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파멸을 앞당긴 故 신상옥 감독
"예술 외에는 통 관심도, 잡기도 없었던 申감독이지만 김정일·김대중 두 사람 때문에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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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파멸을 앞당긴 故 신상옥 감독
  
  
  조갑제 방송위원은 25일 방송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지난 11일 별세한 신상옥 감독의 빈소를 찾은 이야기와 함께, 17년 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신 감독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남한에서 김정일을 가장 미워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신 감독은 김정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그의 증오심과 복수심은 뼈에 사무쳐 있었다는 것.
  
  조 방송위원은 가까이에서 본 김정일 정권의 성격에 대한 질문에 신 감독은 '북한이란 마을을 점령하고 노략질하여 주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하나도 양심의 가책이 없이 파티를 즐기는 마적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회고했다. 또한 그런 신 감독이었기에 북한산(産) 문서 연구만으로 관념 속에 만든 북한을 상대로 굴욕적인 정책을 펴는 소위 대북전문가들을 경멸했다고 밝혔다.
  
  또한 조 방송위원은 신상옥 감독이 '김정일보다 김대중을 더 미워했다'고 밝히면서, 햇볕정책을 '무너지는 김정일을 도와줘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연장한 사기술'로 여겼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월간조선을 통한 기고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활발히 전개해왔던 신 감독의 심정과 활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대북방송원고 전문]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있는 조갑제 기자입니다. 이제 봄도 여름으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때 전국을 뒤덮었던 온갖 꽃들도 이제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신상옥씨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신상옥씨가 만든 영화를 즐겨 보셨을 줄 압니다. 이 분이 지난 4월11일에 만 80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저는 신상옥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별실에는 부인인 유명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장례위원장인 유명한 영화배우 출신이고 국회의원을 지낸 신영균씨가 있었습니다.
  
  최은희 여사는 그 전날 신 감독을 간호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여보. 내일 다시 올께요' 하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신상옥 감독은 문으로 향하는 부인에게 곁으로 오라는 눈신호를 보냈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누운 채 말없이 최은희 여사의 손을 꼭 잡더라고 합니다. 최은희 여사가 '이왕 손을 잡으려면 꽉 잡으세요'라고 했더니 손에 힘을 꽉 주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인사였답니다.
  
  저는 최은희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 감독님은 김정일이의 최후를 보고 가셔야 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더니 최은희 여사도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신상옥 감독과 마지막 통화를 한 것은 지난 연말이었습니다. 김정일의 직접 지시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되었던 최은희 여사가 탈출한 뒤 자신의 회고록에서 북한에서 만났던, 납북되어 온 한 마카오 여성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일본의 납치자 구출단체에서 이 여성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은희 여사와 만나고 싶다고 저를 통해서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그 부탁을 전하려고 신상옥 감독과 통화를 했을 때 그 분은 목소리는 쇠약했으나 아직도 김정일에 대한 복수의 일념은 쌩쌩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상옥 감독하고 만나고 지낸 지난 17년간 한국에서 김정일을 가장 미워한 사람은 아마도 신상옥 선생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였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김정일의 내면과 실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신상옥 감독은 김정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그의 증오심과 복수심은 뼈에 사무친 것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신 감독을 납치해 간 이유에 대해서 다소 미안한 듯이 더듬더듬 실토했고, 이 대화는 최은희 여사에 의해서 녹음이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을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로서 최은희씨를 먼저 홍콩에서 납치했던 것입니다.
  
  신상옥 감독은 1978년에 납북된 뒤 최은희 여사와 곧장 만나지 못하고 세뇌교육만 받고 있던 중 두 번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혔습니다. 그는 약 5년간 사회안전부 및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서 김정일의 개인적 후원 하에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신 감독은 한참 일할 나이에 근 10년간 거기 가서 죽치고 앉아있었다는 점을 아쉬워했고, 거기서 느꼈던 인간 본성에 대한 억압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의 억압이 얼마나 지독한지 여기 서울에 앉아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상옥 최은희 두 사람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해서 탈출할 때 가져온 것을 의심하곤 했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비밀녹음은 보다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대담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가느냐 못 가느냐의 문제였죠.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반공법이라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납치되었다는 증거 없이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김정일을 만날 때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또 들키더라도 우리는 적을 수가 없기 때문에 녹음을 했다고 변명하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최은희씨가 핸드백에 녹음기를 넣고 김정일의 말이나 김정일과의 대화를 녹음을 했는데, 45분짜리 녹음테이프를 썼기 때문에 대화 전체를 다 녹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집요한 성격의 신상옥 감독은 곁에 앉은 최은희 여사에게 눈짓으로 화장실에 가서 바꿔 끼워오라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신상옥 감독은 녹음을 하면서도 이것이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김정일의 육성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여사는 1986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통해서 탈출한 뒤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CIA의 보호 아래서 생활을 했습니다. 다행히 CIA가 김정일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가 어느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다가 김정일이가 걸어온 전화를 받는 것을 녹음해 두었다고 합니다. 이것과 신상옥씨가 가져온 테이프를 대조해서 진짜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신상옥, 최은희 두 사람의 증언과 녹음에 의해서 김정일에 대한 많은 정보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제가 편집장으로 있던 월간조선은 1995년 10월 호 부록으로 이 녹음테이프를 발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녹음테이프를 들어본 탈북자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정일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김정일이 북한 일반주민이었다면 이런 말로 해서 강제수용소에 갔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김정일을 연구하려는 이 세계의 북한 전문가들은 반드시 이 녹음테이프를 듣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탈출하여 별세할 때까지의 20년간 회고록이나 좌담, 기고문 등을 통해서 줄기차게 김정일을 비판해 왔습니다. 그를 알고 지낸 지난 17년간 필자에게는 신상옥씨가 영화감독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속성과 본성을 꿰뚫어보는 북한전문가였습니다.
  
