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다는 건 큰 행복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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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십년 전쯤인 것 같다. 볼 일이 있어 여의도에 갔다가 한강변을 따라 걸어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물결이 햇빛을 퉁겨내고 있었다. 한낮의 강은 내게 자신의 소리를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어느 순간 이 강을 따라 계속 무심히 걸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로 돌아가 간단히 배낭을 챙겼다. 배낭 속에 물병과 성경, 그리고 읽던 책을 넣었다. 순례자 같은 마음으로 길을 떠나 보기로 한 것이다. 다시 한강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저녁 강의 모습은 한낮의 강과는 표정이 전혀 달랐다. 헤세의 ‘싯다르타’라는 소설에서 두 노인이 강가에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노인들에게는 강물이 속삭여 주는 소리들이 진리였다. 해가 저물어가는 아무도 없는 강가에 앉았다. 진공 같은 적막 안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걸었다.
  
  아무도 없는 여주 이포보의 강가는 하얗고 노란 꽃들의 들판이었다. 나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걷고 있었다. 강을 따라 원주 가까이 갔을 때였다. 걸어가는 옆의 풀숲에서 녹색의 작은 뱀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부지런히 나를 따라 왔다. 작은 뱀이 나와 동행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걸어가면서 찬송을 하기도 하고 강가 벤치에 앉아 쉴 때면 성경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내가 허약한 존재라는 걸 길을 걸으면서 알았다. 마음은 끝까지 가고 싶은데 발톱이 빠져버렸다. 자동차로 치면 타이어부터 해서 전반적으로 기관이 낡아 버린 셈이다. 충주 부근에서 걷는 걸 그만 두었다.
  
  인간이 걸을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잠시 온 지구 위에 발 도장을 많이 찍고 싶은 욕망이 있었나 보다. 중학교 시절도 함박눈이 내려 누추하던 세상이 은세계로 변하면 나는 눈 덮인 골목길을 또박또박 걸었다. 그냥 걷는 게 좋았다. 친한 친구 서너 명과 ‘워킹 클럽’을 만들었다. 그 친구들과 서울의 낯선 골목길과 산동네 길들을 하염없이 걷는 게 우리들의 놀이였다. 용돈이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지만 걷는다는 건 돈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고시 공부를 한다고 암자에서 생활을 할 때는 몇 십리 시골길을 타박타박 걸으면서 물이 찰랑거리는 논도 보고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보리밭을 마음의 풍경화로 새겨 넣기도 했다. 뒷골목에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난 후에도 틈틈이 이 지구 위에 발자국 도장을 남기고 싶었다.
  
  구 소련이 무너진 얼마 후에 낡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다. 짧고 약한 나의 다리 대신에 열차의 바퀴가 나의 다리라고 생각했다.열차의 복도에 서서 지평선 저쪽으로 붉게 내려앉는 거대한 태양을 보면서 내 마음은 거인처럼 대륙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은 역에서 내려 주위를 걸었다. 냉기가 피어오르는 바이칼호수 주변을 걸으면서 문인 이광수의 소설을 떠올리기도 했다. 노보시비르스크, 에카테른부르크의 뒷골목을 걷기도 하고 도심의 거리를 걸어 러시아 시인 고골리의 집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중국 서쪽의 비단길을 따라 돈황과 우루무치의 삭막한 사막길을 걸어봤다. 돈황의 막고굴 안에서 신라의 혜초스님을 만났다. 인도까지의 걷는 여정이 그의 최고의 수행이었을 것 같았다. 티벳으로 가는 중국의 철도가 놓이기 전 중국에서 히말라야 산맥의 골짜기 길들을 굽이굽이 돌아 티벳을 거쳐 인도로 넘어가기도 했다. 골짜기를 돌 때마다 유채밭이 나오고 시냇물이 흐르고 연료로 쓰는 마른 소똥을 벽에 붙여놓은 작은 집들이 있었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망고나무 가로수가 서 있는 인도의 시골길도 걸었다.
  
  나는 조선시대의 선비 정난을 좋아한다. 다른 선비들이 온통 벼슬에만 관심이 있을 때 그는 청노새 한 마리에 올라 조선팔도를 구경 다닌 사람이었다. 가다가 시가 떠오르면 그걸 써서 염낭 속에 넣고 또 다시 길을 걸었다. 김시습도 그랬던 것 같다. 그가 함경도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이천 편 가까운 시를 써서 남겼다. 그가 경주의 금오산에서 새로운 얘기를 쓴 게 ‘금오신화’라고 했다. 요즈음 나는 하루 중 잠시라도 모든 세속의 인연을 벗어나 산이나 강가 혹은 거리를 걷는다. 그렇게 나는 영혼과 건강을 보존하고 싶다.
  
[ 2020-05-29, 20: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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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03 오후 6:11
"길"? 내가 가야하고 자유 민주 국민이 꼭 가여 할 길을 아직 찾지못하고있는 현실이 슬픈 일입니다!!! 갈길을 가게해주십시오!!! 주님께 기도 드리며!!! 감사! 감사! 감사!!!
   이중건     2020-06-02 오후 11:22
낭만적이네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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