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모습-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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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게 뭘까. 어떤 책에서 그것은 부모가 의연하게 죽는 모습이라고 하는 걸 읽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임종을 옆에서 지켰다. 할아버지는 만주벌판의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보따리 장사로 세상을 떠돌다가 물이 새는 초라한 방에서 죽었다. 죽음 직전 할아버지의 옆에는 손자인 나와 며느리인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님을 오시라고 할까요?”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말하는 것이다.
  
  “놔둬라, 불러 뭘하겠니”
  할아버지는 거절했다.
  
  “그러면 애비랑 고모들을 모두 오라고 할까요?”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자식들을 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괜찮다. 놔둬라.”
  이윽고 마지막 호흡이 끊어지고 할아버지는 조용히 저 세상을 향해 갔다. 칠십 평생 고독한 할아버지였다. 혼자 보따리 하나를 끼고 함경도부터 강원도까지 순례자처럼 산 속을 다니던 일생이었다. 북에 부모 형제를 두고 내려왔어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조용히 하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그 고독을 두 팔을 펼치고 정면으로 맞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극심한 고통이 와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동물이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동굴에 서 먹는 것을 중단하고 죽음을 맞이하듯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렇게 조용했다.
  
  그 다음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꽃샘추위가 있던 3월 초순경 아버지를 보러갔다. 평소와는 달리 침대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렇게 되는구나”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단정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근처의 병원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올라가지만 살아서 내려오지 못할 거야.”
  
  아버지는 이미 죽음의 천사를 본 것 같았다. 아버지를 진찰한 의사는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보냈다. 병실 문틈을 통해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눈을 뜬 채 천정을 보면서 뭔가 당황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아버지를 볼 때였다. 담당 의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새벽 심장이 멎어서 전기충격을 해서 간신히 살려냈습니다. 지금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다시 전기충격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워있는 아버지는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상당한 고통을 겪었던 게 틀림없었다.
  
  “아버지 힘들었죠?”
  내가 위로했다.
  
  “내가 좋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저기 의사들하고 간호사들이 붙잡고 방해하는 바람에 되돌아 왔어.”
  신비한 소리였다. 아버지는 깊은 신앙인도 아니었다.
  
  “정말 그런 세상이 있어? 아버지가 봤어?”
  내가 물었다.
  
  “있는 것 같아.”
  아버지는 다른 세상을 본 것 같았다. 엷게 비치던 두려움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덧붙였다.
  
  “전기충격을 당해 보니까 그거 사람 죽이는 거더라. 어차피 한번 죽는 건데 두 번은 못하겠다. 의사가 다시 한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해.”
  
  아버지는 죽음은 사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였다. 아버지가 덮고 있는 얇은 시트 속에서 손을 내밀어 중환자실 구석에서 겁을 먹고 있는 어머니를 오라고 손짓했다. 어머니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온화한 얼굴로 어머니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결혼하고 사십 년 동안 살면서 내가 무섭게 했지? 미안해, 사실은 사랑했어. 우리 악수 한번 하고 헤어지자.”
  
  순간 어머니의 눈에서 왈칵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시트 밖으로 나온 손으로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한 번 꼭 잡아 주었다. 아버지는 내게 죽은 후의 가족이나 친척들을 돌봐 줄 것을 부탁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여기 있지 말고 병실을 나가거라. 나 졸립다.”
  
  아버지의 강한 요구였다. 그 말을 듣고 중환자실 문쪽으로 두세 발짝을 떼어놓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하품을 한번 크게 하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끝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깊은 수면같이 보였다.
  
  다시 긴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에게도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의사는 삶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고 알려 주었다. 병실에서 어머니를 지켰다. 죽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평소에도 외아들인 나를 보고 “저놈이 미련해서”라는 말을 하면서 걱정하곤 했다. 평소에도 외아들인 나를 보고 “저놈이 미련해서”라는 말을 하면서 걱정하곤 했다. 먼 길 떠나기 전에 어리석은 아들이 못 미더웠는지 하나하나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죽거든 영정사진은 장 속에 넣어둔 내가 미리 준비해 둔 걸로 써라. 장례를 치르고 보름쯤 지난 후에 내가 다니던 성당으로 찾아가서 교우들에게 인사하고 성당 앞 삼계탕집에 모시고 가서 점심 대접을 해.”
  어머니는 내가 해야 할 장례절차를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어머니가 덧붙였다.
  
  “참 하나 또 부탁할 게 있다. 내가 해방 다음 해에 결혼을 하고 서울로 왔는데 앞집에 불쌍한 꼬마가 있었어. 아버지를 잃고 혼자 골목에 앉아 있는 그 아이 밥도 주고 하다 보니까 정이 들었어. 지금은 아마 노인일 거야. 내가 죽은 후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으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돈을 전해 주거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며느리와 손자 손녀 증손자와 증손녀에게 돈을 주었다. 내가 평소에 용돈으로 준 돈을 쓰지 않고 전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병실에서 둘만 있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흔 살까지 살아 보니까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게 고독이더구나. 너도 이제 혼자가 되고 늙으면 고독해질 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니? 그걸 잘 참고 견디고 오거라.”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였다. 혼자 있어야 할 아들을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인생 마지막 길의 고통이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침대 위에서 가쁜 숨을 쉬며 괴로워했다. 나는 어머니 옆에서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눈을 감은 내게 환영 같은 어떤 장면이 어른거렸다. 어머니의 영혼이 가파른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바위를 기어오르고 위태로운 벼랑길을 넘고 있었다. 어머니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순간 강가 나루터가 보였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 입었던 물방울 무늬가 있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강가 나루터에 서서 아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침대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제 어머니가 편하게 죽음의 강을 건너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저녁 아홉 시경이었다. 어머니의 정신이 잠시 돌아왔다. 어머니는 입원실 벽에 붙은 시계를 보고 있었다. 잠시 후였다. 어머니가 팔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 짜내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침대 옆 에 있는 나의 팔목을 한번 쓰다듬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그렇게 만져보고는 어머니는 깊은 혼수상태 속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와서 산소호흡기를 씌웠다. 어머니의 영혼이 혼수상태 속에서 북에 두고 온 헤어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만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고단했던 삶의 여행을 마쳤다.
  
  나를 먹여주고 키워주고 사랑해 주던 세 사람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위험 많은 세상여행을 끝마쳤다. 그러나 세분의 마지막 모습들은 내게 위대한 유산이었다. 할아버지는 홀로 있음을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아버지는 내세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죽음의 천사 앞에서 “아멘, 준비 됐습니다”라고 하는 여유를 가르쳐 주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간다. 수필집 표지에 나온 나의 사진을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란다. 눈썹까지 하얗게 바랜 노인이다. 얼마 있다가 어머니가 건너간 그 나루터로 가서 강을 건너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마중 나와 있을 것 같다. 가서 이 세상 마지막까지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또박또박 걸으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싶다.
  
[ 2019-10-13, 01: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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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17 오후 8:13
나에게 끝 없이 사랑해 주셨든 할머니 생각에 가슴 뭉클해 집니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일기장에 책 갈피처럼 끼워놓고 매일 보는 할머니의 따스한 미소!!! 언제 였는가하며 어린때의 할머니의 사랑을 90을 보며 생각하는것은 나만일까요? 또 삶을 돌아 보게한 따뜻한 글에 또 감사드리며!!!
   이중건     2019-10-13 오후 8:50
뭐라고 해야 할지 -
인생철학 막장을 배우게 하셔 감사합니다.
   초피리1     2019-10-13 오전 7:08
엄상익 변호사님! 아침에 아름다운 수필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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