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협회장 김재철선장과 매력있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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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70년대에 부산에서 사회부 경찰출입기자로 일할 때 원양어업 회사들이 많이 몰려 있는 충무동 지역을 맡았습니다. 어느 날 아 침 서부 경찰서 상황실에 갔더니 이상한 變死(변사)사건 보고서가 한 장 올라와 있었습니다. 충무동 수산시장에 상어 한 마리가 위탁 판매용으로 등장했는데 배를 갈라보니 여자 다리가 하나 들어 있더 라는 것이었습니다. 구경 겸 취재 삼아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남해안에 쳐둔 定置網(정치망)에 걸려들어 죽은 길이 4m 정도의 상어 였습니다. 우리 기자들은 「아마도 동지나해를 떠돌던 베트남 보트 피플(배를 타고 월남을 탈출하여 해상을 표류하던 피난민들)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고 추측하면서 亡國(망국)의 사람들에게 동정을 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2년 1월 저는 쿠웨이트에서 출발하여 울산으로 가는 20만t짜리 유조선에 타고 있었습니다. 인도양에서 엔진고장이 났습니다. 배를 세우고 기관부원들이 수리를 하고 있는 동안 갑판원들은 뱃전에서 상어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로프에다가 갈고 리 같은 바늘을 달고 거기에다가 사람 머리 만한 고깃덩어리를 매달아 바다에 담가 놓았더니 상어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이 친구는 몇 시간 동안 배회하면서 머리로 고깃덩어리를 툭툭 박아보면서 「먹을까 말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덥석 물었고 갈고리에 목이 걸렸습니다. 선원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갑판으로 끌어올렸더니 상어는 펄떡펄떡 뛰었습니다. 상어를 많이 잡아본 한 선원이 망치를 갖고 와서 상어의 머리통을 때려 기절시켰습니다. 다른 선원은 식칼을 가져와 토막을 냈습니다. 토막 난 상어는 사망한 지 수십 분이 지났는데도 꿈틀대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의 기록에 따르면 잘라낸 상어 머리를 들고 내다버리려던 선원이 죽은 상어의 이빨에 손가락이 잘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유조선에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선원들의 불평을 대신 들어주었습니다. 선원들은 대체로 육지 사정, 즉 세상 물정에 어둡습니다. 그들은 육지와 육지 생활, 그리고 그 육지를 지배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수km나 미끄러지는 20만t 탱커를 몰던 선장은 육지에서 승용차를 몰 때 감각이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육지에 내리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다에서 번 돈을 잘못 투자하여 알거지가 되는 사람은 不知其數(부지기수)입니 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아내가 엇길로 가는 바람에 가정이 파탄나는 모습을 저는 경찰서 조사계의 고소고발 창구에서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그 시절 선원들은 부산항이 보이면 가족 품에 돌아간 다는 반가움 이전에 「저 세관을 어떻게 통과할까」 하는 걱정부터 하곤 했습니다. 대단한 외국물건을 사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혀 수모를 겪을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바다에서 번 돈은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아깝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한편 선장들은 육지 사람들의 바다에 대한 무식에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육지 사람들이 만든 마도로스 영화를 보면 멋진 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을 기른 선장이 비행기의 조종간처럼 생긴 것을 호기 있게 돌리면서 배를 모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강 유람선이면 모를까 보통 선박에서는 선장이 직접 그런 操舵手(조타수) 역할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배가 難破(난파)하여 항해사들과 조타수가 다 죽고 선장만 혼자 살아남았다면 모르지만 선장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장은 관리자이자 경영자입니다.
  
  농경문화에 찌들었던 우리 민족은 뱃사람들을 한때 「뱃놈」이라고 부르며 賤視(천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38선으로 대륙과 단절된 대한민국은 사실상의 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 해 바다로, 해외로 나가 해양賤視의 문화를 딛고 세계적인 수산국· 해운국·造船國(조선국), 무역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타율적인 해양 화를 통해서 우리는 퇴영적인 민족성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진취적 인 성품으로 개조했습니다. 해양문화의 본질은 개방성, 경쟁, 과학, 민주성입니다.
  
  세계를 주름잡은 강국들은 대체로 유목문화와 해양문화권에서 나왔습니다. 흉노제국, 몽골제국, 오토만 투르크, 淸(청), 무갈(몽골이란 뜻의 이란어)제국은 유목기마민족이 만든 초강대국이고 그리스-로 마-스페인-네덜란드-일본-영국-미국은 해양문화권에서 일어난 선진국이었습니다. 한민족은 북방몽골지역을 고향으로 하는 유목기마 민족 출신이자 반도란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해양적 유전인자도 가 진 집단입니다. 즉, 우리는 핏줄과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유목 민족, 해양민족의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는 DNA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유목민족과 해양민족은 草原 (초원)과 海原(해원)이란 一望無際(일망무제)의 활동공간에서 생활 한 때문에 그 성격도 비슷합니다. 야성, 속도감, 개방성, 경쟁력, 과 학 응집력, 尙武정신 등.
  
