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제주 4.3 연설은 실수인가, 고백인가?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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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3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한 말은 3대 실수 연설, 또는 3대 고백연설로 기록될 것이다.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말했던 평창동계올림픽 리셉션 연설, 자신을 '남쪽대통령'이라 격하하면서 김정은을 국방위원장이라고 추켜세웠던 평양연설, 그리고 공산화 통일을 '제주의 꿈'이라고 왜곡한 제주연설. 이 세 연설을 종합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과 역사관은 도저히 대한민국의 헌법과 공존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4·3은 제주의 깊은 슬픔입니다. 제주만의 슬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아픔입니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오직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며 되찾은 나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화해하고 통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주의 슬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는 '제주'라고 하면서 '제주도민'이 아닌 무장폭동을 일으킨 남로당의 생각을 대변한다. 남로당 세력이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하고 공산통일을 목표로 일으킨 반란을 '제주'가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댜'고 미화한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오직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며 되찾은 나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런 막연한 표현은 무엇을 숨길 때 쓰는 수법이다. 제주도민의 다수는 대한민국 건국을 원하였고 건국을 위한 총선에 참여하고자 했는데 남로당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하여 무장폭동한 것이다. 文대통령은 主語를 제주, 제주도민이라 했는데 남로당을 주어로 놓아야 할 대목에서 남로당이 저지른 악행을 덮기 위하여 제주 제주도민을 불러와 책임소재를 흐리려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라고 했는데 당시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제를 들고 나온 세력은 남로당과 김구 김규식이었다. 남로당의 통일정부 수립이란 공산화통일이고 김구 김규식의 통일은 좌우합작의 실현 불가능한 몽상이었다.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의한 건국 노선을 따랐던 절대 다수 대한민국 국민의 꿈은, 북한에 이미 공산정권이 수립되어 작동하는 마당에 38도선 이남에서 자유민주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었지 실현 불가능한 통일의 꿈이 아니었다. 1948년 현재 통일을 꿈꾼 세력은 남로당과 김구 김규식인데, 연설의 문맥상 남로당의 꿈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이는 꿈이 아니라 韓民族을 김일성의 노예로 만드는 야욕이고 음모였다. 공산통일의 야욕과 음모를 '통일의 꿈'이라 부르는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라는 문장은 '남로당 세력이 공산통일을 획책하는 바람에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다'고 고쳐야 정확하다.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는 말은, 건국을 반대하기 위하여 내건 남로당의 통일정부수립, 즉 공산화 음모를 '간절한 요구'라고 미화, 호도하고 이로 인한 제주의 참화 책임을 남로당이 아니라 이념의 덫에 돌리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무장반란을 진압한 국군과 경찰을 가해자, 남로당 반란세력을 피해자나 이상주의자로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역사왜곡이 아니라 역사조작이다. 이 대목은 <남로당과 김일성의 끈질긴 공산통일 음모는 제주를 분열시켜 참화를 불렀다>로 고쳐야 한다.
  
  <우리가 지금도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화해하고 통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주의 슬픔에 동참해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지금 꿈꾸는 통일은 자유통일이지 연방제나 공산화가 아니다. 문맥상 1948년 님로당의 '통일의 꿈'을 이어받자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의 비극이 남로당의 무장폭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숨긴 정도를 넘어서 무장폭동을 통일을 위한 숭고한 봉기, 즉 못 이룬 꿈으로 해석하도록 했다. 이는 좌파정부 때의 진상 보고서조차 무시한 역사조작이다. 그렇게 간절히 남로당의 반란과 악행을 덮어주고싶도록 한 것은 문재인이 가진 이념적 확신과 이렇게 나가도 자유우파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의 발로가 아닌가?
  
   2003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간한 진상보고서도 공산무장반란세력의 폭동과 학살을 명시하였다. 관계 대목을 소개한다.
  
   <■ 발발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 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청에 의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치사 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경을 비롯하여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그리고 김달삼 등 무장대 지도부가 1948년 8월 해주대회에 참석, 인민민주주의정권 수립을 지지함으로써 유혈사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판단된다.
   ■ 무장대는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 산하 조직으로서, 정예부대인 유격대와 이를 보조하는 자위대, 특공대 등으로 편성되었다. 4월3일 동원된 인원은 350명으로 추정된다. 4·3사건 전기간에 걸쳐 무장세력은 500명 선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무기는 4월3일 소총 30정으로부터 시작해 지서 습격과 경비대원 입산사건 등을 통해 보강되었다.>
  
