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 (8)민주주의에 관한 국민상식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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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1.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참여의 확대과정
  
  민주주의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1754년에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당시 인구 약800만 명의 3.5%인 28만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물론 귀족들이었다. 차츰 선거권이 확대되어 갔다.
  1884년에 가면 세금을 내는 모든 家口主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18년엔 세금을 내는가의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성인 남자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여자들에 대한 보통 선거권은 1928년에 주어졌다.
  프랑스에서도 1790년 일정규모의 재산을 가진 납세자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1815년엔 30세 이상의 年 300프랑 이상 납세자가 투표권을 가졌다. 1820년엔 일정 재산 이상을 가진 유권자는 1인 두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830년엔 25세 이상의 200프랑 이상 납세
  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 인구는 전체 성인의 170분의 1이었다. 1848년 모든 남자 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가 2년 뒤 3년 이상 거주 납세자로 제한되었다. 1851년에 다시 남자보통선거권으로 돌아갔다. 1945년에 모든 여성 성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거권 확대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폭이 확대되는 과정이란 사실이다. 동시에 선거권 확대는 점진적이었고 신분중심(봉건체제)-납세중심(부르조아 체제)-남여 모두(대중 민주주의 시대)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수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1948년 헌법 제정과 동시에 보통선거를 하게 되었다. 재벌 총수도 한 표, 직원도 한 표이다. 무직자도 한 표, 교수도 한 표이다. 세금을 수백억원 내는 사람도 한 표, 안내는 사람도 한 표이다. 선거권의 점진적
  확대 과정은 투쟁의 과정이고 민주주의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 결과물로서의 男女 불문한 1인1표제를 도입한 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민주주의 제도에 무임승차한 셈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유럽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의 苦鬪를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진 셈이다.
  
  1948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서양에서 수백년 걸려(영국의 경우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제정부터 시작하면 보통선거 쟁취까지 약800년이 걸렸다) 발전시킨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연극, 민주주의란 연습을 해온 셈이다. 연극과 연습을 많이 하면 實演이 되긴 하지만 외래 제도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엄청난 代價를 치러야 한다. 西歐의 민주주의를 기
  준으로 하여 李承晩과 朴正熙를 독재자라고만 단정하는 것은, 메이저 리그의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동네 야구 선수들을 혹평하는 것과 같다. 세종대왕에게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설을 퍼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를 판단기준으로 하여 李承晩, 朴正熙가 독재를 했다고 주장하고싶은 사람은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10~30년만에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를 발견해야 한다. 세계사에는 물론 그런 예가 없다. 李, 朴 두 대통령 시절의 민주주의는 19세기의 유럽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이었다. 당시 한국의 10~30년짜리 민주주의가 유럽의 700년짜리 민주주의보다 더 발전되었다면 두 전직 대통령을 과연 자신 있게 독재자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일본에 비교하면 李, 朴 두 대통령 시절의 민주주의는 1910~20년대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보다 못하지 않다. 북한과 중국은 아예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盧정권 사람들은 朴正熙를 파쇼라고 욕하는 것일까. 그들이 가진 기준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기준이든지 자기 꿈속의 기준일 것이다. 그들의 잣대는 북한정권에 들이댈 때는 갑자기 눈금이 넓어지는 요술자이기도 하다.
  
  

  자료 2. 최성재(2005년 10월24일)
  
  과연 누가 민주주의의 개념도 모르는가
  -천정배 장관의 무식한 민주觀에 대해서

  
  민주주의만큼 오용되고 남용되고 왜곡된 개념도 없을 것이다. 지난 10여년 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시민단체 중 '민주와 민족과 평화'를 이름으로 내건 것은 거의 예외 없이 '친북좌익'의 위장 단체이다. 이들은 북한에 대한 비판은 그 어떤 것이든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힌 자들의 극우적 망상으로 몰아붙이지만, 1998년 이전의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 아마 딴 나라 사람이 들으면, 마치 한국은 지난 60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수백만이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보이고 북한은 날아갈 듯한 기와집에서 이밥에 소고기국에 비단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방글방글 웃으며 살았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자유와 시장과 세계기준'을 내세운 단체는 그와 정반대로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여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달성하고 덤으로 G7로부터 끈질긴 구애를 받고 못 이기는 척 G8의 일원이 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우익진보' 세력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에게 공개적인 수사지휘를 행사한 천정배 법무장관이
  '민주주의의 개념과 기초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 모양이다. 10월 21일 '선진법치국가 실현의 시대적 과제' 라는 주제로 장성군청에서 한 말이란다. 이 말을 찬찬히 뜯어보면, '민주주의의 바닥'도 모르는 주제에 법조문을 달달 외워 용케 변호사가 된 자들이 '민주주의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법무장관의 정당하고 선진적인 법 집행에 대해 상식 이하의 트집을 잡는 것처럼 비친다. 그런데, 여론조사기관인 파워 리서치에 의하면, 전국의 변호사 중에서 69%가 법무장관의 강정구 인권 보호에 반대한다고 한다. 이들이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개념'도 모른다는 걸까.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도 그렇고, 조선과 동아와 중앙과 문화, 그리고 그 신문을 정기구독하는 국민의 대다수도 그렇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정부여당과 그를 지지하는 방송과 신문과 시민단체는 민주주의의 기본개념을 아득히 넘어 심오한 깨달음은 얻었으나, 천 장관의 조치에 반대하는 64%의 국민은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는 무지랭이 아니면 매카시즘을 신봉하는 '극우'란 말인가. 천 장관을 임명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도 채 안 되는 모양인데, 아마 이들은 열렬히 천 장관을 지지하여 노사모에 이어 천사모로 변신했을 수도 있다. 그래 봐야 20%대다(천 장관의 권력 행사에 찬성한 비율은 26%). 이들 외에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자들인가.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정권에 관계없이 비민주적이라고, 천 장관은 국회의원의 자격으로 1996년부터 주장했다는데, 그 논리에 따르면 그는 지금 비민주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지금은 민주적인 정부니까, 민주적인 적법 행위라고 한다. 1996년은 김영삼 정부 때다. 김영삼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똑같은 헌법에 의해 태어난 정부인데, 어떻게 그 때는 독재고 지금은 민주인가.
  
