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IMF 사태의 내막 上 - 대통령은 없었다(2)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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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최초보고
  
  지금에 와서 왜 더 일찍 IMF에 가는 문제를 결정하지 않아서 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은 이렇게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IMF의 지원을 받고 그 관리하에 놓인다는 것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고 있는 터에, 이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IMF에 가지 않고 해결할 길이 없는가 하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IMF로 가게될 경우의 협상에 시간이 3개월 정도 걸린다는 관례를 감안하여 최단시일 내에 결말을 지을 수 있도록 사전 정지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한편 김인호 경제수석은 이날(8일) 오전 전날 밤의 대책회의에 대해 대통령에게 그 내용을 간략하게 처음으로 보고했다. 「IMF로 가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보고에 대해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나도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날 재경원은 1백억 달러 규모의 ABS 발행 등 마지막 대안들을 검토했다.
  
  이날 오전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서 중계된 이날의 담화는 「김대통령의 측근참모들과 김현철 인맥이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를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공세에 대해서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김대통령은 『허위사실 등이 유포되는 선거풍토를 정화하기 위해서 정부의 권한을 총동원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틀 뒤에는 국무회의, 14일엔 검사장회의를 소집하여 자신의 이런 뜻을 전달했다. 이 특별담화는 당시 김대통령의 관심이 무너지는 외환시장이 아니라 대통령선?자신의 명예보호에 있었음을 짐작構?하는 증거이다. 김대통�?이 결정적인 시기에 외환위기와 관련해서는 국민들에게 한 마디의 설득이나 해명도 하지 않았고 「정부의 권한을 총동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는 국가경제가 아닌 개인적이 명예보호를 위해서 정부의 힘을 총동원하려고 하고 있었다
  
  11월9일 : 확대회의(휴일이므로 지표 없음)
  
  일요일인 11월9일 밤7시. 시내 모처. 전날의 약속대로 재경원의 검토내용을 갖고 강부총리와 김수석,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이 저녁을 하면서 대책을 협의했다. 금융개혁법안의 통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합대책(강부총리와 김수석이 경질된 11월19일에 임창렬 신임 부총리에 의해서 발표된 내용)을 마련하여 법안통과와 동시에 발표하며,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문제를 계속 검토한다는 줄기에 합의했다. 이들은 IMF 문제는 그 정치,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여 최종결정이 날 때까지는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식사 전후로 예정된, 여러 사람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는 보안을 위해 공개적으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밤 9시 인터컨티넨탈호텔. 이 회의에는 이경식(李經植) 한은 총재와 이영탁(李永鐸)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윤鞭?금융비서관도 자리를 함께 했? 이 회의는 「문제의 핵심이 한국 금융기관의 신인도, 더 나아가서는 이들 금융기관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부의 금융개혁 의지와 능력에 대한 국제금융 사회의 불신에 있으므로 종합적인 금융안정대책을 마련하여 금융개혁법의 국회 통과와 동시에 발표한 후 시장의 움직임을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한 가지 관계자들의 기억과 증언이 엇갈리고 있는 쟁점은 윤진식 비서관이 9일 대통령과 독대(獨對)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보도에 의하면 윤비서관은 이날(9일) 대통령을 독대하고 IMF 구제금융을 속히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며 12일 날 다시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김인호 수석은 윤비서관이 자신에게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가 두 번인 것은 사실이나, 대통령을 처음 뵌 것은 12일이며, 두 번째는 강부총리와 김수석이 경질된 다음이었다」고 해명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쟁점은 윤비서관이 『2일과 6일 대책회의에서 강부총리에게 IMF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강부총리가 이를 묵살하고 금융개혁법안 통과만 강조했다고 주장했다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인호 전 수석은 『윤진식 비서관이 9일의 대책회의를 오해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윤비서관은 IMF건이 거론된 11월7일의 대책회의 후 여러 번 김수석에게 빨리 「IMF에 구제금융신청」으로 가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김수석은 이때마다 『의미는 알겠지만 재경원이 추진하고 있는 안도 있고 하니, 재경원안을 살펴보고 만일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잘 챙겨보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윤비서관은 9일 밤9시 회의에 관해서는, 『강경식 부총리에게 「IMF로 가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부총리는 「IMF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고 했다』고 김수석에게 말했다.
  
