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의 하버드 연수보고(4) - 한자문화와 기마군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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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기자의 하버드 대학 연수 보고(4) - 漢字문화와 기마군단
  
  대한민국이 가진 일류국가의 두 조건
  
  한국인은 理를 상징하는 漢字문화와 氣를 상징하는 몽골 기마군단의 야성을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 漢字속에는 서구의 합리주의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숨어 있고 기마군단의 성공 비결에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영원한 원리가 녹아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요소를 어떻게 배합하는가 하는 책무를 진 사람들이 정치가이다.
  
  <1997년 12월 월간조선>
  
   특종
  
  기자가 다닌 하버드 대학의 니만 재단에서는 연수생들에게 하버드 대학의 봄 가을 학기 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청강하게 한 다음 지난 5월22일에는 루딘스틴 총장으로부터 수료증을 받도록 했다. 기자는 대학에 들어가서 2학년을 수료하고 공군에 입대했다가 김신조(金新朝) 일행이 내려온 1968년의 1·21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으로 해서 복무기한이 4개월 연장되었다. 3년 4개월을 복무하고 나오니까 복학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한 1년 기다려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하루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신문기자가 되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이 없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하버드에서의 10개월은 대학 3학년 과정인 셈이었다. 니만 연수과정 수료증도 마치 졸업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니만 연수생 21명이 총장으로부터 수료증을 받는 날 보스턴 글로브紙에 특종이 하나 실렸다. 하버드 대학의 스타 교수 중 한 사람인 제프리 삭스(경제학)가 소장으로 있는 하버드 부설 러시아연구소의 한 교수가 러시아정부 고관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지득(知得)한 정보를 이용하여 개인적 축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가 이런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이 연구소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동결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특종을 한 기자는 우?릿?한 해 먼저 니만 연수생으로 공부했던 데이비드 말쿠스 기자였다. 가끔 니만 재단 사무실로 놀러와서 어울렸기 때문에 친숙한 사이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어 공부시켰던 기자가 그 하버드 대학의 치부를 폭로하는 특종을 한 날 하버드 대학 총장으로부터 수료증을 받게 되었으니 분위기가 어색할 것 같았지만 총장도, 니만 재단 책임자도, 우리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미국 기자들은 모두가 {말쿠스가 특종을 참 잘했다}고 축하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작은아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기자로 있는 큰아들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한다는 말 {쉬쉬. 야, 말조심해라. 저기 기자가 들어왔어}
  
  기자가 사실의 보도라는 직분을 집요하게 추구하다가 보면 인연 인정 의리 같은 것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들은 기자를 [인정사정 없는 특종기계]로 여겨지게 만든다. 그래서 타계한 한국 언론계의 큰 인물 선우휘(鮮于煇) 전 조선일보(朝鮮日報) 주필은 [기자는 남의 존경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 기자가 된다는 것은 고독을 선택한다는 뜻이다]란 취지의 말을 남겼다. 기자는 사실이 인정 사정 이념보다도 더 중요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중대사실의 보도인 특종이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하는 직업인이다. 좋게 말하면 멸친봉공(滅親奉公), 즉 사적(私的)인 이해관계를 죽여서 대의(大義)를 위한다는 태도이다. 문제는 大義는 추상적인데 소의(小義)는 구체적이라 직분에 충실할수록 친한 사람들로부터는 욕을 먹기가 딱 좋게 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가 하버드를 떠나기 일주일 전인 지난 6월23일에는 아직 하버드 대학 근방에 남아 있던 니만 연수생들끼리 찰스 호텔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언제나 총무 역할을 해온 ABC 방송의 여성 프로듀서 테리가 주선한 저녁식사 모임이었다. 명분은 南아프리카의 마타타 기자 생일 파티였다. 마타타 부부와 시카고 트리뷴의 밥 블라우, 뉴요커 잡지의 편집부장 로버트 바레 부부, 보스턴의 지방 텔레비전 방송국 여성 프로듀서 로이, 그리고 나였다. 한 달만에 만나 무척 반가웠다. 약 10개월간 매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내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떠나보내어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쓸쓸한 분위기였다. 이미 전직(前職)으로 복귀한 로이는 {영 재미가 없다}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의 화제는 캄보디아 정부가 발표한 크메르 루즈 지도자 폴 포트의 체포 소식이었다. 행동이 민첩한 테리는 벌써 {캄보디아로 보내달라}고 상부에 간청했다는 것이었다. 항상 비판정신을 과시하는 밥은 {폴 포트도 나쁘지만 미국이 쿠데타로 시아누크 정권을 뒤엎고 비밀리에 캄보디아를 폭격함으로써 킬링필드의 전단계 조건을 만들어놓은 책임이 있다}고 했다.
  
