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상속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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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쯤 가을 어느 날이었다. 칠십대 여인이 고급 벤츠에서 내려 나의 법률사무실로 들어왔다. 법률상담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많은 땅과 재산을 상속받았다. 남자가 그녀의 재산을 탐을 낼까봐 나이 사십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교수를 하는 사람과 만나 살게 됐는데 혹시나 땅을 빼앗을까봐 혼인신고조차 그 나이까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만하면 재산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여자였다. 있는 사람은 더 있게 되나 보다. 그녀의 물려받은 땅 일부가 삼십 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풀렸다. 그녀 소유의 수만 평의 땅이 대지화되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수천억의 돈이 눈앞에 쏟아진 셈이다.
  
  “이 서류를 봐 주세요.”
  그녀가 시에서 보낸 통지서 한 장을 내 앞에 내놓았다. 그녀 땅의 일부에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는 도시계획결정 통보문이었다.
  
  “다른 곳에도 학교를 할 장소가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 땅인지 모르겠어요. 또 땅값을 쳐서 시에서 보상해 주려고 하면 폭등한 가격으로 줘야지 왜 일반대지 값으로 주는 거죠? 변호사를 사서 행정소송을 했는데 졌어요. 실력이 형편없어요. 그래서 변호사를 바꾸려고요.”
  그녀는 고통받는 표정이었다.
  
  “어떤 점이 제일 억울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그린벨트가 풀린 다른 지주들은 멀쩡하게 놔두고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하느냐구요? 국가에서 하는 이런 행동이 옳은 겁니까? 민주주의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해주는 건데 이렇게 터무니 없이 뺏어 간다는 게 말이 되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생각도 고정관념으로 꽉 차 있었다.
  
  “혹시 남편과 이 문제를 상의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이 땅은 제가 친정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친정 땅이예요. 남편한테라도 얘기할 필요가 없죠.”
  부자들은 주위 사람들을 경계하고 의심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오른 듯 덧붙였다.
  
  “우리 아버지 종중에 재산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 없이 딸인 저만 뒀죠. 그래서 제가 법원에 딸도 종중원이 될 수 있는 걸 확인해 달라고 소송을 해서 이겼어요. 변호사님이 제 종중의 땅을 전부 가처분해 주세요. 그리고 저를 종중회장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녀의 재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의 사건을 맡기를 거절했다. 여러 번 찾아오는 그녀의 상담사항을 연구해서 알려주고 시간도 많이 빼앗겼다. 나의 어떤 답변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점점 표정이 냉담해졌다. 며칠 후 사무실 직원이 내게 이렇게 보고했다.
  
  “법률상담비를 청구했더니 생각해 보고 나중에 은행 구좌로 보내겠다고 하고는 떼먹네요.”
  그런 게 욕심 많은 부자의 특성이기도 했다.
  
  나의 법률사무소 근처에 부부가 함께 일하는 선배변호사가 있다. 한번은 내가 가난 속에서 암으로 혼자 죽어가는 시인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본 선배 변호사 부부는 이백만 원을 몰래 내게 주면서 그 시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하는 부부였다. 육십대 중반을 넘긴 그 선배변호사의 부인도 부자 아버지로부터 많은 땅을 상속받은 여성이었다.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제 아버지는 개인 의원을 열고 평생을 의사로 지내셨어요. 입원환자를 걱정해서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가셨죠. 그 대신 아버지는 몫돈이 생길 때마다 좋은 땅을 사두셨어요. 돌아가실 무렵에는 그게 시가로 치면 엄청난 돈이 됐어요. 아버지가 마지막에 병으로 누워계실 때 저에게 하시는 말이 그런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 삶에 부담이 되니까 잘 처리할 방법을 강구해 보라고 지시를 하셨어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세금부터 시작해서 주위에서 노리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삶이 평탄치 않다는 철학이셨어요. 딸이 그걸 상속받아 골치 썩이는 걸 걱정하신 거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의 눈은 다른 것 같았다. 그 부인이 말을 계속했다.
  
  “제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이 땅의 가난한 청년 백만 명을 위해서 쓰라는 계시 같은 꿈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땅을 단 한 평도 남기지 않고 전부 기부했어요. 저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저를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고 판사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검소하게 살면 자식들을 키우고 살 수 있었어요.”
  
  명문 여고를 나오고 대학을 나온 그 부인은 항상 검소하고 소박했다. 나같은 남편의 후배변호사가 찾아가면 부지런히 챙겨주었다. 차를 내오고 과일과 떡을 내왔다. 지하층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남편 후배들에게 생선 매운탕을 접시에 떠주기도 했다. 철저하게 자기를 죽이고 내조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어느 날 그 부인에게 물었다.
  
  “아버지한테 상속받은 땅을 돈으로 치면 엄청난 금액인데 그걸 다 기부하고 이렇게 소박하게 사시는 게 후회되지는 않으세요?”
  
  “전혀 아니에요. 아버지도 탐욕으로 땅을 사들이지는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재물은 많이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 얽매여 삶이 힘들어질 거라고 하시면서 조금만 가지고 있어야 편한 거라고 알려주셨죠.”
  
  그 부부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나 정신이 그렇게 한 단계 질적인 승화단계를 거쳤으면 좋겠다.
  
[ 2019-12-09, 12: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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