 야산과 언덕이 물결치듯 펼쳐져 있다. 이 사이로 차를 달리다가 보면 꼭 초록색 바다를 항해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9월말부터 10월 초순에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 우리나라의 두 배쯤 되는 이 지역 전체가 거대한 화단으로 변한다. 나무 높이가 거의 같기 때문에 이발을 깨끗이 한 것 같은 숲의 머리결에 색색의 수를 놓은 단풍이 해면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이 가을이 지나면 길고 추운 겨울이 시작된다. 11월부터는 오후 4시만 넘으면 어두워진다. 긴 밤, 쌓인 눈 속에서 할 일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다고 하니 하버드가 장소는 제대로 잡은 것이다. 11월 하순 추수감사절을 지내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차분하게 깔린다. 기자가 살았던 1백년 넘은 목조건물의 주인되는 사람은 어느 날 말도 없이 내 방 앞에다가 작은 전등 수십 개와 전선(電線), 그리고 메모를 남겨 두었다. 메모에 이르기를 [엘러리가(街) 74번지의 전통은 크리스마스가 끝난 지 10일까지 이 전등으로써 명절을 축하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전등을 창문턱에 붙여서 밤낮으로 켜놓으면 보기가 좋다는 뜻이었다. 시키는 대로했더니 과연 기분이 그럴 듯해졌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면 내가 들어 있는 1층이 꼬마전등으로 환하게 비쳐지고 있어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이 건설한 뉴잉글랜드의 성탄절은 차분하고 경건하다. 보스턴 심포니와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특별 공연도 이때에 맞추어 열린다. 고색창연한 교회 건물에서마다 축하예배의 찬송가와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나오는데 기자는 신도도 아니면서 그 분위기가 좋아서 구경 겸 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 뉴잉글랜드의 북단에 있는 메인州는 대서양 해안을 따라서 캐나다까지 뻗어 있다. 이 州의 별명은 [소나무州]이지만 미국에선 메인이라고 하면 바로 뒤에 [랍스터](Lobster)라는 말이 따를 정도로 맛있는 바닷가재의 산지(産地)이다. 기자는 강연초청을 받아 두 번 메인州에 갔다.
  
  미국에는 [메인이 가는 곳으로 나라가 간다]란 말이 있다. 메인州에서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가 거의 대부분 당선되었기 때문에 붙은 말이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정치감각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메인주의 면적은 남한과 같은데 인구는 약 1백만이다. 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용면적당 인구밀도로 따지면 우리나라의 1백분의 1 수준이다. 지난 5월 중순 니만재단 연수생들 가운데 미국인이 아닌 기자 아홉 명이 메인州 북쪽에 있는 락포트라는 해안도시에 초청되어 갔다. 인구 약 3천명의 이 마을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꼭 장난감 도시처럼 아기자기했다. 미술관, 도서관은 물론이고 교향악단에다가 작지만 오페라 하우스도 있었다. 우리를 초청한 단체는 이 마을에 사는 전직 CIA와 국무부 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친목단체였다. 기자가 묵은 집의 주인은 퀜틴 존슨이란 70대 노인과 그의 부인이었다. 전직 CIA 간부였다. 2차세계대전 때 벌써 중국에서 활약하였던 냉전의 戰士이기도 했다.
  
   미국은 美國이다
  
  기자에게 임표(林彪) 주은래(周恩來)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고 6·25 때 한국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을 자랑하기도 했다. 5·16이 났을 때 CIA 서울지부장으로 있다가 朴正熙 정권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피어 드 실버와는 친구 사이였다. 기자는 이 집 저 집으로 식사초청을 받고 가서 많은 노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내어야 했다. 은퇴한 공무원들이 老後를 우아하게 보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림엽서의 풍경을 빼닮은 이 락포트의 부두에는 한 마리의 물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물개는 한 어부가 주워 키운 고아출신이었다. 그 어부(漁夫)는 어미 물개가 버린 새끼를 구출해서 처음에는 목욕탕에 넣어서 키웠다고 한다. 물개가 성장하자 락포트 항구의 만(灣)에 내어놓고 키웠는데 그 때는 도망도 가지 않고 바닷가에서만 노는 바람에 이 마을의 명예시민이 되었다. 이 물개는 뉴잉글랜드에서 유명해져 이를 소재로 한 영화와 동화책이 나오기도 했다. 주인은 물개를 차에 태워 남쪽으로 수백 ㎞ 데리고 갔다가 바다에 집어넣곤 했다. 그리고나서 물개가 락포트에 돌아오는 것을 방송국에서 추적하도록 했다고 한다. 며칠 뒤에 물개가 고향 락포트에 돌아오는데 그날은 이 마을에 취재진이 몰려와서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 물개의 생전(生前)에 조각상이 준공되었다. 준공식날에는 자신의 조각상을 감싼 흰 천을 벗기는 줄을 물개가 잡아당기는 쇼를 연출했다. 老人들이 동화 속에서처럼 사는 마을이었다.
  
