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 80주년 경축사에서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대통령이 된 나라의 '건국'에 대한 고마움은 표시하지 않았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는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다. 여러 초안을 갖고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지, 어떤 표현을 쓸 것인지 많은 참모와 외부 인사들이 검토해서 나온다. 가령 일반 상식에서 꼭 들어가야 할 핵심 대목이 빠져있다면 거기에는 다 정권의 의도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 경축사에 숨어있는 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8·15는 두 가지 역사적 장면이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광복)이고,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건국)이다. 둘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둬야 하느냐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면서 건국 77주년인 셈이다.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후자가 아예 언급이 안 됬다.
둘째, 경축사에는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이 빠져있다. 대신 건국(남한 단독정부)을 반대한 김구를 '존경한다'고 내세웠다. 좌파 진영의 '김구 국부론' 연장선상에서 경축사가 작성된 셈이다. "존경하는 김구 선생이 염원했던 문화강국의 꿈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 윤석열 정권 시절 육사 교정에 설치돼 있던 '공산주의 계열' 의열단 김원봉 흉상을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논쟁을 '독립운동가 모욕행위'로 규정했다. 김원봉의 행적은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6·25 당시 중공군 군가를 작곡했던 독립운동가 정율성 동상 철거 논란도 염두에 뒀는지 모르겠다.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넷째, 3·1운동을 '3·1혁명'으로 표현했다. 건국의 시발점을 1919년 3월로 보겠다는 관점이다. "3·1혁명의 위대한 정신이 임시정부로 이어졌고, 한반도 삼천리 방방곡곡을 넘어, 온 세계에서 독립투쟁의 불길로 번지며 마침내 우리는 다시 빛을 되찾았습니다.."
다섯째, 박근혜 윤석열 탄핵 파면을 이룬 촛불집회를 '무혈 평화혁명'으로 묘사했다. 두 대통령의 탄핵은 결국 기존의 법제도와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뤄진 것인데, 기존의 권력과 제도를 뒤엎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사에 없는 두 번의 무혈 평화혁명으로 이 땅이 국민주권이 살아있는 민주공화국임을 만천하에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빛의 혁명'은 일찍이 타고르가 노래한 '동방의 등불'이 오색 찬란한 응원봉 불빛으로 빛나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여섯째, 윤석열 정권을 비롯한 역대 보수정권을 '사익을 추구힌 분단세력'으로 규정했다. 이는 80년대 대학운동권 수준의 사고여서 논할 가치가 없을 것 같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은 분단을 빌미 삼아 끝없이 국민을 편 가르며 국론을 분열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국민주권을 제약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의 참화 속으로 우리 국민을 몰아넣으려는 무도한 시도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일곱째,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북한 쪽에 유화적 제스처를 쓴 것이지만, '전력 비대칭' 핵무력을 갖고 있는 북한의 자존심을 오히려 건드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흡수통일'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선,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여덟째, '북핵' 대신 '한반도 핵'이라는 단어를 썼다. '한반도 핵'이라고 할 경우 유사시 미군의 전술핵 자산이 한반도에 들어오는 것까지 해당된다. 북한 비핵화 협상 때 북측이 코너에 몰리면 우리 쪽에 문제를 삼던 것이다.
아홉째,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이는 진전된 모습이다.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의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정작 자신이 대통령이 된 나라의 '건국'에 대한 고마움은 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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