   銃口의 힘, 언어의 힘, 돈의 힘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신문들이 폴 포트의 체포를 보도하는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니 반드시 언급되는 대목이 있었다. 즉, 폴 포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할 때는 꼭 [그의 지휘하에서 크메르 루즈는 최소한 1백만 명 이상을 학살했다]는 요지의 문장을 매일 반복하여 게재하는 것이었다. 폴 포트의 이름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이 문장을 넣는 것이었다. 독자가 이 문장을 외울 정도로 되풀이 되풀이 게재하고 있었다. 이런 반복적인 게재의 의미는 폴 포트를 인종학살 혐의로 단죄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국 신문이 이인제(李仁濟)씨를 보도한다면 그 이름 앞에는 [자기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競選)에 참여했다가 불복하고 탈당한 사람]이란 설명을 계속해서 붙일 것이다. 두 번 퓰리처 상을 받은 뉴욕 타임스 출신의 老기자 앤터니 루카스가 그 몇 주 전에 자살했다. 이유는 보도된 대로라면 자신이 최근에 완성한 책(20세기초의 재판사건을 다룬 것)을 읽어보고는 만족스러운 것이 못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자책감으로 해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뉴요커 잡지의 로버트 바레 기자는 친구인 루카스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왔다면서 진짜 사인(死因)은 모르겠더라고 했다. 바레 기자는, 그가 아주 온순한 사람이고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절대로 남에게 털어놓지 않는 인물인 점으로 보아서 혼자서 고민을 삭이려고 하다가 자살에 이르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했다. 미국 사람들은 말은 거침없이,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함부로 하지만 글은 제대로 쓴다.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는 볼펜으로 원고를 썼던 기자는 미국에서 노트북의 영문 입력을 연습하기 위하여 미국 교수들이 쓴 책을 타자로 쳐보았다. 한 마디도 뺄 수 없는 완벽한 문장과 구성에 감탄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이 쓴 문장도 항상 유머와 격(格)을 살리는 표현을 사용하여 읽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한국에서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읽으庸?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통일일 것이고 두 번째로 큰 문제는 한글 전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려면 한글-한자 혼용을 해야 하고 2류 국가로 남고 싶으면 한글 전용을 하는 길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확하고 격조 높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류국가와 일류국민을 만드는 무형(無形)의 사회간접자본인 것이다. 기자는 근 1년간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 속에 살면서 언어라는 것이 갖는 엄청난 힘을 실감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 가지 힘은 결국 총구에서 나오는 힘과 언어에서 나오는 힘, 그리고 돈에서 나오는 힘인 것이다. 한국어를 잊어버린 동포2세와 대화하는 것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미국인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서먹하다. 우리말을 잊은 사람은 결국 한국인이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언어가 의식구조와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공통적 유산
  
  미국인들이 중국 일본 한국으로 대표되는 東아시아 한자-유교권 국가에 대하여 공포심과 경계심을 갖는 이유는 東아시아인의 행동과 논리 속에 서구정신을 누를 수 있는 무서운 그 무엇이 비수처럼 숨어 있다는 것을 간파한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이 과학 기술에서 훨씬 뒤떨어진 동아시아 3국과 세 번 전쟁을 하여 1勝(일본에 대하여) 1無(6·25 때 중국에 대하여) 1敗(월남전)라는 고전(苦戰)을 한 이유도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진 어떤 우월한 힘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공통적 유산인 한자와 유교 속에는 기독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서구정신과 맞먹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숨어 있다는 의미이다. 국가가 가진 유무형(有無形)의 힘을 총동원하는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군사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치력이 초일류국가 미국과 맞먹을 만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정치력은 민심을 장악하여 많은 국민들의 희생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런 힘은 국가운영 능력일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사생관과 자질이기도 하다.
  
