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가수 송창식의 담담한 人生 고백
“가수가 계속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은 이런 작은 카페 아닌가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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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공책에 적어놓았던 하나의 글을 화두로 삼는다. 오늘의 내용은 이랬다.
  
  ‘그대가 스스로 고통을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그대는 더욱 더 현명한 행동을 하고 더욱 더 큰 보상을 받으리라. 마음가짐과 단련된 습관으로 고통을 참아낼 준비를 부지런히 하면 고통을 보다 쉽게 참아나갈 수 있으리라’
  
  화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나는 그 추상을 나의 피 속에 살아있는 것으로 녹일 과거의 체험이나 주변에서 보았던 사실들이 기억의 우물 속에서 안개같이 피어오르기를 기도한다.
  
  어제 낮에 TV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몇 장면과 몇 마디 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산한 바람이 마당의 마른 풀을 스쳐 가는 산자락의 외딴곳에 있는 소박한 벽돌집이 보였다. 집 주변은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푸석푸석한 얼굴로 문 밖으로 나왔다. 가수 송창식 씨다. 수십 년 동안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한 그의 아침 시간이라고 했다. 그 혼자 아침을 먹었다. 작은 식탁 위에는 밥과 국, 나물과 돼지비계 몇 점이 놓인 접시가 보였다. 잠시 후 그가 연습실에 있었다. 검은 스피커가 벽 아래 몇 개 웅크리고 있는 삭막한 공간이다. 그는 거기서 매일 기타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매일 연습을 한다고 해도 늙어서 그런지 실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연습을 안 하면 눈에 띄게 기량이 줄어들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손도 느려지구요. 그렇지만 저는 음악을 평생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음악의 도인(道人)인 것 같다. 잠시 후 그가 노래를 부르는 작은 무대가 나왔다. 조그만 카페였다. 무대 앞에 몇 개의 테이블이 있고 와인 잔을 앞에 놓은 그의 오래된 팬들이 무대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잠시 후 송창식 씨의 말이 흘러나온다.
  
  “가수가 계속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은 이런 작은 카페 아닌가요? 팬들이 있기 때문에 나의 음악이 존재하는 거죠.”
  
  그의 담백한 표현 속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했다. 가수들은 수만 명이 열광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싶어 한다. 마약같은 박수와 인기에 취했다가 그게 사라지면 황폐해진다. 그는 그런 걸 이미 뛰어넘은 것 같았다. 작은 무대에 감사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긴 목소리였다. 그에게 왜 평생 한복을 입고 노래하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외국에 처음으로 나갔을 때였어요. 양복을 맞춰 입고 외국가수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갔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제일 촌티가 나고 못나 보였어요. 백인들은 허름한 양복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그 다음번 외국에 나갈 때 한복을 입고 나갔죠. 그랬더니 내가 최고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는 나의 것이 뭔가를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 지나온 인생이 담담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6·25 때 내가 네 살이었는데 아버지가 군대에 가서 죽었죠. 어머니는 나를 잠시 맡겨놓고 돈 벌러 간다고 나가서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어요. 나는 친척집을 떠돌았죠. 밥이 전부인 어린 시절이었어요. 하룻밤 잠자리를 얻기 위해 인천에서 친구 집이 있는 부천까지 눈 쌓인 길을 걸어갈 때도 있었어요. 버스비가 없어서였죠. 고등학교도 자퇴해야 했어요. 서울역 앞에서 두 달 동안 노숙자 생활 비슷하게 산 적도 있구요. 그렇게 하다가 작은 무대가 있는 서울의 한 음악감상실에 가게 된 거죠. 거기서 일해주면서 밥을 얻어먹고 밤이면 의자를 붙여 잠자리를 만들고 피아노 덮개를 이불 삼아 잤어요. 그리고 거기서 가수가 됐죠.”
  
  그는 모든 삶의 상처를 초월해 어떤 경지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정사에 대한 질문에 그는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십 년 동안 혼자 살고 있어요. 법적으로 부부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혼이 아니라 졸혼을 했다고 할까요. 아내의 자존심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완곡하게 대답을 거절했다. 노숙자 생활까지 내보인 그가 답변하지 않는 건 아내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가 틀림없었다. 사랑받지 못하고 큰 그는 음악만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운동도 혼자 방 안에서 양팔을 벌리고 수없이 빙빙 도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수피즘의 사제들이 그렇게 돌면서 황홀경에 빠진다는 글을 읽기도 했다. 음악 도인다운 자기 수양의 방법이라는 생각이었다. 화면 속의 그가 짓는 미소 뒤에는 짙은 슬픔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짙은 감동이 되어 나의 마음에 너울을 일으켰다. 오늘의 화두가 풀리는 것 같았다.
  
[ 2020-02-10, 14: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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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중     2020-02-10 오후 7:40
송창식이 20년 간을 혼자 살다니요? 그는 돈을 벌면 다 아내에게 주었고, 그 아내가 준 많지 않은 돈을 용돈으로 썼다는 인터뷰 기사를 한 3년 전에 읽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그가 아주 성실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긴 세월을 혼자 살다니요? 고등학교를 중퇴한 것도 그가 타고난 음악적 재능 때문에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그는 미발표된 곡이 1,000개나 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장가 잘 간 남자도 없고, 시집 잘 간 여자도 없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이 말 속에 그가 포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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