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한 마디
“너의 노력을 봤다. 다음에 너는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거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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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탈주범 신창원을 변호하기 위해 부산교도소를 드나들 때였다. 웃통을 벗은 몸에 쇠사슬과 수갑을 찬 그의 모습은 마치 어떤 영화 속 지하 동굴의 작업하는 노예를 보는 듯 했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따뜻한 말 한 마디만 해 줬어도 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에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에 박힌 그의 한마디였다.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저주가 될 수도 있고 일생을 버텨주는 큰 힘과 용기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육학년 시절 일 년 동안 나를 관찰했던 선생님이 헤어질 무렵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너의 노력을 봤다. 다음에 너는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거야.”
  
  그 한 마디가 절망에 닥쳤을 때 떠오르곤 했다. 고시에 네 번 떨어졌을 때 그리고 더 이상 공부할 돈도 힘도 없을 때 그 말은 깊은 무의식의 우물 속에 숨어있다가 표면으로 떠올라 내게 강한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철벽같은 두꺼운 경쟁의 관문을 뚫었다. 나는 될 사람이라는 세뇌된 의식이 운명을 바꾼 것이다. 솔직히 둔한 머리나 자질상으로는 될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 자신이 본능적으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지와 믿음은 허약한 재능을 위로 끌어올린 게 틀림없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책을 읽다가 우연히 카알라일이 쓴 글 한 귀절이 수채화 물감같이 가슴속에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돈은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한 마디로 나의 영혼은 돈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 이하의 속물들이 돈 몇 푼을 던져주고 속칭 갑질을 했다. 사기범이 그리고 횡령범이 변호사인 나에게 큰소리를 쳐댔다. 졸부들이 돈을 미끼로 던져놓고 나의 아가미를 꿰려고 했다. 영혼이 죽어버린 그런 좀비들을 피할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직한 노동을 하면서 검소하게 생활을 한다면 그 정도의 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같았다. 먹을 걸 저장하지 않는 하늘을 나는 새도 살아가게 하는 분의 섭리였다. 책에서 읽은 한 줄의 글귀가 어머니의 말씀처럼 큰 위안과 위로를 주었다.
  
  나는 그런 말과 글을 만날 때마다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에 메모해 두곤 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이 나면 주문처럼 반복해 읽으면서 내 인생의 소중한 정신적인 밥과 물로 삼았다. 찾아보면 시간의 틈새들이 많았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시간, 법정이나 구치소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을 합치면 그 양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 말과 글귀를 녹여서 피 속에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인생이란 밝은 햇빛 나는 날보다 두꺼운 구름이 끼고 스산한 날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런 때 피 속에 녹아있던 그 말과 글귀들이 떠올라 목욕탕물 같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곤 했다.
  
  한 마디 말이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책에서 본 하나의 글귀가 절망에 빠진 나를 구원해 주기도 했다. 그런 말과 글의 보물창고는 경전인 것 같다. 그 안에는 깨달은 수많은 예언자들의 삶과 말이 들어있다. 그런 정신적 양식을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먹는 건 타고난 좁은 그릇인 나의 테두리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세상과 그런 방법을 공유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0-01-06, 22: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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