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5.16은 부패정권과 공모하기를 거부한 국군의 內敵 소탕'
저승에서 박정희가 오늘 무슨 생각을 할까?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불원(不遠)한 장래에 망국의 비운을 맛보아야 할 긴박한 사태를 보고도 인내와 방관을 미덕으로 허울 좋은 국토방위란 임무만을 고수하여야 한단 말인가. 정의로운 애국군대는 인내나 방관이란 허명(虛名)을 내세워 부패한 정권과 공모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말하자면 5.16혁명은 이 공모를 거부하고, 박차고 내적(內敵)의 소탕을 위하여 출동한 작전상 이동에 불과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5.16 혁명의 정당성에 대하여 당당하게 설명한다. 그는 장준하처럼 4.19와 5.16혁명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였다. 즉, 4.19혁명은 '피곤한 5천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의 바탕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졌고 이 명제에 해답하기 위한 '역사에의 민족적 총궐기'가 5.16이란 것이다. 4.19와 5.16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자유당과 민주당을 똑같은 봉건적.수구적 세력, 즉 근대화 혁명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4.19학생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자유당을 독재, 민주당을 민주세력으로 보고 있었던 데 대하여 박정희는 그런 형식논리를 거부하고 그들의 본질인 봉건성을 잡아채어 둘 다 역사 발전의 반동세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어디에도 합헌(合憲)정권을 무너뜨린 데 대한 죄의식과 변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박정희가 이런 혁명적 시각을 자신의 신념으로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원(不遠)한 장래에 망국의 비운을 맛보아야 할 긴박한 사태를 보고도 인내와 방관을 미덕으로 허울 좋은 국토방위란 임무만을 고수하여야 한단 말인가. 정의로운 애국군대는 인내나 방관이란 허명(虛名)을 내세워 부패한 정권과 공모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말하자면 5.16혁명은 이 공모를 거부하고, 박차고 내적(內敵)의 소탕을 위하여 출동한 작전상 이동에 불과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5.16 당시 여론조사, 60%가 혁명 지지였다!
  
   필자는 1996~7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1년간 니먼 펠로우 자격으로 연수하는 가운데 진 K.로버츠슨이란 분을 만났다. 한국 이름은 서진규인데 美 육군에서 소령으로 전역하여 하버드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하고 있는 교포 여성이었다. 이분은 1991년에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우리나라에 와서 아주 재미있는 여론조사를 했다고 한다.
  
   40세 이상의 어른들 467명을 상대로 「1961년에 5.16이 났을 때 지지했습니까, 반대했습니까」하고 물었다. 응답자의 46%가 「지지했다」고 응답했고 19%는 「반대했다」고 했으며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찬반 의견을 표시한 사람들 중 약 70%가 「혁명을 지지했다」는 뜻이다. 로버츠슨씨는 연령층을 확대하여 808명을 상대로 「5.16 혁명의 한국 발전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 물었다. 응답자의 62%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 5.16혁명은 필요했다」고 답했고 17%는 「방해가 되었다」고 했으며 21%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박정희의 독재적 통치가 한국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69%가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답했고 11%는 「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했으며 20%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로버츠슨씨가 이런 조사를 한 이유는 당시 중학생으로 맞았던 5.16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군사혁명을 환영하고 있었던 것을 뚜렷히 기억하는데 학자들의 논문에는 이런 여론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게 이상하여 그런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1961년 5월16일 미군 방첩대는 거리로 나온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면접 여론조사를 하였다. 10명에 네 명은 '혁명 찬성', 두 명은 '찬성이지만 너무 일렀다', 네 명은 '반대'였다고 한다. 약60%가 찬성하였다는 이 통계는 서진규의 上記 조사와도 일치한다.
  
  
  
  
  
  
  
  
  
언론의 난
[ 2017-05-16, 09:18 ] 조회수 : 6306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도토리키재기     2017-05-16 오후 3:59
조선생님.수고가 많으십니다.
본인은 4.19민주 혁명에 직접 참여 했던 사람입니다.
일번적인 분위기 뿐만 아니라.국가적 자립성 부족과 민주주의개념에 대한 겉 핱기 식.지도자들의. 태도
속에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 우왕.좌왕식 혼란 속에.북한의. 남침 재가동의 혼란. 속에 국가 위기를 극복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박정희를 비롯한 군인들의 사생결단식. 5.16혁명이든.쿠테타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적. 순간. 이였읍니다.처음에는 굳은 의지와 결단으로 국가발전의. 대명제 앞에
하는 모든 일이 애국.애족의 행동으로 여겨. 졌다.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박정희의. 인간적 권력. 욕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기 위한 권모와 술수 속에서 해서는 않될 장기 집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감으로써 그동안 공을 깡그리 망그러 뜨린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이제 우리는 유신정권의 공과 과를. 내정히 돌아 보면서 이 나라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자칭 보수나.자칭진보들은
시대가 변하면 별화된 시대에 맞게 관념의 변화가 필요한 것. 이다.
나도 박근혜를 찬양하여.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자이다
그러나 내가 간과했던. 중요한 잘 못은 박근혜의 정신적 핸디켑을. 무시했던 것을 나의 무지의 소치로여기면서 나도 이 나라의 죄인의 한 사라이라고 자괴하면서 보수들이여 이제는 2분법적 논리로
접근. 하시지 말고 국가 발전을 위한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힝을 모웁시다.ㅡ부라보 코리아.원더풀 코리아를 형해. 전진 합시다.감사합니다.
   정답과오답     2017-05-16 오전 9:24
지금도 군에서 정권을 접수 한다면
찬성이 압도적일거로 봅니다
이건 나라도 아닙니다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