  결론은 하나다. '야당에 있건 여당에 있건, 서울대 수석합격에 빛나는 천재요 민주의 요람 호남의 횃불인 천정배가 말하면 민주고, 그 천정배 말에 반대하면 독재다.' 이 무슨 독선인가. 이게 바로 수천 년 인류 역사가 증언하는 독재자 또는 독재자의 하수인이 즐겨 쓰는 망언이 아닌가.
  
  연간 11만 명의 구속수사 중에 딱 한 명의 인권을 그리 소중히 여기는가. 강정구는 북한에 가서, 이제 북한 공산당도 감히 한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조국통일 이룩하자!'라는 말을 못하고 '6·15 공동선언에 입각하여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하자!'라고 하는데, 당당히 이를 만경대의 방명록에 써서 한국의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당근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겠지만, 거지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고 중견기업 노동자도 북한의 장관보다 잘 사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에는 저촉되는지라, 그는 잡혀가서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다. 일종의 집행유예 상태이다. 이런 자가 한 2년 잠잠하더니, 그 때보다 더 설쳤다. 6·25는 통일전쟁이다, 맥아더는 민족의 원수이다, 하면서 60년 된 북한의 축음기에서 찌지직거리며 간신히 흘러나온 그 소리를 기가 막힌 솜씨로 CD판으로 복각하여 4800만의 귀에 너무도 생생하게 들려 주었다. 개전의 정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너그러운 대한민국의 헌법을 조롱하고 있다. 이런 자도 불구속 수사함이 선진민주라는 게 천 장관의 현재 소신인 모양이다. (미래의 소신은 무엇일까?)
  
  소련 덕분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가고 중공 덕분에 압록강에서 기사회생한 김일성! 한민족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공의 군인들 20만 명을 포함한 300만의 원혼을 만든 살인마 내지 그 하수인! 그가 죽자 그 아들은 불안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 무덤 하나 치장하는 데에 무려 9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 돈을 국제곡물 시장에 풀었으면 300만을 능히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 한 목숨 제 한 권력을 위해 기어코 300만을 아비의 무덤에 순장시켰다.
  
  강제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탈북자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2천만의 절대다수가 대한민국의 노숙자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생활보호대상자보다 풍요롭지 못하건만, 대한민국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해 그들도 전원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했건만, 이들의 생존권 박탈과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말로도 천 장관은 모르긴 몰라도 한 마디 한 적이 없었다. 혹시 그러다가 당장 이전의 모모 장관들처럼 김정일에 의해 장관 자리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운 건 아닐까.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UN에서 3년 연속 대북인권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건만, 이런 데는 노무현 정부가 화성에 소혹성이 떨어진 것처럼 못 본 척해도, 알고 보니 인권에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한 천 장관은 일언반구도 않더니, 평양방송보다 극렬하게 50년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의 동시에 달성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의 과거는 자나깨나 헐뜯고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패전국에게 전쟁 배상금 한 푼 안 물리고 회개한 적국을 적극 도와 자기보다 잘 사는 선량한 우호국으로 만들고 수많은 식민지를 해방시켜 주고 그도 모자라 아낌없이 피 같은 달러와 진짜 피로 도와 준 미국의 과거와 현재는 앉으나 서나 저주하는 자의 인권에는 어찌 그리도 발을 벗고 나서는가.
  
  그것이 바로 오묘한 민주주의라고?
  
  천 장관, 과연 누가 민주주의의 개념도 모르는가? 철학과 예술의 가슴은 내팽개치고 정치인에 의해 오도된 호남의 한(恨)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첫째, 일신의 영달을 위해! 둘째, 언젠가 그 한을 풀기 위해 오로지 머리로만 공부한 당신과 기술도 자본도 자원도 없는 전쟁의 쓰레기터에서 반세기만에 세계5위 수준의 제조강국을 일구고, 세계 민주주의의 요람 영국이 1689년 명예혁명에서 1928년 여성 참정권 허용에 이르기까지 250년에 걸쳐 이룩한 대중민주주의(mass democracy)도 거의 동시에 달성한 4800만이 과연 당신보다 민주주의를 모를까?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 당신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애쓰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당신 마음속의 그 오도된 한(恨)과 그 한에 눈이 멀어 인류 최악의 독재체제인 북한에 한 마디 비판을 않음으로써 그 침묵으로 김정일의 오판(誤判)을 시나브로 유도하는 어리석음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기 바란다. 장관과 국회의원 위에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보다 훨씬 머리도 나쁘고 배움은 더욱 적지만, 벌거숭이 임금을 맨눈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어린이의 눈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의 자유 타령은 독재의 나팔소리임을 단숨에 알아듣는 풀뿌리의 가슴으로 경고하거니와, 천 장관은 자만과 독선에서 하루빨리 깨어나기 바란다. 천 장관 같은 인재가 정의의 칼을 버리고 불의의 칼을 휘두르면, 자유민주주의는 10년 이상 뒷걸음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2005. 10. 24.) --그러고 보니, 오늘은 UN의 날!
  