  2천년 가까운 우리 민족사에서 해양성을 상실했던 것은 朝鮮朝(조선조) 5백여년뿐입니다. 우리의 근대화는 조선조적 봉건성으로부터 의 탈출일 뿐 아니라 내륙적인 停滯性(정체성)에서 벗어나 해양적 인 진취성을 재발견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지도층이 이런 해양화의 역사관과 철학을 共有(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양화는 우리 민족의 체질에 맞을 뿐만 아니라 天時(역사 의 타이밍)와 地利(지리)와도 합치되는 일입니다. 즉, 天地人의 삼위 일체적 造化(조화)인 것입니다(해양화의 과정에서 섬 출신 대통령이 두 사람이나 등장했음).
  
  남북 분단에 의하여 강제화된 해양화를 거치다가 보니 우리 지식층과 지도층은 해양화의 의미를 행동철학으로, 국가발전의 전략으로 내면화, 주체화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물량면에서 세계적 해양파워가 된 한국, 그 덩치에 걸맞은 정신적인 성숙이 요구되는 時點(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다행히 우 리는 이런 해양화 전략과 철학의 전도사로 부를 만한 두 인물을 알 고 있습니다. 원양어선 선장 출신의 무역협회장(東遠 그룹 회장) 金在哲씨와 기자 출신의 과기처 장관이었고 지금은 문화일보 사장으로 있는 金鎭炫씨. 자세한 내용은 별책 단행본에 실려 있습니다만 두 분이 그리고 있는 해양강국 대한민국의 청사진은 우리의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상주의자보다는 空想家(공상가)와 夢想家(몽상가)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상주의자는 理想(이상)을 도그마로 만들면서 실천력을 상실하기가 십상입니다. 공상가 몽상가는 돈키호테적인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꾸면서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애 씁니다. 金在哲 회장이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 어선의 선장으로 일 하면서 동생에게 써보낸 「남태평양에서」란 제목의 편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많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본능적인 憧憬(동경)이 있다고 합니다. 고향에 대한 동경(Homesick), 이성에 대한 동경 (Lovesick), 그리고 바다에 대한 동경(Seasick-이 단어는 배멀미란 뜻도 갖고 있다).
  
  金在哲 회장은 원양선장으로 출발하여 當代(당대)에 세계 최대의 수산회사를 만든 인물입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船長일 것입니다. 月刊朝鮮은 이번 11월호에서, 이분이 섬 출신인 金大中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무역협회장으로 추대되어 내놓은 「新무역 전략」을 중심으로 하여 「매력 있는 大韓民國」이란 題下(제하)의 별책 단행본을 꾸며보았습니다. 金在哲 구상의 핵심은 「天時와 地利와 人和가 맞아떨어진 21세기의 한반도를 (제도가) 편하고 (국토 는) 아름답고 (인간은)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어놓으면 돈·물자·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매력 있는 인물에게 사람들이 모여들고 따르듯이 매력 있는 나라에 사람과 돈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런 매력 있는 나라로서는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있습니다. 金在哲 회장은 네덜란드를 한국의 모델로 삼 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저는 異見(이견)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는 1, 2차 세계대전 때 자주국방에 실패하여 독일에 유린된 나라이지만 强小國(강소국) 스위스는 자주국방력으로써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으면서 自尊(자존)과 自由(자유)를 지켜냈던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센 나라,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 사이에서 자존과 자유를 지켜내지 않으면 안될 운명입니다.
  
  우리는 매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강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스 유니버스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한국의 어머니나 아마존의 女戰士(여전사)처럼 강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강요된 해양화를 주체적인 해양 화로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줏대가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력 있고 개방적인 나라는 自我(자아) 까지 버리면서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드러내는 그런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正體性(정체성)을 역사와 문화 속에서 확 인하고 그 正體性에서 자신감과 존재이유를 强化(강화)한 다음 애국심에다가 가치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나서 자신을 과감하게 열어 젖히는 자세가 매력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편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곳」이란 말은 「질서는 편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것」이란 공익광고문안에서 따온 것입니다. 「편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것」이 질서이든 국가이든 거기에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공권력의 뒷받침이 없는 질서, 자신의 매력을 지킬 수 없는 국가는 虛像(허상)일 뿐입니다. 선량하고 강한 사람이 드물듯이 매력 있으면서도 힘센 국가는 예외적입니다. 아테네, 베니스, 통일신라, 이스라엘, 스위스,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예 외적인 强小國이었습니다.
  
  「매력 있는 대한민국」의 모델이 될 만 한 나라를 과거 역사에서 찾는다면 國史(국사)에서는 통일신라, 서양사에서는 베니스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金在哲 회장의 구상은 성공한 기업인, 그리고 꿈을 이룬 선장의 작품답게 실현성이 있어 보입니다. 20세기와 옛 천년을 한꺼번에 보내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金在哲 구상을 하나의 話頭(화두)로 삼아 이야기꽃을 피워갈 수 있다면 저희가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이번호 별책 단행본도 만족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11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7: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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