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죽은 사람의 소망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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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가을이다. 복부 씨티 검사를 하던 의사 친구가 무심코 내뱉었다.
  
  “이거 암인데.”
  의료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몽둥이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야?”
  나는 부인하고 있었다. 그가 잘못 진단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진단 방사선 쪽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데 틀릴 수가 없어.”
  의사인 친구는 냉철하게 암을 선고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갑자기 주위의 빛이 모두 사라지고 허공에 회색 기운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다른 의사들에게도 확인했다. 그들도 암일 확률이 크다고 했다. 나의 방에서 누워 사흘간 멀뚱히 천정만 쳐다보았다.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하필이면 내가 왜?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누워있었더니 허리가 아프고 사지가 뒤틀렸다. 죽어가는 암 한자라도 하루는 존재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변호하던 사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감옥에 가서 중죄로 재판을 받던 의뢰인을 보면서 그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살아갈 것이다. 예전에 만났던 사형수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괴롭고 어두운 세상이라도 존재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세상이 다시 보였다. 거리에 우뚝 솟아있는 빌딩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수십억 수백억이 가는 재산이라도 뱃속에 작은 암 덩어리가 하나 솟아오르면 그런 것들은 모두 가치를 잃어버린다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하는 짙은 회의가 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 입시를 통화한 것도 진땀을 흘리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살 맞은 강아지처럼 돌아다닌 것도 다 허무했다. 삶의 마지막은 썰렁한 기운이 도는 수술실의 바닥에 놓인 십자가 같은 수술대였다. 스피커에서 락 음악이 울리고 긴장을 풀려고 그러는지 의사들이 잡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은 내게는 이 우주가 없어지는 거대한 사건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의 꽃이 시드는 것같이 무심히 벌어지는 자연현상의 하나였다.
  
  나는 죽는다고 생각했다. 여러 후회가 밀려왔다. 곧이어 나는 심연 같은 깊은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여섯 시간의 수술 끝에 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사십대 중반에 한 번 임종 연습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정말 후회했던 건 이기주의로 나만 알고 남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만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걸 몰랐었다. 나 이외에 다른 것을 위해 살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 열심히 가고 기도하고 돈을 바치는 게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거리에 비척거리며 걸어가는 늙은 노파가 나라고 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또 감옥에서 죽어가는 죄수가 나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봉천동 달동네의 한 어둠침침한 방에서 고독하게 죽어가는 시인을 만났다. 폐암에 걸린 그는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동네 중학교에서 급식을 하고 남은 누룽지를 그에게 보내 주었다. 성당에서 나물과 김치 같은 반찬을 가져다주었다. 복지사들이 이따금씩 들려 그의 생존을 확인하고 몸을 씻어주고 갔다. 나는 삶을 정리하려는 그의 마지막 법률적인 문제를 처리해 주기 위해 그를 만났었다. 그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소년 시절 자동차 수리공을 하면서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됐어요. 젊은 시절 내공을 키우겠다면서 인도 여행을 오래 했죠. 나이 육십이 되면 진리가 담긴 진짜 좋은 시를 써서 인생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죽음의 천사가 와 버린 거에요. 죽음을 앞두고 세상을 보니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창문으로 아침이슬이 맺힌 호박꽃을 봤어요. 그건 경이에요. 누가 호박꽃을 미움의 상징으로 말을 만들었을까요? 난 그렇게 아름다운 걸 처음 본 것 같았어요.”
  
  그는 죽기 전날까지 연필로 시를 썼다. 그리고 죽어서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아래 그의 뼛가루가 묻혔다. 나는 요즈음 아침에 일어나면 이렇게 감사기도를 올린다.
  
  “오늘 아침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아쉬워하던 내일입니다. 감사히 살게 하시고 죽음이 다가오면 ‘예 준비됐습니다’하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가게 하소서.”
  
  
  
  
[ 2020-01-18, 16: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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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신갑주     2020-01-26 오후 8:50
너무나 아름다운 글이네요.
저는 최근에 '감사생각'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느낌을 갖게됐습니다.
이 책은 '감사' 는 의도적으로라도 훈련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는데요. 우리는 과연 하루에 얼마나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지....변호사님의 제2의 삶을 응원합니다.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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