  

  자료 3. 민주주의는 발명되는 것이 아니다(2005년9월3일)
  
  민주주의는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마그나 카르타(영국의 대헌장. 1215년)를 기준으로 하면 약800년간 進化한 결과물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을 기준으로 할 때 57년간 진화한 결과물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선진국의 민주주의에 비교하여 문제가 많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다. 57세짜리 민주주의와 800년짜리 민주주의가 같다면 그게 이상하다.
  1970년대의 유신시대 때 우리는 朴正熙 대통령이 왜 서구 민주주의식 기본권을 보장해주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30세 난 사람에 대해 750년의 나이를 먹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격이었다. 즉, 세살짜리 어린이한테 75세 노인의 성숙을 요구한 셈이다.
  
  한국사람은 주자학적 원리주의에 젖어 사물을 판단할 때 당위론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니 당장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필요한 시간과 과정을 생략하고 그 당연한 것이 당장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위적인 것이 당연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유토피아이다. 이 세상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 곳이다. 神이 아닌 인간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특히 주자학적 생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식인들의 민주주의觀은 다분히 유토피아적 환상론이었다. 민주주의가 명령이나 희망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이 지구는 벌써 에덴동산이 되고도 남았다.
  
  민주주의가 발명될 수 없는 것은 이 정치제도를 기능하도록 만드는 수많은 조건들이 단숨에 충족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법치주의, 각종 제도(국가 국회 의료보험제도 등), 이 제도가 기능하도록 뒷받침해주는 경제력과 군사력, 시민윤리를 갖춘 민주적인 국민들이 있어야 한다. 어느 것도 수십년 단위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제도적, 문화적, 물질적 기반이 없는 곳에서 시도한 민주주의는 독재자나 선동가들에 의해 악용되었다. 필리핀, 베네수엘라, 그리고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1970년대 유신시대를 본다면 이 시대를 한 마디로 독재시대니 암흑시대라고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朴대통령을 반대했거나 지지했던 입장에서 벗어나 역사적 관점을 취한다면 이 시기는 그 뒤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을 만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朴대통령은 북한공산정권의 남침위협속에서 교과서적 민주주의의 조건들을 제약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민주주의 조건들을 만들어낸 셈이다. 1970년대 朴대통령이 반대자들의 요구대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수용했다면 한국은 내부 분열로 붕괴되었거나 또 다른 독재를 불렀거나 적화되었을지도 모르고 경제는 퇴보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요사이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수설이 되고 있는 듯하다.
  
  유신시대가 과연 독재시대인가. 1972년10월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권위주의 정부 체제를 만든 것만 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한 바탕에서 이 시대에 한국인의 삶이 어떠했던가를 구체적으로 짚어나가면 독재시대나 암흑시대란 낱말로 간단하게 부정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1. 그때 언론자유가 없었던가? 언론자유가 제한된 것은 사실이지만 말살되었다든지 봉쇄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과장이다. 언론이 비판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대통령, 군대, 정보부에 한했다. 그 이외의 정치적, 행정적 문제에 대한 비판은 가혹하게 이뤄졌다.
  2. 그때 정치의 자유가 없었던가? 야당의 국회활동이나 선거운동은 거의 자유롭게 이뤄졌다.
  3. 그때 재판의 자유가 없었던가? 일부 시국 및 공안사건을 제외하고는 정권이 재판에 간여하지 않았다. 일부 시국사건도 배짱 있는 검사나 판사들이 소신대로 밀고나가면 법대로 처리되었다.
  4. 경제활동에 자유가 없었던가? 있었다.
  5. 종교와 신앙에 탄압이 있었던가? 없었다.
  6. 학문의 자유가 있었던가? 사회주의나 북한정권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다 보장되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非민주적이었던가.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도 없이 단일후보에 대해서 거수기식으로 뽑도록 한 점은 분명히 非민주적이었다. 즉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독재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독재적이란 규정을 이때의 체제 전체로 확대시키는 것은 분명 과장이므로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1975년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약70%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 국민투표에 대해 야당은 거부운동을 벌였고, 활발한 찬반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압도적 다수가 유신헌법을 재신임했다는 것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이 국민투표로써 朴대통령이 민주적 정통성을 확립했다고 보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朴정권이 조작된 여론을 동원하여 재신임을 받았다고 보는 것도 무리이다.
  
  유신시대를, 이런 정치 이외 분야로 그 시야를 넓혀서 본다면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중산층의 착실한 성장, 중화학공업 건설, 방위산업 건설, 새마을운동, 중동건설시장진출, 의료보험제도 도입, 직업관료제도의 정착 등등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경제의 기반이 이때 놓여졌다. 이런 것들은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인가. 이런 경제성장과 중산층의 확대가 1980년대의 한국을 민주화의 대세로 밀어넣었다. 이 부분에서 朴대통령의 기여를 인정한다면 이 부분만큼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기여가 된다.
  
  朴대통령이 독재만 한 사람인가, 유신시대가 절망과 암흑의 시대였던가를 판단하는 데는 종합적이고 균형된 시각과 함께 민주주의가 발명되는 것이 아니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라는 데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유신시절 朴대통령에 반대했던 사람과 지지했던 사람들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다. 반대자들은 민주주의의 자유부문을,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의 제도부문을 경쟁적으로 발전시킨 셈이다. 이런 찬성과 지지 사이의 견제와 경쟁이 있었으므로 한국사회는 더 생동적으로 성장하면서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朴정권을 간단하게 독재로 규정하는 것은 이 시대의 생동성과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한국인 전체에 대한 모독이다. 대낮에 골방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이 '나는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외치는 식의 속좁은 短見(단견)을 경계하자.
  
  

  자료 4. 朴正熙의 항변-'민주주의 소화불량증을 개탄함'
  
  * 아래 글은 1975년1월14일 朴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중 일부이다.
  