  미국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젖소처럼 생긴 것을 알 수가 있다. 앞다리에 해당하는 곳이 플로리다州이고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 뉴잉글랜드이다. 뉴잉글랜드의 본부格인 매사추세츠州의 별명은 [미국의 정신]이다. 이곳에서 미국 건국정신과 건국 주체세력이 생겨났고 하버드 대학, MIT같은 명문대학이 몰려 있으니 미국의 정신이자 머리인 셈이다. [젖소] 미국의 배설기관에 해당하는 위치가 로스엔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이다. 이 지방에는 인간의 욕구를 배설하는 대중 향락 문화가 발달해 있다. 이 젖소의 젖가슴에 해당하는 중서부는 곡창지대로서 미국을 먹여살리는 농산물을 엄청나게 많이 생산하고 있다.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답하는 비율이 약 70%나 된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한국 동포들도 한국에 다니러 갔다가 사는 곳으로 돌아오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에서 [성조기는 영원하다]는 국가보다도 더 많이 불리는 제2의 애국가는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이라는 노래이다. 매사추세츠의 교육자인 캐서린 리 베이츠가 록키 산맥의 고봉(高峰)인 파이크峰에 올라갔다가 본 경치를 소재로 하여 작곡한 것이다. [저 넓은 하늘과 저 호박색(琥珀色) 곡식의 파도여, 저 보라색 산악과 저 풍요로운 들판이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미국의 최대 강점이 아름다운 국토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싸돌아다니는 민족
  
  미국을 두루 여행하고 나서 기자는 東아시아에서 美國이란 국명을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정확하게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광활한 평야, 싱싱한 수목, 거대한 산맥, 사막, 엄청난 절벽과 폭포, 조용한 숲, 그림 같은 해안…. 미국처럼 다양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이 지구상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미국의 땅은 생성된 지질(地質) 연대로 보면 우리나라나 중국보다는 훨씬 젊어 청년기에 해당한다.
  
  미국 국립공원 1호 옐로 스톤 파크는 미국 자연미의 종합판이다. 폭포, 산중호수, 절벽, 숲, 물기둥이 정시적으로 치솟는 간헐천, 노천온천, 깊은 계곡이 다 모여 있다. 이곳 입구에 있는 해발 4천m의 그랜드 디턴 마운틴(큰 젖꼭지처럼 생긴 산이란 뜻)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심벌이기도 하고 서부 영화 [세인]의 배경에 나오는 산이기도 하며 미국에서 가장 사진에 많이 찍힌 산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들어오면 중생대의 지구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의 원시성과 지각의 움직임과 그 숨결을 느낄 수가 있다. 미국은 이 꿈틀거리는 자연처럼 땅부터가 젊은 나라인 것이다. 아름다운 국토에 대한 애착이 미국인들을 애국적 기질이 강한 시민으로 만들고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기자는 귀국한 후 처음으로 지난 11월 8∼9일 고향으로 달리면서 우리의 국토를 느껴보았다. 서울∼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원주∼제천∼단양∼소백산 죽령(竹嶺)∼풍기∼영주∼안동∼청송으로 이어지는 여로(旅路)였다. 건설중인 중앙고속도로 노선과 거의 나란히 달렸다. 차중(車中)에서 기자는 [아하 한국은 산악국가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두 팔을 벌리고 지나갈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파른 산자락 사이에 길이 있고 농토가 있으며 취락이 있었다. 산은 주인이요 평야는 주인 눈치 보면서 빌붙어 있는 객(客)이었다. 이 빌붙은 客같은 평지에 몰려 사는 인구가 4천5백만 명. 척박한 땅과 엄청난 인구밀도의 결합, 그 결과는 치열한 경쟁이다. 이 공간적 특수성과 인구 많음이 한국의 국가적, 사회적, 민족적 성격을 규정하는 2대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 남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못보는 질투심, 치열한 권력투쟁 같은 것들은 대한민국이란 국토공간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인들을 한국에 갖다놓으면 그들도 한국인처럼 될 가능성이 높고 한국인들을 미국에 옮겨놓으면 그들 또한 미국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거의 모든 요인은 인구밀도와 관계가 있다. 교통체증, 환경오염, 교육열, 과소비, 규칙 없는 경쟁 등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면서 살다가 보니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란 측면이 강하다. 한국인의 본능은 몽골인종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특성의 핵심은 넓은 공간을 무대로 한 삶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초원, 말, 활, 유목생활로 상징되는 몽골적 삶은 하늘과 초원 사이에는 인간이 있고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철학을 깔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들은 뭉쳐서 세계사를 뒤흔드는 폭풍이 되기도 한다. 그런 지도자가 사라지면 다시 흩어져서 가족 부족 단위의 유목생활을 지속한다.
  
  몽골족은 세계에서 가장 넓게 싸돌아다닌 인종이다. 그 분포범위를 보면 북쪽으로는 에스키모族, 남쪽으로는 南아메리카의 남단까지이며 서쪽으로는 헝가리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대서양 연안 뉴잉글랜드의 인디언 마을까지 뻗어 있다. 몽골인종의 핏줄 속에 흐르고 있는 이 [싸돌아다니는 습성]은 기자에게도 전수되었다. 니만 연수생들 중에서 기자는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운전도 할 줄 몰라 자동차를 갖지 않고 미국생활을 해냈지만 기자는 신기한 것이 많은 이 미국 땅을 구경하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기자는 아내와 함께 미국인들과 섞여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보름간 여행했다. 이 단체 중에서도 우리 부부는 [가장 열심히 싸돌아다니는 사람들]이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도의 소득수준에서 연인원(延人員)으로 계산하여 매년 전체 인구의 약 12%가 해외여행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이런 현상은 몽골족이 가진 독특한 자연관(自然觀)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몽골인종의 공통된 원시신앙은 샤머니즘이다. 이것은 자연을 인격체로 보는 신앙이다. 호수 산 계곡 나무 등 대자연의 구석구석에는 혼이 있어서 인간은 무당을 통해서 그들과 대화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정복대상도 공포의 대상도 아닌 친구, 아버지, 어머니 같은 존재인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런 친근감이 몽골족을 먼곳으로 돌아다니도록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이런 친근감을 본능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적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자연적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있었을 것이다. 추위도 더위도 산맥도 사막도 해협도 그들에게는 위험한 장애물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 적당히 타협해서 넘어갈 수가 있는 친근한 존재였을 것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7: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