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에서 만난 辛格浩 롯데 회장과의 본격 對談 4시간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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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별세한 신격호 회장과 나는 20년 전에 대담을 한 적이 있다. 이를 소개한다. 월간조선 2001년 1월호에 실렸었다.
  
  신주쿠에서 만난 辛格浩 롯데 회장과의 본격 對談 4시간
  
  
  ●『일본 기업인은 경영에만 신경을 쓰는데 한국 기업인은 신경 쓸 곳이 너무 많다』
  ●「정직·봉사·정열」이 좌우명인 79세의 童話 같은 꿈-잠실에 세계 최고 最大 빌딩을
  ●文學지망생에서 세계 제4위의 대부호로 大成했지만 지금도 손수 운전중
  ●『기업인은 정치와 인기에 신경 안 쓰고 경영에만 정진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인은 잘 되어도 못 되어도 자신의 책임-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나는 일본인으로 귀화한 적이 없다』
  
  先入見과 맞지 않는 辛회장 모습
  
  롯데그룹의 辛格浩 회장은 2001년에 만 79세가 된다. 그동안 키가 173cm에서 170cm로 줄었지만 몸무게는 62kg을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다. 지난 12월5일 오전 도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신주쿠(新宿)의 일본 롯데 본사 건물 12층의 접견실. 辛회장이 방으로 들어와 기자와 대각선 방향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기자는 깜짝 놀랐다. 辛회장은 기자의 先入見(선입견)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先入見이란 좀처럼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대재벌 회장다운 카리스마와 냉철함의 소유자일 것이란 이미지였다. 기자는 1984년에 만났던 李秉喆(이병철)삼성그룹 회장 같은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검정색, 백색, 회색이 교차하는 옷과 넥타이 차림에 상체를 약간 숙인 面前의 辛格浩 회장은 어색함과 부끄럼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과 부닥치니 이쪽이 불안해졌다. 기자는 첫 질문을 어떻게 시작해야 경직된 분위기를 풀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오늘 요미우리 신문을 보니 아주 재미있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韓日 양국의 여론조사인데 최근 들어서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가 서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장께서는 달을 바꿔가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생활하시는데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매달 체험하시고 계시는 셈이군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은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요』
  
  辛회장의 대답은 극히 짧았다. 기자는 너무 巨視的(거시적)인 질문을 했다고 판단하고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았다.
  
  ―회장께서 직접 만들었다는 롯데訓(훈)이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정직, 봉사, 정열인데 회장께서 붙였다는 해설이 좋았습니다. 즉, 정직은 바르게 살자는 것으로 理性(이성)의 명령이며 봉사는 의롭게 살자는 것으로 意志(의지)의 표현이고 정열은 즐겁게 살자는 것으로 감정의 실천이라고 말씀하셨더군요.
  
  『뭐, 그 말은 좋은 제품을 열심히 만들자는 뜻에서 발전시킨 거지요. 그 말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지요』
  
  辛회장은 자신에 대한 칭찬에 계면쩍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것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신과 관련된 일임에도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기업의 빚은 몸의 熱과 같다
  
  
  ▲ 2002년에 일본 도쿄 해안에 지을 롯데월드 도쿄의 모습.
  
  
  ―辛회장께선 학창시절에 문학도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는데 사업을 하시면서도 文學性을 잘 살린 경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의 롯데그룹과 辛회장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회사의 이름을 롯데라고 지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롯데란 이름은 辛회장께서 학창시절에 읽으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샤롯데에서 따온 이름이고 그것의 감수성을 제품과 기업에 잘 이용한 경우입니다. 롯데 껌을 광고하실 때 직접 「입 속의 연인」이라고 문안을 쓰셨다는데….
  
  『나는 사실 사업을 할 생각이 꿈에도 없었습니다. 사업이란 것은 위대한 인물이나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태평양 전쟁 때 그런 일이 계기가 되어 사업을 하게 된 겁니다. 그 전에 물론 일본에 유학을 와서 우유배달, 신문배달, 雜役(잡역) 일도 했지만』
  
  <「그런 일」이란 1944년에 있었다. 도쿄 苦學시절에 하나미쓰란 60代 일본인이 이런 提議를 했던 것이다.
  