  <무슨 외국 언론 기관에, 미국 국회 의원들한테, 어느 학자들한테, 무슨 정치인들한테…, 그것도 사실을 사실대로 써서 보내면 좋겠는데 전혀 허위 날조된 그런 사실을 가지고 우리 정부가 마치 무슨 인권을 크게 침해하는 것처럼 이렇게 선전을 해서 외국에서 어떤 세력을 끌어들여 가지고 우리 정부에다가 압력을 넣어서 그 사람들을 석방시키겠다 하는,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대해서 나는 지극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솔직이 말하면 이것은 사대주의 근성입니다.
  민주주의도 좋고 자유도 좋지만, 우리 나라가 하나의 자주 독립 국가로서 앞으로 이 지구상에서 뻗어 나가자면, 우선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을 뽑아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민주주의 얘기가 나왔으니까 또 몇 마디 언급을 하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2차 대전 후 이 지구상에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많이 생겼습니다. 내가 알기에도 한국 전쟁 당시 유엔 회원국이 한 50여 개 국이었는데 지금 현재는130여 개 국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 중에 공산주의 국가를 빼놓고 기타 서방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서구 민주주의를 자기 나라에 받아들여서 시행을 해 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을 직수입해서 성공해 가지고 지금 잘 해 나가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몇 개나 되느냐, 여러분들 한 번 꼽아 보셔요. 지도를 내놓고 보십시오.
  
  동남 아시아든지 중남미라든지 아프리카라든지…, 내가 알기로는 거의 한 번씩 다 홍역을 치르고 중병을 앓았어요.
  지금도 민주주의 소화 불량증에 걸려서 신음하고 있는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조금 잘 해 나가는 나라는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되, 자기 나라의 실정을 감안해서 가급적 실정에 알맞게끔 이것을 잘 조화해 나간 나라는 비교적 잘 하고, 그렇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직수입을 한 나라는 열이면 열 전부 다 민주주의 병에 한 번씩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이 아닙니까. 민주주의 제도라고 하는 것도 민주주의가 그 나라에서 자랄 수 있는 토양과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자라나는 것이지, 그런 것 없이 그냥 갖다 심어 가지고는 잘 자라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우리 한국 내에 있지만 제주도에 있는 밀감나무를 서울 근처에 심어 보아도 살지 못하지 않습니까? 같은 국내라도, 서울에 갖다 놓고 밀감나무가 자라나게 하려면 특별히 防風을 잘 한다든지, 온실을 만든다든지… 무언가 제주도하고 비슷한 토양이나 기후나 이런 조건을 갖추어 주어야지, 서울의 영하 20도가 되는 데다 그냥 갖다 놓았다면 당장 다 얼어 죽을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이라도 자기 체질에 맞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좀 쑥스러운 얘기입니다마는, 나는 지금도 목장 우유라든지 끓이지 않은 우유를 먹지 못합니다. 왜냐?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깡보리밥에 깍두기를 먹고 자란 뱃속이 되어서 그런지 목장 우유라든지 생 우유는 맞지 않아 먹으면 배탈이 나고 설사가 납니다. 그러나, 우리집 아이들은 잘 먹습니다. 어릴 때부터 먹어서 훈련을 시켰으니까….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나라에도 해방 후에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가지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별별 것을 다해 보았습니다.
  자유당 때 헌법, 민주당 때 헌법, 또 5·16후에 민정 이후 제3공화국 헌법, 다해 보았지만 우리 나라의 특수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우리의 풍토에 잘 맞도록 조정을 하지 않으면 여기에서 자라날 수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얻지 않았습니까?
  
  일부에서 유신 헌법을 철폐하고 옛날 헌법으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옛날 상태로 돌아가서 나라가 잘 되고 국민들이 모두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겠느냐…, 몇몇 정치인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옛날 그런 헌법 체제로 돌아가면 정치인 만능 시대가 되고 그들이 활개를 치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을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그것이 국민 전체의 행복이 되고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즈음 그 사람들은 우리 나라 건국 이후에 어느 헌법이 제일 좋았느냐, 이렇게 물으면 제2공화국 헌법이 제일 좋았다고 그래요, 즉 민주당 때의 헌법이지요.
  그것이 자유 황금 시대라 그 말이에요. 그런데, 요즈음 여러분들이 그 시대의 기록을 보십시오. 내가 본 어떤 기록에는, 어떤 날은 하루에 전국에서 데모가 1천 여 건이나 일어났어요.
  국민 학교 아동들까지도 거리에 나와서 데모를 하고, 이러한 무질서, 자유를 빙자한 방종, 혼란, 비능률, 또 선거 때만 하더라도 과거의 그 선거 제도를 우리가 다 여러 번 겪은 것 아닙니까. 얼마나 거기에서 많은 돈이 낭비되고, 사회적인 혼란, 국민 도의의 타락, 또 그 병폐라는 것은 일일이 우리가 열거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상태로 우리가 다시 돌아가고 지금 체제를 철폐해 버리고 그런 낭비와 혼란을 되풀이하면서도 자주 국방도 잘 되고, 자립 경제도 잘 되고, 민주주의도 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병폐를 깨끗이 일소하고 국민의 모든 능력을 한 곳에 집중해서 국력의 가속화를 해 보자는 것이 유신 체제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도 서서히, 착실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현행 헌법은 고쳐서는 안 되겠다, 유신 헌법을 철폐하고 옛날 헌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나라 망하는 길이다, 나는 이렇게 단언하여 얘기하고 싶습니다>
  
  

  자료 5. (2005년7월22일)
  
  노무현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盧武鉉 대통령을 민주주의자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그를 '헌법무시자' '상습적 위헌행위자'라고 비판한다. 헌법무시자, 상습적 위헌자가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없다.
  