  김 전 수석은, 7일 회의에 참석한 윤비서관이 그 뒤 이틀간 회의에는 불참했으므로, 9일 밤의 상황을 『강부총리가 IMF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로 오해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김(金)수석은, 9일 밤 7시 회의에서 부총리와 경제수석 간에 큰 줄기에 대한 합의한 상태였고 밤 9시 회의에서는 IMF건을 보안(保安)하기로 한 것이 윤비서관의 오해를 부른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윤비서관(현 세무대학장)은 이런 쟁점들에 대해 『청문회를 통해 밝히겠다』고했다. 어쨌든 9일 밤의 두 차례 회의에서 경제정책 사령탑이 내린 대체적인 결론은, 참석자들에 따라 보는 입장의 차이는 다소 이지만, 금융개혁법안의 조기처리, 종합적인 금융안정 대책 마련, ABS 등 다른 대안 강구 등의 방법으로 추진하되, 이런 방법들이 여의치 않으면 IMF로 갈 수밖에 없으니 이것도 함께 준비하자는 선이었다. 이같은 내용을 다음날 오전 대통령에게 강부총리가 보고하기로 하고 일행은 헤어졌다. 이날 IMF와 사전 접촉을 시작하기 위해 엄낙용 재경원 제2차관보가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와 통화했다.
  
  11월10일: 대통령에 대한 공식보고
  
  □가용 외환 보유액현황 (통계상 숫자는 추후 97년 11월 7일 기준으로 통일-수정한 것)
  
  * 선물환 순매도는 97년 1월 총계 <출처 : 한은 비(秘)자료>
  
  <11월10일(월), 외환보유고 2백79.1억 달러, 달러환율 1천원대 돌파. 종합주가지수 5백25.3> 10일자 신문들은 「김대중 후보 35.7% 이인제 28.0% 이회창 21.4%」의 순 으로 나타난 당시의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를 머릿기사로 다뤘다. 재경원이 금융개혁법을 통과시킨 뒤 금융시장 안정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사가 1면에 조그맣게 실렸고, 경제면에서는 15억 달러의 CP가 만기연장이 안되고 있다는 기사가 「서울 외환시장 초비상」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0일 아?10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강부총리가 청와대에 도착했다. 배석자는 여느 때처럼 김인호 수석이었다. 강부총리는 9일 밤의 회의 내용에서 나온 결론대로 진행 중인 금융개혁법안 등 전반적인 외환위기 대책을, 제목만 열거된 한 페이지의 메모를 들고 들어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간단한 메모로 보고한 것은 전날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 실무자들이 정식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 없었던 데다 사안이 중대했던 만큼 형식을 갖춘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면 타이피스트나 서류전달 과정을 통해서 보안이 누설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한 때문이었다. 대통령과 마주한 이 자리에서 강부총리는 금융개혁법안 처리와 종합금융안정정책, ABS 대안(代案) 등 그 동안의 협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런 방안들이 안되면 IMF에 가는 가능성도 검토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부총리로부터 대통령에게 IMF 문제가 정책적으로 보고된 최초의 순간이었다(그 이틀 전에 김인호 수석이 IMF 문제가 검토 중이라는 보고는 대통령에게 했다). 강부총리는 부실채권 정리와 일부 종금사의 정리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주로 강조했다. 그는 또 환율대책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금융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IMF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므로 IMF와 정식으로 접촉을 시작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강부총리는 『기아 문제도 처리해보니까, 국내적으로는 잘 처리한 것 같은데 국제적으로?잘 안 먹혀 들어갑니다』라는 말도 했고, 『앞으로의 정치 일정을 감안했을 때 IMF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대통령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저 『알았다』는 식으로 강부총리의 보고를 듣고, 별다른 「말씀」이나 지시사항은 없었다. 강부총리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아마도 여러 경로를 통해 IMF로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듣고 계신 것 같다」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이 IMF로 간 뒤에 겪게 될 어려움과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다. 보고를 끝낸 강경식, 김인호 두 사람은 대통령 집무실을 나왔다. 통상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나면 곧바로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옆 대기실에서 보고에 배석했던 경제수석과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날의 보고결과를 정리해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점검하는 것이 통례였다.
  