  『군수용 커팅오일이 品貴상태이다. 자네가 공장을 차려 제조한다면 내가 출자하겠다. 수요처는 내가 주선해 주지』
  
  그 노인은 한때 자신의 아르바이트생이었던 辛格浩를 잘 봐두었다가 이런 제안을 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辛格浩는 문학도가 아닌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기자가 자신을 내세울 만한 무대를 깔아놓아도 辛格浩 회장은 좀처럼 말려들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일을 자랑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기업인이 너무 자기 선전을 많이 하면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가 잘될 때는 괜찮은데 잘못되면 인간적으로 어렵게 되고 회사로서도 부담이 되지요』
  
  ―辛회장과 롯데그룹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再평가된 경우라고 봅니다. 자본금 대비 부채비율이 80%도 안 되는 빚 적은 경영으로 경제위기 때 오히려 好機(호기)를 만들어 내신 비결은 무엇입니까(과자, 유통, 호텔업을 전문업종으로 삼고 있으면서 29개 계열사 3만5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롯데그룹은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급성장했다. 1997년의 매출액이 8조원이었는데 2000년의 매출목표액은 약 15조이다).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합니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되지요.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본 기업인이 신중하게 경영합니다. 나도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빚을 많이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국 기업인은 반대로 과감하긴 한데 무모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느 재벌회장이 몇 년 전에 저를 만나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빚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은행 혹은 당국에서 부도를 내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 은행 빚을 정부에서 출자금으로 전환해 주면 정부에게도 많은 이익이 돌아갈 것이므로 정부에서도 부도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놀랐습니다. 전문가가 경영해도 잘 안 되는 것을 정부가 간여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辛회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기업에 있어서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朴대통령이 믿음직하게 보여 母國 투자를 결심
  
  
  ▲ 일본 롯데 본사 12층에서 보이는 신주쿠의 巨大한 빌딩群. 접견실 책상 위에는 롯데에서 만드는 과자, 초콜릿 등이 놓여 있었다.
  
  
  辛格浩 회장과 친근한 한 인사는 그를 「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불렀다. 辛회장의 평범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서 그 말이 생각났다. 그는 파격적, 돌격정신, 도전심, 튀는 행동 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人間型(인간형)이었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 롯데그룹의 母회사인 롯데제과 홍보실에서 기자에게 전해준 「辛格浩 회장 語錄」에 실린 말들도 극히 상식적이면서 씹는 맛이 났다.
  
  『다른 상품보다도 조금이라도 나은 품질의 제품을 싸게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하나의 제품이 80% 정도의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신제품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극단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정열과 의욕을 가지면 상황도 유리해지고 올바른 해결책도 나오게 마련이다』
  
  『소생의 기업이념은 품질본위, 薄利多賣, 노사협조로서 회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사회 및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다』
  
  『難局의 의미는 종전과 같은 안이한 생활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일을 할 때 정열이 솟는 사람은 그 일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辛格浩 회장은 한국에 현대적인 유통업(롯데 백화점), 한국식의 호텔업(호텔 롯데)을 정착시킨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뚝뚝한 것이 장점으로, 친절한 것이 비굴한 것으로 치부되던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친절이란 서비스 정신이 기업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막상 辛格浩 회장은 그런 業種(업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련되어 보이기보다는 시골 할아버지처럼 수더분하게 보이고 자상해 보이기보다는 무뚝뚝해 보이기 때문이다. 辛회장은 『호텔업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철강업이었다』고 말했다. 이룬 것보다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 설명할 때 비로소 辛회장은 신바람이 나고 있었다.
  
