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사회를 떠도는 ‘전체주의의 망령(亡靈)’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대중, 달콤한 미래의 청사진, 그리고 과학적인 외양, 이 셋이 모여서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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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적 문제와 경제적 고통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전체주의는 다시 나타나 그들을 강하게 유혹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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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독일 출신(유대계)의 정치철학자이다. 그녀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이후 하이데거가 나치(Nazi)에 적극 협력하자 그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았다. 그녀는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여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며,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하이데거를 위해 증언하기도 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집필했는데, 여기서 그는 공산주의와 나치주의의 뿌리와 그들의 反유대주의와의 연관성을 추적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 즉 나치즘은 ‘극우’에서 출발하였고, 스탈린의 전체주의는 ‘극좌’에서 나왔다는 속설은 역사적으로 전혀 사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극좌나 극우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이지만 전체주의는 사고의 극단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부재(無思考), 非자발성이 그 핵심이다.

이 같은 이유로 아렌트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 요소를 함축한다”고 보고 있다. 1951년에 출간된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렌트는 가혹한 전체주의의 기원이 철저히 원자화된 개인주의에 있었음을 지적했다. 물론 이 개인주의는 자주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사회와 단절된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주의’이다. 이처럼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들은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이 유대 관계를 형성할 어떤 틀도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위대하고 그럴듯한 이념이나 이상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쉬우며, 전체주의는 이런 이념과 이상을 향한 운동으로 이들을 동원하는데 쉽게 성공한다. 이들은 하나의 이념 아래 같아지며, 그들의 원래 처지와 생각 따위가 잡다하게 섞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이 된다. 이렇게 동원되는 무차별적인 사람의 무리를 아렌트는 ‘대중’이라고 불러서 공중, 시민, 인민 등과 구별했다. 

▲전체주의는 선전으로 속이고 테러로 겁을 주어서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제도가 아니다. 대중은 전체주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현실에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자격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아무리 허황된 꿈이라 할지라도 그 꿈에 기여할 수 있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다만 하나의 몸뚱이가 아니라 뭔가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실에 지쳐 있다. 이런 현실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찾아올 멋진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청사진은 온갖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정당화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대중, 달콤한 미래의 청사진, 그리고 과학적인 외양, 이 셋이 모여서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면 전체주의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 조직의 특성에서 전체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한마디로 이 조직은 자신들의 조직 이념 및 가치, 청사진을 동일시하는 맹신자 그룹과 그들을 경멸하면서 자신들도 믿지 않는 엘리트, 그리고 이들을 이용하여 적절하게 조작하는 교묘한 지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자는 맹신하는 대중과 자주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 대의제 시스템, 관료제 시스템을 모두 무력화한다. 관료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나 언제든지 지도자와 대중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그 결정 사항이 무력화되는 것이 전체주의 조직의 특징이다.

▲조직을 이루었던 전체주의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전체주의 국가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전체주의 국가의 특징은 여전히 운동의 중심에 있으며, 국가는 단지 그 운동의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非정치성에 있다. 결국 국가의 기능은 운동의 대의를 거스르는 배신자를 색출하여 처단하는 경찰 기구에 집중되며, 배신자의 규정은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대중은 언제 처단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위험 속에서 완전히 복종에 이르게 된다.

▲전체주의 국가는 마침내 총체적 지배에 이르게 된다. 총체적 지배란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완전히 지배하여 모든 사람의 개별성을 말살하고 한 몸처럼 조직이 흡수하여 장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개별성의 근간인 법인격과 도덕성, 양심, 개성이 말살되어야 하며, 이를 말살하기 위한 실험실로 운영되었던 것이 바로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이다. 강제수용소야말로 전체주의 최후의 귀결인 것이다.

[관련 칼럼] 국가변란(變亂) 가능성 사전에 차단해야!
2012119일 작성/김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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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의 걸출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침체된 사회에서 民族主義가 일어나 社會主義와 결합되면 치명적인 일이 발생한다고 봤다.

그는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쉴러를 비롯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自由主義에 기반을 둔 것이었음을 예로 들면서 1세기 전만해도 독일은 自由主義가 충만한 곳이었는데, 社會主義가 득세하면서 결국 나치즘’(Nazism)이라는 괴물이 등장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미제스는 독일의 나치즘社會主義官僚主義 그리고 民族主義가 결합되어 나타난 悲劇이며, 이런 경향은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西歐 사회 전체에서 나타났던 것이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심각한 景氣沈滯(경기침체)를 경험했고, 글로벌 景氣沈滯와 맞물려 세계경제공황을 대비해야 할 판이다. 雪上加霜으로 80년대 主思派(주사파) 운동권(‘우리민족끼리세력)이 대한민국의 모든 不滿勢力結集시키고 있다.

미제스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언제 어디서 치명적인 일이 발생한다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공직자가 될 수 없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인물들이 국회로 진출했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그 만큼 병들었다는 증거다.

대한민국 建國李承晩이라는 하늘이 내린 걸출한 지도자에 의해 기적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늘이 내린 지도자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보다 더 악독한 독재자로 만든 民族이니 벌을 받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한민국을 에 넘기려는 자들을 制度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국가적 變亂'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국가 解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과 家族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한다.

 

 

언론의 난
[ 2017-08-10, 20:00 ] 조회수 : 3856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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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방랑자     2017-08-13 오전 12:15
모든 파멸의 수순과 과정이 지금 한국에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인민들만이 그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하하호호 나태에 빠져 있다. 솔직히 말한다면, 현재 한국이 처한 여러 가지 난관의 그 모든 책임은, 어리석은 그 한국인들이 모두 책임지고 받아들여야 할 일일 뿐이다. 김필재 기자의 구원의 祈禱는 현재의 분수 넘친 한국인이라는 잡배들에게는 너무 지나친 바램일 것이다.
   대한남아     2017-08-11 오전 10:54
쿠데타만이 해답인데 우리나라 군대는 얼빠진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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