  1989년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김정일 정권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신상옥씨는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마적단이죠. 북한이란 마을을 점령하고 노략질하여 주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하나도 양심의 가책이 없이 파티를 즐기는 마적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북한을 알면 알수록, 이 마적단론(論) 이상의 관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을 북한산(産) 문서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관념 속에 근사한 그림을 그려놓고 그 존재하지도 않은 북한을 상대로 굴욕적인 정책을 펴다가 파탄해가고 있는 한국의 소위 대북 전문가들을 가장 경멸한 것이 황장엽 선생과 신상옥 감독이었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요청에 의해서 필자는 1999년 초에 황장엽-신상옥 대담을 주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대담의 사회를 필자가 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제가 했습니다.
  
   '신상옥 선생께서는 김정일 측근들이 남한 노래를, 유행가를 잘 부른다고 하셨는데, 그 심리가 남한을 동경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만만하고 남한을 경멸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황장엽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대해서 황장엽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김정일이가 현대감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남한의 문물을 다 알고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우리한테도 남한 영화를 새벽까지 보여주곤 했습니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 사람들은 세뇌되어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몇만 명은 산속으로 들어가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황장엽 선생은 즉각 반박을 했습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들이 밤낮 의리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그것은 도둑집단의 의리일 뿐이지 원칙에 기초한 의리가 아니거든요.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무너져요. 대장인 김정일이 무너지면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아무런 정신적 바탕이 없기 때문이지요.'
  
  신상옥 선생이 김정일보다 더 미워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햇볕정책이라는 사기술로써 무너지는 김정일을 도와줘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연장했다는 것에 대해서 신상옥씨는 흥분했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김대중 집권 시기에도 월간조선을 통해서 햇볕정책을 자주 비판했습니다. 그때마다 그 분은 편집장이던 저를 찾아와 글을 쓰고 싶다고 상의를 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신상옥 감독은 이런 글을 써 놓으면 한국에 입국할 때 허가가 나올까라고 걱정하는 척하다가 신랄한 글을 써오곤 했습니다.
  
  특히 2000년 6월 소위 남북정상회담 이후 신상옥씨의 김대중씨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2001년 10월호 월간조선에 기고한 '김대중 앞 공개장'에서 신상옥씨는 이렇게 썼습니다.
  
  '북한정권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그 바탕 위에 지은 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평양선언대로 통일한다면 반드시 內戰(내전)이 일어납니다.'
  
  신상옥 감독은 또 나를 설득하여 국민들이 김정일-김대중 야합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최은희 여사와 함께 썼던 회고록을 손질하여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으로 출판하도록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있던 2003년 초에는 <김대중 대통령 앞 마지막 편지>라는 글을 써 가지고 왔습니다. 월간조선 3월호에 실렸는데, 그 제목은 '노벨상을 위해 민족을 판 당신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김대중씨 앞 마지막 편지에서 신상옥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거짓투성이의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일생 단 한 번이라도 솔직해져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국민과 세계를 향하여 사죄할 것은 사죄하여 국가의 위신을 회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여 이제 막 출범하는 새 정부로 하여금 당신이 파놓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상옥 감독이 딱 한번 북한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고 실토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남한에 있을 때는 로맨티시즘이나 센티멘탈리즘 이런 거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북한에서도 김정일이가 나에게 정치적 영화를 만들라는 주문을 안 해요. 그런 강압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나 과거 일제시대 사회주의 문학조직 카프 계열의 작품을 보게 되었고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런 걸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소금' 그리고 '탈출기'라는 영화가 바로 그런 사회적 눈을 뜬 바탕에서 만든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혜안을, 눈을 뜨는 일을 하는데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간 셈이죠.'
  
  이렇게 예술 이외에는 통 관심도, 잡기도 없었던 신상옥 감독이지만 김정일, 김대중 두 사람 때문에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화제를 영화 쪽으로 돌리려고 해도 그는 자꾸 남북문제로 돌아갔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같은 일생을 산 신상옥 감독은 영화인으로써 평가받는 만큼 또다른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김정일의 본질을 폭로함으로써 오고야 말 그의 파멸을 앞당긴 인물로서 말입니다. 김정일의 최후를 보고 가지 못한 신상옥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자유북한방송
[ 2006-04-26, 09: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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