  辛회장은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朴正熙 장군을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朴의장은 일본의 경제통계를 자세히 인용해 가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의 선진 경제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인가 하고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辛格浩 회장은 「군인이 어떻게 저렇게 경제문제와 통계를 잘 파악하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저런 사람이 지도자로 있는 한국에는 투자해도 안심이다」란 판단이 서더란 것이다. 辛회장은 자신의 母國(모국)투자는 朴正熙에 대한 신뢰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맨 처음 우리 정부에선 날 보고 精油(정유)공장을 지어달라고 했다가 걸프가 등장하자 종합제철소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1년 반 동안 일본內 후지(富士)제철소(現 新日鐵)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만들었습니다. 연간 100만t 생산 규모로 설계하여 총 투자가 1억 달러가 소요될 계획이었습니다. 그중 3000만 달러는 제가 출자를 하고 나머지 7000만 달러는 일본에서의 차관 등을 통하여 건설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그 뒤 우리 정부에서는 태도가 바뀌어 정부가 직접 하겠다고 하더군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한국전력 등 공기업의 민영화가 거론될 때 포항제철을 롯데가 인수하는 것을 검토해 본 적도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제한이 많아서 중단되었습니다』
  
  
  에펠탑을 닮은 500m짜리 세계 最高 빌딩
  
  
  ―2000년 12월 중에 부산시청이 있던 바닷가에 1조2000억원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7층(464.5m)짜리 제2롯데월드를 짓는 착공식을 한다는데 그만한 관광수요가 있습니까.
  
  『부산은 경남과 전남 등 남해안 지방, 그리고 일본의 규슈 지방과 중국을 배후지로 삼고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몰려들 것입니다. 우리가 시뮬레이션해 보았는데 2020년에 가면 한국을 찾을 외국 관광객이 약 20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지금은 약 500만 명). 사실 부산보다는 잠실 롯데월드 건너편에 있는 자리가 더 좋지요. 군용 비행장 때문에 30몇 층으로 건축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곳에 꼭 세계최고의 복합건물을 짓고 싶습니다』
  
  辛格浩 회장은 화제가 여기에 미치자 잠시 자리를 떠 자신의 집무실로 갔다가 설계도면 책을 들고 나타났다. 이 도면책을 펼쳐보이면서 설명할 때 비로소 辛格浩 회장은 딱딱함을 풀고 童心(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童心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 설계도면에 실린 롯데월드가 童話(동화)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에펠탑을 닮은 높이 500m짜리 건물, 유럽풍의 유리성, 人工火山 등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辛회장은 땅값을 빼고도 약 10억 달러가 들어갈 이 계획을 기어코 추진해 보겠다는 자세였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古宮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닙니까. 세계 최고 건물이란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좋은 광고선전이 되지요. 무역센터도 될 수 있고 위락시설도 될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그럴 수 있는 자리로서 적합한 곳은 잠실이라고 봅니다』
  
  辛格浩 회장은 도쿄 디즈니랜드가 있는 해안의 자기 땅에다가 2002년부터 「롯데월드 도쿄」를 건설할 계획이다. 약 4조원이 들어갈 것이다. 설계도면에 따르면 연건평은 약 20만 평이고 테마 파크, 백화점, 호텔이 들어 있다. 잠실 롯데월드보다도 더 크다. 도쿄 돔 야구장보다도 두 배나 크다는 돔 건물의 공룡등 같은 線이 인상적이었다.
  
  ―롯데그룹이 가진 주력업종, 즉 유통업과 호텔업은 내수경기에 민감합니다. 2001년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2000년 롯데의 매출액 목표가 15조였는데 약간 미달할 것 같군요. 2001년엔 약10%의 매출액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2001년 상반기는 어렵겠지만 후반기에 가면 경제가 다시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이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배가 고프니 정상적인 思考가 어려워
  
