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과 김동리(金東里) 父子의 삶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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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전후로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갑자기 흑기사 같이 나타난 김평우 변호사였다. 그는 대통령의 탄핵이 잘못됐다면서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싸우고 시청앞 광장에서 그곳에 모인 군중들에게 외쳤다. 그는 지금 해외에 머물면서 한국의 좌파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또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한국문단의 원로인 소설가 김동리 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몇 명의 선배 법조인 모임에서 오랫동안 그와 만난 인연으로 그의 집안에 대한 여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일곱 살 때 시를 지은 적이 있어. 어떤 거냐면 ‘저기 가는 흰옷 입은 뱃사공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는 짧은 내용이었지. 일제 강점기 순사가 집으로 찾아와 어떻게 아이가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느냐면서 조사를 한 적이 있대.”
  
  흰옷은 조선민족을 상징하고 어디로 가느냐는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운명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서 나오기 힘든 시 같았다. 그의 아버지인 소설가 김동리 씨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타고 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아버지는 학력이 없었어. 십대 말쯤 형이 일본에서 사가지고 온 세계문학전집을 싸가지고 사천의 도솔사라는 절에 들어가셨지. 거기서 이 년간 두문불출하고 문학 전집을 읽으셨지. 그렇게 하니까 어떻게 글을 써야겠구나 하는 감이 오더라는 거야. 문학 전집에 나오는 글의 구조 속에 조선의 현실을 대입시키면 되겠구나 하는 글 쓰는 요령이 생겼다는 거지. 그때부터 아버지의 꿈은 자신이 세계문학전집 중의 하나의 책이 되어 선반 위에 올려지는 거라고 했어.”
  
  김동리 씨는 스물한 살이 되는 천구백삼십사년 조선일보에 시 ‘백로’가 입선됐다. 그리고 다음 해 조선중앙일보에 소설 ‘화랑의 후예’가 당선됐다. 문학의 순례자가 된 것이다. 그 아들인 김평우 변호사는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얘기를 계속했다.
  
  “우리가 혜화동에 살 땐데 어느 날 시인 정지용 씨가 고기를 한 근 사들고 와서 부엌에 있던 어머니에게 건네주고 안방에서 아버지와 술을 마셨어.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고기로 끓인 안주가 나오지를 않더라는 거야. 그래서 화장실을 가는 척 하고 나와 보니까 어머니가 그 고기를 보면서 가만히 있더래. 그래서 왜 그러고 계시냐고 물으니까 고기반찬을 먹은 지 하도 오래돼서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래. 그래서 정지용 씨가 방으로 들어와서 아버지에게 말했대. 너 이렇게 가난한지 몰랐다고 하면서 아직도 사회주의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는 거야.”
  
  나는 소설가 김동리 씨가 쓴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신불을 읽고 감동을 받았었다. 작가는 종교의 근본에 닿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제 말엽 작가들은 친일의 글을 쓰라고 강요당했던 시절이다. 스스로 쓴 사람도 있었고 강요에 의해 쓴 사람도 있었다. 김동리 씨는 그 어느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시대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벗어났을까 궁금했다. 그의 아들인 김평우 변호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친형은 주역을 공부한 한학자였는데 앞날을 내다보는 분이었어. 그 분이 당시 아버지에게 예언을 했는데 일본이 망하고 해방이 될 거니까 절대로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 거야. 당시 문인들은 거의 모두 일본에서 학교를 나오고 문학적으로도 이광수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지. 그들은 앞으로 이백 년은 일본의 통치가 계속될 테니까 차라리 일본 신민이 되자는 입장이었어. 그 시절 어용문학단체에서는 작가들에게 친일의 글을 쓰라고 몰아쳤던 때지. 아버지는 형의 말을 듣고 절필을 하고 버텼어. 그러다 해방이 된 거지. 사람 팔자란 모르는 거야. 친일파들이 물러나니까 학력도 약하고 주류에 끼지 못했던 아버지가 서울신문 편집국장이 된 거야. 그런데 해방 후 다시 좌우 대립이 극심한 난세가 된 거야.”
  
  “그때는 어떤 점괘가 나왔나요?”
  내가 물었다. 주역이 나타내는 운명의 궤를 믿고 따른다는 게 호기심이 일었다.
  
  “큰아버지는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동생인 아버지에게 권했지. 좌우대립이 심한 난세가 됐는데 이번에는 피하지 말고 어느 한쪽에 확실히 서서 싸우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아버지에게 알려줬어. 여기서 아버지는 확실한 우익에 섰어. 요즘으로 치면 태극기 부대의 앞장에 선 셈이지. 당시 한국청년문학가 협회를 결성해서 조선공산당 계통의 문학가 동맹에 대항했지.”
  
  김동리 씨는 그 후 인생의 마지막까지 한국의 문학 권력의 상징이 됐다. 신기했다. 주역은 어떤 때 인간이 침묵해야 하고 또 어떤 때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를 가르쳐 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아들인 김평우 변호사도 같은 운명의 흐름을 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판사와 교수를 하면서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렵 갑자기 정치 폭풍 속으로 들어와 좌파정권과 대치해서 싸우는 태극기 부대의 지휘자가 됐다.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의 좌파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가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 될지 아닐지 그의 운명의 점괘는 어떨지 궁금하다.
  
[ 2019-11-04, 02: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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