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대령으로 진급하니까 참 좋구만"
‘일찍 도착하려고 서두르지 마라. 그곳에 도착하면 뭘 하려는가? 그 순간 놀이는 끝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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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중반 장기 법무 장교로 최전방의 사단사령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한번은 대령인 참모장이 참모들을 읍내의 한 음식점에 집합시켰다. 중령인 참모들이 이십 명가량 참석했다. 대부분 사십대를 넘긴 고참 중견 장교들이었다. 대령인 참모장보다 군 경력이나 나이가 더 위인 사람도 있었다.
  
  “술부터 한 잔 해라.”
  참모장은 앞에 모인 장교들에게 마치 한참 나이 어린 동생에게 하듯 반말로 내뱉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너희는 나보다 졸병이잖아?’ 하는 표정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계급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게 군대 사회였다. 대령인 참모장은 앞에 있는 커다란 유리 재떨이에 두 홉짜리 소주병을 거꾸로 들고 부었다. 재떨이 잔이 돌기 시작했다. 그 잔을 받은 사람이 단번에 그걸 마시면 참모장은 다시 소주병을 통째로 부어 잔을 채워 다른 사람에게 마시라고 했다. 즐거운 회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고통을 주는 자리 같았다. 제일 낮은 계급인 대위인 나는 말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했다. 한 잔만 해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심장이 방망이질을 했다. 병째로 부은 그 술을 마시면 기절하거나 죽을 게 틀림없었다.
  
  “야, 너도 마셔”
  내 차례가 돌아오자 참모장이 말했다.
  
  “저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내가 술을 사양했다. 순간 참모장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어렸다. 나의 행위는 계급사회에서 항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도 객기로 될 일이 아니었다. 대학시절 친구들이 주는 술을 오기로 마셨다가 응급실로 가기도 했었다. 마시면 큰 실수를 할 것 같았다. 참모장은 명문고등학교를 나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더구나 당시는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그 몇 년 전만 해도 인근의 일사단장을 했었다. 군 장교들의 목이 한없이 뻣뻣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참모장은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하고 깔보고 있었다. 그 얼마 전 부대에서 전입신고를 할 때였다. 전임 법무 장교가 나를 데리고 참모장에게 가서 인사를 할 때였다. 참모장이 나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전임 법무장교에게 말했다.
  
  “쟤는 아직 어리니까 다시 고시에 도전해서 합격할 수 있지만 너는 머리가 썩어서 안 되겠구나.”
  
  그 순간 나는 똥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모멸감을 느꼈다. 선임 장교와 나는 사법고시를 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군 법무장교시험을 쳐서 들어왔었다. 우리들에게 고시의 낙방이란 아픈 상처였다. 참모장은 그 상처의 딱지를 장난삼아 뜯어 피가 흘리게 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직 내 머리는 썩지 않았습니다. 나도 고시에 합격할 수 있습니다.”
  
  선배 장교의 대답이었다. 나는 속에서 주먹 같은 반발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런 참모장은 그 계급사회에서 나에게는 절대자였다. 그가 배정해 주는 바라크 관사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가 허가해야 군용 지프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의 관용이 아니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는 왕이었다. 나는 그가 재떨이에 주는 모욕적인 술을 받지 않고 버텼다. 바로 내 옆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감찰참모가 말없이 돌아가는 술을 받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눈에서 하얀 눈물이 흘러내렸다. 단합을 위한 모임에서 가장 연장자인 듯한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
  
  “왜 우세요?”
  그가 나를 보면서 속삭이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참모장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계급서열도 나보다 아래였어요. 그때는 공손하고 싹싹하고 나한테 형님이라고 하면서 잘했는데 말이죠.”
  
  진급하지 못한 사람의 비애가 그런 것이구나 하고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참모장이 화답이라도 하듯이 하는 소리가 귀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대령으로 진급하니까 참 좋구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중령이었잖아?”
  나는 그의 교만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차디찬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의 그런 모습이 그의 속을 뒤집어 놓은 것 같았다.
  
  “너희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참모장이 명령했다. 그 앞에 있던 중령들이 술에 만취된 순간에도 주춤주춤 일어섰다.
  
  “너희들 술자리 군기가 엉망인데 좀 맞아야겠다. 작전참모부터 앞으로 나와.”
  
  작전참모가 그 앞에 섰다. 참모장은 주먹으로 그의 배를 갈겼다. 술 취한 작전참모가 ‘헉’ 하고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사병들이 기합을 받듯 순차로 주먹세례들을 받고 있었다. 나는 줄의 맨 끝에 서서 생각했다. 맞을 이유가 없었다. 멱살을 잡고 오히려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나의 막사로 돌아왔다. 삼십 분쯤 후에 분노한 참모장이 헌병들을 보냈다.
  
  “범죄나 군기 위반이 아닌 업무에 참모장이 헌병들을 보낸 건 직권 남용 아닌가? 내가 갈 이유가 없다고 전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부대에서 만난 참모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외면했다. 사십여 년 전 군대의 분위기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텔레비전에서 그 참모장이 육군 대장이 되어 대통령과 함께 사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바람결에 노인이 된 그가 아프다는 소리가 들렸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게 있다.
  
  ‘일찍 도착하려고 서두르지 마라. 그곳에 도착하면 뭘 하려는가? 그 순간 놀이는 끝난다.’
  
[ 2020-05-17, 02: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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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5-17 오후 4:15
감탄이 나옵니다
대단한 용기 부럽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을 믿어서
그럴수 있는건지 물어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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