  
  辛회장과 같은 1920년대 출생 世代(세대)는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고생을 하고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집단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들은 植民地 시대를 청소년기에 체험하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간직했고, 광복 이후에는 이념갈등, 建國, 전쟁의 한복판으로 밀려들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계속했다. 그렇게 하여 다져지고 단련된 정신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대폭발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이들은 주로 지휘관 역할을 맡아 광복 후에 교육받은 젊은 후배 세대들을, 세계를 무대로 한 경쟁의 場(장)으로 내몰았다. 1920년대 출생자들 중 상당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릴 때쯤 해서는 心身이 쇠약해져 자신들의 勞苦에 대한 보상과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辛格浩 회장과 인터뷰하고 있는 일본 롯데 본사 12층의 창 너머로는 도쿄都 신청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빌딩群이 보였다. 세계 최대의 富의 축적을 보여주는 신주쿠 한복판에 떡 버티고 있는 辛格浩 회장은 가난의 恨을 불굴의 투지로 승화시켜 더욱 큰 성취를 남길 수 있었던 역전승의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辛格浩 회장과 기자는 신주쿠 힐튼호텔로 옮겨 양식당에서 고기를 자르면서 日帝시대 때 맛보았던 배고픔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것밖에 다른 생각이 나지 않습디다. 어떻게 하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궁리만 하게 되니 정상적인 思考(사고)가 불가능해지는 거지요』
  
  
  롯데호텔 건축 秘話
  
  
  辛格浩 학생을 배고픔에서 구출해 주고 문학지망생을 대사업가로 만든 것은 한 일본인의 善心(선심)이었다.
  
  『그 일본인의 신용을 얻은 것은 내가 무엇이든 성심성의를 다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렇게 느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辛格浩 회장은 한국型 호텔인 롯데호텔의 체인을 개발한 사람이다. 하얏트, 인터콘티넨털, 쉐라톤, 리츠칼튼 같은 세계적 호텔 체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아니라 한국型의 독자적 모델을 건설하여, 서울과 부산, 제주, 울산, 마산에 일류 호텔을 세웠다. 辛회장은 자신이 호텔업을 생각해낸 것이 아니고 朴正熙 대통령이 권했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이 나를 청와대로 불러 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반도호텔과 워커힐이 적자가 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운영을 민간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시면서 인수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호텔경영에 대해서는 경험도 없었고, 생각도 한 적이 없었기에 반도호텔만을 인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새 호텔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8층짜리 호텔을 한창 올리고 있는데 대통령 경호실에서, 호텔에서 청와대가 보이게 된다면서 18층까지만 지으라고 했습니다. 38층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고 있는 건물을 어떻게 반 토막낼 수가 있겠습니까.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지요. 그래서 제가 청와대와 당시 국무총리에게 진정을 하여 본 계획대로 38층짜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李秉喆 회장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 辛회장은 롯데호텔을 지어놓으니 李회장이 둘러보러 왔더라고 했다. 李회장은 신라호텔 사람들에게 『롯데호텔에서 배울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뒤 신라호텔은 종업원 교육을 강화하여 더 좋은 호텔이 되었으니 서로가 잘 된 일이지요. 호텔은 원래 收支(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사업입니다. 부산 롯데호텔에 약 3500억원을 일본에서 투자했기 때문에 이자의 부담이 없었음에도 3~4년간은 적자였으나 2001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것입니다』
  
  
  韓日 양국에 연간 매출액 27조원 규모의 왕국 건설
  
  
  ―辛회장께서는 한국에서 일본에 오는 주요 인사들로부터 일본에서의 여러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부탁받으면 어떠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먼저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경제 등 다방면을 전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한 정치가가 수상이 되면 경제 등 각 방면의 전문가를 모아 연구를 하고 대책을 세우며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당연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운영 방법을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예로서 50년 前 그 당시 일본 수상이 그렇게 하여 전후 혼란기를 수습하고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지요』
  
  辛회장은 『아파트를 2~3채 샀다고 해서 세무조사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합리적인 방법과 무리가 없는 방법으로 세무조사 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한 채는 거주하고 두 채부터는 매매 또는 전매를 할 경우 시가에 합당한 세금을 과징함이 옳다고 생각하며, 정부가 잘 하리라고 여겨집니다만 무리한 세무조사를 하는 방법으로 운영한다면 아무도 일에 열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辛회장께선 일본에서 롯데 마린즈란 프로 야구팀도 가지고 계신데 평소에 야구를 좋아하십니까.
  
