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는 변곡점을 찍는다: 한국인의 '朝鮮 회귀' 현상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는 ‘노력해야 한다’는 필연성이 민족의 기질이나 특성을 압도하지만, 일단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다시 민족의 기질과 특성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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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경제원(前 자유기업원) 초대 원장 출신의 공병호 박사(경제학)는 2016년 1월 발간한 <<3년후, 한국은 없다>>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한국은 과거지향적이고, 일본은 미래지향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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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즐겨 사용하는데,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짧은 주기의 시간관을 갖고 있다. 직선적인 시간관 보다는 회귀하는 시간관, 즉 ‘돌아간다’는 개념으로 시간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돌아가는 시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은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 시대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도 하고, 인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쉼 없이 한국인들의 시간관은 원점 회귀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본인의 시간관은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일단 가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시간을 바라본다.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역사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두 나라 국민들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한쪽(한국)은 자꾸 원점 회귀를 올바른 것으로 바라보고, 다른 한쪽(일본)은 흘러가버리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인다. 공병호 박사는 “어떤 민족의 기질이나 특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에 열중인 학생일지라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다시 그 학생의 기질에 맞는 상태로 돌아가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급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개인이나 민족은 모두 비상한 노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급 상황이 사라지고 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는 ‘노력해야 한다’는 필연성이 민족의 기질이나 특성을 압도하지만, 일단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다시 민족의 기질과 특성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공병호 박사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기질과 특성은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이런 민족의 기질과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순기능은 발휘하도록 하고 역기능은 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주목하지 말고 그 밑바닥에 흐르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며 “바로 그곳(버리지 못하는 한국인의 기질)에서 한국의 미래를 읽는 실마리의 상당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글] 韓國사회를 떠도는 ‘전체주의의 망령(亡靈)’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대중, 달콤한 미래의 청사진, 그리고 과학적인 외양, 이 셋이 모여서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정치-사회적 문제와 경제적 고통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전체주의는 다시 나타나 그들을 강하게 유혹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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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독일 출신(유대계)의 정치철학자이다. 그녀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이후 하이데거가 나치(Nazi)에 적극 협력하자 그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았다. 그녀는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여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며,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하이데거를 위해 증언하기도 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집필했는데, 여기서 그는 공산주의와 나치주의의 뿌리와 그들의 反유대주의와의 연관성을 추적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 즉 나치즘은 ‘극우’에서 출발하였고, 스탈린의 전체주의는 ‘극좌’에서 나왔다는 속설은 역사적으로 전혀 사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극좌나 극우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이지만 전체주의는 사고의 극단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부재(無思考), 非자발성이 그 핵심이다.

이 같은 이유로 아렌트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 요소를 함축한다”고 보고 있다. 1951년에 출간된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렌트는 가혹한 전체주의의 기원이 철저히 원자화된 개인주의에 있었음을 지적했다. 물론 이 개인주의는 자주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사회와 단절된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주의’이다. 이처럼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들은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이 유대 관계를 형성할 어떤 틀도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위대하고 그럴듯한 이념이나 이상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쉬우며, 전체주의는 이런 이념과 이상을 향한 운동으로 이들을 동원하는데 쉽게 성공한다. 이들은 하나의 이념 아래 같아지며, 그들의 원래 처지와 생각 따위가 잡다하게 섞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이 된다. 이렇게 동원되는 무차별적인 사람의 무리를 아렌트는 ‘대중’이라고 불러서 공중, 시민, 인민 등과 구별했다. 

▲전체주의는 선전으로 속이고 테러로 겁을 주어서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제도가 아니다. 대중은 전체주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현실에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자격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아무리 허황된 꿈이라 할지라도 그 꿈에 기여할 수 있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다만 하나의 몸뚱이가 아니라 뭔가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실에 지쳐 있다. 이런 현실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찾아올 멋진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청사진은 온갖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정당화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대중, 달콤한 미래의 청사진, 그리고 과학적인 외양, 이 셋이 모여서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면 전체주의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 조직의 특성에서 전체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한마디로 이 조직은 자신들의 조직 이념 및 가치, 청사진을 동일시하는 맹신자 그룹과 그들을 경멸하면서 자신들도 믿지 않는 엘리트, 그리고 이들을 이용하여 적절하게 조작하는 교묘한 지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자는 맹신하는 대중과 자주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 대의제 시스템, 관료제 시스템을 모두 무력화한다. 관료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나 언제든지 지도자와 대중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그 결정 사항이 무력화되는 것이 전체주의 조직의 특징이다.

▲조직을 이루었던 전체주의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전체주의 국가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전체주의 국가의 특징은 여전히 운동의 중심에 있으며, 국가는 단지 그 운동의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非정치성에 있다. 결국 국가의 기능은 운동의 대의를 거스르는 배신자를 색출하여 처단하는 경찰 기구에 집중되며, 배신자의 규정은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대중은 언제 처단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위험 속에서 완전히 복종에 이르게 된다.

▲전체주의 국가는 마침내 총체적 지배에 이르게 된다. 총체적 지배란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완전히 지배하여 모든 사람의 개별성을 말살하고 한 몸처럼 조직이 흡수하여 장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개별성의 근간인 법인격과 도덕성, 양심, 개성이 말살되어야 하며, 이를 말살하기 위한 실험실로 운영되었던 것이 바로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이다. 강제수용소야말로 전체주의 최후의 귀결인 것이다.


[ 2018-02-12, 11:50 ] 조회수 : 3668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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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수호자     2017-01-03 오전 10:12
중국 사대주의 자들은 꼭 읽어 보아야 할 글입니다.
36년 일제 식민지는 기억하면서 천년넘게 중국으로부터 당해온 처절한 역사는 왜 생각하지 않는지 정말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조갑제 닷컴이 있어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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