  이런 착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민주주의=선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정치인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자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도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으니 민주주의자라야 한다.
  
  민주주의적 정치인이 되려면 선거를 통해서 권한을 부여받고나서 헌법과 그 하위 법률을 지켜야 한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법치를 무시하고 독재로 갔기 때문에 독재자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그 권력을 남용하여 헌법위반을 다반사로 하고 있으므로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헌법에도 없는 국민투표에 의한 재신임 추진, 헌법을 위반한 수도이전 추진, 그 遷都가 위헌이란 지적을 받은 뒤에도 수도분할이란 편법동원, 국민들의 의사를 들어보지 않고 對北송전 추진 등등 헬 수 없을 정도의 위헌적 행태로 해서 한국의 法治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민주화 요구는 거리의 투쟁으로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실천은 법치로써 해야 한다. 특히 권력자가 준법하지 않을 때는 그로부터 민주주의자라는 명예를 박탈해야 한다. 더구나 그는 변호사가 아닌가. 변호사에 의한 헌법파괴는 가중처벌감이다. 법률지식을 흉기화한 경우이니까.
  
  

  자료 6. 2004년12월7일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딘다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 마이클 호로위츠는 필자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한국의 위대한 기성세대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세계사적인 영웅들입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듣습니다. 그 대신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래 저래 잘못했다'고 살명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기성세대의 업적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엉터리 대통령과 젊은 세대의 실수를 견디어낼 수 있는 제도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각 세대는 자신들에 대한 主權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이 많은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맡기고 충고를 하는 정도는 좋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여서는 안된다는 뜻인 것 같다. 미래는 젊은 세대의 主權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누가 전통을 존중하고 누가 전통을 부정하는가이다. 이단은 전통을 부정하고 정통은 전통을 존중한다.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은 전통을 무조건 추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통, 즉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역사 예절 미풍양속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이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냄으로써 오늘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하게 만들자는 것이 전통 존중의 자세일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위대한 기성세대와 정보화의 神器로 무장한 무서운 젊은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40代이고 언론이다. 몸을 부드럽게 하는 허리와 도시를 생동하게 하는 광장의 역할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이들이 전향한 386 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은 지옥(김일성 父子)을 보았기 때문에 천당(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잘 안다.
  
  이들은 전통을 부정해보았으므로 또 그런 부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기성세대의 勞苦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경향이다. 사물을 부정과 긍정 양쪽 시각으로 들여다 본 사람은 입체적인 이해력이 생긴다.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원래 우파보다도 더 단호한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갖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옥을 본 40대가 광복 60주년을 맞는 기성세대의 노고를 천당밖에 보지 못한 20, 30대에게 잘 전달해준다면 한국은 괜찮은 나라가 될 것이다.
  
  

  자료 7. 2005년8월7일
  
  커터 선거참모 출신의 박정희 평가
  
  윌리엄 H. 오버폴트가 쓴 「중국의 부상(浮上)」(The Rise of China. Norton. 1993)이란 책은 한때 카터 선거캠프의 참모였고 反韓的인 생각에 빠져 있었던 저자가 朴正熙의 한국을 재평가하면서 개도국의 근대화와 중국의 변화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게 된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오버홀터씨는 중국의 근대화 전략이 朴正熙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왜 朴正熙식 개발전략의 정당성에 설득당하게 되었나를 고백한다.
  
  이 책 집필 당시 홍콩의 미국 금융회사에서 국제정세 분석가로 일하고 있던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종하는 민권운동가로 활약했고 에즈라 보겔 교수의 권유를 받아 하버드에서 중국문화대혁명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연구하면 할수록 엄청난 규모의 학살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하버드에서 제기해 보아도 毛澤東 신봉자들이 강단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당시 분위기 때문에 비판만 받았다고 했다.
  