  『내가 즐기는 것은 골프와 바둑 정도입니다. 그 팀은 원래 영화회사 다이에이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제가 존경하던 前 일본 수상께서 절 보고 인수해 달라고 부탁해서 맡은 것입니다』
  
  ―영화도 좋아하십니까.
  
  『영화관에는 별로 안 갔습니다만 집에서 비디오는 보고 있습니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韓日간에 걸친 辛회장의 롯데왕국은 한국측이 약 60%, 일본이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韓日 양국에서 약 27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롯데그룹은 지금 9개국에 50개 회사를 갖고 있고 종업원은 총 4만명이다.
  
  
  『한국에선 기업이 신경 쓸 곳이 많으나 일본에선 기업 일에 전념할 수가 있다』
  
  
  ―롯데는 서울의 3大 요지인 소공동, 잠실, 영등포에 호텔, 테마파크, 백화점을 지었고 부산의 제1요지인 서면에 롯데월드를 지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0년 봄에는 서귀포 중문단지에 롯데호텔을 새로 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알짜배기 땅은 다 갖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시중에선 辛회장을 「600만 평의 사나이」라고도 부릅니다. 일본에 값비싼 땅이 얼마나 있습니까.
  
  『저는 토지를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장래에 펼칠 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구입하였습니다. 말씀하신 소공동, 잠실, 부산 서면 등은 경매를 하여도 살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또는 市에서 롯데가 매입하면 어떻겠느냐는 요청에 따라 구입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단 한 평도 사업 외의 목적으로 판 적이 없습니다. 다만 도로 등을 확장 건설할 때라든지 도로를 신설할 때 公共(공공) 목적에서 수용될 때에는 판 적이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토지를 이용한 적은 없습니다』
  
  辛회장은 2000년 여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이 노사분규에 휩싸였던 일을 「의외의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종업원들과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5월 말에 그것을 확인하고 도쿄에 돌아와 있는데 그런 사태가 생겼어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때 과격한 노사분규가 있었고 노동자들이 폭력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정부를 상대로 했을 뿐 자기 직장 내부를 폭력장으로 만든 적은 없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살길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석유를 전량 수입하고 식량의 50%를 수입하는 나라가 한국 아닙니까. 국토는 좁고 자원도 빈약하니 원료를 수입해다가 이것을 잘 가공하여 비싸게 팔아야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려면 기업인, 정부, 노동자들이 合心해야지요. 오손도손 열심히 일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아요.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노사가 협력해야 하고 이것이 경쟁력인데 말입니다.
  
  한국의 롯데제과는 임금이 매출액의 14%쯤 되는데 일본內 같은 업종의 제과업은 10% 정도입니다.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달러 기준으로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90년대 초로 후퇴했고 실질가치가 40%나 줄어들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노조가 法을 지키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장래는 어렵습니다』
  
  辛회장은 『일본의 기업인은 정치와 관청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기업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규제가 너무 많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정치자금을 써야 하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도 정치자금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액수가 많지는 않지요』
  
  ―辛회장께서는 기시 노부스케, 나카소네, 다케시타, 후쿠다, 오부치 등 일본의 보수 本流에 속하는 정치인들과 절친한 것으로 유명한데 어떻게 그런 人脈을 만들었습니까.
  
  『내가 원래 보수본류의 巨頭인 기시 선생과 친했습니다. 그러니 그 후배 되는 분들과도 잘 알게 되었지요. 일본 정치인들도 정치자금을 거두지만 개인적 축재는 하지 않습니다. 총리를 하던 사람도 그만두면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 여생을 즐겁게 지냅니다』
  
  
  운전 직접 하고 수행원 없이 해외 여행
  
  
  辛格浩 회장은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습관으로 해서 한국 재벌 회장들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그의 사무실이 아주 소박했다. 크기나 장식이 한국의 중소기업 사장 사무실 정도라고 할까. 辛회장은 지금도 운전을 한다. 퇴근 후 모임이나 음식점에 갈 때에는 운전사가 데려다 주지만 식당으로 들어가면서 돌려보내고 모임 혹은 식사가 끝난 후에는 스스로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왜냐하면 운전사를 2~3시간 기다리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운전을 하면 음주를 하지 않게 되고, 또 운전을 하면 운동도 되고 두뇌회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50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한다.
  
