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침묵의 힘
말 중에는 헛된 말이 많다. 그러나 헛된 침묵은 없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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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장급 고위직 법관을 하던 분이 변호사가 되어 민사법정으로 나왔다. 그는 재판장을 할 때처럼 두 명의 부하 변호사를 대동했다. 그는 재판을 하고 있는 후배 법관들의 모습이나 상대방 변호사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조금은 독선적인 성격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보면서 내뱉었다.
  
  “어떻게 서면을 그렇게 써 보냅니까? 재판은 법률과 논리로 하는 겁니다. 왜 쓸데없는 걸 적어요? 그걸 보고 우리 의뢰인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보지 않고 자기 안에서만 맴도는 사람 같았다. 그 사건은 연예기획사의 사장 밑에서 노예같이 생활을 하던 가수를 그 계약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내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폭력배에게 위협을 당한 일과 무시당하고 학대받았던 사실을 일부 적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쓰는 일이 변호사의 임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재판의 진행절차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재판장에게도 자기의 의견을 뱉어내곤 했다. 후배 법관의 재판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은 재판장과 선배 법관인 그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의 재판장은 저입니다.”
  
  참고 있던 재판장이 그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할 말은 글로 자세하게 써내고 법정에서는 가급적 침묵하면서 재판장과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메모를 한다. 상대방이 쏟아내는 말을 열심히 들으면 그 속에서 그의 생각과 함께 그가 앞으로 싸우려는 전략들이 묻어 나왔다. 재판장이 하는 말 속에서도 그가 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 들여다보였다.
  
  재판에서 논쟁이 벌어지면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닫고 자기가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많은 말을 하고 목소리가 높아야 이기는 것으로 착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것은 절제된 침묵의 힘이었다. 재판이나 일상에서나 많은 말은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고 짜증나게 한다. 특히 선배 법관 출신이나 법률지식이 넘쳐흐르는 변호사의 질타나 장황한 설명은 법관의 예민한 자존심을 긁기도 했다.
  
  글은 많은 말들을 침묵의 체로 여과시켜서 종이 위에 형상화한 것이다. 법정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판사의 기억 속에서도 몇 시간만 지나면 퇴색해 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가급적이면 변론을 글로 기록 속에 남기려고 노력해 왔다.
  
  식당 같은 곳에서 종편의 텔레비전 화면이 이따금씩 눈에 들어왔다. 진행자와 패널로 출연한 사람들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끝도 없이 지껄인다. 그들은 언어의 설사증이라도 걸린 것 같다. 소화되지 않은 말들과 익지 않은 생각들이 무책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종교방송을 틀어도 하루 종일 설교라는 이름으로 말들이 장마철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자기들이 경험하지 못한 영적 세계를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신학적 용어로 말하는 연사들도 많은 것 같았다.
  
  전도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특정한 성경구절과 자신이 만든 대사만 반복한다. 마치 마네킹 속에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직접 하늘에 계신 그 분을 만나보지 못한 것 같았다. 유튜브를 보면 누군가에 대해 증오를 품고 있는 독이 서린 말들이 매연같이 가득 차 있다. 모임에를 나가도 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막으면서 혼자 끝도 없이 얘기를 하고 있다. 이따금씩 식당이나 지하철에서 내 나이 또래의 노년의 인생들이 소리치는 걸 본다. 자기만의 좁은 경험과 식견에서 나오는 정치관을 강요하듯 높은 목소리로 떠들어 댄다. 모두들 눈살을 찌푸린다.
  
  젊은 시절 나도 말이 많았다. 내면이 공허한 나는 친구들과 만나면 끊임없이 떠들었다. 그러나 돌아서서는 씁쓸하고 참담한 느낌이었다. 얕은 개울 같은 나는 항상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깊은 강 같은 인격을 가진 친구는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걸 보았던 것이다. 말 중에는 헛된 말이 많다. 그러나 헛된 침묵은 없다. 한 수필가는 말이 부스러기라면 침묵은 꽉 찬 어떤 완벽함이라고 했다. 이제는 그렇게 침묵하고 싶다.
  
[ 2020-05-14, 23: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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