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변호사 회장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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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쯤의 황사가 섞인 바람이 불던 봄 어느 날이다. 책상 앞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부우하고 진동을 했다.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저 대한변협 회장인데요,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해 줄 수 있어요?”
  
  나는 뒷골목 개인법률사무소를 하고 있는 변호사였다. 대한변협의 상임이사 자리는 회장을 뽑는 선거판에서 대형로펌이 배정받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니면 선거에 공을 세운 변호사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왜 저한테 대한변협 상임이사 자리를 권하는 거죠?”
  “전임 회장이 강력히 추천을 했어요.”
  
  “어떤 일을 하는 겁니까?”
  “대한변협신문을 독자적으로 운영하시고 시국문제에 대해 대한변협의 성명을 발표하시는 일이에요.”
  
  모처럼 세상에 나가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한변협 상임이사 취임을 승낙했었다. 그 전에는 나의 사무실에 들어앉아 책을 보고 이따금씩 칼럼을 쓰는 생활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변호사 사회를 구경하는 기회였다. 자기 사무실에만 있는 일인 성주인 변호사들은 다른 변호사들의 삶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회의에 몇 번 참석하지 않아 잘못 들어간 걸 후회했다.
  
  선거에 의해 당선된 회장은 절대군주였다. 모두들 그 앞에 알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변협의 직원들은 회장을 떠받치는 개인적인 고용원 같아 보였다. 회장의 승용차 앞 조수석에는 사무국장이 비서가 되어 항상 수행했다. 회장의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변협 직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한번은 회장의 차를 타고 정치에 입문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위로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는 차는 목적지 사무실에서 십여 미터 오차가 났다. 기술의 한계상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뭐 이따위로 해.”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벌컥 화를 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는 회장의 다른 모습이었다. 정치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속성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이사들도 필요하면 갈아치우는 일회용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인으로서 전국의 변호사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신문에 발표했다. 변호사 사회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장은 재벌기업을 클라이언트로 가진 부유한 대형 로펌의 대표였지만 가난한 시골 변호사도 많았다. 재래시장통 구석의 가게 한 귀퉁이에서 일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싸구려 중고차조차도 몰지 못하는 가난한 변호사도 있었다. 변협은 그들에게 비싼 회비만 징수할 뿐 아무것도 해 주는 것이 없었다. 부자 변호사와 가난한 변호사는 정신적인 교감조차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회장은 한 달 중 상당부분을 심복으로 부리는 이사를 데리고 해외에 나갔다. 국제 법률가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분이었다. 어느 날 국제전화가 내게 걸려왔다. 회장을 모시고 해외로 나간 변협의 국제담당이사였다.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국제 법률가 회의가 있으면 그걸 담당하는 이사 한 사람만 가면 됩니다. 회장이 굳이 다른 이사들을 데리고 수천만 원씩 쓰면서 갈 필요가 없어요. 제가 같이 와서 옆에서 보면 첫날 첫 시간만 회의에 참석하고 골프장으로 가고 관광을 다니는 겁니다. 하루 묵는 고급호텔비만 해도 꽤 비싸요. 변호사 회비를 받아서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거냐구요.”
  
  회장의 출장비를 보자고 담당직원에게 자료를 요구했다. 그들은 보여주지 않았다. 투명해야 할 비용이 왜 비밀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알아보니까 수억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결과도 없었다. 회장은 이따금씩 이사진들을 대동하고 해외여행을 했다. 그렇게 해서 서로서로 적당히 눈감고 좋게 지내자는 것 같았다. 세상이 그랬다.
  
  나름대로 자제하면서도 변협신문에 문제점을 몇 번 글을 썼다. 그리고 회장에게 따지기도 했다. 회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고 그 집단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처음에는 몇 달 있다가 사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기로 끝까지 그 소외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나는 변호사란 직업은 고독에 견디면서 저항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권력에도 맞서고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는 성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아무도 지배하려 하지 말아야 했다.
  
  순종으로 길들여진 집단에서 혼자 엉덩이에 뿔 난 짐승 취급을 받고 버티기가 쉽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났다. 인간은 각자 자기의 성격이 그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종사하는 이 직업을 사랑하고 그것에 만족한다.
  
  
  
[ 2020-07-10, 15: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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