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 해 온 변호사란 직업은 일을 중지한 후에도 끊임없이 따라오는 것 같다. 주위의 불행과 절규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제저녁은 동해까지 먼 길을 친척이 되는 오십대 부부가 찾아왔다. 내가 결혼 주례를 섰었다. 남편은 28년간을 포클레인 기사로 성실하게 일을 해 왔던 착한 사람이다. 오래 전 그가 내게 한 이런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산 속에서 몇 달씩 혼자 일할 때가 있어요. 깊은 구덩이 속에서 작업하다가 손바닥만한 하늘을 보면 이러다 다시 세상으로 못 나가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나기도 해요.”

포클레인 기사의 직업적 어려움이다. 고공 크레인에서 일하는 사람의 변호를 한 적도 있었다. 평생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이 공중의 유리 박스 안에 갇혀 살았다고 했다. 나를 찾아온 부부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일이 없어서 여섯 달을 쉬었습니다. 경기가 나빠져서 토목공사장이 없어요. 아내가 대신 나가서 일을 했어요. 나도 막일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없더라구요. 그러다 간신히 일거리를 하나 얻었죠. 건축공사장의 철빔을 연결하는 작업이었죠.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예요. 포클레인 끝에 손 역할을 하는 도구로 철빔을 잡고 공중의 철기둥 끝에 있는 볼트공 앞에 옮겨서 놓아주는 일이죠. 허공에서 볼트와 너트를 낄 수 있도록 구멍에 맞게 놔줘야 하니까 몇 밀리까지 정밀하게 움직여야 해요. 로봇수술을 하는 의사같이 경험과 숙달된 기술이 필요한 거죠.

볼트공 앞에서 철빔을 움직일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해요. 혹시나 모를 오작동이 없게 하기 위해 포클레인의 팔을 움직이는 레버는 고정시킨 채 아예 손을 떼고 포클레인의 손만 작동시키는 반대쪽 레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포클레인의 팔이 툭 내려오면서 볼트공의 허리를 덮친 거예요. 내가 반사적으로 팔을 작동하는 레버를 만져 바로 올렸죠. 나중에 검사가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니까 0.1초 순간이더라구요. 그때 철빔이 쓰러지면서 내 포클레인의 운전석을 덮쳤어요. 나도 죽을 뻔했죠.

저는 28년간 포클레인을 조작하면서도 단 한번의 사고도 없었어요. 이상한 건 제가 포클레인의 팔을 조작하는 레버에 무심히라도 손을 대고 있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겠는데 분명히 그게 아니었어요.

검사는 레버 조작에서 실수했을 거라고 말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추정을 하겠죠. 그런데 저는 분명히 레버에 손을 대지 않았었어요. 포클레인 팔이 툭 떨어진 걸 보고 바로 제가 레버를 만졌을 때 제대로 위로 작동된 걸 보면 기계에 흠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구요. 혹시나 실린더의 기름이 더러우면 그 찌꺼기가 관에 걸려 오작동이 될 수도 있는데 작업 전 제가 기름을 새로 다 채워 넣었었죠. 수십 년 동안 포클레인으로 밥을 먹고 산 저도 원인을 모르겠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예요. 검사는 나보고 실수하지 않은 걸 증명해 보래요.”

그는 변명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어쨌거나 간에 사람을 다치게 하고 나서 나도 하늘에서 그 벌을 받은 것 같았어요. 그 얼마 후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기계의 이빨같은 부분이 내 발을 문 거예요. 송곳니 같은 쇠이빨이 발등을 뚫고 들어가 발바닥까지 관통했죠. 앰뷸런스로 손발이 절단된 공사장 사고를 전담하는 병원에 실려가 수술실로 들어갔죠. 의사가 엑스레이, 씨티, 엠알아이 검사까지 했는데 뼈도 신경도 인대도 다친 곳이 없다는 거였어요. 참 이상하다면서 나보고 운수가 좋대요.”

그가 업무상과실치상죄로 재판에 회부됐다는 공소장을 내게 보이면서 말했다.

“검사가 합의를 해야 징역을 살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주소를 알려줬어요. 피해자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죠. 원래 그 볼트공과 친했어요. 당장 가족이 먹고 살 돈도 없어 합의금은 줄 능력이 안 되지만 하반신 마비가 돼 누워있는 피해자를 보니까 안됐더라구요. 정말 미안하다고 했죠.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제발 돈 좀 달라는 표정이 역력했어요. 그 사람도 노동자라 돈에 목이 말라 있더라구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들어보니까 시간이 흐르면 산재보험금도 받고 근재(근로자재해보장) 보험금도 받고 지역관청에서도 돈을 받고 따로 보험회사에서도 매달 돈을 받을 수 있어 죽을 때까지 한 달에 600만 원을 받는다고 그러더라구요. 가족하고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은데 솔직히 그 사람이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중장비 노동자 삶의 한 장면이었다. 변호사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돈이 없어 합의는 불가능했다. 하반신 마비 피해자를 두고 판사도 그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답이었다. 전문가가 난데 답이 없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라는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거리가 생겨 아내가 좋아하는 국밥을 사 갔는데 차디찬 방에서 아내가 죽어 있었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살아서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그는 운수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