  두 사람은 「좌우간 IMF로 가는 것이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캉드쉬 IMF 총재를 빨리 만나서 협의해야겠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문제는 어디서 만나야 되는가하는 것이었다. 부총리와 캉드쉬가 만난다는 것이 알려지면 외환시장 등 여러 부문에 심각한 파장을 부를 수 있어 방법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직접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당장 또 언론에서 알테고 그렇다고 캉드쉬를 불러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눈에 안 뜨이게 불러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어떻게 해야 되나, 군용기라도 타고 나갈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까지 오갔다. 두 사람은 그때 동남아에 있던 캉드쉬와 빠른 시일 내에 그것도 비밀리에 접촉할 방법을 논의하고 헤어졌다.
  
  대통령-한은 총재 통화
  
  10일밤 9시30분쯤(李經植 총재의 기억) 한국은행 이경식 총재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있을 때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이(李)총재는, 이날 퇴근 후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오는 압박감을 풀기 위해 스카치 양주를 한 두 잔 마시고 막 잠에 들려는 찰라였다. 전화는 이(李)총재의 부인이 받았다. 전화를 받은 후 부인은 황급히 이 총재를 깨웠다. 『「어른」께서 전화하셨어요』 이총재는 93년 12월 경제 부총리직에서 그만두고 나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이 두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 번은 다른 자리를 제의할 때 대통령이 건 전화였고, 다른 한 번은 한은 총재직을 제의할 때 준 전화였다. 대통령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이총재, 「경제」가 이래 가지고 되는 거야?』
  
  이총재는 무너지는 외환시장의 일선에 선 입장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다그치듯 물어온 대통령의 전화에 이총재는 다소 격앙된 어조로 대답했다. 『각하 이래가지고는 큰일납니다』 『응?』 대통령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울렸다. 그러나 이총재는 당시 『「경제」가 이래 가지고 되는 거야』로 시작된 대통령의 물음에서 위기의 핵심인 외환보유고의 심각성보다는 주식시장 등 경제 전반에 대해 대통령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이총재가 말했다. 『각하 이래가지고는 큰일납니다. 국가부도 납니다. 외환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에하노(어떻게 하나). 얼마나 버틸 수 있노』 『잘해야 한달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노?』 『IMF에 가야지요』 『응?』 이총재는 계속 말을 이었다. 『IMF에서 돈 꾸는 것 사실 그리 대단한 일 아니지 않습니까. 제일은敾?다른 은행에서 돈이 잠시 부족해 돈 꾸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가면 될 것이지 왜 안가노?』
  
  『내가 가는 것을 결정하는 결정권자(부총리를 의미)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일 김인호 수석 불러서 「외환 사정이 나쁘다는데 어떻게 할래」하고 강하게 말씀하십시오』 『알았다』이경식 총재는 재경원이 다른 대안을 검토하느라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고 판단하고, 하루빨리 IMF 구제금융 쪽으로 상황을 몰아가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통화내용이다. 이경식 총재와의 전화를 통해서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실상을 처음 알았다는 식으로 보도한 언론사도 있지만 이미 밝혀진 대로 대통령-이경식 통화는 김인호, 강경식 두 사람이 대통령에게 IMF건을 보고한 뒤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경식 총재의 느낌이 말해주듯 대통령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증권시장 같은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경제 문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거의 같은 시각, 강부총리도 모스크바에 가 있던 피셔 IMF 수석 부총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피셔는 단도직입적으로 『동남아를 순방 중인 캉드쉬 총재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IMF가 한국의 사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강부총리는 다른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었기 때문에 확답을 피한 채 피셔가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에 다시 전화를 하겠노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날 달러 환율이 처음으로 1천원대를 돌파했다는 기사가 신문 1면의 머릿기사로 실렸다. 이들 기사는 그러나 「환율앙등이 미치는 영향, 환율 어디까지 오를까」정도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문제는 환율이 아니라 바닥 나고 있던 외환보유고였다.
  