  예일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허드슨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소장은 유명한 미래학자 허먼 칸이었다. 그는 한국의 근대화 정책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젊은 오버홀터씨와는 자주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오버홀트씨는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에 한국을 방문하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농촌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때의 충격을 그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악독한 독재자로 알고 있었던 朴正熙 정권이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아주 효율적으로 국가를 근대화하고 있는 모습은, 그가 필리핀에서 목격한 한심한 미국식 근대화와는 너무나 달랐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그는 아시아의 권위주의적 정부를 바라보는 미국학자, 정치인, 기자들의 위선적이고 도식적인 관점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1976년에 그는 카터 후보의 선거참모로 들어가 對아시아정책 그룹을 이끌게 되었다. 한국을 방문한 뒤 생각이 달라진 그에게 있어서는 서구식 우월의식으로 꽉 찬 카터 진영의 참모들이 철없는 사람들로 비쳐졌다. 그때 카터 진영에서는 駐韓미군의 철수를 공약함으로써 독재정권을 응징하는 인권외교의 챔피언으로서 카터의 이미지를 조작하려고 했는데 이게 오버홀터에게는 바보짓으로 보였다. 그는 미국식 인권개념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역사와 문화의 발전단계 차이를 무시한 미국식 오만으로 보았다. 이 경험 때문에 그는 1989년6월의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의 인권문제와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연계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구 이념의 사기성은 정치발전은 항상 경제발전보다 선행(先行)하거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아시아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사기성은 정치적 자유화 없이도 경제적 자유화가 무기한 계속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세계의 현대사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후진국가가 민주화를 먼저 하고 나중에 경제발전을 하는 식으로 현대적 시장경제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이룩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패한 모델은 서구의 학자들과 언론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왔고 서구의 원조를 받아왔다. 이런 원조는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뒷문으로 빠져나가 버려 자본의 도피만 발생할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평양 연안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에는 먼저 권위적 정부가 들어서서 근대적인 제도를 만들고 경제를 자유화하며 교육받은 중산층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정치지도자들이 정치적 변화를 원하든 원치 않든 자유와 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 책에서 오버홀트는 후진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후진국엔 인기주의적 선동으로부터 국익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하고 현대화된 국가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후진국엔 농지개혁이나 국영기업의 사유화 같은 개혁을 저지하는 기득권 세력은 강하나 이를 극복하고 추진할 국가주의 세력은 약하다. 넷째, 후진국엔 분별력을 갖춘 교육 받은 중산층이 약하다. 오버홀트는, 이 세 가지를 합쳐서 후진국에서 민주주의의 정착을 불가능하게 하는 문제를 '인기주의의 장벽'(Populist Barrier)라고 이름지었다. 오버홀트는 朴正熙가 바로 이 포퓰리즘을 꺾고 민주주의로 가는 제도와 중산층과 국가적 개혁을 이룩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집권하자말자 군사비를 삭감했다. 북한의 위협이 있음에도. 이런 일은 민간 정치인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적대관계에 있던 일본과 수교했다. 이것도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외국인 혐오증이 심한 군중심리를 누르고 외자유치와 무역을 장려했다. 그는 수출을 지원하기 위하여 환율을 인하했다. 이는 南美의 정부라면 할 수 없는 조치이다. 이 나라들의 지배층은 과대평가된 환율을 이용하여 사치품을 수입하고 외국에서 부동산을 사재기하기 때문에.
  朴대통령은 외국인의 투자를 환영하고 원자재와 기계류에 대한 관세를 내려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이런 개혁은 사회주의적 성향의 지식인과 과보호에 안주하는 기업인으로부터 동시반발을 살 수 있는 일이라 민주주의를 채용하는 開途國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朴正熙는 현대식 국가기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군은 미군보다도 더 효율적인 집단이 되었다. 그는 무능하고 부패한 장관과 은행가들을 추방하고 연구소를 만들어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을 초빙했다. 그는 이들이 고위 관료가 되도록 하여 세계에서 가장 능률적이고 날씬한 정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에 반해 미국식 민주화를 추진한 필리핀의 아퀴노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청탁을 받아 공무원들을 임명하다가 보니 정부는 커지고 효율성은 떨어졌으며 유능한 장관들은 집단이기주의의 희생물이 되었다. 朴대통령의 개혁이 그가 원하지 않았던 민주화의 조건들을 만들어놓았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감동적인 박정희식 근대화를 현장에서 목격한 오버홀트는 동아시아식 개발방식의 타당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 새로운 시각으로써 고르바초프식 서구형 개혁 개방의 실패도 예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식 개혁은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자유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서구가 좋아하고 부추긴 방법이기도 했다. 오버홀터씨는 한국의 성공사례와 이를 모방한 鄧小平의 중국 근대화 성공사례에서 세계사의 발전을 평가할 수 있는 눈을 떴다는 얘기이다. 오버홀터씨의 이 책은 중국에 관한 주요 저서로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朴正熙를 보는 시각의 교정을 통해서 이 세계를 보는 눈이 맑아져간 그의 과정은 기자의 경험과도 비슷하다
  
  

  자료 8. 30년간 한국의 인권은 향상 추세
  
  -프리덤하우스 조사 자료 분석. 군사정부 시절에도 「부분적으로 자유」로 분류돼-
  
  미국의 세계 인권 감시 관찰 기구인 프리덤 하우스(www.freedomhouse.org)는 매년 세계 192개국의 인권상황을 세 등급으로 나눠 발표한다. 기준은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의 합산이다. 평균 점수가 1에서 2.5점이면 「자유」(free), 3점에서 5.5점 사이는 「부분적으로 자유」(partly free), 5.5-7점 사이는 「자유롭지 못함」(not free)로 분류한다.
  
  2003년 보고서에 따르면 34개국이 「자유」국가중에서도 1등급인 1점 국가였다. 대부분이 유럽 국가와 北美 국가들이다. 우루과이(南美), 투바루(남태평양), 마샬군도, 키리바시(남태평양의 영연방 소속 島嶼 국가), 도미니카, 사이프러스, 바베이도스(남미), 호주, 산마리노(이탈리아 반도의 小國)의 이름이 보인다. 자유국가들 중 2등급인 1.5점 국가로는 불가리아, 체코, 그리스, 파나마, 남아프리카, 폴란드, 헝가리 등 28개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일본과 칠레도 이 그룹이다.
  
  한국은 자유국가중 3등급인 2점 국가인데 보츠와나, 크로아티아, 멕시코, 몽골, 루마니아, 사모아, 대만 구야나, 이스라엘, 도미니카 공화국 등 11개국이다. 무장대치상황하에 있는 세 나라, 이스라엘 대만 한국이 같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세 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있는 나라란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무장대치상황에선 인권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국가」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선 대단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대만과 한국은 국민국가를 만들어 운영한 햇수로는 50여년에 불과하지만 찬란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민족임이란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한 국가의 선진성을 좌우하는 3대 요소는 국민국가 운영 경험의 길이, 문명사의 깊이, 지정학적 위치의 組合이다. 한 요소에 결함이 있어도 다른 요소가 월등하면 선진국 수준에 육박할 수가 있다.
  
  자유국가중 4등급은 2.5점 국가이다. 페루, 필리핀, 타일랜드, 인도 등 16개국이다.
  
  북한은 이 조사가 실시되기 시작한 1972년 이후 한번도 「자유롭지 못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롭지 못한 국가들도 4등급이 있는데 북한은 최악중의 최악인 7점 국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북한주민들은 평화시에도 300만 명이 굶어죽을 정도의 절대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데다가 가장 억압받는 주민이란 이야기이다.
  