  『한번은 친구와 밤늦게까지 바둑을 두고 운전을 하여 집으로 돌아가는데 교통사고를 만났습니다. 모퉁이를 좌회전하자마자 정면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발견했습니다. 트럭 운전자를 올려다 보니 먼 곳을 쳐다보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몰던 승용차는 트럭 밑으로 들어갔고 앞자리가 뒤로 밀렸는데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살았어요』
  
  辛格浩 회장은 해외 여행을 할 때 수행비서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혼자서 불쑥 서울의 롯데호텔에 나타나면 종업원들은 그제서야 왔구나 한다는 것이다.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백화점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도 한다. 간부가 알아보고 『회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면 『그럴 필요 없네, 자네 일이나 하게』라고 한단다. 辛회장은 기자에게 자신의 단출한 생활방식이 당연한듯 『내가 길을 잘 아는데 왜 쓸데없이 안내인을 데리고 다니나?』라고 했다.
  
  辛회장은 한국에 오면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로 생활한다. 혼자서 사업 구상을 골똘히 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가 언론과의 인터뷰나 자신에 대한 홍보에 무신경인 것도 「기업인은 경영에 집중해야 한다」는 소신의 반영이다.
  
  도쿄 롯데월드 구상이나 잠실에 세계 최고의 건물을 짓는 계획 같은 것들은 그가 직접 관장한다. 辛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는 재미를 느끼면서 신이 나지만 일단 그 사업이 시작되고 정상궤도를 탄 다음에는 무관심할 정도가 아니라 쳐다보지도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李秉喆 삼성 창업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일상적인 것을 경멸하는 대사업가들의 창조적 정신 상태라고나 할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식 경영, 즉 평생직장 개념과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경영자들의 장기적 안목과 전략적 경영이 미국식의 경영보다 낫다고 해서 서로 배우자고 하더니 요사이는 일본의 改革不振(개혁부진)에 대해 비판이 높아지고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일본에 대한 과대평가가 과소평가로 바뀌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정보기술과 금융·증권 부문에서 일본이 미국에 뒤떨어져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입니다. 일본이 해외에 투자한 돈이 1조 수천억 달러이고 국내 저축도 미국을 능가합니다. 금리가 너무 낮아 정년퇴직자들이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과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는 게 문제이지요』
  
  
  일본인으로 귀화한 적 없다
  
  
  ―회장께서는 한국에 투자한 돈에 따른 이익금은 한푼도 일본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정부에 하셨다면서요.
  
  『그 당시 담당부처에서 그런 약속을 서면으로 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이익금을 일본으로 가져갈 마음도 없었지만 그런 약속을 문서로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일본에서 문제가 생길 수가 있었고요』
  
  辛格浩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50억 달러를 훨씬 넘고 있으며 일본 롯데에서도 그 돈을 회수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가져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辛회장께선 일본 이름이 시게미츠 다케오(重光武雄)이신데 언제 일본으로 귀화하셨습니까.
  
  『귀화라니 나는 일본인으로 귀화한 적이 없어요. 일제시대 創氏改名한 것을 그대로 쓰고 있을 뿐이오. 난 언제나 한국인이었어요』
  
  ―그렇습니까. 아니, 그런데 왜 해명을 하지 않았습니까. 시중에선 모두 그렇게 믿고 있는데….
  
  『그런 데 일일이 신경을 쓰면 뭣하오. 자연히 바로잡혀질 텐데』
  
  ―일본인 부인의 삼촌이 2차 세계대전 패전 때 미조리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시게미츠 외무대신이며 회장께선 부인 家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것도 오해예요. 집사람은 외무대신 시게미츠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앞으로 후계자는 어떻게 결정하실 생각입니까. 장남 辛東主씨는 일본의 롯데, 차남 辛東彬씨는 한국의 롯데를 맡기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입니까.
  
