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이것저것 다 따지면 어떻게 돈을 벌겠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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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나는 성직자의 숨겨진 마음을 고백 받는 일이 더러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한 목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저한테는 돈이 주머니에 없어야 합니다. 돈만 조금 생기면 나도 모르게 한밤중에 홍등가 앞을 서성거리고 있어요.”
  
  들끓는 욕망은 누를수록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목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가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있는데 음탕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앞에 있는 여신도를 보면서 욕정이 끓어오르는 거예요. 날이 가도 그 욕망이 중단이 되지 않는 겁니다. 자칫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를 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느 날 새벽 그 여신도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용서해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그런 생각이 없어지더라구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속에 있는 더러운 마음을 밝은 빛 속에 노출시키면 어두운 마음이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 세계는 정말 깊고 어두운 것 같다. 그 속에 뭐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삼십대 초반 무렵이었다. 나는 배의 바닥짐 같은 삶을 지탱해 주는 중심을 구했다. 기도를 해 봤다. 그러나 지저분한 상념들만 침묵의 공간 속에서 떠돌 뿐 성경 속 인물들같이 신(神)의 목소리나 환상 같은 신비로운 체험은 할 수 없었다. 유교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택해 보기로 했다. 선비들은 매일 몸을 깨끗이 하고 경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게 그들의 수행방법이었다. 나는 두툼한 하얀 공책에 성경과 설교집에서 내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써 갔다. 쓰는 행위를 기도로 삼기로 했다. 공책이 가득 차면 그건 나만의 경전이었다. 그걸 읽고 또 읽었다. 그 말씀들이 나의 피 속에 녹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의 마음 껍데기 부분만 겉돌 뿐 전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마음은 그것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우선 먹고 사는 게 중요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사는데 악에 받친 듯한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현실에서 진리는 마음 껍데기 부분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돈이 들어만 온다면 나는 사기꾼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세월이 십년쯤 흐르고 사십대 초반경이었다. 나는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면 텅 빈 사무실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내 마음을 바라보곤 했다. 여전히 재물욕이 강하게 들끓었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아파트를 좀 더 넓혀야 했다. 파우스트 박사 앞에 검은 삽살개로 변한 마귀가 나타나듯 악마가 미끼를 단 낚시를 내게 드리웠다. 한 기업의 사장이 밀수를 하다가 적발이 됐다. 밀수에 대한 처벌이 엄할 때였다. 걸리면 누구든 인생이 끝장이 날 정도였다. 그 사장은 회사의 자재부장을 자기 대신 범인으로 만들어 자수를 시켰다. 동시에 수사관계자들을 매수했다. 그 사장은 내게도 억대가 넘는 거액을 현찰로 내놓으면서 말했다.
  
  “검찰청이랑 관세청이랑 이미 돈을 듬뿍 뿌려서 다 손을 봐 놨어요. 그냥 형식적인 변호만 하면 됩니다.”
  
  그 사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담당 검사나 부장검사는 이미 매수되어 있었다. 이미 속죄양으로 구속시킨 회사의 자재부장이 있었기 때문에 밀수사건 처리가 겉으로는 매끈했다. 사건 처리는 땅 짚고 헤엄치기 같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거액이었다. 인생에서 잡아야 하는 그 기회가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액의 뭉칫돈은 내게서 저항할 힘을 이미 빼앗아 버린 것 같았다. 나의 육체는 마음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뻔질나게 검사실 부장검사실을 드나들었다. 그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당시는 그게 관례였다. 빈손으로 검사실이나 판사실을 갔다 나오면 뒤에서 욕을 먹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구속된 그 회사 자재부장의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그이는 입사를 해서 이십 년 동안 새벽이면 별을 보고 출근하고 달이 허공에 걸린 한밤중에 퇴근하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법이 없어도 살 착한 사람이에요. 남편은 사장님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사장님에게 갔더니 자기 말 듣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지금 살고 있는 회사 아파트에서 내쫓아 버리겠다고 겁까지 주시는 거에요. 뭔가 이상해요.”
  
  그 부인은 그들 앞에 닥쳐온 불행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내 속에서 두 개의 마음이 서로 찌르면서 싸웠다. 한쪽 마음이 내게 오만한 투로 말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야. 변호사가 이것저것 다 따지면 어떻게 돈을 벌겠어? 그냥 눈을 감아버려. 그 여자는 네가 맡은 이 사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잖아? 돈이 거저 들어오는 줄 알아? 그걸 바라고 무릎을 꿇어야 오는 거야.’
  
  그 마음은 나를 꼼짝 못하게 이중 삼중으로 묶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이 이렇게 속삭이기도 했다.
  
  ‘받은 그 돈으로 아파트를 넓힐 수도 있고 아이들 유학을 시킬 수도 있어. 이런 횡재가 오고 또 오는 게 아니야.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
  
  내 육체는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속에 또다른 마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은 소극적이고 조용한 것 같았지만 은근히 양심을 쿡쿡 찔러대면서 희미한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입에 삼키려고 하는 이 돈의 속에는 낚시가 들어있어. 멀리서 네가 물기만 하면 아가미를 꿰려고 낚싯대를 들고 앉아 있는 존재가 있어. 무는 순간 너의 영혼은 죽어버리는 거야. 너는 살아도 영혼이 없는 본능만 남은 시체가 걸어다니는 것과 같아.’
  
  나는 그 사장을 오라고 해서 돈을 모두 돌려주었다. 힘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자재부장의 아내에게 사장을 의지하지 말고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진실을 밝히라고 알려 주었다. 오십대도 육십대도 나름대로 마음을 바라보고 읽을 수 있는 기지를 배우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삼십대 마음 껍데기에서 튕겨지던 진리의 말씀들이 시험을 받고 행위를 거쳐 육십대 중반이 되니까 조금은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2020-03-17, 02: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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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馬登     2020-03-22 오전 12:59
감사합니다. 엄변호사님. 서초동을 경험해본 나머지라 절로 이해가 갔습니다.
   이중건     2020-03-18 오후 11:08
성경이 따로 없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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