  물질적, 정신적 조건에서 다 최악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북한동포들이다. 이 지국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지경으로 만든 金日成 金正日은 최악중의 최악이란 이야기다. 예컨대 북한과 함께 7등급으로 분류된 나라들중 북한처럼 주민들이 굶어죽는 나라는 없다. 버마, 쿠바,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리비아, 수단, 시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중 수단이 10년 전 內戰으로 100만 명이 굶어죽은 적이 있을 뿐이다. 북한은 내전이 아닌데도 평화시에 수백만 명이 한 마디 항의도 없이 조용히 굶어죽은 곳이다.
  
  한국은 1972-73년과 1976-77년 사이 두번 「자유롭지 못한 국가」로 분류되었다. 朴正熙 대통령의 유신통치기였다. 이 두번을 뺀 朴正熙, 全斗煥 통치기간 내내 한국은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었다. 한국은 盧泰愚 정권이 들어선 1988년에 처음 「자유로운 국가」로 승격했는데 점수는 정치적 자유에서 2점, 시민적 자유에선 3점이었다. 점수는 작을수록 자유롭다는 이야기이다.
  金泳三 정부가 들어선 1993년부터는 「자유국가」중 한 등급이 올라 2점 국가로 되었다.
  
  위의 통계는 한국의 인권상황이 소위 군사정부 시절에도 말살된 적은 없었으며 부분적 자유는 항상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의 인권상황이 꾸준히 향상되어오다가 1993년도에 2점 국가가 된 이후엔 10년이 지나도록 1.5점 국가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란 구호는 좋지만 인권향상의 속도에선 권위정부 시절보다도 오히려 떨어지는 셈이다.
  
  朴正熙 全斗煥 정권을 비난하는 이들은 파시즘이니 전체주의니 스탈린 체제와 같다느니 하는 비교법을 쓴다. 프리덤하우스의 통계는 이런 비난이 과장된 것이며 「권위적 정부」라고 표현하는 정도가 맞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자유 이외에 물질적 자유, 즉 굶주리지 않을 자유를 소위 군사정부가 국민들에게 준 점까지 감안한다면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인권 점수는 더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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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권위 있는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www.freedomhouse.org)의 세계인권상황에 대한 최신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쟁과 테러의 와중에서도 자유를 향한 인류의 진보는 계속되고 있다.
  이 조사가 맨첨 시작되었던 1973년에 조사대상 150개국중 '자유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43개국(29%)이었다. 올해(2003년) 조사대상 192개국중 89개국(46%)이 자유국으로 분류되었다. '부자유국'은 지난 30년 사이 69개국(46%)에서 48개국(25%)으로 줄었다. 자유의 확대란 것이 세계사의 진보임을 잘 보여준다.
  
  이 세계사의 진보에 저항하고 있는 것은 북한 김정일 정권이다. 지난 30년간 단 한번도 프리덤 하우스의 '최악의 인권탄압국' 명단에서 빠지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자유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사의 흐름을 역류한 守舊세력이란 것은 이런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1973년 아시아-태평양 국가 32개국중 자유국은 8개국이었다. 30년이 흘러 이 지역의 자유국은 18개국으로 늘어났다. 북한은 이 지역의 자유의 확대 행진에서도 탈락했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자유국으로 분류된 89개국(조사대상 192개국중 46%)의 국내총생산 합계는 세계 전체의 89%나 되었다. 부분자유국의 비중은 5%, 부자유국은 6%에 불과했다. 이는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프리덤하우스는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기준으로 하여 자유, 부분자유, 부자유를 결정한다.
  
  

  자료 9. 2004년3월11일
  
  誤導된 여론은 민주주의의 敵이다. 여론이 국회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敵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代議制 민주주의이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등 선출제 代議士들을 선택하는 행위를 한 뒤 그들을 감시하고 이용하면서 일상적인 정치에 간접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의 확립된 원칙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代議민주주의보다도 더 민주적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 중엔 독재자들과 선동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주로 조작된 여론을 들고 나와 “이것이 民意이다”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권력과 선동의 힘으로 민주주의 절차를 중단시키곤 했다. 히틀러나 南美의 독재자들
  이 흔히 쓰던 숫법이다. 李承晩 대통령도 어용친위 조직들을 동원하여 三選개헌을 관철시켰다. 요사이 盧武鉉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보고있노라면 국회보다도 어용친위세력이나 어용방송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여론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여론이 다 정당한 것이 아니다. 만약 여론이 다 정당하다면 수사도, 재판도, 투표도 여론조사로 代替하면 된다. 조작된 여론은 정당하지 못하다. 예컨대 反美親北 세력들이 미군에 의한 교통사고를 살인사건으로 몰아가 엉터리 정보를 제공했을 때 그 허위를 믿고서 反美여론
  을 일으켰다면 그 여론은 조작된 것이다. 요즘처럼 친북화된 어용방송이 집중적으로, 또 편파적으로 보도하는 북한문제, 탄핵문제에 誤導되어 조성되는 여론은 정당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그러한 편향되고 왜곡된 보도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主敵은 金正日 정권이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이라고 믿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이 여론을 믿고서 외교정책을 펴다가는 한국은 內戰상태나 亡國으로 치닫게 된다. 우리가 존중해야 할 여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법치가
  지켜지며, 특히 권력을 믿고 발호하는 홍위병의 선동이 적절히 견제되는 조건하에서 이뤄진 것에 한한다. 오늘날 한국의 여론을 형성하는 세력중엔 친북좌익세력, 권력을 믿고 선동과 거짓말을 일삼는 세력, 부패한 세력, 그리고 거짓말을 참말인 것처럼 많이 하는 대통령이 있다.
  