  평균 지능지수를 기준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동아시아 사람들이란 것은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수학과 과학 분야의 세계 학생 경시에서는 항상 한자 문화권 국가인 한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이 1∼5위권을 석권한다. 미국은 18∼28등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입학생수를 보면 동아시아 사람들이 인구비례로 보아서 미국에서 가장 과(過)대표되고 있는 민족임을 알 수가 있다. 상점에 가서 보아도 점원들 중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계산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 노벨상 수상자수로 보면 서양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이것은 근대적 과학이론과 고등수학이 서구에서 나와 동양보다도 수백 년 앞서 달린 때문일 것이다. 동양은 근대화란 달리기 부문에서 늦게 출발하여 한때는 서양의 식민지 신세로 전락했지만 한자와 유교문화 속에는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는 비결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일류언어 漢字
  
  미국과 대적할 수 있게 하는 동아시아의 힘은 한자(漢字)라는 그릇에 담겨있다. 한자를 빼고는 유교정신을 가르칠 수가 없다. 동양적 정치철학과 전략사상은 한자로 쓰여진 교과서와 한자로 표현된 원리와 한자에 의하여 전달되어 온 가치관을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 한자를 떠난 동양사상은 껍데기이다. 신라(新羅) 중 원광(圓光)이 만든 화랑도의 세속5계 중 핵심인 살생유택(殺生有擇)이란 말을 한자어로 쓰지 않고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으며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있었겠는지, 또는 한자어로 쓰지 않고 이런 의미를 담았을 경우 과연 오래 남을 만한 말로서 길이 전수(傳授)되어질 수 있었을까. 성리학(性理學)이란 단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소리 이외에는 아무 뜻도 전할 수 없다. 이것을 한자로 쓰고 그 의미를 풀면 성리학의 본질을 알 수가 있게 된다. 즉, 성(性)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절대선(絶對善)이다. 이(理)는 우주만물을 관통하는 거대한 논리, 또는 진리를 가리킨다. 理가 인간에 들어오면 性이 되는 것이다.
  
  성리학, 즉 주자학(朱子學)은 인간과 자연을 꿰뚫을 수 있는 하나의 진리가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理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수양만 잘 하면 타고난 절대선의 수준까지 오를 수가 있다고 한다. 주자학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서 무한한 낙관론을 깔고 있다는 점까지도 이 性理學이란 한자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말을 한글로 써놓으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한자로 써놓으면 현실(現實)과 사실(事實)에서 진리를 뽑아내려는 아주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생각을 가리킨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말은 청(淸)나라의 고증학파(考證學派)가 공리공론(空理空論)을 일삼는 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만든 일종의 구호로서 우리나라의 실학파도 이 정신?이어받아 朱子學의 명분론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사실(史實)에까지도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실학에 대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實事求是란 단어만 알게 되면 이 철학의 핵심을 포착하게 된다.
  
  이처럼 한자어는 어떤 사물의 핵심을 정리하여 개념어로 만들어 확산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實事求是를 한글로써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표현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길게 설명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전파가 어려워 논리로서의 힘을 잃게 된다. 한자를 포기하면 한자가 가진 함축성과 논리성, 그리고 개념성을 잃게 되고 이는 문화와 학술의 非효율성과 저질성을 결과하게 된다. 한글로써는 설명문을 만들 수는 있지만 개념어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영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쓰게 되니 문화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말인 한자를 버리고 외국어인 영어를 우리 생활 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오늘의 운동이 이상한 명분론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 이것이 한국은 일류국가를 건설한 자주성과 정신력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논거(論據)가 되고 있는 것이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란 말도 그렇다. 이성이 법보다 못하고 법은 권력보다 못하며 권력은 하늘, 즉 천심(天心)이나 천도(天道)보다 못하다는 동양적인 정치질서 의식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 한자의 무서운 힘이 있다. 권력은 민심(즉 天心)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고 법은 권력의 뒷받침을 받지 않으면 기능할 수가 없으며 이성이란 것도 현실에서는 법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뜻을 담은 이 말은 한자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전파력이 강하고 한자가 있었기 때문에 발상될 수 있었을 것이고 한자이기 때문에 이처럼 간결하게 요약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자의 힘은 복잡다단한 상황의 본질을 간결하게 잡아내어 표현할 수 있다는 마력(魔力)에 있다. 본질을 잡아낸다는 것은 인간과 사회와 사물의 작동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의미이다. 통찰력이요 투시력이다.
  