  11월11일 대통령의 채근
  
  <11월11일(화), 외환보유고 2백79.3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백22.1> 11일 점심 때 김인호 경제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과 수석간에는 직통전화가 있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전화를 받게 되어 있다. 『홍재형(洪在馨) 전 부총리가 전화를 해와서 IMF에 가야 한다고 하던데 그 IMF 문제 어떻게 되고 있노』 김수석은 그 동안의 경과를 다시 보고했다. 『어제 부총리가 보고한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어제 보고 드린 대로 부총리, 한은 총재 등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IMF로 가는 문제는 단순히 경제 문제에서 그칠 수가 없으며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부총리의 판단을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총리가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결정한 후 건의하면 이를 받아 각하께서 결정하는 모습을 취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후에도 김수석은 『IMF 문제가 어떻게 되어 가냐』는 대통령의 채근을 몇 번 받았다.
  
  김인호 수석은 김대통령이 IMF로 가는 문제에 대해서 그 정치적 파장을 좀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경제정책을 책임진 입장에서는 IMF로 가기 전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아야 하는데 외부인사들은 다른 입장에서 빨리 가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는 있을 것이고 이런 건의에 대해서 대통령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여러 가지를 고민하느라 김수석은 이날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이날 저녁에 발행된 12일자 조간의 머릿기사는 부실은행과 종금사에 대해서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아들 김현철(金賢哲) 인맥을 동원하여 이인제(李仁濟) 후보의 국민신당을 지원하고 있다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공세와 관련된 기사였다. 언론과 정치권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는 외환시장과 덮쳐오는 대란(大亂)을 아직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외환위기보다는 자신을 연루시킨 두 당의 정치공세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월12일 : 캉드쉬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11월12일(수), 외환보유고 2백67억 달러, 종합주가지수 5백17.5> 김인호 수석은 12일 새벽 강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어제 이야기를 자세히 전달했다. 『대통령께서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하시는데 홍재형 전 부총리 등 여러 채널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IMF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지요.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인호 수석이 강부총리와 새벽 통화를 하고 출근한 직후인 아침 8시 반 청와대. 통상적인 보고를 하러 들어간 김수석은 다시 대통령으로부터 『IMF건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대답은 이전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 김수석은 그 이후로 매일 한 번 정도 『IMF건은 어떻게 되고 있나』하는 대통령의 채근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한 번 독촉을 시작하면 결론을 낼 때까지 줄곧 하는 식이다.
  
  김수석은 『빨리 결론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대했던 일본의 협조는 어렵다는 소식이었고 다른 좋은 뉴스도 없었다. 오후4시쯤 다른 일정을 취소한 김수석은 여의도에서 강부총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캉드쉬를 어떻게 비밀로 만나는 것이 좋을지 논의하고, 금융안정종합대책,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한 후 헤어졌다. 경제수석실의 윤진식 비서관은 이 날 김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나 IMF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직보(直報)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말을 들은 김인호씨는 『IMF건은 아직 최종결정이 내려지지 않아서 귀하에게 이야기를 못한 것인지 대강은 짐작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특히 재경원이 ABS안을 심층적으로 검토하도록 한 것은 그것이 안되면 IMF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는데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윤씨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답하더란 것이다.
[ 2018-12-12, 10: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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