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기생충’

홍표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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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관에서 ‘기생충’ 영화를 보았다. 한국 최초, ‘칸 영화제 금상’을 받았다느니 개봉되자 단번에 ‘5백만 관객이 동원’됐다느니 해서 흥미가 생겨서였다. 헌데 이번에 오스카상까지 받았다니! 그것도 ‘영화상의 꽃’이라는 ‘작품상’, ‘감독상’은 물론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에 올랐다니 대단하다! ‘한국영화’가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는 뜻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향후 좋은 영화를 더 많이 제작해 주었으면 한다.
  
  사실 ‘제목’만 보면 선뜻 발길이 안 내킨다. ‘기생충’이란 말이 워낙 께름칙해서다. 1960~70년대에 초중고를 보낸 세대들은 이 말을 들으면 ‘회충(蛔蟲)’이나 ‘구충제(驅蟲劑)’가 연상될 것이다. 요즘에야 생소한 말들이지만 당시는 모두 全 국민적인 보통명사였다. 그만큼 기생충이 오장육부에 흔히 기생(寄生)했던 시절이었다. 그래 ‘기생충’이라면 후진국형 부끄러운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선입관 때문일까, 첫 장면부터 영화는 느와르(noir)적으로 비쳤다. 창밖 도심 골목이 콧잔등 위로 보이고 비 오면 물 새어 들어오는 반 지하방에 4인 가족이 등장한다. 가장(家長)은 김기택(송강호)이다. 가족끼리 오가는 대화는 사회 불평반대기다. 기택은 백수(白手)다. 명문대 지망 사수생인 아들 기우(최우식)나 미대 가려는 딸 기정(박소담)도 그렇고, 운동선수 출신인 부인 박충숙(장혜진)마저도 직업 불명이다. 도대체 어떻게 먹고사는지 의구심부터 들었다. 우리 사회의 최하층 삶을 보여주는가 싶은데 ‘그들이 대표할까?’ 의문도 생겼다. 그런 생활에서도 애써 노력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건의 발단은 어느 날 군입대를 앞둔 기우 친구가 방문하고서다. 자기 대신 박 사장(이선균) 딸 과외를 맡아달라는 제의에 기우가 그 집을 방문하면서 영화는 급물살을 탄다. 여학생 엄마(조여정)에게 위조한 명문대 재학 증명서를 보여 신임을 얻고, 제 여동생(기정)도 외국대학 경험이 있다 속여 그 집 아들의 미술선생으로 들인다. 물론 자기들은 외관상 남남이다. 얼마 뒤 둘이 짜고 그 댁 자가용 운전사와 가정부를 다 내쫓고 기택과 충숙이 들어앉는다. 그러니까 최빈곤층 백수 아들이 부잣집 가정교사로 들어가 마침내 제 가족 모두를 부잣집에 취직시킨 셈이다. 구성(plot)은 비현실적이고 코미디 性인데 관객에겐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의 과도한 교육풍토에서 개연성이 있어 보여서일 것이다.
  
  영화의 백미는 주인 가족이 여행을 떠나고 기택 식구가 주인 없는 집에 들어 오붓하게 즐거운 한밤을 보내는 장면일 것이다. 영화 제목 ‘기생충’이 실감났다. 흥미로운 건, 사실상 주인 없는 빈집에 도둑이 들어 주인 행세하는 꼴인데 관객은 고소(苦笑)할 뿐, ‘비난’보다 되레 ‘연민’을 유도한 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부(富)를 지나치게 과시하는 일부 상류층에 대한 불만을 대리 해소케 했다 할까.
  
  이런 기택 가족의 ‘고밀도 행복’도 잠시, ‘기생충’의 이미지대로 前 가정부 남편이 이 집 ‘비밀 지하방’에 오랫동안 기거했던 게 밝혀지고 주인 가족이 우천으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면서 순식간에 깨진다. 그리고 곧이어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맞는다.
  
  박 사장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뜨락에서 성대한 파티를 연다. 기택 가족도 초대된다. 화려한 서양 고전음악의 선율과 맛난 음식들, 가객들의 행복에 겨운 표정들 속에서 기택 가족은 상류 가정의 모습을 새삼 느낀다. 영화는 이런 파티에서 부자에 대한 그들의 ‘시기심’을 자극하려 했을까, 돌연 前 가정부 남편이 ‘지하방’을 탈출, 파티에 참석한 기정을 식칼로 찌르고 충숙은 딸을 구한다며 그를 살해하면서 파티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이 와중에 기택은 주인 박 사장을 살해하고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급속도로 영화는 종장(終章)을 향한다.
  
  살인사건이 잠잠해지자 어느 날 기우는 박 사장의 ‘지하방’에 기택이 은신해 있음을 알게 되고 거기서 마침내 기택을 조우(遭遇)할 것이라는 암시 속에 끝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최빈층 가족이 부유층에 ‘그로테스크’하게 기생하다 최악의 불행을 맞는 이야기다. 부자를 ‘숙주(宿主)’로 가난한 자를 ‘기생충’으로 엮어, 갈수록 심화하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의 모순을 ‘코믹’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박 사장은 기택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나?’이다. 그는 주인으로서 그에게 비교적 잘해 주었다. 어쩌다 기택에게서 ‘풍긴 냄새’가 다소 ‘고약해’ 일시 찡그린 적은 있어도 ‘노골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는 기택이 박 사장을 살해한 직접적인 동기로 부각(浮刻)시켰다. 마치 보통사람들 사이에는 흔한 일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는 ‘극단적인 증오감’으로 발현될 수 있음을 양각시키려는 듯했다. 그러나 과연 살인을 부를 만한 잘못일까?
  
  ‘부(富)’는 그저 저마다 지향하는 행복의 한 수단일 것이다. 富를 지나치게 과시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상류층 풍조는 지탄(指彈)받을 만하나, 그렇다고 마치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타도’하듯 ‘증오’의 대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좌파적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나올 만하다. 사실, 가난의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도 있다. 기택 가족의 ‘불성실한 삶의 태도’가 그렇다. 영화는 이런 점은 조명하지 않았다.
  
  기우가 훗날 박 사장 저택을 매입해 기택을 만나게 함으로써 사실상 그에게 ‘살인의 면죄부’를 부여한 것도 의문이었다. 동기야 어떻든 ‘우발적인 살인’이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사회적 정의’가 아닐까? 영화는 ‘기택의 살인’을 그저 용인한 셈이 되었다. 권선징악과는 안 맞는 종장 구성(構成)이었다.
  
  이런 점들이 아쉽다. 그러나 필자의 지적에도 불구, 오스카상에 빛나는 ‘명작’임은 분명할 것이다. 이런 점들은 더 연구해 볼 만한 점으로 남긴다.
  
  2020. 2. 12
  
  
[ 2020-02-12, 18: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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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날개     2020-02-13 오후 11:44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그것도 4개 씩이나
받았으니 국가적으로 경축할 일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고 김기영 감독한테
이 영광을 나눠가졌으면 한다는 말을 꼭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봉감독은 고 김기영 감독이 60년전에 만든 영화 "하녀"에서 내용의 상당부분을
차용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또한 대다수의 영화관계자들이 영화 기생충 보다는 영화 "하녀"가 뭐로보나
아직도 대한민국 영화사에 길이남을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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