  선동정치, 어용방송이 판치는 한국의 여론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는 구조이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헌법이나 법치보다도 여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야말로, 바로 代議민주제도를 뒤엎으려
  는 쿠데타적인 음모이다. 오도된 여론이 국회의 의결보다, 헌법의 규정보다 우선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자는 민주주의의 敵이다.
  
  

  자료 10. 최성재(2004년11월24일)
  
  민주주의는 백마 탄 왕자처럼 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백마 탄 왕자처럼 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굶기를 밥먹듯 하며 얻어터지고 손가락질 받던 거지가 통장 하나 속주머니에 깊숙이 감춘 채,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한 분신 같은 넝마를 걸치고, 밤이슬 맞으며, 오늘도 정화수 떠놓고 북두칠성에게 비는 노모를 바라보고 우는지 웃는지 기묘한 표정을 짓고 쓰러지듯 흐느적흐느적 다가오는 것처럼 어렵게 어렵게 찾아온다.
  
  민주주의는 비키니 차림의 미스 코리아처럼 활짝 웃으며 춤추듯 다가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호박같이 생긴 무우 다리의 농촌 아낙네처럼 흙 묻은 치마에 코를 풀고, 골목길을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아기에게 불어터진 젖을 꺼낸 채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면서 서산 마애불마냥 웃는 듯 마는 듯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민주주의는 예의바르고 싹싹한 영국 신사처럼 바바리 코트 옷깃 위로 여유 있게 유머를 펑펑 터뜨리며 가난한 사람 누구에게나 퍼 주어도 남을 만큼 007 가방에 시퍼런 지폐를 가득 담고 뚜벅뚜벅 걸어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애꾸눈 선장이 한 손에 권총을 들고 한 손에 방직기로 짠 고운 옷감을 들고, 거룩한 성경을 든 선교사를 앞세우고 거침없이 안하무인격으로 평화로운 어촌에 나타나 온 마을과 인근의 숱한 마을들을 모조리 쑥대밭으로 만든 후에, 권총에 매혹된 사람, 옷감에 얼이 빠진 사람, 성경에 영혼을 저당 잡힌 원주민들이 패를 갈라 치고 받고 싸우다가 결국은 너도 나도 다 죽고 그 와중에 태어나 눈치코치 보면서 씩씩하게 자란 아이들처럼 여전히 촌티를 뚝뚝 흘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얼굴을 내비친다.
  
  민주주의는 우아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아니다. 끝없이 맑고 고운 그레고리 성가가 아니다. 깊고 넓고 아늑한 바하의 칸타타도 아니다. 마냥 흥겨운 요한 스트라우스의 궁정 왈츠도 아니다. 감미로운 선율의 팝송도 아니고 간드러진 가야금 병창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툼과 고뇌와 격정과 울분이 뒤섞인 베토벤의 교향곡이다. 애환이 깃들은 남도민요요, 걸쭉한 욕설이 뒤섞인 판소리이다. 발은 힘차게 땅을 밟고 팔은 하늘을 향해 크게 휘두르는 탈춤이다. 때론 슬프고 때론 흥겨운 뽕짝이다. 한 잔 걸친 시골 학교의 총각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혼자서 훌쩍훌쩍 부르는 동요요, 가곡이요, 유행가이다.
  
  민주주의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니다. 모딜리아니의 목 긴 여자도 아니고 피카소의 귀신 같은 아비뇽 처녀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해맑은 미소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다. 죽은 아들을 안고 슬피 우는 피에타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세한도의 소나무이다. 수더분하면서 약간은 요염한 신윤복의 아낙네이다. 해질녘 풍경소리에 들판에서 조용히 합장하는 농촌의 부부이다. 촌스러우나 눈이 맑고 살결이 거무스레한 고갱의 뚱뚱한 처녀이다. 십자가에서 라마라마 사박다니, 절규하는 예수이다. 죽음으로써 부활한 예수이다.
  
  민주주의는 천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루소도 아니고 나폴레옹도 아니다. 장준하도 아니고 박정희도 아니다. 김일성은 절대 아니다. 김정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김영삼도 아니고 김대중도 아니다. 하물며 노무현일 리가 없다. 희대의 독재자가 퍼뜨린 이념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왕자처럼 공주처럼 키워 준 조국과 그 우방의 은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갚는 386 주사파는 '개에 맹세코(소크라테스)' 아니다.
  
  민주주의는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말, 고양이, 개, 쥐를 잡아먹고 살아남은 파리지엔이다. 태평양전쟁과 육이오 동란을 이겨내고 땀 흘려 집 한 칸 마련하고 자식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어머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다. 월급 받는 재미에 죽으라고 일한 공순이 공돌이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메밀꽃을 바라보며 남몰래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 오일장에 좋은 목을 잡으러 그믐달을 친구 삼아 올림픽에 나가서 경보하듯 재게재게 발걸음을 재촉하던 장돌뱅이다.
  
  민주주의는 이웃집 할아버지이다. 동네 슈퍼의 아저씨이다. 아파트 경비원이다. 청소부이다. 농부이다. 노동자이다. 맨땅에 수도 없이 헤딩하고도 그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나 기어코 여러 사람들을 고용하고 국가에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중소기업가이다. 어느 날부터 왠지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옆집 순희이다. 겉은 찬바람 나지만 속은 비단결 같은 뒷집 이혼녀이다. 설움과 배고픔을 딛고 꿋꿋이 일어선 그 여인의 딸이다.
  
  (2001. 5. 18.) (2004. 11. 24.)
출처 : 趙甲濟
[ 2005-10-29, 22: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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