  『내가 아직 10년은 더 할 거요(웃음). 동빈이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뒤 노무라 증권에 들어가 영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영어도 곧잘 하고 우리말도 합니다. 동주는 미쓰비시에서 일한 적이 있지요』
  
  ―한국 사회는 학연, 혈연, 지연 등 인간관계가 중요시되는 사회인데 辛東彬씨는 그런 뿌리가 없는데 어렵지 않겠습니다.
  
  『배우면서 해야지요. 잘하고 있습니다』
  
  辛格浩 회장은 한국의 기업인들 중 삼성 창업자 故 李秉喆 회장을 『先見之明이 있는 분』이라고 특히 높게 평가했다.
  
  
  辛格浩와 鄭周永의 비교
  
  
  辛格浩 회장이 大成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갈림길은 日帝 말기 결혼한 몸인데도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苦學을 하기로 결단한 일이다. 왜 고향을 등지기로 결심했느냐고 물었다.
  
  『그때 우리 고향 마을(경남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의 노인들은 완고하셨어요. 젊은이들이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는 동네 목욕탕을 만들려고 했더니 노인들이 저희들을 향해 고함을 치면서 「그런 미친 짓 하지 말라」고 하는 식이었죠. 젊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하니 노인들의 권위와 영향력이 손상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런 마을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발전이 없겠다고 생각해서 渡日한 것입니다』
  
  ―朴正熙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계기도 문경보통학교의 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로 뛰쳐나간 모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朴교사는 산으로 둘러싸인 문경에서 살자니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대통령이 된 뒤에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도 당시 결혼한 상태였는데 아마도 그 결혼생활이 단란했다면 만주行도 없었을 것이고 권력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 고향 마을처럼 경치 좋은 곳은 없을 거요. 공기 맑지요. 호수도 있지』
  
  辛格浩 회장은 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을 높게 평가한다. 두 사람은 부모로부터의 무단 가출과 前근대적인 마을의 인습과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뒤 거대한 기업을 當代에 이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辛회장이 일본에 정착하면서 일본 기업인의 전통을 상당히 받아들였던 데 대해 鄭周永 회장은 한국 토종의 기업풍토에서 성장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辛회장은 정치를 될수록 멀리 하고자 하면서 기업경영에 집중하려고 했다면 鄭회장은 정치판에 뛰어들기도 하고 남북문제에까지도 간여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두 회장의 성적표는 종전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빚을 적게 쓰면서 전문성을 살린 롯데와 확장을 과감하게 한 現代. 이 차이의 문화적 배경에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뿐 아니라 韓日 양국의 역사적 발전단계의 차이가 존재한다.
  
  辛회장은 『현대건설을 부도내선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국가적으로나 현대그룹 전체를 생각해서나 鄭회장의 지금까지의 실적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현대그룹의 母기업인 현대건설을 살려야 합니다. 현대는 현대 각사가 합심·협력하면 건설을 충분히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현대건설을 살려놓아야 현대그룹 전체의 주식값이 오를 것이고 그러면 위기를 넘기는 것 아닌가요. 현대건설이 부도나면 현대그룹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에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묵묵한 실천력
  
  
  辛格浩 회장과 기자의 일문일답은 점심 시간까지 끼워서 네 시간 이어졌다. 辛회장은 기자와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인터뷰 기사를 정리해 보니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약 100장이었다. 보통 사람과 4시간 인터뷰한 기록은 200장 분량이 된다. 辛회장은 실감 있는 묘사나 세부사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의 본질, 결론, 원리가 될 만한 것들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인터뷰 대상으로서는 어렵다. 말을 많이 하도록, 신나게 설명하도록 기자가 질문을 통해 부추겨야 하기 때문이다. 辛회장은 「말의 인간」이 아니라 「행동의 인간」이다.
  