  이승만(李承晩)이 미국에 건너온 지 5년만에 쓴 박사학위논문(미국의 중립정책을 국제법의 측면에서 다룬 것)을 읽어보면 한자 교육만 받은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단시간에 고급영어를 구사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경이를 느끼게 된다. 李承晩은 한자 공부를 통해서 문리(文理)를 텄기 때문에 외국어에 대한 이해도 빨랐을 것이다.
  
   한자의 확대 재생산
  
  기자는 한자가 어려운 만큼 이것을 배우면 인간의 뇌용량이 확장되는 효과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國家]를 자를 통해서 배운 사람과 [국가]로 배운 사람들의 차이를 비교해 보자. 國자 안에는 사람을 상징하는 입 구(口), 무기를 상징하는 과(戈), 그리고 영토를 상징하는 울타리처럼 생긴 에워쌀 위( )자가 있다. 국민 군사력 영토는 그대로 국가의 3대요소이다. 家를 한자로 배우면 그 다음 단계로는 국가(國歌) 국민(國民) 국적(國籍) 국토(國土) 국론(國論) 국군(國軍) 국리(國利) 국유(國有) 같은 수많은 단어들을 처음 대할 때 적어도 그 의미의 반 정도는 알 수가 있고 추리도 가능해진다. 國자를 쓰는 수백 개의 다른 단어와 연관되면서 어휘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를 한글로 배워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효과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연상 능력은 어린이들에게 일찍부터 사물을 종합적으로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한자는 상형문자이므로 우리가 그림을 보고서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더구나 이 세계 최고의 표의(表意)문자를 세계 최고의 표음(表音)문자인 한글과 섞어쓰면 의미전달은 신속 정확 다양 풍성해지고 표현의 격조도 높아진다(한자는 상소리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언어이다). 50 對 50으로 혼용하자는 말이 아니라 한글 90%에 한자 10% 비율로 섞어 써도 의미전달이 훨씬 명료해지고 신속해진다. 지난 9월 어느 신문의 칼럼 기사를 읽어보니 요사이 학생들의 漢字실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개탄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칼럼기사에는 漢字가 단 두 자밖에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漢字실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신문에서 거의 한글 전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인(原因) 제공자가 나서서 한자를 배우자고 하면서 자신은 쓰지 않고 있으니….
  
  당시 한 조간(朝刊)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에 신한국당의 비주류(非主流)가 [전대 다시 열어야]라고 주장했다는 한글 전용의 표기가 있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이 [전대]란 말이 전당대회인지 전국대회인지 아니면 돈을 차는 허리띠(錢帶)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돈망태(錢袋)인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신문에 [대형사고]란 한글표기도 있었다. 이런 것은 순수한 한글로 [큰 사고]라고 하면 될 터인데…. [대형물고기]란 표현도 기사에 나타난다. 큰 물고기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대형이란 한자어를 쓰면서 표기는 한글전용(專用)을 하고 있으니 아무런 원칙도 철학도 없는 한글 전용이 우리의 언어생활, 그 수준과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협, 임협, 삼협도 한글로 쓰지 않고 한자로 써야 수산업협동조합, 임업협동조합, 인삼협동조합의 줄임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급간제]라고 한글로 써놓은 기사제목을 보았는데 나는 지금도 이 급간제가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있다. [원우]란 제목의 잡지가 있는데 원우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아마도 원자력과 유관한 단체에서 나오는 모양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원우]라고 이름을 지을 때는 분명히 의미가 있었을 텐데 표기는 한글로 하고 있으니 암호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하는 신문의 경제면 기사 제목이 [부도유예협약 약효한계여실]이었다. 이 열두 자의 단어는 전부가 한자에 어원(語源)을 두고 있다. 여기에 약효(藥 )와 여실(如實)만 한자로 표기해도 훨씬 머리에 빨리 그 의미가 정확하게 들어온다. 이렇게 반박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藥效와 如實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라고.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우리 문화의 수준을 상용 한자도 읽을 줄 모르는 젊은이들의 수준에 맞추어놓겠다면 사회 전체의 수준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도(薰陶)의 의무를 포기하고 수준 낮은 젊은이들에 대한 영합의 경쟁을 벌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2, 17: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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