   문재인 연설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연설을 한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 2020-04-05, 1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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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06 오후 7:08
대한민국 국민의 최고 의 잘못된 선택은 이런자를 대통령으로 만든것!!! 자가나라를 부정하는 자로 남쪽 대통령인것 분명하다!!! 이런 자를 탄핵하지 않는 자유 민주 국민의 침묵은 무서운 불행을 예고하고있는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이런자를 지지하는 국민이있다니 大驚失色할일이다!!!자유 민주 국민은 覺醒하여 현실을 직시하고 친북 주사파,용공연공파,공산주의자 문재인 패거리들을 이번 4.15 총선거에서 척결,청산,소창하여 더이상 자유 민주 대한민국에는 존재할수 없도록 완전히 廢棄處分하여야하는 절대적인 하능이 주신 기회로 자유 민주 국민은 一致團結하여 선거에 임하자!!! 4.15일을 "자유 민주의 날"로 확실히 만드는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자유 민주 국민의 의무며 역사적 사명이며 책임이다!! !
   무학산     2020-04-06 오후 1:54
우리가 볼 때 저 자는 무슨 이념이나 신념이 있어서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 키워주고 또 둘러싸고 있는
주사파 세력에 밉보이지 않으려고 공산주의자 흉내를 낸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극도로 무식한 어버버인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 생각은 있어야 할텐데
그마저도 없으니 이 사람이 이렇게 하자 하면 거기에 따르고
저 사람이 저렇게 하자고 하면 그걸 실행하니
나라가 이렇게나 어지럽다고 봅니다.
   arock     2020-04-06 오전 5:06
2003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간한 진상보고서가 "이 과정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건 분명히 Fact 가 아니다. 철저히 5.10 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남로당의 지령에 의해 움직였다-토론방 "문재인-간첩인가? 무식한가?" 참조. 북한은 김달삼의 제주도 탈출을 돕기 위해 잠수함까지 파견했다. 필자의 선친은 1946년 10월 1일 대구 폭동에 이어 3일~4일에 경북 칠곡군, 영천군,선산군,경주군(당시 이름은 월성군)에서 연이어 발생한 폭동 중에서 좌도 우도 아니면서 경주군의시위에 가담하였는데 노동당 행동대원들이 대구에서 파견되어 어떻게 농민들을 선동하고, 어떻게 파출소 등을 파괴하였는지 생생히 증언하셨다. 선친은 1921년 생이었슴.
   자유의메아리     2020-04-05 오후 4:33
제주4,3 사건에 대하여 70여년이 지난 지금에와서 이렇쿵 저러쿵 하는것은 도로에 불과합니다 4,3당시에 살았고 그당시를 회상하며 평가하려면 적어도 나이가 지금 100세는되여야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능한한 교육은 조곰도 않받은사람 이여야만합니다 저는 1935년생으로 지금 85세의나이를 살아가고 있읍니다 제가 2000년초에(1월달)서울에살다가 국가공무원 61세로정년하고 세월을 보내는데 제주가 낤씨도 온화하고 나이든 사람은 살기가좋다고하여 제주로 이사가서 노형동에서 만 5년간 살았어요 여기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한일은 평생의소원이든 운전면허를 따기위하여 학원에다녀 30일만에 면허따고 당시처음 출하되던 New EF쏘나타한대 사서 타고 다니며 관광하며(제주에선 차 없으면 관광이고뭐고 다니기가 불편함)뽑네며 살었다 노형동 부영 아파트 에살면서 단지 노인회에 가입 총무로 선출되여 나중에 회장이던 중학교 교장출신이던 회장님의서거로 후임으로 제가 회장이 되였읍니다 저는 본시 기독교 신자로서 제주영락교회에 다니면서 교인들과도 교유하며 잘지냈지요 서울에살며 신문지상을 통하여 제주4,3사건에 대하여 어렴프시 알던 그 옜날일을 알아보려고 중학교 교장출신인 회장에게 물어보았지요 교장출신의 회장님으로부터 좀 알아볼수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였읍니다 회장은 4,3당시 광주사범학교에 가 있었기때문에 전혀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드군요 그 외에도 70대 중반정도의초등학교 교장출신등 좀 알만한사람들은 모두 입을 봉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드군요 그러든중 80이가까운 장옥동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자기는 그때 새색시로 밖이 혼란하고 총소리도 들리고하여 그날(4월3일)은 무서워서 못나가보고 이튼날 조용해저서 나가보니 젊은 새색시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데 들어보니 어제 경찰들을 죽이고 난리가 났다고 하드라고 말하드군요 당시 제주에서 들을수있는 이야기는 이정도 밖에 없었읍니다 이제 당시를 살던 사람은 모두저승에 갔으니 알아볼길이 없읍니다 충분하지 않드라도 기록을 보는수밖에는 없겠읍니다 이후에는 알아보려도 못햇지만 여기사람들은 모르쇠 일관이라 알길이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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