  「말의 인간」─정치인, 언론인, 교수들 등─은 말 자체에 중대 의미를 부여한다. 말을 유려하게 감동적으로 하려고 애쓴다. 그들의 말은 대체로 거창하고 비장하며 논리적이다. 그들은 말을 근사하게 잘하면 현실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朴正熙, 李秉喆, 辛格浩 같은 「행동의 인간」은 대체로 실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말한다. 말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의 인간」인 기자가 「행동의 인간」인 辛格浩를 이해하고 그의 意中과 능력까지 헤아려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사업가의 비전과 추진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때 이런 농담이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기업인.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치인>
  
  기자는 여기에 蛇足을 붙이기도 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보통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려서, 때로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도 하면서 역사를 자신이 가리킨 방향으로 끌고 간 지도자는 보통사람과 기업인과 정치인을 합쳐놓은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
  
  우리 현대사에선 李承晩, 朴正熙가 그런 인물이다.
  
  辛格浩 회장은 분명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한 사람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식민지 농촌의 절망적인 가난과 답답함을 체험한 것, 일본인들의 정직과 성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것, 독서에서 우러나온 교양,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골똘히 생각하는 습관, 무엇보다도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소년처럼 신이 나는 순진함이 運(운)과 합쳐진 게 아닐까.
  
  기자에게 남은 辛格浩 회장의 이미지는 시골 노인이 아니면 老교수 같아보이는 사람이 세계 최고 빌딩 스케치북을 들고 나와 童話 같은 세계의 전개를 신나게 설명할 때의 그 천진한 웃음이었다.●
  
  
  
  辛格浩 회장 파일
  
  
  ·생년월일:1922년 10월4일
  
  ·출생지:경남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 623
  
  
  학력·경력
  
  ·1939년 울산 농업고등학교 졸업
  
  ·1942년 渡日
  
  ·1946년일본 早稻田(와세다) 대학 화학과 졸업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주) 설립, 母國투자 개시
  
  ·1946년~일본 롯데 대표 취체역 사장
  
  ·1967년~한국 롯데 회장
  
  
  한국內 사업 연보
  
  ·1967년 4월 롯데 제과(주) 설립
  
  ·1973년 10월 (주)호텔 롯데 설립
  
  ·1974년 11월 롯데상사(주) 설립
  
  ·1978년 12월 한미식품(주) 인수, 롯데칠성음료(주) 설립
  
  ·1978년 2월 삼강산업(주) 인수, (주) 롯데 삼강 설립
  
  ·1978년 4월 (주) 롯데 햄우유 설립
  
  ·1979년 1월 호남석유화학(주) 인수
  
  ·1979년 10월 (주)롯데리아 설립
  
  ·1980년 3월 롯데냉동(주) 설립, 한국후지필름(주) 인수
  
  ·1982년 4월 롯데자이언츠 설립, 대홍기획 설립
  
  ·1982년 6월 롯데물산(주) 설립
  
  ·1983년 6월 롯데 중앙연구소 설립
  
  ·1984년 5월 (주)호텔 롯데 부산 설립
  
  ·1985년 5월 (주)롯데 캐논 설립
  
  ·1987년 3월 롯데월드 사업본부 설립
  
  ·1994년 10월 (주)코리아 세븐 인수
  
  ·1996년 10월 롯데 로지스틱스(주) 설립
  
  ·1996년 11월 롯데 할부금융(주) 설립
  
  ·1999년 6월 롯데 후레쉬델리카(주) 설립
  
  ·2000년 1월 롯데 닷컴(주) 설립
  
  ·2000년 11월 모비도미 설립
  
  
  수훈
  
  ·국민훈장 무궁화장(1978년), 동탑산업훈장(1981년), 금탑산업훈장(1995년)
  
  
  단체·취미
  
  ·사단법인 在日한국인 본국투자협회 고문
  
  ·사단법인 韓日협회 고문
  
  ·취미:바둑·골프
  
  출처 : 월간조선 2001년 1월호
[ 2020-01-19, 17: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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